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覺可得分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란 없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무상의 깨달음이라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지만
사실은 추호도 얻은 바가 없다고 생각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실로 그러하니라.
수보리야
나는 무상의 깨달음에 대해 조금도 얻은 바가 없나니
단지 이름만 무상의 깨달음이라고 부를 뿐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법은 평등해서 높고 낮음이 없나니
그저 이름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지은 것이니라.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구애됨이 없이
일체의 선법을 닦으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되리라.
수보리야,
내가 말한 선법이란 것은
익히 말했듯 선법이 아니라
그 이름이 선법이니라 선법일 뿐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삼천대천세계에서 제일 높고
큰 수미산만큼의 칠보를 취해 보시하더라도
다른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사구게 정도만 취해
독송하고 남을 위해 설한다면
그 공덕이 칠보로써 보시한 것보다 크니라.
전자의 공덕은 후자의 것에 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 천 억만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수효와 비유로써도 도저히 견줄 수 없는 것이니라.”
(선법: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일체의 언행이나 수행을 가리킨다)
-解義-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세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어떤 새로운 것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에 취해 깜박 잊고 있던 자신의 본성을 되찾은 것이다.
없던 것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무명에 감춰졌던 제 모습을 훤히 드러내는 것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삼라만상 모든 것은
제 본래의 성품인 불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부처 아닌 것이 없고
따라서 깨달음의 실체도 없고
그것을 얻을 바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부처의 의식 세계는 구체적으로 어떨까?
세존은 자신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영원불멸하는 부처가 됐음을 인식하고 있을까?
그래서 그는 자신처럼 되지 못한 중생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교화하여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금강경 전편에 걸쳐 무수히 들었다.
깨달음에 대한 인식과 중생 구제에 대한 자비심조차 뛰어넘었다면
마치 구름에 둥둥 떠 있는 것과 같은 초월심에 휩싸여 있지는 않을까?
이것도 한쪽에 편중된 것이 되어
본 경에서 말하는 부처의 상태라 할 수 없다.
부처는 일체의 법에 걸림이 없고
중생과 부처라는 인식조차 없는 중도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해탈이라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런 해탈의 경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을까?
머릿속에 실존에 대한 의문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즉 전지에 이르면 저절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탈에 이르게 된다.
해탈이란
법과 비법의 사슬에서 풀려나면서
부처와 중생의 구분이 뇌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상태다.
이렇게 되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게 된다.
이처럼 일체의 머무름이 없게 되면
모든 것과 단절되어 절대의 경계 속으로 녹아들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상대와 대비되는 절대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와 거리를 두는 절대는
그 자체로 절대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무소주 뒤에 이생기심이 따라붙고
색즉시공이며 공즉시색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상대와 절대 자체에도 걸림이 없게 되어
진정한 해탈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떤 특출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그 무엇보다 평범하게 된다.
앞서 깃발에 얽힌 선문답에 나온 밭 가는 농부처럼 말이다.
흔히 평범하기에 중생이라 하지만
중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알고 보면 중생만큼 독특하고 유별난 존재도 없다.
왜냐,
아상이 큰 것에 비례해서 자신만의 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범은 부처님이 누릴 수 있는 경지이다.
삼라만상이 한 덩어리가 되어 분별이 종식될 때
비로소 해탈하여 평범한 경지, 대각에 이르게 된다.
평범.
그것은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 부처가 되는
사사무애의 경지에서 나온다.
聖과 俗에 구애됨이 없이
무위로 둥글어 가니
절대이고 참된 부처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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