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께서는 저희들을 공부시키면서
몰락 놓으라는 말씀을 자주하십니다.
때로는 무조건 맡기라고도 하시고.
그런데 그 몰락 놓으라, 무조건 맡긴다는 데
생각이 미치는 그놈하고, 맡기는 그놈은 누구이며
맡는 놈은 또 누구냐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결국은 맡기는 자와 맡는 자가
모두 내 자신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놓고 맡기는 거기에 아무런 경계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놓은 것도 맡기는 것도 없는 셈이 되는데
큰스님께서는
“놓으라, 놓으라”하시고 해서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번에도 내가 얘기했죠.
큰 팥죽 솥에다 팥죽을 쑤는데
여기 팥죽 방울이 너무 많거든.
수효가 없이 그냥 막 끓어오른단 말입니다.
여러분 뱃속에서도 수 없는 생명의 의식들이 나옵니다.
그러면 놓는 데는 한군데지만 또 나오는 데도 한군데다 이겁니다.
그런데 요 방울 저 방울, 요 방울 저 방울들이 다 나오니
그거는 한군데서 나와서 한 가지 고정되게만 한다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마는
천차만별로 다른 방울이 그냥그냥 솟아 나와요.
그러니 그 천차만별로 다른 방울이
바로 그 죽 솥에서 나온 죽방울이란 말입니다
방울은 달라도, 작고 크고 달라도.
그러니까 ‘죽 솥에서 나오는 거니까 죽 솥에다가 놔라’ 이런 건데
즉 말하자면 그러기 때문에
문수! “요놈도 문수! 요놈도 문수! 요놈도 문수!”
죽방울이 나오는 대로 ‘요놈도 문수’라고 주걱으로 쳤다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그것이 다 용도가 다릅니다.
우리가 살림하면서 별 게 다
병고로 인해서 걱정, 가난해서 걱정
회사에 가서 상사들한테 그냥 꾸중을 들어서 걱정
또 애들이 속을 썩여서 걱정
또 부부지간에 싸워서 걱정
돈이 없어서 걱정
뭐 걱정도 한둘이 아니니까
죽방울은 죽방울인데 죽방울이 그렇게 다르니
다른 죽방울이니 그 ‘한(솥)에서 나온다’ 하는 걸 믿고 알아라.
그러면 거기에 다 놓는 거다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솥의 죽방울이니 걱정을 하지 말고
당장 애가 나가서 죽는다 이러더라도 걱정을 안 하고
‘거기에서 나온다’ 하는 거를 안다면 그 애는 나가서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벌써 내가 그 생각한 것이 전체 주인공은
자기가 가설이라고 그러는 소리가 무슨 소리냐 하면
내 형이니까 그 형이라는 거를 알고 있으니까 가설이고
아들이라는 거 알죠, 마누라라는 거 알죠, 어머니라는 거 알지 다 알잖아요,
여러분들이, 가족은.
그러니까 급하면 급한 대로 친절하면 친절한 대로 또 다 알아요.
알기 때문에 가설이 됐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한 생각을 그렇게 하는 동시에
바로 그 식구들까지도 거기에 다 통화가 돼요.
거짓말 아니에요.
통신이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부터 벌써
“난 집으로 들어가고 싶구나!” 이러곤 저절로 자동적이에요, 그거.
자동적으로 사람을 다뤄야지, 그게 이심전심이에요.
두 마음이 아니고 한마음으로 돌아간다.
애들 잘못하는 거를, 또 잘못하는 거뿐만 아니라
“난 이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다면
어른이 생각할 때 이거는 천부당만부당해.
그렇다 할지라도
“그래, 네가 하고 싶으니까 해봐라.” 그러고선
아주 좋게 해주고 여기에다만 경험을
저놈이 저것이 어떤가를 경험만 하고 딱 돌아서게끔
딱 여기다가 해놓으면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금방 그냥 나가서 다 해버리고
“아유, 아버지! 나 그거 그만두겠어요.”
“왜 그만두니?” 외려 그러거든.
그러면
“이만저만해서 이러니까 저 다른 걸로 하겠어요.” 한단 말입니다.
요렇게 해서 사랑과 자비, 의리, 이심전심
요렇게 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 관심, 이것이 진짜 사랑이지
그냥 쪼금만 나가서 저거 하면 그쪽에는 이유를 좀 듣지도 않고
“야, 이놈의 새끼야! 너 어디 갔다가 이제 들어왔어. 공부하라니까
이 애비는 그냥 땀을 흘리고 벌어다가 너희들 공부시키는데….”
누가 아니라나요?
“그렇게 공부시키는데 요놈 새끼야, 뭐 어디 가서 자고 들어와?”
그쪽 사정은 알아보지도 않는 겁니다.
내 속에 그냥 나오는 대로 그냥 해버리는 거예요.
이거는 내가 먼저 내 얘기를 하기 이전에
그쪽 상대방 얘기부터 듣고 잘못됐으면
“얘,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니?” 하고 여기다 맡기는 거.
또 그렇지 않으면
“얘, 그렇게 해서 못 들어왔구나. 아유, 그건 참 잘했구나.
네 친구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면 참 잘했다.
사나이가 그런 의리도 없이 어떻게 살아나가겠느냐.”
아, 이렇게 좀 북돋아 주면 나가서 잘못하래도 안 해요.
이것이 부모가 가르치는, 삼 분의 일 가르치는 일이고,
삼 분의 일은 자기가 자작,
자기가 이끌고 다니는 바로 자기 마음을 자기가 다잡아서 나가는 거,
삼분의 일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치는 거
이것이 삼 단계가 한데 합쳐져서 아주….
그렇게 되면요
“이랬어, 저랬어”도 안 합니다.
“아버지!” 그러곤 좋아서 옆에
정당하게 말할 땐 무릎 꿇고 앉아서 정당하게 말하고
또 재밌게 얘기하고 같이 이렇게 얘기할 때도
“이랬어 저랬어” 막 마구 하지 않습니다.
아주 존경하고 어려워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이죠. 이게 아닐까요?
옛날에 만약에 서른 살이다 하면
지금 스무 살, 스물하나, 스물둘 요 정도가 예전에 서른 살 하고 맞먹는단 얘기죠.
지금 시대가 그만큼 됐으니까
아버지 어머니들 좀 더 생각을 깊이 해보셔야 될 겁니다.
그리고 또 나는 항상 그럽니다.
어떠한 뭐가 조금만 저거 해도 신경을 쓰셔야 할 겁니다.
반찬을 좀 냉장고에 넣어 놨더라도
자기가 못 보고 그냥 나가는 때는 반드시 몇 자 써서
“얘, 아무개야! 냉장고에다 그걸 넣어놨으니 그거 데워서 꺼내서 먹어라.
그리고 언제 들어오는지는 몰라도 좀 일찍 들어와서 배고프지 않도록 해라.
너무 피곤하면 안 되지 않니?”
요렇게 아주 간단하게 써서 상에 놓고서 턱 나가면
자식들이 그거를 볼 때 차마 그거를 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자비를.
그리고 그 존경하는 자기 부모를 내버릴 수가 없습니다. 절대입니다, 이건.
그게 뭐 그렇게 어렵습니까?
오늘 내가 이런 말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사회에 너무
지금 외국이나 여기 한국이나 볼 때에
외국 가면 마약중독 뭐 이런 것이 돼서요
상당히 부모네들이 고생합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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