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907회 내가 내 가족의 희망이 되어 화목하게 살겠습니다.

Buddhastudy 2014. 4. 18. 20:54

출처 YouTube

 

사람이 왜 혼자 안 살고 둘이 살까요? 5명이 살고, 10명이 살고, 100명이 살고, 왜 이렇게 무리를 지어서 살죠? 혼자 따로따로 살면 될 텐데. 혼자 사는 거 보다 무리지어 사는 게 이롭다는 거예요? 손해 본다는 거예요. 이롭다는 거예요. 이익이 되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사는 거요. 으흠. 무리를 지어 사는, 이롭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사는 그 무리를 뭐라고 그러냐? 공동체다. 이렇게 말해요. 공동체. 이 공동체 가운데 제~~일 작은 게 뭐예요? 가족 공동체요. 조금 큰 게 마을 공동체. 조금 크면 지역 공동체. 더 크면 뭐에요? 민족 공동체. 더 크면 국가 공동체. 더 크면 인류공동체. 이래요.

 

요즘은 사람만 아니라 다른 생물까지도 우리가 같이 더불어 살고 있다. 그래서 무슨 공동체라 그래요? 지구공동체 이런 말을 쓰죠. 공동체라는 말을 쓸 때는 같이 사는 게 이롭다. 서로 이익을 주는 무리. 어우러짐. 이거를 공동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사람이 둘 이상이 되면, 또 서로 이해를 다툽니까? 안 다툽니까? 다투죠? 부부지간에도 손해보고 이익 보는 거 갖고 서로 갈등이 있어요? 없어요? 있죠. 으흠. 동네에서도 있어요. 지역에도 있고. 나라 안에서도 있고. 요렇게 사람과 사람,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은 서로 갈등을 일으킵니다. 서로 경쟁한다. 이익을 서로 가지려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손해 보는 거 같고, 저 사람 없으면 내가 이익 볼 거 같아. 그런데 크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같이 삶으로 해서 서로가 이익을 보는. 이게 무리에요. 그러나 그 안에서는 또 개인끼리는 뭐예요? 서로 경쟁하는. 그래서 개인끼리. 또는 집단끼리 경쟁을 하더라도 그 경쟁이 공동체 전체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경쟁은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그게 공동체 전체에게 손해가 되는, 그런 갈등, 그거는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까지 경쟁이 치열해져버리면 어떠냐? 결국은 투쟁이 되고, 전쟁이 되고 이러면, 모두가 손해나는 일이 벌어져요.

 

그래서 공동체가 붕괴된다. 이렇게 말해요. 요즘 현대 사회는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큰~~~문제를 3가지를 얘기한다면 첫째가 인간성 상실이다. 이렇게 말해요. 사람의 그 양심이 파괴되고 있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있다. 그다음에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다. 3번째는 지구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이게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요.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고, 지구환경을 복원해 낼 거냐? 이게 이 시대의 과제가 된다. 이런 얘기요. 요 공동체가운데 최소 공동체가 가족공동체에요. 그럼 이 가족 공동체는 어떻게 형성되느냐?

 

남자 따로, 여자 따로 있다가 둘이가 관계를 맺어서 부부가 되면 가족공동체가 되는 거요. 그러니까 따로따로 개별적인 것들이 둘이 합해서 가정을 이루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려고 가정을 이루는 거요. 결혼을 하면 두 사람에 끝나지 않고 이렇게, 나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요. 그래서 부부간, 나와 아내, 나와 남편의 부부간의 문제가 있고, 가족 공동체는 나와 부모라고 하는 관계가 성립하는 거요. 그런데 또 살면 자식이 생겨요. 그래서 나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성립해요. 그래서 가족 공동체는 인간관계가 3가지에요.

 

첫째가 뭐고? 부부고. 두 번째가 부모고. 세 번째가 자식이고. 나를 중심으로 해서 옆으로는 아내나 남편이 있고. 위로는 부모고. 아래로는 자식이고. 그래서 3가지 인간관계가 성립하는데, 3가지 인간관계를 잘 맺으면 가정이 화목해지고, 3가지 인간관계가 잘못 맺어지면 가정이 불화가 일어나는 거요. 그러면 이 셋과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되느냐? 어떻게 맺으면 화목해지겠냐? 여기 순서로 1번이 뭐에요? 부부지간. 부부라는 건 완전히 낯선 사람이 만나서 부부가 되잖아요. 여동생 남동생하고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삼촌하고 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낯선 사람하고 결혼을 한다는 거요.

 

그러니까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까 많이 다르겠어요? 안 다르겠어요? 달라. 입맛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기호도 다르고, 습관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신앙도 다르고. 다른 게 굉장히 많아. 그러니까 같은 게 정상이 아니고 다른 게 뭐다? 정상이에요. 그런데 따로따로 살 때는 나와 다른 상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그런데 이렇게 만나 얘기를 해보니까 한두 개 비슷한 게 있어요. 같은 게 있어. “, 나하고 똑같네. 생각이 같네. 취미가 같네.” 그럼 호감이 가요. 그래서 둘이 좋다고 만나요. 그런데 사실은 다른 건 만 가지고, 같은 건 10가지 밖에 안 돼요. 그런데 10가지에 혹 빠져서 결혼을 하는데, 살아보면 만 가지가 다른 거요.

 

그래서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가 자라난 환경을 보면, 그의 성격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다. 이걸 이해라 그래.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 사람 입장에선, 그 처지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인정과 이해가 있어야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없이 화목할 수가 있어요. 서로를 용인할 수가 있다. 이 말이오. 또 하나는 서로 사랑해서 만났다. 이렇게 말하는데, 실제로는 안 그래요.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 좋아하시네요.

 

반들반들~~~한 이해관계가 걸려있어요. 좀 덕 보려는 생각이. 하나 잘 잡아서 평생 벗겨먹으려는 생각이. 이런 덕 보려는 생각이 거기 깔려 있는 거요. 그래서 친구를 사귈 때는 의리만 보고, 동업을 할 때는 신용만 보고 이러는데, 결혼을 할 때는 10가지 20가지 다 봐요. 온갖 군데서 이익을 보려고. 그래서 그 기대, 덕 보려고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살아보면 덕이 없네.” 더 나아가면 손해네. 밑지는 장사네. 굳이 살게 뭐있어?” 이렇게 되는 거요. 그래서 이 부부가 서로 평화를 유지하려면, 화목하려면, 덕 보려는 생각을 내려놔야 되요.

 

내가 오히려 상대에게 도와줄 마음을 내면, 조금 더 보여줄 마음을 내면, 사실은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어요. 그다음에 부모를 모셔야 되는데, 부모는 사실은 내가 부모하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아내하고 결혼했고, 남편하고 결혼했는데, 전혀 나하고 관계없는 낯선 사람하고, 그걸 부모라 그래야 되고. 낯선 사람을 시동생이다. 시누이다. 처제다. 뭐라고 해야 되고. 여기 어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아내가 필요하다면 그 아내의 부모. 아내의 형제를, 내 부모형제로 받아들여야 되고. 내가 남편이 필요하다면 남편의 부모, 남편의 형제를 내형제로 받아들여야 된다.

 

이게 붙어있어요. 뗄 수가 없어. 그걸 떼려고 하면 천륜을 어기는 거요.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끊어라. 이 얘기에요. 형제간의 관계를 끊어라. 이런 얘기밖에 안 된다. 그래서 그걸 받아들여야 되요. 그러니 내 아내가 소중하다면 내 아내를 낳고, 내 아내를 키우고, 내 아내가 여기까지 되도록 만든 그 공로자. 아내를 이렇게 만들어 준 공로자. 그 공로를 인정해야 돼. 남편을 이렇게 만들어 준 그 공로자. 그걸 인정해야 돼. 그래서 부모한테는 어떻게 해야 된다? 감사해야 돼. 내 친부모든, 시부모든. 내 친부모는 나를 낳고 나를 키워주고 나를 있게 했기 때문에 감사해야 되고, 시부모는 내 사랑하는 남편을 이렇게 만들어준 사람이니까 감사해야 된다.

 

그래서 형편이 되면 빚을 좀 갚아야 된다. 은혜를 갚아야 된다. 그래서 부모한테는 감사할 줄 알아야 된다. 뭔가 좀 갚을 수 있으면 좋고, 못 갚더라도 뭐는 해야 된다? 고마워할 줄 알아야 돼. 그런데 불평불만이 많아. 불평불만이. 미워한다. 이거야. 부모를 미워해서는 안 돼. 부모에 대해선 항상 감사합니다. 이래야 돼. 그러면 문제가 다 풀려요. 그다음에 자식을 낳게 되면 어떠냐? 부부지간이나 부모는 성인과 성인의 관계요. 약속의 관계. 그러나 자식은 일방적 관계요. 자식하고 약속한 게 아니오. “내가 너 낳으려는데 어때? 내 자식 될래?” 이렇게 협의해가지고 약속하고 온 게 아니다. 이거요. 일반적으로 결정한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아이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져야 돼. 언제가지 성인이 될 때까지. 20세 까지. 이거는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 책임은 4단계로 나눠야 되요. 0~3세까지 어린아이 때는 극진히 돌봐줘야 되요. 품에 안고 극진히 돌봐줘야 된다. 팽개치면 안 된다. 나보다 아이를 더 우선해야 되요. 그다음에 자아가 형성된 뒤에 4살부터 14살까지 이 유치원 초등학교 시기. 요 시기는 아이의 성질이 뭐냐? 따라 배우기하는 시기에요. 뭐든지 따라 배워. 흉내 내는 시기. 그러기 때문에 부모가 모법을 보여줘야 돼.

 

그다음에 사춘기가 되면 뭐냐? 성인이 되는, 독립하기 위해서 연습하는 시간이에요. 자기 홀로 일어서려고 연습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때는 도와주면 안 되고 지켜봐줘야 돼.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연습하는 시기. 거기 도와줘버리면 오히려 자립에 장애가 된다. 그리고 20살이 넘으면 어떠냐? 정을 끊어줘야 돼. 그래서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도록 해줘야 돼. 간섭을 안해야 된다. 이렇게 우리가 가정이 화목해지려면 3가지 인간관계가 있고. 3가지 인간관계를 잘 맺으면 가정이 화목해진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행복한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