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2003년까지, 전 세계 학계는
당대 최대 규모의 과학 연구에 몰두했었습니다.
바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입니다.
연구자들은 인간 DNA의 염기서열
약 30억 개를 모두 밝히고, 지도화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 작업이 성공하면
온갖 질병, 특히 유전병은 끝이라는 가능성에
전 세계가 흥분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정신의학계에서도
유전자 지도만 완성되면
각 정신장애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규명하고
이들이 부호화하는 단백질을 찾아내
문제를 해결할 약을 개발하고
치유법까지 발견할 것이라고 기대했었습니다.
결국 꿈에 그리던 [인간 유전체 지도]가 완성되었고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1800개 가량 발견하고
특정 질병의 유전적 소인을 측정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약 2천 가지나 개발 해냈습니다.
정신의학계 연구자들은
당연히 먼저 유력한 유전자들을 살폈습니다.
예를 들어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 정신 문제의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잘 알려졌기,
세로토닌, 도파민 등 신경 전달물질이나
이를 생성하는 효소
이들에 반응하는 수용체와 관련된 유전자들을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인간 유전체를 낱낱이 뒤져도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죠.
충격을 받은 연구자들은
뇌나 정신의학과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유전자까지
모두 살폈습니다.
샅샅이 탐색한 결과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을 법한 유전자를
다수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실제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유의미하게 위험으로 작용했을 유전자는
거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희소한 유전자가 일부 밝혀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정신질환 환자는
이런 유전자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던 것이죠.
게다가 연구 결과들이 엇갈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주요 우울장애 발병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가 있다는 결과를 보고한 반면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인간 DNA의 유전적 변이를 120만 개 넘게 살펴봤음에도
주요 우울장애 발병에 유의미한 위험으로 작용하는 유전자는
단 한 가지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당황과 혼란 속에서 결국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정신질환 환자 대다수의 경우
문제의 답이 유전자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유전이 아니라면
[정신질환의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오래전부터 심리학자들은 수많은 이론을 제시해 왔고
오늘날에도 심리학 이론들이 치료법으로 사용되긴 하지만
정신과 의사들과 정신학계 연구자 대부분은
심리학만으로 모든 정신질환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정신의학계는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의 원인을
스트레스, 약물, 음주, 호르몬, 가족력 등으로 지목하고 있으나
이 중 어느 요인도 특정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모든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거의 모든 게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라도
환자마다 발병 원인이 다르기도 하고
같은 증상을 가져도 같은 치료법이 통하지 않기도 하고
같은 원인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같은 환자를 두고도 다르게 진단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혼란스럽고 명확한 답이 없는 정신의학계에서
최근 모든 정신질환의 공통 근본 원인이
단 하나라고 밝힌 놀라운 이론이 나왔습니다.
바로 [뇌 에너지 이론]입니다.
하버드대학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정신의학자인
크리스토퍼 팔머는
그의 책 <브레인 에너지>에서
정신질환을 둘러싼 생물학, 심리사회적 이론들을 통합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유형의 관련 연구들과 증거들을
역사상 최초로 다 모아 하나로 합쳤습니다.
그는 모든 정신질환 사이에
강력한 [양방향성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양방향성 관계란
a가 b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b가 a의 원인이기도 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잠을 잘 못 자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수면이 부족한 사람이 우울증을 가지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2019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
덴마크 국가보건등록사업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약 6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17년 동안의 정신질환 진단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정신질환이든 발병 이력이 있다면
이후 또 다른 정신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이
극적으로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어.
놀랍게도 모든 정신질환 사이에
강력한 양방향성 관계가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서로 전혀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정신질환들
예를 들면
조현병과 섭식장애라든지
지적장애와 조현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조합을 시도하든 모두 같은 결과였던 것이죠.
모든 정신질환에서 양방향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 사이에 공통 경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즉 증상이 다르더라도 하나의 공통 경로를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다른 질병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 우울증, 뇌전증, 양극성, 장애 등의 원인이
모두 하나의 공통 경로를 가졌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발견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공통 경로가 비단 정신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심지어 신체의 대사, 장애인, 비만, 당뇨병, 심혈관 관계, 질환 등과도
강력한 양방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발견입니다.
즉 정신질환이 [신체의 대사 문제]에서도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대사는 음식을 세포의 성장과 유지 및 보수에 필요한
재료 또는 에너지로 전환하고
노폐물을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대사는
우리의 세포가 일하는 과정입니다.
마치 교통의 흐름처럼 우리의 몸은
수많은 길과 고속도로를 갖춘
거대한 도시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흐름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어떤 차들은 사고가 나서 꼼짝 못하게 되기도 하고
전체의 흐름을 막아 정체 현상을 빚기도 합니다.
이런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는
식습관, 빛, 수면, 운동, 약물과 알코올, 유전자, 호르몬, 스트레스, 신경 전달물질, 염증 등이 있는데
어떤 요인들에 의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고 심각해지면
어떤 증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죠.
크리스토퍼 팔머는
대사가 모든 정신질환과 그 원인의 공통 경로라는 점에 주목했고
마침내 그 공통 경로가
모두 [미토콘드리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 있는 작은 기관인데
영양분과 산소를 ATP 분자로 전환함으로써
세포를 위한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그래서 세포의 에너지 발전소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세포보다 작은 미토콘드리아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세포 안에는 하나당 약 300~400개가량의 미토콘드리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미토콘드리아가 우리 체중의 약 10%나 차지합니다.
놀라운 것은 미토콘드리아가
별도의 37개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이 유전자를 각자가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덕분에
각각의 미토콘드리아는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합니다.
즉 다른 생물로 볼 수도 있고
세포의 일부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생물학계에서 아직 존재 목적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미토콘드리아와 인간의 세포들이
현재 서로에게 100%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크리스토퍼 팔머는
바로 이 미토콘드리아들이
정신장애와 대사장애의 공통 경로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정신질환이
미토콘드리아 기능 부전과 연관된 장애나 질환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성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수십억 인구의 정신장애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던 것.
동일한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적 돌연변이도
사람에 따라 다른 증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정신장애는 어느 단일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개인차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팔머는
반론을 제기한 이들은
미토콘드리아를 에너지 생성 측면에서만 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성 외에도
세포의 성장과 분화, 유지와 보수, 나이 들고 손상된 세포를 제거하는 등의
무수히 많은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정신질환 환자들의 미토콘드리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어찌 되었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은
미토콘드리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태라면
뇌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미토콘드리아라는 공통 경로를 알아낸
이 뇌 에너지 이론은
지금까지 정신 건강 분야에서 답하지 못했던
수많은 의문점에 답을 제시합니다.
그동안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라도
환자마다 발병 원인이 달랐던 이유
같은 증상을 가져도
같은 치료법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
같은 원인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증상을 보였던 이유 등과 같이
명확하지 않았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동안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진
신경 전달물질, 호르몬, 염증, 수면, 영양 상태, 약물, 알코올 등이
모두 미토콘드리아와 관련되었다는 과학적 근거들도 보여줍니다.
모두를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이 뇌에너지이론이라는 것이죠.
이 이론은 그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해
앞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의 치료 방식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적 인식 변화, 의료시스템의 변화 등
넘어야 할 산들이 많지만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거의 모든 정신질환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책 <브레인 에너지>에서는
이 뇌의 에너지 일원으로
우리가 정신 건강을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정신 건강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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