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처님 당시에 슈라바스티의 아주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병이 났어요.
몸져 누워있는데, 병이 났으면 약을 먹든지,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되는데, 이 사람은 어떤 의사의 치료도 거부하고, 약 먹는 것도 거부하고, 무조건 거부하는 거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이 사람 말이
“나는 해와 달을 섬기고 있다.
그리고 임금에게 충성하고 있고, 그리고 부모에게 효도할 뿐이다.
나는 이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진실로 해와 달을 섬기고,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내 병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내 정성이 부족해서 이 병이 안 낫는 거다.
내가 만약에 이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약을 먹거나 의사를 부르거나 하는 것은 내 신념을 꺾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
이러게 고집을 했습니다.
그때 기원정사를 지었던 수자타 장자라고 급고독장자 아시죠? 이분이 아마 이 환자와 친구였나봐요.
그래서 하도 안타까워서 그렇게 네 신념이라고, 종교라고 사상이라고 고집하지 말고, 내가 아는 위대한 스승 부처님이 계시니까 부처님의 말씀을 좀 들어보면 어떻겠느냐?
하도 안타까워서 이렇게 권유를 했더니 필요없다는 거요.
나는 누구도 딴 사람을 섬기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해와 달만 섬긴다.
나는 누구에게도 충성하지 않는다. 오직 임금에게만 충성한다.
나는 누구도 보살피지 않는다. 나는 오직 부모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부모만 보살핀다.
이러니까 부처님의 법문을 좀 들으라 그래도 싫다는 거요.
이렇게 있는데 병은 점점 깊어지고, 완전히 사람이 죽게 되었어.
그러니까 이 환자가 숨이 넘어갈 정도가 되니까, 좀 생각이 바뀌었나봐요.
그래서 수자타장자에게 ‘네가 말하는 그분을 그러면 좀 뵙겠다.’ 이렇게 마음이 바뀐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집을 방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환자를 위로해줬어요.
그랬더니 이 환자가 역시 똑같이 하는 말이
“저는 해와 달을 섬기고 임금과 조상들을 공경하면서 갖가지로 계를 지키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은덕을 입지 못했음인지 아직도 병을 앓고 있습니다.
약이나 침 혹은 뜸질 같은 것은 아예 문 안에 들지 못하게 했으며
경전이나 계율의 복덕에 대해서는 본래부터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저희 조상 때부터 지켜온 것임으로 이렇게 살다가 죽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뭐요?
자기 종교의 사상에 충실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고,
자기 문화적 전통에 충실하다. 자기 가문의 전통에 충실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어쨌든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자기 종교의 가르침,
또는 자기 가문의 가르침, 또는 자기 나라의 어떤 문화적 전통,
이런 것들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죽어도 이것을 버릴 수가 없다.
이렇게 고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이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사람이 세상에 살다가 횡사하는 데는 3가지가 있소.
첫째, 병들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 그 첫째이고
둘째, 치료를 하면서도 환자로서 삼갈 것을 삼가지 않는 것이 둘째이고
셋째, 교만하고 방자하여 따르고 거스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 그 셋째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의 병은 일월이나 국왕, 또는 조상과 부모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밝은 도리로서 시간을 따라 차근차근 고쳐야 하고,
그 도리란 추위와 더위에서 온 병은 의학으로서 고쳐야 하고,
삿된 일과 악귀로 인해 생긴 병은 경전과 청정한 계율로서 고쳐야 하며
어진 사람을 섬김으로써 얻은 그 자비심으로 빈곤과 재난을 구제해야 하오.
그와 같은 덕은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중생을 복되게 하고, 큰 지혜로 번뇌망상을 소멸시키오.
이와 같이 행하면 현세에서 편안하고 복되어 뜻밖의 재난을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오.”
부처님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해를 섬기는 것은 밝기 때문이오.
부모를 섬기는 것은 은혜 때문이며
임금을 섬기는 것은 권력 때문이며
도인을 섬기는 것은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다.”
이 가르침을 듣고 지혜를 얻어야 되겠죠? 그래서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혜는 근심과 걱정을 흩어버리고, 상스럽지 못한 쇠망을 없애나니,
안온한 행복을 얻으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을 따라야 한다.”
이 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사상과 이념,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60억이 넘는 인구들을 한 번 보십시오.
개개인이 다 생각이 다릅니다.
또 좀 크게 보면 민족마다 나라마다 종교마다 아주 그 전통이 각양각색입니다.
우선 인도의 힌두교도들을 한번 보십시오.
힌두교도들은 절대로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왜 소고기를 먹지 않느냐? 소는 신성한 존재다.
그러니까 신선한 존재를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소고기를 절대로 입에 안 댑니다.
소고기를 입에 댄다면 자기는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태어날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금기사항이 되어 있습니다.
무슬림, 회교도들은 어떤가?
회교도들은 절대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나?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다. 다시 말해 악귀가 깃들어 있는 동물이다.
만약에 돼지고기를 먹으면 그 돼지고기를 따라 악신이, 악귀가 내 몸에 음습해서 내 영혼을 더럽혀 버린다. 그래서 나는 천국에 갈 수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절대로 입에 대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마치 죽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몸이 죽는 것은 받아들이는데, 영혼이 더렵혀져서 신의 나라에 못 가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회교도들은 소고기는 먹습니다.
힌두교들은 돼지고기는 먹어요.
그런데 인도에서 이 두 종교가 같은 동네에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신성한 소를 잡아먹으니 그건 인간도 아니에요.
그 더러운 돼지고기를 먹고 사니, 저건 인간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갈등이 굉장히 극심한 거요.
각자 다 자기의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사상, 종교, 문화, 이것을 움켜쥐고 있죠.
‘이것만이 진리다. 나는 이것은 절대로 양보를 할 수가 없다.’
이래서 그 종교적 갈등이 누구도 말릴 수가 없는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조선조를 생각해 봅시다. 유교사회이지 않습니까?
유교사회에서의 최대의 덕목이 뭡니까? 조상을 섬기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살아있는 부모를 효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서 제사를 잘 지내야 됩니다.
사람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그건 짐승의 무리에요.
짐승이 제사를 안 지내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자신을 있게 한 조상의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조상을 위해서 돌아가신 날짜에 또는 중요한 날마다 정성을 다해서 재물을 차려서 조상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거요.
기독교의 가르침은 어떠냐?
‘나 이외의 다른 신을 믿지 말라’ 라고 하는 그 여호와 신의 가르침에 따라서, 여호와 신 이외에는 그 어떤 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어떤 것에도 절하지 않는다. 섬기지 않는다. 이게 아주 철저하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은 비록 조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설령 누구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절하면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신을 섬기지 않는 태도와 같다. 그러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이렇게 되니까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받아들이는 한은 어떻게 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았단 말이오.
그런데 그것을 당시 사회에 유생들이 봤을 때, 저 사람이 어떤 종교를 받아들이고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사상, 그 종교는 바로 인간을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아주 나쁜 사상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버리라고 했는데 버리지 않으니까 그것을 죽인단 말이오.
왜?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그런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럼 또 반대로 또 절대 신을 섬기는 사람은 어떠냐?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 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거요.
그래서 또 역사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죠.
이런 갈등이 종교적 갈등이오.
이것뿐만 아니에요. 종교만 이런 게 아니라, 여러 전통이 그렇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사회에도 이런 종교적 신념, 갈등 이런 것들로 인해서 여러 가지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많이 있죠.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다른 것들을 이해하려고 안 그러고,
자기 것만 고집하고 다른 것을 배타하는 거요.
그래서 사회적인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오늘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분쟁, 지구상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있는데, 큰 분쟁이 한 40여 군데가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 82%가 이런 종교적인 신념으로 일어난 분쟁이라고 합니다.
종교가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화의 씨앗을 제공하는
이런 기이한 현상이죠.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다 평화를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겨나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현상들, 즉 진리를 얘기하면서 서로 다투는 이런 현상들, 부처님 당시에는 육사외도, 또는 62견해, 또는 360가지 견해, 이렇게 서로 다른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A가 이것은 진리다 하면, B는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진리라고 말해.
그러면 C는 다시 B를 보고 그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진리다. 라고 말해.
세상 사람들이 들을 때는 도대체 어느 게 진리이고 어느 게 거짓인지 알 수가 없어.
왜? 누군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은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와서 어떤 것이 진리입니까?
이렇게 질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경전이나 계율, 이런 것들에 근거해서 이것은 진리이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라고 검증할 수가 없다.
그런 것에 근거해서 진리고 진리가 아님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각자 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항상 그것이 진리냐, 진리 아니냐 하는 것은
지금 여기 일어나고 있는 현상, 사실,
여기에 근거해야 된다.
예를 든다면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마라 라는 계율에 대해서
‘아, 그것은 불교에서 주장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 불교에서 주장한다 이렇게 볼 수가 없다.
살아있는 생명을 한번 관찰해보자.
여기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려 할 때, “죽겠다” 이렇게 하는 게 없다.
그것은 사람이든 미물이든, 나든 남이든, 누가 죽이겠다하면 ‘죽고 싶다’ 이런 사람이 없다.
살아 있는 생명은 그 생명의 .......
그 생명은 고통을 겪게 된다....
.........
그 과보로 나의 생명을 헤치고, 그것은 생명의 원리에 어긋나는 거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또 내가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억울하고 분하다고 해서 그런 방식으로 원수를 갖게 되면 상대는 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과보가 또 나에게 미치기 때문에 이것은 살아지지 않고 계속 돌고 돌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고, 억울하고 분한 일이 생길 때 그것을 원수 갚음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이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얘기는 어떤 주장이 아니에요.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 원리에 따라서 설명을 한 거다.
그래서 불법을 뭐라고 그러냐? 단마. 진리.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래서 불자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 법, 단마에 귀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단마를 공부하는 거요.
그거에 의지해서 우리가 정진을 하고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해야 된다. 이 말이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이 그냥 복을 비는 것이 아니에요.
이렇게 법에 귀의해서 정진하게 될 때,
나에게 밀어닥쳤던, 즉 어리석음으로써 일어났던 갖가지 괴로움이 사라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큰 복을 얻는 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삼보에 귀의하고 수행정진하면 큰 복을 얻는다고 말하는 거다.
그러니 이 사람은 그러한 자신의 어떤 문화적 전통, 종교적 전통에 사로잡혀서 치료받기를 거절하고 결국 죽어가면서 뭐라고 그러냐?
“가피력이 없다. 내가 신심이 없어서 가피력이 없어서 그렇다.”
이렇게 말을 했다.
부처님께서
그렇지가 않소. 몸이 병이 나면 치료 받아야 하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잠이 부족하면 잠을 자야하며,
몸이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몸에 대해서 나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조언을 얻어야 됩니다.
그런데 몸이 아픈데도 치료를 받지 않으면 그것은 빨리 죽는 길이다.
그건 가피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고, 빨리 죽을 인연이 있어서 빨리 죽는 게 아니라,
그것은 무지로 인해서 횡사하는 거다.
두 번째,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좋은 의사가 진료를 해서 좋은 처방을 내려줬다 하더라도 환자가 삼가야 할 것을 삼가지 않는다면 이것은 치료효과가 없다.
다시 말하면 음식을 적게 먹으라는데 많이 먹는다든지,
술이나 담배는 피우지 말고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 말을 안 듣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먹는다든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데 움직인다든지,
이렇게 조심해야 할 것을 조심하지 않고, 삼가야 될 것을 삼가지 않게 되면 어떠냐?
이것 또한 치료가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 죽는 길이다.
그다음에 세 번째, 교만하고 방자하여 따르고 거스리는 것,
즉 행해야 될 일과 행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고 행해야 되는데,
자기 생각, 자기 신념, 이런 것. 자기 가진 재물이나 권력이나 뭐 이런 것에 의해서
교만에 떨어져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방자하게 행동을 하게 되면 어떠냐,
그래서 순리를 거스르게 되면 어떠냐, 이것도 횡사하는 지름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런 경우가 참 많죠.
적당하게 먹어야 되는데 지금 어떻게 합니까? 혀끝에 집착해서 자꾸 많이 먹어서 콜레스테롤이 증가한다. 성인병이 든다. 비만증이 든다 해서 병을 불러오죠.
또 음식을 먹을 때는 골고루 먹어라 했는데, 어떤 것에 탐착해서 그런 것을 먹죠.
또 담배 중독이 들거나, 술에 중독이 들거나 마약에 중독이 들거나, 또 잘못된 습관들.
이런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몸을 병들게 하죠.
그래놓고는 부처님을 원망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믿어봐야 소용없더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또 의사의 진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의사의 가르침을 안 따르죠.
자기 멋대로 하죠. 설마 죽겠나 이러면서. 그래서 병이 든다는 거요.
마찬가지로 이것은 육신의 병을 말하고,
마음의 병, 즉 괴로움이라는 건 어떠냐?
이것도 순리대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자기 의견을 고집하고 자기 견해를 고집하고 자기 식대로 행동하고
이렇게 해서 갈등을 불러 일으켜서
사랑한다고 만난 부부가 결국은 원수가 되어 헤어지고,
자기가 낳은 자식 애지중지 키워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자식을 낳았나’하고 자식하고 원수가 되고..
..처럼 여겨서 부모를 보고 미워하고,
이런 행위들은 참으로 몸으로 말한다면 엄청난 중병에 든 것과 같다.
이게 다 자기를 해치는 거다.
왜 이런 게 일어났냐?
전생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노여움도 아니고, 사주팔자도 아니에요.
바로 쥐가 쥐약을 먹듯이,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듯이
자기가 어리석어서, 욕심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자초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아주 간단하다 이거야.
내가 어떤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거나, 내가 어떤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거나
배가 고프면 밥 먹고, 몸이 아프면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는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으면 조심하고,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내가 눈병이 났는데 눈을 치료하는 의사한데 갔더니 그 의사가 얼마나 눈을 잘 치료하느냐 이걸 봐야 되는데
종교를 물어보고 ‘어, 불교인이 아닌데, 난 당신한테 치료받지 못하겠소’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불행히도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괴롭고 세상 사람과 갈등을 일으켜서 남에게도 괴로움을 주는,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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