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6회) 의지만 하려고 하는 나

Buddhastudy 2010. 11. 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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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도방법은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에서, 자기 방에서, 불법승삼보에 귀의하는 삼배를 하고. 이렇게 기도 하세요. ‘부처님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저는 참으로 복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잘 살아 갈 것입니다.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저에게 가피내려 주시는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셔야 되. 뭘 달라, 뭘 달라, 뭐 달라. 이렇게 기도하지 마시고 이 분 같은 경우에. 이 분은 지금 마음속에 열등의식,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집안이 가난하다는 것. 가족 중에 장애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특별한 제주가 없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어해요. 동정을 받고 싶어해요. 보살핌을 받고 싶어해요. 그러면서도 또 어떠냐? 나 같은 사람 누가 좋아하겠나 해서 남이 나를 도와주거나 관심을 가져주면 또 도망 갈려고 그래. 그가 좋아하다가 가버릴까 두려워서 그래요. 그럼 이게 바깥 사람이 문제가 아니에요. 자기 병이에요. 열등의식, 피해의식이에요. 그런데 부처님 법을 공부를 하면 몸이 아픈 게 그게 무슨 큰 잘못된 게 아니에요.

 

우리의 원초적인 고뇌가 뭐요? 생노병사라 그러지 않습니까? 그죠?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는 한은 아플 수 밖에 없고, 몸을 가지고 있는 한은 늙을 수 밖에 없고, 몸을 가지고 있는 한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거요. 그것은 하나의 자연 현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체 장애가 있다. 신체 장애가 있는 것은 열등한 게 아니에요. 다만 불편할 뿐이에요. 이 몸은 귀 할래야 귀할 수도 없고, 천할래야 천할 수가 없습니다. 공하기 때문에. 이 몸은 깨끗 할래야 깨끗할 수도 없고. 더러 울래야 더러울 수가 없습니다. 처녀라고 이 몸이 성스럽고 결혼했다고 이 몸이 천해지고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늘 반야심경을 독송하면서도 부처님의 진리를 몸과 마음에서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 열등의식, 열등해서 열등의식이 생긴 게 아니고 본래 아무것에도 열등 할 것이 없는데 열등의식이 생긴 거요. 잠자리 잘 펴논데서 잠만자면 되는데, 자면서 강도 꿈을 꿔서 나 살려라고 고함을 지대는 거와 같다. 이거야. 눈을 떠 보면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 그러나 꿈속에서는 분명히 쫓아오는 사람도 있고, 도망가는 내가 있고, 두려움이 있고, 그래서 구원을 요청하고 이런단 말이오. 그러나 눈을 뜨면 강도가 본래 없고, 두려울 것이 없고, 도망갈 일도 없고, 구원을 요청할 일도 없고. 이걸 우리가 깨달음이라 그러는 거요.

 

그러니까 자신이 아무런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먼저 자각해야 됩니다. 그럼 이 병은 싹 없어집니다. 그러면 남을 볼 때 위축될 것도 없고. 잘난 척 할 것도 없고, 내가 완전한데 도움을 얻을 것도 없고, 보호 받을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첫째 먼저 자각해야 되고. 그런데 이렇게 법문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고 알지만은 돈 많은 사람 보면 또 위축이 되고, 잘난 사람 보면 또 위축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고, 이런 마음은 나도 모르게 자꾸 일어난다. ? 오랜 습관이 돼서, 어리석은 마음이 씨앗이 돼서. 이게 이미 습관이 되 버렸다 이 말이오. 이걸 까르마, 업식이라 그래. 이 내 업식이 돼버렸어.

 

그래서 내가 딱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늘 경계에 팔려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 이 말이오. 그래서 기도 하라는 거요. 매일매일 아침에 1시간 기도 할 때마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저는 잘 될 것입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해 달라는 건 뭔가 부족하다는 얘기지. 감사하다는 애기는 이미 만족하다는 얘기죠.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해야 되는 거요. 그렇게 하면서 바른길과 업식 때문에 자꾸 넘어지는 그 사이를 간격을 좁혀가는 게 수행이다 이 말이오. 그렇게 정진을 해 나가시면 다른 사람과 다름없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남이 나를 좋아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그가 떠나면 내 문제라고 보지 마세요.

 

내가 산을 보고 아~ 좋다 하다가 그럼 좋다 하면 내 산만 쳐다보고 있어요? 지나가면 또 안쳐다 봅니까? 지나가면 그만이죠. 또 바다가면 바다 좋다 해요. 산과 바다가 우리를 보고 얼마나 배신감 느끼겠습니까. 조금 전에는 산 좋다 그러더니, 저 놈이 이제 바다 좋다 그러고. 아 조금 전에는 벗꽃 좋다고 하더니, 이 번엔 또 목련 좋다고 하구나. 지조가 없다. 일관성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꽃을 좋아할 때 거짓말 한 게 아니에요. 그때는 꽃이 좋았어요. 또 조금 지나니까 산이 있어서 산이 좋다고 한 거 그것도 거짓말한 거 아니에요. 그땐 산이 좋았어요. 바다 보니까 또 바다가 좋았어요. 그땐 바다가 좋았던 거에요.

 

그러니까 그가 나를 보고 좋아한 건 진실이에요. 그러나 조금 있다가 그 마음이 또 바뀐 거에요. 마음이라는 건 늘 바뀌는 게 본질이에요. 마음의 본질. 마음의 그 실체를 살펴보니 마음이라는 것은 늘 변하는구나. 그게 관심. 마음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니, 모상. 항상함이 없더라.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자기 마음은 시시때때로 바뀌면서 남의 마음은 자기에게 바뀌지 않고 일편단심이기를 바래요.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을 바뀌지 않기를 바라니 이건 이루어 질 수가 없죠. 늙을 수 밖에 없는 몸을 가지고 늙지 않기를 원하고, 병들 수 밖에 없는 몸을 가지고 병들지 않기를 원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을 가지고 죽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게 우리들의 본질적인 고가 된다.

 

늙음이 고가 아니에요. 병듦이 고가 아니고, 죽음이 고가 아니에요. 죽음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것은 본래 없습니다. 봄이 되면 새싹이 돋고 가을이면 낙엽이 지는 하나의 현상만 있어요. 바다에 가면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죠.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생이 있고 멸이 있고, 생이 있고 멸이 있습니다. 바다 전체를 보면 물이 다만 출렁거릴 뿐이에요. 우리는 큰 생명의 바다. 부처의 바다에서 그냥 출렁거릴 뿐인데, 우린 이 상에 집착해서 나왔다 들어왔다, 생겼다 멸했다. 이렇게 마음에서 상을 지어서 나고 죽음을 자꾸 만든단 말이오.

 

그래서 난다고 좋아하고, 죽는다고 슬퍼하고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여러분들이 뛰어 넘게 되면, 봄은 봄이라서 좋고. 여름은 여름이라서 좋고, 가을은 가을이라 좋듯이. 이렇게 젊어서는 젊은 대로 좋고. 또 장년이 되면 장년으로서 좋고. 나이 들면 나이 들어서 좋고. 죽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세요? 안 죽고 다 그렇게 해서 5001000년 살면 좋겠어요? 우리들의 마음은 안 죽고 싶을 지 몰라도 그게 좋은 게 아니에요. 우리아들은 공부 못하지만 서울대 들어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지만은, 모든 부모가 다 우리아들은 공부 못하지만 서울대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면 이 사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안되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우리가 원하는 것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그게 이루어 지면 오히려 세상이 더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는 거는 그게 나한테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는 거에요. 그건 쥐가 쥐약을 보고 저것 좀 먹게 해 주세요. 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님께서 먹는 게 좋으면 먹게 해 줄 거고. 먹는 게 좋지 않으면 안 먹게 할 것이니. 그러니 나는 다만 기도 할 뿐이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지는 것이 좋아서 이루어지는 거고.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부처님께 실망하고 그러면 안됩니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나에게 좋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다만 할 뿐이지 그 결과를 연연하지 마라. 그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은 신앙이 아니에요. 믿음이 아니에요 .요거 해주세요. 해주면 애처럼 좋아하고. 안 해주면 그냥 부처 믿어도 소용없더라. 기도해도 소용도 없더라. 이건 신앙이 아니에요. 그 분이 나보다 눈밝다면 그건 그 분께서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 그죠?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고 갈 길을 몰라 있으니 다만 눈 밝은 이여 저를 바른길로 인도하소서 이렇게 진실하게 기도하면서 가면 되요. 그럼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