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선공부

[릴라선공부] 활짝 열려서 생각에서 벗어난다!

Buddhastudy 2024. 8. 27. 19:22

 

 

소음은 훼방꾼입니다.

생각은 훼방꾼입니다.

이 공부가 열리는 데 방해하는 거예요.

 

근데 활짝 열리면

생각은 쓸 수 있어요.

근데 활짝 열리기 전까지는

생각이 가로막아요.

 

중생세계를 욕계, 색계, 무색계라고 얘기하죠.

가장 끝까지 남아있는 게 뭔지 아세요?

생각입니다.

 

몸이라는 것도 실체가 없구나라는 걸 알아져도

자기의식, 그 생각에서 이 미세하게 잔잔하게

이 법상을 짓고 있는 게 남아있어요.

 

그럼 뭐냐면

생각이, 분별이

욕망의 세계일 때나

몸이 나라는 그런 구조에 빠져 있을 때나

아니면 그것을 벗어난 세계나

항상 밑 저변의 생각이 그 구조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장애를.

 

욕망이 들끓을 때 가장 밑바닥을

생각이 조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나중에 미세망념에 떨어지거든요.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계, 욕계, 색계, 무색계

그거 진짜 설득력이 있는 거예요.

 

왜냐면 욕망의 세계에 갇혀 있을 때는

욕망도 있고, 몸도 있고, 의식도 있어, 자아의식도.

근데 그 고비를 넘어서면

욕망, 막 추구하거나 막 날뛰지는 않는데

이 몸이 있는 것 같고, 이 사물이 있는 것 같은

이 실체감 존재감이 여전히 있어요.

그 하부 구조에 자아의식이 있는 거예요.

 

근데 그거에서도 벗어나도

여전히 남아있는 게 그거인 거예요.

 

그래서 그게 뭐냐 하면

법에 대한 소음 생각이 남아 있고

그게 세상을 이원성으로 이렇게 딱 만드는 구조에

분별이 다 있는 거예요, 의식이.

이원으로 나누는 구조.

 

그러니까 분별은요

딱 둘로 나누면서 힘이 시작되거든.

이 위력이 생기거든.

내가 있고, 대상이 있어

이때부터 이제 위력을 발휘하는 거예요.

근데 이게 공이 멸해야 돼요.

 

근데 어떤 식으로든 공부하는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남아있는 거는

법에 대한

그 다른 건 없어, 다른 추구심은 없어

다른 걸 대상화하는 건 없는데

법에 대한 추구, 법에 대한 대상화

그다음에 그거를 얻으려는 마음

이게 가장 마지막에 남아있습니다, 제가 보니.

그게 딱 떨어져야지

주객관 의식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색계도 그러잖아요.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그게 다 생각이라

그게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허공, 다른 건 아무것도 없고

몸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공간만 있어.”

이런 의식.

그것도 망상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 법상이 남아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어, 나도 없고, 세계도 없고, 이거 다 허상인데 공간만 있어

이런 식의 규정들.

 

그다음에 또 지나면

공간도 이건 의식이네, 의식만 있어이런다고.

그런 규정들이 남아있어요.

 

그러니까 이 의식이, 이 생각이요

공부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결국은 이 생각의 프레임에서.

 

공부를 해나가는데

이거를 다 외우려고 하면 안 돼요. 절대 안 돼.

자기 눈 앞에 것만 봐야 돼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하라고 하는 이유는

한 걸음씩 가는 것이지

진짜 100걸음 앞에 거는

자기한테 망상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자기가 소화되는 만큼만 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