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홍익학당] 대행스님께서 설한 수행의 단계

Buddhastudy 2016. 6. 18. 05:31



 

저는 경허스님 계열이 마음에 들어요. 그 분들은 대부분, 경허스님하고 그 제자들은 대부분 수심결보고 견성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수심결 번역한 사람이고. 기본적인 생각이 비슷해서 좋아요. 돈오점수거든요. 경허스님 만공스님이요, 돈오점수 주장했다고 성철스님한테 비판받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는 그분들 편입니다. 그래두. 저랑 뜻이 맞는 부분들은 그분들이니까. 그 경허스님 제자 중에 만공, 수월, 해월, 하남스님이 있죠? 방안함스님 제자 중에 탄허스님이 있고, 대행스님도 있습니다. 대행스님은 또 독자적으로 많이 연구하셨지만 아무튼 또 방안함스님한테 가르침을 받고, 또 공부하셨으니까.

 

그래서 그 방안함스님 밑에 원래 그 제자로 있었는데 거기에 나중에 그 기록이 사라져서 탄허스님이 도와서 다시 또 기록을 다시, 절에 들어간 기록이 있어야 되잖아요. 출가한 기록. 다시 만드시고 한 거로 제가 알고 있어요. 그 정도로 다 각별한 분들이어서, 신기하게 저랑 뜻이 맞는 분들은 또 숭산스님 이렇게 다 친하신 분들이에요. 다 경허스님 문중이라. 그래서 숭산스님이나 대행스님이나 탄허스님, 서로 다 각별하신 분들이라 신기하게 저도 탄허스님이나 돈오점수 이론, 이런 거 얘기 잘해주신 분이, 탄허스님이 이거 다 얘기해 놓으셨어요. 참나 찾으면 일주보살, 학당에서 말하는 일급정도고, 그 이후로 끝없이 닦음 없는 닦음을 통해서 부처까지 가야된다. 이런 얘기 자세하게 설명 다 되어 있어요. 논문 다 나와 있어요. 제가 따로 얘기 안 해도.

 

그래서 제가 탄허스님이 수심결이나 보조스님, 고려 말에 보조스님 이론에 다 나와 있어요. 지금 그 얘기가. 그걸 탄허스님이 또 번역하면서 다 설명해 놨어요. 그걸 제가 또 해야 되요. 답답하지 않으세요? 하면 다 어디로 사라지는지 또, 아무튼 매 시대에 마다 누가 또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서 또 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또 뭔가 에고가 좋아하는 소리 듣고 싶어 합니다. 이런 거 말고 한방에 가는 거 없나? 그럼 또 어딘가에서 있습니다.”하고 나온단 말이에요. 한방에 가는 거 있으면. 그렇게 해서 한참 헤매요. 그러다 다시 정신 차리고 진짜 가고 싶다 해서 또 진짜 가는 길이 없나? 계속 이겁니다. 진짜 가는 길 없나하면 좀 힘들어요.

 

한방에 가는 법 없나? 또 나와요. 요거 타고 또 해봐요. 그럼 또 안 돼요. 그럼 진짜로 하고 싶다 하면 또 진짜에 관심가질 때가 오시죠. 저는 지금 그때라고 보고 다시 옛날에 나왔던 이론들을 다 정리해서 이게 진짜입니다하고 또 소개해 드리는 거예요. 또 한방에 가는 것도 찾으실 수도 있지만 일단 여기서 최대한 많이 진리를 아는 분들이 나오게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 얘기 저 얘기 해드리는데, 학당강의 들으러 오셨는데 제가 또 대행스님 꺼 읽어드려야 될 거 같기는 하네요. 그래서 이번 얘기는 원래. 대행스님이 한마음 선원이죠? 한마음선원에서 들으셔야 될 얘기인데, 서로 도와 야죠.^^ 그래서 대행스님 가르침도 돈오점수 이론을 정말 설명 잘하고 계세요. 그래서 좀 소개해 드릴게요.

 

혹시 이거 말고 대게 궁금한 게 있는데 못 물어보고 계신 거 있나요? 일단 요 얘기하나 드려볼게요. 대행스님도요, 체계적으로 경전 공부를 하시진 않았겠지만, 그 행적을 보면 견성을 일단계로 봅니다. 견성을. 그래서요, 대행스님 이론은, 대행스님식 표현은 좀 독특해요. 그래서 한번 그려볼게요. 견성한 다음에 성불하고 그 다음에 열반에 들자에요. 요렇게 얘기하면 헷갈리실 거예요. 그 동안 들은 개념과 달라서. 별개 아니고 견성이 한 일급에서 일지정도 됩니다. 일단. 성불은 칠지팔지 정도 되요. 화엄경에서. 여기가 12. 궁극의 열반을 말하는 거예요. 대승에서 말하는 궁극의 열반. 이거는 거의 에고가 사라진 상태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경지가 없다고 봅니다. 사실은. 그런데 경전에는 나오거든요. 여러분의 에고가 완벽히 해체되어서 진짜, 비로자나불이라는 게요, 비로자나불, 그래서 저는 비로자나불은 이미 존재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이 경지에 갈 필요도 없고, 갈 수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우린 받은 에고를 잘 굴리는 게 목표라고 보는 입장이라 이 부분은 다릅니다만, 이게 전형적인 그 이런 삼단계 이론이에요. 대승 불교의 이론을 종합해서 이분이 주장하신단 말이에요. 그래서 견성을 해서 여러분 참나자리, 자심을 찾고, 성불해서 무심, 여기서 무심의 핵심이요, 나와 남이 둘이 아니다. 하는 시각인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에 열반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만 한 게 아니라, 우주가 통으로 하나로 나와 남을 경영하는, 굴리는 경지, 여기는 진정한 공을 얻었다 이렇게 하는데, 요 말들은 그냥 그 무슨 의미인지만 아시면 되요. 이게 아주 전통적인 방식의 설명은 아니에요.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명해 드리면 요게 견성은 맞고, 견성에서 아공, 법공, 이걸 깨치죠.

 

그런데요, 원래 화엄경 이론에서 칠지팔지보살 가야 아공이 완전히 원전이 구현됩니다. 그 특징이 아집이 날아가요. 아집이 날아가요. 그럼 칠지부터는 아집이 없어요. 아집 없어지려면 한참 가셔야 됩니다. 법공을 진짜로 증득하는 건 십이지에요. 그래서 십이지가야 법집이라는 게 살아져요. 법집이 사라졌다는 게 뭔지 아세요? 전지전능이 되었다는. 즉 에고가 있는 한 법집은 안 사라져요. 비로자나불만 법집이 없어요. 우주에서. 이제 궁극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요 삼단계가 원래 대승경에서 말하는 일지부터 십이지까지를 통합하면요, 이 삼단계로 설명합니다. 견성을 해서 아공 법공에 토대를 닦고, 아집을 완전히 비우면 칠지보살 팔지보살이 되요. 그때부터는 성인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성불했다고 하는 겁니다. 진짜 우주와 함께 공이 되는 경지는 십이지까지 가야 된다. 요게 대행스님이 이걸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신기했습니다. 이건 아주 대승경 깊이 파야 나오는 레벨 설명법인데, 이걸 본인식대로 설명하시더라고요. 보세요.

 

세 번 죽어야 도를 이룬다. 첫 번째로 첫째로 내가 죽어야 된다. 이거는 나를 버려서 나를 버려서 나를 얻어라.’ 에고를 버리고 참나를 얻으라는 것이다. 이거고. ‘두 번째로는 또 한 번 죽어야 되는데, 그때는 나와 더불어 일체를 버려서 일체를 얻는 소식이다.’ 나와 남을 가르지 않는 단계로 들어가요. ‘세 번째는 한 번 더 죽어야 되는데 그때는 나와 더불어 일체가 함께 나투는 소식이다.’ 우주전체를 굴린다는 거에요. 그럼 비로자나불 경지입니다. 여기는 사실은 비로자나불 경지를 말하고요, 인간으로서 도달하셔야 될 자리가 여기에요. 사실은. 필이 도달하야 될 자리는, 여기는 넘으셔야 되거든요.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아집이 없다는 얘기는요, 육바라밀이 여러분을 끌고 다녀요.

 

그래서 여러분은 노력 안 해도 참나가 육바라밀로,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여러분 마음을 경영해 버려요. 이때부터는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견성했다는 거는 고 씨알을 본거에요. 참나를. 그래서 여기 일지에 견성하고, 일급이나 일지에 견성하고 여기까지 가는 데는, 지금 많은 닦음이 필요해요. 집중적으로 닦아야 돼. 칠지팔지 이후는요, 노력할 필요가 없어요. 노력을 안 해도 닦입니다. 이걸 정확히 나누신 거에요. 그래서 일급이나 일지 차이는 뭐냐 하면 참나를 찾았는데, 그 참나가 텅 빈 참나면 일급이고, 그 참나가 육바라밀 덩어리로 보이면 일단이에요. 참나 안에 담겨있는 메시지까지, 참나의 명령까지 그대로 알았냐? 아니면 참나의 일부를 봤냐의 차이이기 때문에 견성은 둘 다 똑같습니다. 뭐냐 하면 밤낮으로 참나랑 함께 있는 경지는 얻었다는 말이에요. 이때 이미.

 

그래서 계단 없는 계단이라는 말 쓰는 게 이거에요. ‘닦음 없는 닦음이랑 같은 거에요. 분명히 계단은 있지만 원래 참나자리에서는 계단이 없잖아요. 그래서 대행스님도 계단 없는 계단을 3개 다 넘어가야 된다. 먼저 모든 경계를 마음의 근본자리에 돌려놓고.’ 그래서 무슨 일이든 주인공에다가 돌려버리는 건 몰라하고 참나한테 다 맡겨버리라는. ‘그렇게 맡기게 되다보면 이제 자심을 찾게 되고, 자심을 무심으로 돌려놓게 되고, 무심조차 녹으면 공이 된다. 차원은 달라도 그러나 모두 한 마음이니 하나이니, 마음으로 안을 향하고,’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참나자리로 돌리는 걸 안을 향하게 한다고 한 겁니다.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는 것세 번째 그리고 그것까지 다 놔버리는 것그래서 완전히 에고를 초월하는 것. 이렇게 3단계가 있다. 돈오점수죠.

 

제가 볼 때는요, 대행스님만큼 주인공, 이렇게 투철히 파신 분이 드물어요. 현대 고승 중에. 그런데 이분이 이렇게 연구해서 생을 걸고 연구해서 또 연구한 그 진리를 말씀하면 좀 공유하고 수용해야 맞겠죠. 자명한 부분은.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거에요.

 

생각나기 이전을 믿고 가다가 그것을 깨우치면 그때를 이름하여 견성이라고 한다.’ 생각 이전자리. 여러분 몰라하면 생각 이전자리죠. 그 자리를 늘 믿고 가다가 그 자리를 확실하게 알면 견성, 그럽니다. ‘견성한 후에 나와 전체가 같이 돌아간다는 대공의 이치를 알아야 행을 할 수 있다면 그때를 성불이라고 한다.’ 나 혼자가 있는 게 아니고,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나를 닦는다는 게 곧 남을 닦는 거라는 거. 남을 닦아야 내가 닦이고 나를 닦는데 사실은 남을 돕는 거고. 하나로 돌아간다. 공동 운명체라는 걸 알면 칠지 성불했다는 겁니다. ‘거기서 더 계단 없는 계단을 또 올라가서 진짜로 우주랑 더불어 나툴 때 그걸 진짜 열반이라고 한다.’ 아무튼 같은 얘기를 지금 여러 번 하셨고,

 

이걸 세단계로 나누어서 첫 단계를 설명하면 중생은 나, 에고의 나죠. 중생의 나를 되돌려 주인공 자리에다 되돌리면 중생의 나를 에고를 참나자리에 되돌리면, 참나를 알게 된다. 거기까지가 견성 첫 단계다.’ ‘첫 단계에서 모름지기 수행자는 마음의 중심을 주인공에 두고 밖으로 확산되는, 뻗어 나가는 사량 분별의 마음을 거둬들여서 주인공 자리에다 돌려놓는 겁니다. 그래서 일체 주인공 마음을 맡기는 연습을 해라.’ 학당 식으로는 뭐죠? 뭔일 있을 때마다 몰라하는 연습을 하셔야 되요. 몰라 하고 놓으면 참나자리로 다 돌아가요. 여러분이 끙끙대면 안 맡기고 계신 거고, 주인공한테 맡기기로 했다고 그러면 여러분 에고는 몰라하셔야 되요. ‘몰라해야 참나한테 맡겨지죠. 여러분이 들고 계시면서 맡겼다고 착각하시면 안 돼요. 맡겼으면 편해야 되는데, 맡겼는데 발을 못 뻗고 자고 계시면 맡긴 게 아니잖아요.

 

전문가한테 맡겼으면 여러분은 발 뻗고 주무셔야죠. 그런데 맡겼는데 미심 적으니까 지금 전전긍긍하시는 거잖아요. 시원하게 몰라 한다는 게 시원하게 맡겼다는 겁니다. 그래서 에고가 그 동안 처리하던 일을 참나한테 맡겨보는 연습이 첫 단계에서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주인공이야 말로 나의 시작이고 끝이요,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얘기죠. 나의 근원이고. 그야말로 영원하고 무한함을 알아 주인공에게 모든 걸 ..시켜야 한다. 다 돌려야 된다.’ 여러분 견성했다면 실제로 견성하신 분은요, 뭔 일이 생기든지 주인공한테 맡길 수 있고, 언제든지 주인공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죠. 이 정도 얻으면요, 화두 하다가 이 정도 얻으면 확철대우했다고 공부 끝났다고 선언해 버린 자리에요. 실제로. 그래서 문제입니다. 그냥 확철대우만 했다고 하면 양반인데요, 그 자리를 또 십이지라고 우기기까지 하면 문제가 커진다는 거죠.

 

그냥 나는 몰라 했더니 모든 걸 내려놨더니 참나가 성성하더라. 요 정도 까지만 얘기하면 자명하잖아요. 그런데 굳이 이 자리가 십이지 다 해버리면 육바라밀도 잘 못하시면서, 육바라밀 공부한 적도 없으면서 굳이 자기가 공부하지 않은 다른 자격증을 원한다는 거죠. 구급 뭐죠? 거기 구급공무원 시험합격 해 놓고 칠급까지 달라는 격이죠. 자기가 합격한 그걸 얻으면 그만인데, 공부도 안한 다른 시험 그 자격증까지 원합니다. CPA패스하고 사시자격증 달라하는. 이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모르니까, “원래 그거 CPA합격하면 사시자격증도 주는 거 아니야?” 누군가 하나가 이런 말을 퍼트리면 다 그런 줄 알고 공부하거든요. 그래서 요거 따면 다 주는 줄 알고. 자기가 얻은 만큼만 딱 바라세요. 공짜 바라지 마시고.

 

화두해서 깨쳤으면 참나하나 얻은 거지 무슨 육바라밀을 어떻게 얻어요? 육바라밀 해본 적이 없는데. 육바라밀 중에 선바라밀 하나 얻은 거죠. 이런 거 생각하시면서 공부하세요. 그래서 자, ‘중생으로서 나, 에고의 입장에서 보면 다 맡겨버린 거니까 죽은 거 같지만, 주인공 참나 입장에서는 탄생이다. 이 자리가.’ 그러니까 한번 죽어라 했잖아요. 죽어라하는 거는 에고가 옛날 모습에서 한번 죽으라는 거고, 참나로 거듭나라는 얘기죠. 그렇게 보시고,

 

참나가 마음속으로 말을 하고 그 말을 듣는 그 때 비로소 참나와 이제 수작을 하게 될 때 참나랑 진짜 상봉한 거다.’ 내 안에 있는 참나랑 꼭 인간의 언어로 말해야 된다? 아닙니다. 인간의 언어로 들리실 수도 있어요. 여러분 에고한테는 그렇게 번역되어서 들릴 수도 있지만, 원래 주인공 자리는 그런 자리 아니니까, 주인공하고 자명하게 수작하는 법을 제가 뭐로 말씀드렸죠? 자명한 느낌이 들면 주인공이 옳다고 한 거고, 찜찜한 느낌이 들면 아니라고 한 겁니다. 꼭 인간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하지 마세요. 보세요. 주인공이 인간적으로 얘기하면 그 목소리는 중저음입니까? 사십대 중후한 목소리입니까? 칠십대 목소리입니까? 벌써 조건이 생기잖아요. 주인공한테 왜 그런 상을 붙이세요? 그러니까 벌써 한번 내 에고한테 한번 왜곡된 거에요. 에고한테. 그러니까 그 이전에 자명찜찜의 느낌만 일단 저는 찾으시라고 권합니다. 아무튼 대행스님은 참나랑 이렇게 수작을 해야 상봉, 진짜 참나 만난 거다.

 

그러면 참나가 날 지도하기 시작한다.’ 참나가 나를 이끈다. 어떤 게 자명하다. 어떤 게 찜찜하다 신호를 준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참나를 따르다보면 나와 참나가 하나로 개합되고 그로부터는 내가 곧 참나가 되어 스승과 제자 간에 차이가 없어진다. 그러다보면 참나가 비서도 되어주고 의사도 되어주고 신장도 되어주고 뭐든지 다 하니참나가 나를 통해서 그리고 중생을 통해서 온갖 신통을 다 나타내게 된다는. 그러니까 천백억 화신이라고 하는 거다.’ 여러분이 아파서 병원가면 여러분 고쳐준 의사가 약사여래가 나타나는 겁니다. 즉 뭔 얘기인지 아세요? 주인공이 그 의사를 통해 여러분 고쳐주죠. 다 참나작용이라고 보고나면요, 우주 천지가 다 참나가 돌아가서 나를 살리기 위해서 굴리고 있고, 중생을 모두 살리기 위해서 우주를 굴리고 있는 그 실상을 알게 되면 우주 전체가 다 화신들로 보이겠고, 참나의 나툼으로 보이는 경지까지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참나 알고, 참나랑 함께 지내다 보면, 나중에는 참나를 통해 온 우주를 굴리는 경지까지 간다. 이게 이분 기본 이론이세요.

 

참나 믿고 몰락 놓고 들어가다 보면 언뜻 눈물이 비 오듯 한다.’ 그렇게 눈물 나는 그런 사연이 있다. 이겁니다. 참나한테 모든 걸 맡기면서 가시라. ‘견성했다고 해도 견성했다는 말을 하지 말고 안으로 굴려서 지혜를 자꾸 넓히고 그러므로 내 마음이 온 누리에 어느 곳이든 닿지 않는 데가 없게 될 때까지 닦아야 한다. 그럴 때 만물하고 하나가 되어서 돌아갈 수 있다.’ , 여러분이 참나 얻은 뒤에 하셔야 될 일이 뭔지 하시겠죠? 여러분 에고의 입장에서 한 세상 살아보셨잖아요. 지금까지. 참나 입장에서 한번 살아보시면 어떨까요? 어떻게 판단할까요? 여러분 에고가 먼저 소리질러버려요. 요즘 살아가시다보면 요즘 모습은 그러시기 쉽다는 말이에요. “뭐는 힘들다 뭐는 좋다 뭐는 싫다하는데 참나 입장에서 뭐라고 하는지 안 들어보셨잖아요. 참나 입장에서는 요게 자명하다. 찜찜하다.”

 

그래서 이 학당에서 하는 양심성찰이 별게 아니라 참나 소리 들어보기 위한 연습이에요. 늘 삶속에서. 간단한 예로 여기 끝나고 가시다 버스하나 놓친 거로 시작입니다. 버스 놓쳤을 때 에고는요, 쌍욕을 하고 우주를 한탄해보고 하느님이 왜 나한테 이러시는지 속상정도 한번 고민해보고 막 하다가 참나 소리 한번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참나의 입장에서는 아니 저 버스 운전사가 나를 못 봤을 수도 있고, 자긴 자기대로 본분을 다하다 이럴 수 있다.” 이런 생각도 나실 수 있잖아요. 그건 참나의 얘기고 에고가 그거 못 받아들일 수도 있죠. 참나 사정과 에고 사정이 다르다는 걸아시고, 참나한테 중심을 두고 살아가 보시는 연습이 그대로 수행이에요. 그래서 따로 어디 가서 각 잡고 앉아계셔야만 수행이 아니라, 살아가시는 게 다 수행이에요.

 

여러분이 오늘 하루 접하고 만난 그런 많은 일과 사람들. 물건들. 그리고 그 사물과 그 사람들과 내가 어떻게 수작했는지 그게 다 공부가 되고 그 때 에고는 뭐라고 했고 참나는 뭐라고 했는지. 참나의 뜻을 내가 온전히 따랐는지. 그걸 지켜보시면서 사시다보면 참나는 우주 통틀어 한 자리니까, 나와 남이 없는 자리니까, 그 자리에서 우주 굴리는 소식을 여러분이 듣게 된다는 알게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견성 이후 닦음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닦으셔야 나중에 나와 남이 온통 하나로 참나로 돌아가고 있구나하는 걸 알고 나와 남을 가르지 않게 되죠. 이때쯤 되면 여러분이 육바라밀할 때 장애를 안 받아요. 참나에서 하자는 대로 하면 다 하면 다 선이 되요. 그 전에는 안 돼요. 여러분 에고가 왜곡을 많이 시키기 때문에 참나가 하자는 대로 했다가도 낭패를 봐요. 에고가 교묘하게 가리고 있는 게 많아요.

 

그 아집 다 벗겨내고 나면 그냥 이제 노력을 안 해도 여러분이 수월하게 참나 뜻대로 사는 때가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닦고 가시라는 얘기고, 여기 보면 어린애 낳았으면 길러야 한다.’ 견성했으면 애 낳은 거 밖에 안 된다. 잘 길러야 성불할 수 있다. 요 얘기도 있구요, ‘태어나기는 했는데, 어른이 되기까지는 배우고 성장해야 된다. 그래서 견성하기 어렵다했더니 인간되기 어렵고, 사람 되기 어렵다 했더니 같이 열반에 들기 어렵다. 하더라. 이런 말이 있다.’ 이런 말 누가 했을까요? 아무튼 본인이 하신 거 같은데, 아무튼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자 보세요. 애가, 이쯤 되면 온전한 사람 구실하는 인간이고, 여기에는 이제 진정한 에고를 초월한 공의 경지니까, 전지전능한 경지니까 이렇게 단계를 나눠본 겁니다. 사람 되기도 어렵다.

 

사람이 언제 사람이죠? 아집 없어야 사람이에요. 진짜 사람은요, 내 욕심 내려놓고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아야 사람입니다. 그때 양심이라는 게 구현 되요. 온전히.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한테 안한다. 그게 완전히 뼈 속까지 박히는 게 여기 칠지팔지 부터에요. 왜냐? 이때 아집이 안 막거든요. 아집이 떨어져서. 같은 얘기입니다.

 

몰락 한꺼번에 깨우치기는 어렵다. 왜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안 좋은 습이 많이 쌓여서 그렇다. 한 번에 깰 수 없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나오는 대로 내려놓고 가는 것이 주인공한테 맡기고 가는 게 업을 녹이는 최고 비결이다.’ 이것도 아시겠지요? .

 

리얼한 얘기도 있어요. ‘참나를 찾아서 개합했다고 해도 그렇게 참나를 안 입장에서 다시 닦아 나가야 된다. 견성밖에 안 된다. 또 나가야 된다.’ 그럼 이런 말 들으면 돈오돈수 파들은 기겁해요. 닦았는데 뭘 또 닦으라는 거에요? 참나 얻었는데. 참나를 알고 경계에 걸림이 없으니 골을 넘어서 아주 편안한 상태에 이르지만, 참나만 알고 나도, 모든 걸 참나한테 맡길 수 있는 경지만 되어도 삶이 편안해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고를 넘어서서 아주 편한 상태, 지복의 상태에 가버리니까 , 이뿐인가 보다하고 거기 머물기 쉽다.”’ 다 써 놨잖아요. 대부분 거기 멈추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견성했다는 분들 다 여기 걸려있습니다. 여기서 못 넘어가요. 넘어가면 이런 실력들이 나와야 되요. 성불도 해야 되고 저는 열반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만, 성불한 어떤 그 노련한 그 모습은 나와야 되요. 육바라밀전문가로서의 그 노련한 인격이 나와야 되요. 그게 안 나오잖아요.

 

무엇보다 그 상태가 아주 기쁘고 반가 우니까, 요 전에는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꿈도 못 꾸던 경지를 얻었으니까 생명의 샛물을 마신 격이라 스스로 대견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게 된다.’ 거기가 끝으로 보여요. 여기 머무르면 아라한 되는 거에요. 초기 불교에서 여기 머물면 아라한 되는 거고, 힌두교에서 여기 머무르면 거기는 해탈자라고 하죠. 해탈자 되는 거고, 지금 대승에서도 여기 머물러 버리면 확철대우했다고 해서 끝났다고 해버리는 겁니다.

 

위로는 안보이고 아래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보이니중생들 고생하고 있는 게 보이고, 위로는 안보이니까 자기가 끝이라고 생각하기 딱 좋은 자리라는 겁니다. ‘거기에서 자기가 제일 인 줄 알고 우쭐하기 쉽다. 위쪽은 어둡고 아래만 환하여 이때 수행을 그르칠 가능성이 많다.’ 여기서 다 멈추어요. 대행스님 대단하시죠? 그래서 비구니 스님이라고 무시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제가 봤을 때는 이분만큼 참나 투철히 안 분도 드물 단 말이에요. 이런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그쪽 인정 못한다고요. 돈오 돈수 비판하고 계시잖아요. 이 분이 오히려 인정한, 세상에서는 성철스님이 선승 그러고, 탄허스님은 학승 그럽니다. 선에 있어서도 탄허만한 사람 없더라. 탄허스님하고는 선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저쪽이라고는 못해요. 이렇게 막혀있으니까. 지금 세상에서 유명하다하는 거에 휩쓸리지 마시고 진리를 누가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의 눈으로 좀 보세요.

 

그래서 이렇게 하다가요, 결국은 아집을 버리고 법집을 버리면서 진정한 어떤 경지까지 갑니다. 그래서 이걸 한마디로 이렇게 얘기해요. 대행스님은 고요히 앉아있으면 부처요, 생각을 일으키면, 즉 움직이면 보살이다.’ 불보살을 안팎으로 보고요, 여러분 참나자리는 부처고, 참나가 한 생각 일으키면 보살이라는 거에요. 여러분이 보살로 굴러다니신다는. 그래서 불보살을 하나로 보는 이런 관점으로 재미있고요, 이 분이 하신 말씀이 아주 멋진 말씀이, 우리 신통력이 있죠. 신통력에 대해서 딱 한 마디 하십니다. 모르고 쓰면 술이요, 모르고 쓰면 테크닉 기술이요, 알고 쓰면 도, 신통자체가 대단한 게 아니라, 신통을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 에서 도냐? 술이냐가 갈라진다. 요런 얘기들은 좀 참고하세요.

 

그래서 대행스님 말씀 중에 제가 요런 거는 공유하고 싶어서 말씀드린 겁니다. 이런 거는 저기 한마음 선원에서 해야 되는데 제가 또 나서서 괜히 했습니다마는 좀 느낌 오세요? 뭔 일이든지 몰라하고 맡기세요. 남의 얘기도 들어봐야 되요. 그래야 객관적이 되요. 제가 하는 얘기도 듣고, 또 다른. 같은 연구자인데요, 그 이상하지 않나요? 만약에 스티븐 호킹이 아인슈타인 거 보지 마라그러면 이상하지 않나요? “과학자가 내 것만 진리니까 아인슈타인거 보지 말라. 그럼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과학자 그러면 모든 과학이론 다 참고해서 누가 더 자명한지 연구하지. 그럼 철학에서도 당연히 그래야 되는데 그 우리 파, 우리 교주님, 우리 스승님이 한 거, 고것만 보면서 만족해요. 그러면 신앙의 단계로 가요.

 

그럼 뭐랑 똑같나 하면 나는 그냥 스티븐 호킹을 믿기로 했어. 신앙하기로 했어. 스티븐 호킹이 하는 말은 뭐든지 다 믿기로 했어. 아인슈타인은 안 믿기로 했어. 이거랑 똑같아요. 본인이 확인 할 길이 없으니까 그냥 믿겠다고 나선 거에요. 그 중에 하나, 복불복으로 하나 걸린 거죠. 이런 식으로 해서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아셔야지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진리가 여러분 자유롭게 해주지, 진리 아닌 건요, 일시적으로 여러분 도와줄 뿐이고, 더 큰 부작용을 남겨요. 그래서 진리라 뭐냐? 했을 때, 여러분 눈으로 여러분 안에도 주인공이 있고 부처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에 이런 제가 하는 말이라도 그 말이 여러분 마음에 들어갔을 때, 여러분 마음 안에서 판정이 난단 말이에요. 자명 찜찜. 그 얘기를 저 내면의 신호를 무시하지 마시고 따라가 보라는 거에요.

 

권위고 뭐고 다 떠나서 지금 자명한 느낌이 드는지 찜찜한지, 아무리 스승이 했더라도 찜찜하면 파봐야 되요. 아닌 거에요. 인간의 스승 따르다가 우주 진리를 여러분 어기실 겁니까?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요. 비교가 안 되는 얘기에요. 우주의 진리를 따르셔야 되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의, 이런 참나와 참나의 어떤 계발, 영성의 계발에 대해서 해 놓으신, 많은 증언들 연구 성과들을 제가 제시해 드리는 거에요. 여러분이 그걸 보시면서 판단해보시라고. 그래서 여러분이 에고가 나서서 주가 되어서 살아가시다가 에고가 힘을 빼고 내 안에 참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참나한테 모든 걸 맡기고 살아가다가 보니 어떻게 되요? 참나 입장에서 우주를 보다보니까, 내 에고나 남의 에고나 평등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고, 더 나아가다 보니까 나와 남을 모두 구제할 수 있는 그 신통력이 그 능력이 점점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칠지 넘어서 팔지 구지 가면은 바둑도 구단이면 입신의 경지 아닙니까? 입신의 경지, 육바라밀의 실력이 입신의 경지에 이르면 보살이 나와요. 그런 분들은 건드리면 중생이 터트려 버린 거 아닙니까? 그 실력자가 되셔야 되요. 그 육바라밀 전문가 되시라고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거에요. 처음 육라밀의 근원은, 육바라밀이 뭡니까? 육바라밀로, 결국 다 참나에서 나온 거에요. 먼저 참나, 점을 찍어야 육바라밀 계발하죠. 그게 견성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점 하나 찍어야 거기서 육바라밀이 나오는 겁니다. 참나 찾아야죠. 뭔 일이 생길 때마다 참나한테 맡기는 거에요. 마음에 탐욕이 일어났다. 탐욕이 일어났다. 그 전에는 에고가 해결하려고 했죠. 탐욕하고 에고가 싸웁니다. 탐욕하고 에고가 싸우면 에고가 져요. 탐욕하자는 대로 하고 끝나지 별 저항 못합니다. 스트레스만 받고 결국 할 건 다 하고 스트레스는 받고.

 

탐욕이 일어났을 때 몰라한테 맡겨버리세요. ‘몰라하고 주인공한테 던지면 탐욕을 진정시키는 좋은 호르몬도 육체적으로 나오지만 더 근원에서는 텅 빈 알아차림, 내 안에 있는 신성이 등장해요. 그 친구가 등장하면 내면이 평화가 와요. 그러면 그때 육바라밀로 처리해 버리는 거에요. 이런 식으로 진통제 맞고 치료해 버리고. 진통제 치료제를 함께 써버리면 마음 경영이 이제 초보지만, 조금씩 되어갑니다. 그렇게 하다가 노련해지면 그 동안 중생을 대하면서 육바라밀 쓸 때 내 아집이 발목을 잡아요. 이렇게 해야 육바라밀에 맞는다는 거 아는 데도 내 편견, 내 욕심 때문에 다 못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언제 떨어져 나가냐 하면, 성불단계에 가면 떨어져 나가요. 칠지 보살 단계에 가면 육바라밀로 저는 풀어드리는 거에요. 그래야 이게 원만해져요.

 

안 그러면 주인공만 따르면 된다. 주인공과 함께 나툰다. 주인공과 함께 중생을 둘로 보지 않는다. 이제 이런 말에서 또 여러분이 오해하실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육바라밀이 빠져버린 주인공과 함께하는 신통이라고 그러면 또 거기에 욕심이 붙은 어떤 신통을 상상하실까봐, 주인공이 진짜 원하는 신통은 육바라밀입니다. 여러분이 육바라밀하기를 바래요. 주인공자리는. 주인공이 여러분에게 하늘을 날으라고 안 해요. 그러면 날개를 줬겠죠. 주인공이 바보가 아닌 이상 여러분을 날게 하고 싶었으면 날개를 줬을 거고, 잘 뛰게 하고 싶었으면 치타 같은 어떤 몸 구조를 했겠죠. 그럼 이렇게 만들어 놨잖아요. 그럼 주인공이 뭐라고 하는 겁니까? 날지 말라고 하는 거에요. 걸어 다니라고. 빨리 뛰지 말고 요 정도 속도로 다니라고 이렇게 만들어 놨어요. 2929

 

주인공이 바보가 아닙니다. 요 정도 해 놨단 말이에요. 요 정도 쓰면 되요. 그런데 마음만은 계발할수록 뭐가 더 나오게 해 놨어요. 그래서 마음을 계발하다 보니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술도 거기 나오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거 신기하다는데, 주인공이 애초에 그거 하라고 해놨겠냐는 거죠. 더 본질이 뭐겠냐는 거죠. 원래 날게 하고 싶었으면 날개 주고 하지 뭐 하러 그렇게 고생해서 마음 공부해서 하늘을 날아다니게 해 놨으면 새는 노력도 안하고 그냥 나는데, 뭐 그렇게 어렵게 해 놨겠냐는 거죠. 마음 닦아서 뭐 하라고 해 놨는가? 이걸 알아내셔야 됩니다. 뭐 하라고 했느냐? 육바라밀 하라고 해 놓은 겁니다. 그래서 우주는 이 육바라밀이 굴리고 있어요.

 

비로자나불은 육바라밀 덩어리에요. 우주에. 그래서 이 육바라밀로 우주를 굴리고 있습니다.

보시_베푸는 힘.

지계_수렴하는 힘.

인욕_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힘.

정진_쉬지 않고 물이 흐르듯이 쉬지 않고 나아가는 힘.

지혜, 반야_밖으로 행동은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판단하는 그 힘.

정진이라는 거는 쉬지 않고 굴러가는 그런 힘. 대충 다 설명 되었죠?

 

이런 우주의 그 원리들이 있어요. 이 원리들이 우주를 굴립니다. 발산하고 수렴하고 한결같이 굴러가고 그 안에서 정보가 판단되고 또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 굴러가게 되어있어요. 그럼 우주 굴리는 게 다 육바라밀이라는 것도 아셔야 되요. 풀 하나, 나무 하나, 별 하나도 다 육바라밀로 굴러갑니다. 서로 배려하면서 룰 지키면서 진리에 맞는 판단해가면서 즉 프로그램대로 판단해가면서, 이 우주에서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남과 수작을 하면서 가요. 그래서 육바라밀로 살아가지 않으면 문제가 되게 되어있어요. 탈선한 게 돼 버립니다. 지계바라밀 어겼다. 대표적으로. 계율을 어겼다 그러면 탈선했다는 얘기거든요. 중생이 탈선하고 있어요. 지금. 탈선해서 육바라밀 원리가.

 

아무리 우리 안에 좋은 원리가 있어도 밖으로 나올 때 에고가 여기에 무지, 아집으로 가려버리면, 나올 때 왜곡된 게 나옵니다. 뭐가 나올까요? 보시반대죠. 탐욕이 나와요. 탐욕 이기심, 남의 걸 배려하라는 보시의 마음이 아니라 이제 남의 것을 등쳐먹는 마음이.

 

지계_계율을 어기지 마라. 죄 짓지 마라 하는 그 공식을 어겨서 온갖 죄를 다 짓고 다닙니다. 남한테 온갖 상처를 주고 다녀요.

인욕_상황을 받아들여라 하는 걸 못 받아들여서 끙끙 앓고 삽니다. 중생이. 못 받아 들여서. 정진_틈만 나면 쉽니다. 게으릅니다.

선정_깨어있지를 못해요. 정신을 못 차리고 살아가요.

 

지금 여러분 별다른 마음의 뭐, 파문이 없으니까 지금 깨어계시지, 여러분 제일 원하는 거 던져주면 이성을 잃어버린단 말이에요. 순간적으로. 여러분이 제일 먹고 싶은 거 있죠? 그거 앞에 놓으면 정신이 먹은 뒤에 돌아옵니다. 중간에 정신이 없다고요. 그것도 일종의 몰입이기는 합니다만, 좀 안타 깝죠. 아무튼. 먹는 과정을 좀 음미하고 싶은데 정신을 잃어버려요. 진짜로. 진짜 좋은 거 보여주면 잃어버려요. , 그 과정에서도 정신 차릴 수 있는가? 최소한 정신 차리고 죄는 안 지을 수 있는가? 이런 거 우리가 연구 안하고 산다는 게 말이 안 돼요. 우주는 육바라밀로 돌아갑니다. 우주가 무슨 육바라밀이에요? 육바라밀 어긋난 거 천지인데. 어긋났다는 것도 육바라밀을 기준으로 우리가 어긋났다는 걸 우리가 아는 거에요. 육바라밀이 기준이고, 인간 에고의 세계에 오면 그게 어긋날 수가 있어요.

 

어긋나게 하는 힘이 인간한테 있어요. 그래서 어긋나게 하는 겁니다. 우주에서 인간만 그렇게 어긋나게 해요. 다른 존재들은 그렇게 어긋나게 못해요. 천지가 어긋나게 하겠습니까? 동물도 머리가 안 좋아서 더는 못합니다. 인간은 머리가 좋아서 아주 교묘한 짓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거를 정상화 시키는 거, 육바라밀에 맞게 돌리는 게 공부고, 앉아서 명상하는 거 이거는 공부 중에 한 부분이에요. “깨어있자하는 거는 육바라밀 중에 하나죠. 깨어있기만 잘하면 뭐합니까?

 

지계_선을 지킬 줄 알아야 되고,

보시_남의 이익도 배려할 줄 알아야 되고,

정진_쉬지 않고 육바라밀을, 선정만 쉬지 않고 하는 게 아니고요, 늘 양심적인 삶을 쉬지 않고 살아가야 되고,

반야_시시각각 정보가 업데이트 되는 거에 따라서 자명한 판단을 계속 해 낼 수 있어야 되요. 과학자들도 그러죠. 아니 뉴턴의 이론이 맞는 줄 알고 그냥 안심했는데 아인슈타인이 또 깨어 버리고, 그럼 아인슈타인 이후에 또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다른 사람들이 양자 역학가지고 와서 또 새로운 정보를 주고 하면 부정하고 있을 수가 있나요? 빨리 빨리 업데이트하면서 정보를 따라가야 되요. 현재 제일 자명한 거를 찾아내야 되요.

 

그럼 그게 반야의 힘입니다. 반야의 힘이 없으면 인간 못 살아요. 이런 물질적 발전도 다 반야가 하는 거에요. 요거 하나 나오면 또 인간은 여기서 다음 단계를 또 연구합니다. 더 자명한 거, 더 자명한 거, 더 자명한 거.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육바라밀이 모든 삶의 원천이고, 우리 근본 원리고, 육바라밀 어기는 걸 악이라 그러고, 육바라밀 지키는 걸 선이라고 합니다. 인간한테는 선악의 문제가 커요. ? 어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이 공부 안 해도 되요. 어길 수 있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공부 하는 게. 거의 자연 그대로 간단 말이에요. 인간은 어길 수가 있다구요. 그래서 인간은 필히 우주에서 공부를 해줘야 되는 거에요. 영성 공부하는 게 인간의 어떤 의무입니다.

 

우주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우주에서 많은 특혜를 받은 대신에, 나로 인해 우주에 일이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 하는 어떤 공부를 해줘야 되요. 엄청난 특혜입니다. 인간의 뇌가 우주에서요, 지금 일단 지구 안에서 제일 자원을 많이 갉아먹는 이 물건이에요. 동물의 뇌를 우주가 최소화해서 준다고요. 그러면 딱 그 기능 만하게 만들어서 보내요. 딱 능력이 제한된 핸드폰처럼, 딱 제한되어서 보냈는데 인간은 그런 거 있죠? 그거 원하시죠? 인간으로 태어나기 힘드시죠? 딱 고정된 어플만 깔아서 내놓으면 편할텐데. 인간은 뭐하고 같냐 하면 백지로, 아무것도 어플 안 깔아서 주는 거에요. 어플이 한 십만 개, 삼십만 개 정도 되니까 거기서 고르세요. 그러면 죽는 거죠. 30년 깔아야 되요. 이 쓸 만한 뭔가 하나 물건을 만들려면 인간이 그래요. 30년 공부를 해야 이제 어떻게 산다 하는 게 나옵니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서 바로 딱 어플이 정해져 있어요. 새들은 나는 거, 물고기는 물속에서 수영하는 어플, 알아서 그것만 하고 죽어요. 그래서 이 뇌를요, 최소화해서 씁니다. 에너지를 덜 잡아먹어요. 인간 하나가 엄청나게 지구 에너지를 갉아먹습니다. 그 대신에 뭔 대가를 내놓아야 되는데 깽판까지 치고 가요. 최악이죠. 먹여놨더니 똥 싸고 튕겨갑니다. 그러면 이게 자기가 싼 건 치우고 가야 될 텐데. 최소한 이거라도 하려고 해야 되요. 여러분 육바라밀이 없으면 안 해요. 인간은요, 자기 편하면 안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안이비설신의로 하죠. 눈은 보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귀는 듣고 싶고, 코는 냄새 맡고 싶고, 혀는 맛보고 싶고, 몸은 감촉을 느끼고 싶어 한다. 유교에서는 여기에다가 몸을 감촉으로 안 풀고 사지라고 해서 몸은 여기, 눈은 보고 싶고, 귀는 듣고 싶고, 맛보고 싶고, 냄새 맡고 싶고 사지는 편안하고 싶어 한다가 있어요. 사지는 안일하고 싶어 한다. 편안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유교에서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자기 몸 편한 게 최고거든요. 여러분 몸, 편하게 하고 싶어서 사시는 거에요. “조금 더 편하려면 돈이 더 있어야 되는데.” 그러면 돈을. 고생을 왜 감소합니까? 더 편해지려고. 편하려고. 그런데 이 안락이 안 와 버리면 힘들죠. 사람은 못 살아요. 그래서 그날 밤이라도 편하게 쉴 공간을 찾아야 되고 사람은. 내 몸을 쉬게 해야 되고, 지금 앉아계시는 것도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신 거죠. 지금. 다양한 모습을 갖고 계시지만 제일 이 순간 편안한 자세를 인간은 끝없이 찾아가게 되요. 그것도 욕구입니다. 그래서 이 우리가 끝없이 욕구를 가지고 이 현상계를 살아갈 때, 어떻게 욕구를 관리할지에 대한 지침도 없이 살게 해 놨겠냐는 거죠. 우주가. 욕구도 우리가 만든 게 아닙니다. 우주가 준 거지.

 

여러분이 희로애락을 만든 적이 없어요. 우주가 그렇게 프로그램 해 놓은 거에요. 그러면 그런 문제도 해결 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해 놨을 거라는 거죠. 그래서 예전에 어른들이 찾아낸 거에요. 머리 밝은 분들이 찾아낸 거에요. 인간 뭐하라고 만들어 놨을까? 하는 걸 찾아낸 거에요. 그래서 찾아낸 게 제가 봤을 때 육바라밀 안에 모든 동서양 철학의 진리는 다 들어옵니다. 그래서 육바라밀로 제가 쉽게 설명하는 거에요. 꼭 바라밀이라는 말 안 써도 되요. 여섯 가지 원칙이 있어요. 이 프로그램대로 살아가시면 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육바라밀에서 다 오케이가 되는데 악이 일어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이 육바라밀을 가지고 여러분 삶에 어떤 내비게이션으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늘 명상하시고 늘 몰라 하시고, 그러면서 동시에 항상 육바라밀의 눈으로 이 사물을 처리하시고 인간관계를 처리하시다보면 인격 완성의 길이 남의 일이 아니라 여러분 몫이 될 거라고 제가 확신합니다. 그래서 다양하게 또 설명을 계속 드릴 겁니다. 여러분이 알아듣는 그 날까지. 그리고 이해하시고 함께 이 길을 걷게 되는 그날까지 저는 쉬지 않고 또 할 거고, 또 함께 걷다보면 또 걷는 또 다른 재미있는 애기들이 있겠죠. 일단은 이런 길이 있고, 이런 길을 같이 걸읍시다.”하고 제가 말씀 드립니다. .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