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던 1930년대 후반
일제는 대륙침략을 위한 물자공급을 위해 경주에서 청량리를 잇는 중앙선을 개통합니다.
그런데 그 철로의 노선이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직선에 가깝게 놀 수 있는 노선을 굳이 먼 거리를 우회해 가면 설계된 것입니다.
마치 어떻게든 어느 한 곳을 관통하려는 듯 말이죠.
철로 공사를 명목으로
99칸 중 30여 칸 강제 철거
99칸
400년 동안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던 임청각
일제는 왜 임청각을 무너뜨리려 했나.
이곳은 불령선인이 다수 태어난 곳이다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사람)
독립운동가 가문의 정기를 끊어내려한 일제
그 중심에 있던 석주 이상룡
임청각이 낳은 4대에 걸친 11명의 독립운동가
그 중심에 있던 ‘석주 이상룡’
나라가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가자
평생 붙들던 서책을 놓고 일대 결심을 합니다.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잃어도 늦지 않아”
모든 가산을 처분하며 식솔들에게 건넨 한마디
“이제부터 우리는 모두 독립군이다.”
그 당시엔 집안마다 사당에 조상님들 위패를 모셔놓았는데
그걸 다 꺼내서 뒷산에 묻었다고 해요.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만주로 가족들과 함께 떠난 거죠.
“일본의 병력은 소수의 오합지졸로
대항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알았다.”
만주 땅에 세운
한인자치단체 ‘경학사’
독립군 양성기관 ‘신흥강습소’
무장항일 투쟁을 위해 전재산을 바치고도
독립운동 자금이 부족하자 아들에게 전한 그의 또 다른 결단
“조선으로 들어가 임청각을 처분하라.”
나라를 되찾지 못하면 가문도 없다.
일제가 그 토록 끊어내고 싶었던 임청각은
한 가문의 종착을 넘어 독립운동의 요람이었습니다.
2019년, 일제가 놓은 철로의 철거를 시작으로
임청각의 완전한 복원이 진행된다.
이 땅에 그물이 쳐진 것을 보았으니
남아가 제 일신 아끼는 게 어디 있으랴.
잘 있거라 고향 동산이여, 슬퍼하지 말지어다.
다른 날 좋은 세상 되거든 다시 돌아오리라.
-이상룡(1858.11.24~1932.5.12)
손병호,
이상룡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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