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함께 하겠습니다.
영적인 길에서 ‘차원 높은 힘’
즉 ‘근원의 힘’ ‘신의 힘’ ‘우주의 힘’을 추구할 때
우리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먼저 긍정적 느낌과 심상화를 결합함으로써
원하는 물질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창조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의식’을 통해 ‘물질적 영역’을 통달해 가는 단계에요.
하지만 물질적 영역에서 크고 작은 성취를 체험한 후,
어느 순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이 옵니다.
이때 다음 단계인 ‘감정의 영역’을 통달해야 하는데요.
인격을 벗겨내는 마지막 단계는
죽음과도 같은 에고의 고통을 동반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에고가 완전히 해체되면
비로소 우리는 그다음 단계인 ‘존재’의 새로운 차원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됩니다.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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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처음으로 영적인 길에 들어서서
‘차원 높은 힘’을 추구할 때,
많은 이들이 ‘혼자서 하는’ 기법을 가르치는 교사들로부터
감정적으로 결합시키는 생각에 강력히 몰입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런 교사들은
자신의 가르침이 에고의 힘을 강화시키는 데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구도자들은 이렇게 배운다.
“명상을 하면 ‘신’, 혹은 ‘잠재의식의 힘’이 나의 모든 필요가 충족되도록 도와준다.”
“내가 원하는 집을 심상화할 것이고, 그것을 가지게 될 것임을 안다.”
“필요한 옷을 사려고 하는데, 어떻게든 그것을 파는 가게를 발견하게 될 것을 믿는다.”
그들은 ‘믿음을 갖는’ 데에 집중하고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 집중한다.
자신의 믿음을 단련하고 의식이 변화해 가는 초기에는
그들도 정말 큰 은혜를 느낀다.
원하는 대상이 정말 삶 속으로 들어오고, 그들은 문이 열리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성공을 얻는다.
이런 현상은
그들 의식의 물질적 차원이 영성화되어
그 결과로 내면에 발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삶이 덜 힘들어진다.
하지만 너희의 삶은 너희 의식의 모든 수준- 마음, 감정, 신체 –을
표현해내게끔 되어 있다.
의식의 물질적 영역을 통달하고 나면
영성으로 들어가는 모험의 그다음 단계는 감정의 영역이다.
그래서 풍요로운 삶의 한가운데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닥치고,
이전에는 안정적이었던 감정 상태에 비가 내리면서
온갖 종류의 불행을 지어낸다.
그것은 가족이나 건강이나 소유물을 잃거나,
삶의 여러 국면에 온갖 종류의 갑작스러운 차질이 일어나는 등의 형태를 띨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도 이 시기이다.
그들은 이렇게 단언한다.
“긍정적 사고는 효과가 없어!”
물론이다.
긍정적 사고는 그 자체만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잠재의식의 힘’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너희의 영적·인간적 전 존재의 한 단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요동칠 때,
너희는 자신의 의식 전반을 되살펴 점검해 볼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느낌과, 영적 차원,
심지어 죽음의 의미와 사후의 높은 차원계에서의 삶에 대한 믿음까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삶에서 극도로 고통스러운 기간이다.
모든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이 같은 혼란기를 겪어야 한다.
그것은 엄청난 내적 성장의 시간, 행복의 나라로 건너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회한과 괴로움만 이어지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온전히 깨어나서,
경험의 결과는 전적으로 운명이 아니라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깨달아야 할 시간이다.
너희가 그 경험을 혼자서 겪어내든지
아니면 행복의 극치에서 마침내 도달하는 신성의식과 함께
그것을 온 마음으로 꾸준히 다루어내든지 말이다.
감정을 통달하게 해줄 가장 높은 통찰과
이상을 추구하여 마음을 건설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채찍질 받는 것도 이 시기이다.
불편한 상황에 대한 충동적인 에고의 반응으로 일어나는 생각과
창조적이고 지적이고 사려 깊은 생각의 차이가 선명해질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통찰을 일상적으로 하게 될 때
자기 정복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
너희가 회한, 각성, 정신적·감정적 패턴의 변덕 등
자아실현 과정의 모든 단계를 거쳐
드높은 영적 진동주파수로 끊임없이 올라가서
마침내 ‘신의 실현’에 이르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스승만이
실로 너희를 천국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진실의 스승이다.
첫 번째 단계인 긍정적 사고를 통한 물질적 만족의 추구가
구도자들에게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그들이 원했던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다면
지금쯤은 온 세상이 ‘긍정적 사고’의 신봉자로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혼의 영적 여정의 출발점이니
비판하여 배척할 일이 아니다.
심령은 지상계 너머에 ‘신’, 곧 ‘저 위에 앉아 계신 분’,
혹은 기도에 응답하는 ‘우주적 권능’이라 불리는
어떤 영적 차원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
우리가 ‘의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심령은
삶에는 나날의 고투 이상의 뭔가가 더 있음을 깨닫고 있어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경험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존재의 일부 영역인 건강, 재정적 수단, 행복, 사랑 등의 결핍이
심령으로 하여금 도움을 구하게끔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그 영혼에게 맞는 스승이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대개 이 시기이다.
영혼이 인생길을 여러 번 여행해보았다면
그 스승은 길을 찾는 영혼을
에고의 욕구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빛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화된 존재일 것이다.
타인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의 ‘에고’를 경계하기를 잊지 말라.
신성의식을 참으로, 지속적으로 볼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들 또한 내면에 힘과 권능과 영감의 원천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는
에고가 그들의 내면적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다.
너희는 아마도 여러 생애에 걸쳐서
복잡다단한 삶과 인연의 무수한 굴곡을 경험할 것이다.
너희는 과거의 여러 생애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죄악의 화신’으로 여겨질 만한
포악한 짓을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야말로
너희를 오늘날의 영적 인식에 이르도록 데려오는 데에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저지르는 ‘죄’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저지르는 ‘죄’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이 아직도 무거운 거미집 감옥 속에 잠들어 있기 때문에
‘에고’가 전권을 휘두르면서
비난받을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질렀음을
타일러 깨닫게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그에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보여줄
빛의 내적 조명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에고의 의식에 의해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겪게 되는 고통은
(그가 타인에게 저지르는 모든 짓이 곱절로 돌아올 것이므로)
마침내 그로 하여금 스스로 존재의 의문을 제기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의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생명]으로부터 응답을 받는 방법이다.
나는 사람들이 ‘영’에 의해 변모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로써
이 장을 시작했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나는
이 과정을 ‘자기 버리기’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이것은 위협적인 이름이어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높은 영적 차원으로 가는 길에 발을 들여놓기를 단념해 버렸다.
하지만 인격을 벗겨내는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실로 죽음과도 같다.
이 과정을 겪는 동안
그 사람은 자신의 인간적·세속적 자아의 중요한 부분을 상실한다.
하지만 마침내 고투가 끝났을 때 느끼게 되는 안도와 내적 평화는
말로 형용하기가 불가능하다.
환희가 가슴을 가득 채운다.
마음의 침묵 속에 진정한 안도와 안식과 고요가 있다.
인격의 지배를 위한 고투가 마침내 끝났다.
그는 ‘주인’이 된다.
영적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존재’의 새로운 차원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인간사의 그 어떤 것도 예전처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너희를 비판하는가?
예전 같았으면 자기적 인격이 너희를 화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너희의 불안한 마음
인정받기 위해서 모든 사람 앞에서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욕구
이런 것들 때문에 말이다.
에고는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남느냐’고 다그쳤다.
그러면 인생이 어떤 꼴이 될 것 같으냐고 말이다.
‘에고’의 목소리가 죽고 나면 안도를 구할 필요가 없다.
너희는 [안전하니까] 말이다!
너희는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자신이 신성한 생명 의식의 뒷받침을 받아
유지되고 양육되고 보호받고 치유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의 기쁨, 반가움, 행복, 개인적 충족과 만족이 모두 너희 안에 있다.
사실, 너희에게는 더 이상 그 어떤 타자성도 필요치 않다.
너희도 그 모든 타자성의 일부라는 사실만 빼고 말이다.
빛이 너희를 채우면
너희는, 너희 안의 이 아름다운 차원과 접속을 계속 유지하고 있을 때,
그 신성한 생명 의식이
너희에게 날마다 매 순간 쏟아부어주는 모든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어주고 싶어지는 열렬한 욕구를 느낀다.
너희는 이제 내가 지상에 살던 때 ‘천국’이라 불렀던 곳에 들어섰다.
너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모두 공급되었음을 깨달을 것이고,
장차 필요하게 될 모든 것은
거의 즉시 충족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앎은 너희를 신성한 생명에 늘 접속되어 있게 해주어
엄청난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마음의 평화와 고요와 함께 환희와 행복
그리고 젊고 생기 찬 신선한 느낌이 찾아온다.
자잘한 병, 혹은 만성, 심지어는 말기의 치명적인 병도 깨끗이 치유되고,
너희는 존재의 새로운 국면으로 다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의 교훈을 배울 때마다
너희는 인간적 차원에 속한 어떤 것을 떠나
영적 의식의 더 높은 주파수로 옮겨간다.
나는 너희가 감정적 속박과 씨름하여
그것을 다루어낼 때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보상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애초에 너희에게 개체성을 부여한 것이 바로 이것이지만,
그것은 쳇바퀴에서 내리기 위해서 깨부숴야 할 영혼의 족쇄로 변한다.
이 쳇바퀴란
너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한평생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돌아가면서
너희가 즐겨하지 않는 경험들 속으로 너희를 떠밀어 넣는다.
마침내 삶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영 안에서 초월할 수 있게 되면
쳇바퀴는 속력을 늦추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너희는 문득
그것이 거의 멈추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앞서 묘사했던
그런 아름다운 삶을 맛보기 시작할 것이다.
너희의 세속적 인간성으로 인해
너희에게 지워진 짐을
내가 내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의 고통과, 절망의 시간과, 외로운 밤의 슬픔과, 정신적 감정적 혼란과 동요의 시간들을 안다.
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그리고 너희에게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너희 의식의 주파수로 내려갈 때,
나는 너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조건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이 말들은 너희가 가장 화급히 필요로 하는
구원과 치유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이 말들이 과연 나에게서 온 것인지를 의심하지 말라.
이 말들로부터 위안을 얻고 그것을 공부하다 보면
때가 오면 그것이 너희 영혼 속 깊은 곳을 조명해 주고,
그것이 오래도록 열망해 온 그 변화를
너희 자신과 너희의 삶에 가져다줄 것임을 [알라].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채널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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