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금, 여기,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로 알아차리게 되면
사실은 혼란은 없습니다. 두려움도 없고.
그런데 우리가 두려운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지 때문에 두렵고,
또 무지로 인해서 신비한 현상이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제가 만약에 여기에서 명상을 하다가 공중에 약간 떴다. 이걸 부양이라고 그래요. 약간 공중부양을 하면 여러분들이 눈이 똥그래집니다. “우와~”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신비감이 일어나고 어떤 분들은 일어나 절을 하고 이런 일이 생기겠죠.
그런데 나는 혼자 뜨는데 비행기는 300명을 태워서, 나는 몇 번 뜨는데 비행기는 몇 시간을 여기서 떠서 미국까지 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걸 보고 신기해하거나, 그걸 보고 절하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왜 그럴까요?
제가 만약에 공중부양을 하면 여러분들이 왜 뜨는지 이유를 모르고, 비행기가 뜨는 것은 이유를 알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알면 신비감이 안 일어나고, 알면 두려움이 안 일어난다. 모르면 작은 일도 두려움이 생기고, 또 작은 일에도 신비감이 생긴다.
그런데 일반적인 종교는 이 인간의 무지로 인해서 발생하는 두려움과 신비감을 이용해서 종교행위가 일어난다. 이것을 기복적이라고 그러죠. 그런데 예수님이나 부처님, 성인은 그 인간의 무지를 깨뜨려서 그 어리석음을 깨뜨려서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신비감을 사라지게 하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은 두려움이 없다. 또 부처님은 내 손안에 움켜쥔 어떤 비밀도 없다.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그러니까 신비감을 조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조장하는 거다.
그래서 목련존자라고 하는 아주 기이한 힘을 가진, 신통력을 가진 분에게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중생의 어리석음을 부추기니 신통을 쓰지 마라.” 이렇게 얘기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와 불교는
그 인간의 두려움과 신비감을 먹이로 해서
종교가 존재하고 있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성인의 가르침과는 조금 어긋나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우리들은 우리들의 고뇌가
바로 무지로부터 일어난다. 알지 못함.
또는 편견으로부터 일어난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살펴보면
“아, 이것은 내가 이런 편견이구나.
이런 무지로부터 일어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번뇌는 저절로 사라지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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