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906회 자녀가 종교를 선택할 때 무엇을 지침으로 삼도록 해야 하나요?

Buddhastudy 2014. 4. 15. 22:35

출처 YouTube

 

물질에도 중독성 물질이 있습니다. 우리가 물을 마실 때, 물은 중독성은 없습니다. 물은 없으면 우리가 안 되죠. 우리가 목말라서 물을 마시는 거는 그 물을 마시므로 해서 생명이 살아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식물이 물이 부족해가지고 비틀어져서 시들어질 때 물을 주면 어때요? 도로 살아나죠? 그죠? 이렇게 살리는 게 있습니다. 음식을 먹어야 우리가 살고, 그것이 있어야 생명이 살아나는 게 있고, 반대로 물질 중에는 그것이 점점 생명을 죽이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아편 같은 거를 만약에 처음에 배 아플 때 조금 먹으면 굉장히 좋습니다. 병이 낫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갖는 성격은 뭐냐? 시간이 흐르면 그게 우리 몸에 쌓이면서 그것을 계속 요구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계속 요구하는, 그래서 일종의 중독성이 있다. 이런 얘기에요. 이런 데서 우리가 담배 같은 것도 뭐가 있다? 중독성이 있다. 그러니까 먹고 싶은 욕구, 피우고 싶은 욕구가 먹으므로 해서, 피우므로 해서,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게 아니고 뭐다? 몸의 건강을 해치는 쪽으로 가는 거요. 일상적으로는 몸에 입이 요구하는 거 먹으면 몸에 좋고, 거부하는 건 몸에 나쁜 거요.

 

그런데 이 경우는 입은 당기는데, 몸에는 나쁜 거요. 가장 대표적으로 늘 재기되는 게 뭐요? 첫째가 뭐요? 담배. 술도 중독증상이 있죠. 그다음에 마약이라고 하는 마리화나든, 아편이든, 히로뽕이든, 이런 거 다 무슨 증상이 있다? 중독 증상이 있습니다. 우리 감기약 중에도 일부 옛날에 중독증상이 있는 게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이런 중독 증상이 있는 거는, 이건 습관성이거든요. 일종의 중독성이라는 게 무슨 성이라고? 습관성이에요. 습관성이 심해지면 중독성이라 그러는데, 그것은 나쁜 데도 불구하고 자꾸 요구하는 거요.

 

필요해서 요구하는 게 아니라, 물처럼 몸에 필요해서 먹고 싶은 갈증을 요구시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공급되면 건강에 나쁜데도 요구를 한다. 이러면 이게 중독성이라 그래요. 습관성 중에 여러분들 필요한 거 많습니다. 커피도 습관성이에요? 습관성 아니에요? 습관성이에요. 해보시면 여러분 잘 알거에요. 안 먹는 사람은 뭐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그런데. 그게 일단 중독성이 되면 어떠냐? 안 먹으면 그냥 뭔가 불안해지고 이런 거요. 한잔 먹어야 괜찮아지는 거요.

 

그런데 지금은 좀 심한 것, 담배다 술이다 뭐~ 마약이다 하는 건 이런 건 좀 심한 거고, 커피도 사실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해가 그렇게 심하지가 않으니까 우리가 그냥 기호식품이다 이러는데, 대부분 기호식품은 습관성이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그것을 먹는 것은 우리 몸을 해친다는 거요. 여러분들이 지금 비만이 되는데도 음식을 못 끊는 데는 그 음식이 무슨 성이다? 습관성 아니면 중독성입니다. 밥도 계속 먹어야 되면 그것도 일종의 습관성 중독성이다. 몸에 해로운데도 자꾸 먹게 된다. 이걸 못 참는 거죠.

 

물질에도 이런 게 있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적 프로그램에도 이런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지금 게임중독성이라는 게 있죠? 그죠? 처음에는 그걸 하면 재밌는데, 그게 집중으로 해서 많이 그게 습관이 되면 어떠냐? 그거 안하면 심리 불안 때문에 못 견디는 거요. 그래서 옛날에 노름, 화투치는 거 어릴 때 다 습관성이 있죠? 그죠? 만화 보는 것도 너무 빠지면 습관성이 있고, 그 다음에 섹스도 그냥 부부가 성관계 이게 아니고, 그것도 너무 빠지면 습관성이 있습니다.

 

습관성이 있으면 어떠냐? 위험해도 그걸 못 견뎌서 하는 거요. 그래서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는데도 계속 그렇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고, 상대를 강제로라도 그 습관을 못 이겨 가지고 해서 감옥살이하는데도 그런 게 있고. 그럼 그건 이미 중독성이 있는 거요. 그래서 섹스에도 중독성 증상이 있는 거요. 지나치면 중독성이 있다. 자기가 자기 제어가 안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이런 정신적인 거에도 중독성이 있는데, 이런 중독성이 있는 것 중에, 정신력 자체가 그런 중독성이 있는 요소가 있다는 거요. 그래서 종교도 중독성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몸이 그런 게 있는 것처럼 정신에도 그런 게 있다. 그래서 이 종교가 지나치게 중독성 수준으로 가게 되면 이게 몸에 아편이나, 정신의 종교나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마르크르가 뭐라고 그랬어요? [종교는 아편이다.] 이런 말까지 했다는 거요. 그러니까 정신을 맑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 이걸 안 믿으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못 견디는 거요. 마치 아편을 안 피우면 못 견디듯이. 그래서 그 아편을 피우려고 집을 팔고, 마누라도 팔고, 이렇게 되는 것처럼, 그 종교적 믿음에 중독이 되어버리면 어떠냐? 그냥 집도 팔고 부부도 헤어지고 이런 것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거요.

 

여러분들의 삶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욕구불만이 있으면, 이 중독성에 빨려들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이런 종교의 세뇌되어서 중독화된 경우는 정신적인 불안정이 심한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게 한번 중독이 되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상대편에서 계속 그런 중독을 주입하는 거도 있지만,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됩니다. 처음에 내가 아편을 안 맞으려고 했는데 상대가 강제로 나를 납치해서 주사를 놔서 한 1년 정도 아편주사를 맞게 되면, 나중에 경찰에 의해서 내가 조직에서 구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번엔 제 스스로 어때요? 아편을 안 맞으면 못 견디지 않습니까? 그죠?

 

처음에는 그들에 의해서 쇠뇌가 됐지만, 거기 한번 쇠뇌가 되면 그다음에 제 스스로 말려도 찾아가게 되는 거요. 안 그러면 자기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얼마 전에 2천년이 되면 휴거라고 들어보셨죠? 그래서 거기 중독이 되어서 재산 다 갖다 내고, 뭐 다 갖다 내고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으흠. 그러니까 이런 증상이 있기 때문에 심리가 불안하면 이런데 빨려들어 이성적 판단을 못하는 다는 거요. 그냥 맹목적이 된다는 거요. 이런 증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것이 제법 뻔듯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안에 있고, 또 신흥종교 중에 이런 것도 또 있습니다.

 

그러면 이 정도 수준도 안 되고 소집단, 작은 집단에서 이런 게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데 말려드는 사람은 정신 불안증이 있는 사람들이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사회에 정신불안증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많다 보니까 이런데 빠져 들어가서 못나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이 정신 불안증은 마약에 빠져 들기가 굉장히 쉬워요. 그다음에 이게 살기 어려워도 이렇게 됩니다. 북한같이 저렇게 살기 어려우면 엄청나게 감독을 해도 이런 신흥종교나 어떤 가르침에 어때요? 순식간에 전파되는 이런 현상이 생겨요.

 

특히 요즘 우리가 먹고 살만한데 지금 앞에서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젊은이들이 막막하고 답답하고, 지금 여러분들이 심리가 대부분 불안한 상태에요. 미래가 불투명한 거요. 미래에 어떤 목표가 있고 희망이 있어서 쓱~ 살아가는 이런 맑은 정신이 아니고,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고 앞일을 예측 못하고 이렇게 되면 이런 선전이 쉬 이렇게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현행법으로 처벌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이걸 건드리면 종교자유라 그래서 난리가 나는 거요.

 

그래서 이것은 자기가 정신을 차리고 갈 수밖에 없는데, 오늘날 젊은이들이 특히 심리불안요소가 점점 커지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거는 점점 더 많은 곳에서 나타날 거요. 미국에서도 이번에 뉴스 보면 가끔 집단 자살하는 것도 보셨죠? 수백 명이 한꺼번에. 자살을 한다든지. 이런 현상도 일어나거든요. 그 환상에 사로잡히는 거요. 아편을 피우고 환상 속에 있듯이, 그런 믿음 속에서 어떤, 환상 속에 살게 되는 거요. 옆에서 얘기해도 자기 귀에 잘 안 들려요. 꿈꾸듯이. 그래서 그런 위험, 그거는 늘 있어 왔습니다.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지금 우리 사회가 심리적 불안요소가 점점 증대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심화될 거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희망세상 만들기운동하는 것도 이런 사회적인 어떤 변화, 그러니까 정치가 똑바로 되고, 사회체제를 똑바로 하면 이런 현상이 줄어들고, 정치가 불안하고 사회가 불안하면 어때요? 이런 현상이 증폭되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로 항상 접근해야 됩니다. 하나는 큰 틀에서 사회를 좀 더 투병하고 바르게 해나가도록 하는 일을 하나, 하나는 개개인이 정신 차리도록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이렇게 즉문즉설하는 이런 일들은 개개인의, 세상이 어떻든 개개인의 정신이 똑바로 차려지도록, 그래서 심리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라면 스님이 통일이라든지 이런 사회를 바르게 하는 정치적인 경제적인 이런 얘기를 자꾸 하는 거는 뭐다? 큰 틀에서 사회를 안정시켜주는 일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정치인들처럼 정치만 바란다고 이게 해결 되는 거 아니에요. 이 개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개개인만 얘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사회 전체가 불안정하면 개개인이 불안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런데서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종교를 일찍 주입하는 거는 옳지가 않다. 어린 아이에게 주입한다는 것은 쇠뇌 시킨다는 얘기거든요. 그래서 부모 따라 그냥 자연스럽게 부모가 절에 오니 애도 오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기가 이렇게 판단해서 알 수 있도록 해야지, 아무리 자기 종교가 좋다하더라도 어린 아이에게 강제로 하는 거는 맞지가 않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선택해서, 특히 종교는 선택해서 가야지, 주입시키는 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 불교해라. 뭐 해라. 뭐 해라. 이렇게 얘기하지만,

 

제가 여력도 없지만, 두 번째 어린이 포교를 한다 하더라도 어린애들에게 종교의 선택은, 애들은 아직 뭐가 뭔지 모르잖아. 그죠? 그런데 너무 부모가 주입식으로 하는 거는, 아이가 나중에 정신건강에 올바르니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여기 와서 자연스럽게 자기가 뛰어놀고 듣고, 명상도 하고 이렇게 해서 아이 정신을 맑게 해서 불교를 좋아하게 하는 거는 옳지만, 어릴 때부터 불교를 강제로 주입해서 하는 건 옳지가 않다. 그런데서 아이들에게 종교에 대해서 너무 강요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삶을 본받아서 자연스럽게 종교의 심취하는 거는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