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1283회] 왜 생명은 각자 다른 삶의 무게를 짊어졌나요?

Buddhastudy 2017. 5. 9. 19:09

 

      

어떤 개는 되게 부잣집에 태어나서 사람보다 더 호강하는 개가 있고

어떤 개는 유기견 센터에서 안락사당하는 개가 있잖습니까?

왜 모든 생물들이 다른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나요?//

 

 

그럼 강에 가면 돌이 왜 작은 게 있고 굵은 게 있을까?

굵은 게 좋고, 작은 게 나쁘다면 무슨 인연을 지어 굵어졌고, 무슨 인연을 지어서 작아졌을까? 이런 생각 하는 것은 굵은 게 좋다는 가치를 네가 가지니까 그런 생각을 할 거 아니야. 그런데 돌에 대해서는 굵은 좋다는 생각을 안 하니까, 저것은 무슨 인연으로 굵어졌고, 저것은 무슨 인연으로 작아졌다.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하잖아.

 

나무도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고, 양지 식물이 있고 음지 식물이 있는데, 음지 식물 중에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늘 그늘에서 살아야 될까? 그런 생각을 안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게 양지가 좋고, 음지가 나쁘다이런 생각을 안 하니까 그렇잖아. 자기가 지금 개보고 부잣집에 사는 개는 좋아 보이고, 길거리에 있는 개는 나쁘게 보이니까 그러잖아.

 

나는 개가 길거리에서 사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데.

 

개가 부잣집에서 그게 뭐가 좋으노? 개에다가 때때옷을 입히는 게 좋으나? 개에게 짓지 못하도록 목을 끊어놓고, 수컷은 새끼 못 낳게 해놓고, 그게 좋으나? 꽁지도 더럽다고 잘라버리고. 네 보기는 좋은지 몰라도, 내가 볼 때는 제일 불쌍한 거야. 안락사,

 

죽는 게 뭐 그렇게 불쌍 하노?

이 세상은 다 나면 죽어야 되는데.

 

죽는 게 뭐 그렇게 문제야? 그게. 이런 의문자체가 좋고 나쁘다는 것을 따지니까 그런 거야. 그러면 그게 부처님 일생 공부할 때 그 얘기가 부처님이 성도직전에 마왕의 3가지 유혹이라는 게 나오잖아. 안 배웠어? 배웠지.

 

여자 셋이 와서 젊은 날에 뭐 하노? 우리와 같이 놀아보자.” 이렇게 유혹했잖아.

두 번째 유혹가지고 안되니까 협박 공갈을 했잖아. “죽여 버리겠다.” 마왕의 군대가 공격을 했잖아.

그래도 안 되니까 자재천왕의 자리를 주겠다고 그랬잖아. 자재천궁이라는 게 우리가 제일 좋아는 거 아니오. 원하면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 자재. 타화자재. 원하면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거.

 

나는 앞에 것 2개는, 그것도 어렵지마는, 그런데 3번째 것은 나 같으면 받을 거 같아. 그거 되면 통일 될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데 부처님은 그때 뭐라고 그러셨나하면 나는 원하는 게 없다고 그랬어. 원하는 게 없으니까 뜻대로 다되는 유혹이 안 되지. 자재천왕이 수행길에 이런 지적을 하죠.

 

네가 지금 이렇게까지 해서 열반을 구하는 데, 열반이라는 것은 없어. 그런 말이 존재하지, 실제로 열반의 경지라는 것은 없는 거야. 그러니 네가 이 고행을 포기하고, 신에게 공양을 올려서 네가 만약 하면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데, 이러다 숲속에서 죽어버리면 개죽음 아니냐? 무슨 소용이냐 이거야. 네가 지금 열반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은 없는 거야.” 이렇게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렇게 말하지. “너는 과거에 한 번의 공덕을 지어서 그 과보로 자재천왕이 되었다. 그러니까 너로서는 열반 생각도 못한다. 엄두도 못 내지만은. 나는 과거생에 한량없는 공덕을 지었기에 해탈이 가능하다.” 이렇게 말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자재천왕이 부처님을 비웃었어. “내가 지금 엄청난 수명과 복덕을 가진 자재천왕 아니야. 내가 과거생에 공덕을 쌓아서 이 정도 높은 지위를 얻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잖아. 결과가 이 정도 되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지금 길거리에 앉아서 거지로 행세하고, 지금 곧 죽기 직전에 있는데, 네가 과거생에 한량없는 공덕을 쌓았다는 것을 뭐로 증명하느냐? 그게 더 좋다는 게. 네가 더 공덕 많이 쌓았다는 것은 뭐로 증명이 되노? 나는 증명이 되지만 너는 뭐로 증명할래?”

 

스님이 지어낸 이야기 아니야. 경전 읽어봐. 그래서 부처님이 딱 명상하시다가 오른손을 들어서 정수리를 이렇게 한번 쓰다듬고 오른쪽 무릎을 쓰다듬고, 손을 밑으로 쥐는 거요. 이게 성도 상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러면서 지신이여, 과거생에 내가 지은 공덕을 증명하소서.” 이러니까 지신이 땅에서 일어나서 쭉~ 과거생에 공덕을 얘기를 하니까, 마왕이 듣고 부끄러워서 도망갔다. 이렇게 되어있단 말이야. 얘기가.

 

그러면 그것은 무슨 얘기야? 그래서 나무 밑에서 수하, 항마. 마왕을 항복 받고 상이라. 수항마상이라. 항복받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그리고 앞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야. 여자 셋이 이 세상에서 자재천왕의 세 딸이니까, 그냥 처녀하고 비교도 안 될 아름다움이란 말이야. 그러면서 이 아름다운 봄날, 우리하고 한번 놀아보자 이거야. 이렇게 하다 죽어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어.

 

채색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한 것들아.” 이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럼 채색된 항아리가 상징하는 것은 쾌락을 말하고, 똥만 가득하다. 이 말은 고, 괴로움을 말하는 거야. 앞에 것은 즐거움이고 뒤에 것은 괴로움이고. 그러니까 채색된 항아리, , 즐거움 속에 뭐가 들어있다? 괴로움이 들어있다. 즐거움이 곧 뭐다? 괴로움이다. 이것을 직시했단 말이오. 그게 다른 게 아니고. 우리는 즐거움은 좋고 괴로움은 나쁘다는 데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다.

 

또 뭐라고 했냐하면, 손가락으로 탁~ 이렇게 견주어버리니까 터치를 해버리니까, 그 아름다운 3여인이 노파로 변해서 부끄러워 도망갔다. 이렇게 되어있단 말이야. 그럼 그것은 여자를 비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 젊고 아름다운 여인은 즐거움을 상징하고, 늙은 노파는 뭘 상징한다? 괴로움은 상징한다. 부처님은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꿰뚫어 봤다. 그러니까 그것을 달리 본 게 아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집착이 없었다. 이런 얘기 아니야. 그러니까 그 유혹에 넘어갈 이유가 없잖아.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봐야 그게 유혹이 되는데, 그게 곧 괴로움이라면 그게 어떻게 유혹이 되겠어? 너도 음식을 차려놓고, 예쁘게 해놓고, “여기 쥐약 들었다하면 먹겠어?

 

그러니까 네가 생각한 것은 이것은 좋은 거다. 부잣집에 있는 개는 좋다고 생각하고, 길거리에 있는 개는 나쁘다고 생각하니까 왜 저건 저렇게 태어나고 이것은 이렇게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부잣집 개가 길거리 개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안 할 거 아니야. 그러면 너는 또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럼 왜 저 불쌍한 개는 부잣집 개가 되었나? 그것은 개를 갖다가 그렇게 그 사람들이 미쳐서 그 짓을 하니까 그런 개가 된 거고, 길거리에 있는 개는 길거리에서 사니까 그렇게 된 거고,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면 집고양이가 되는 거고, 들에서 크면 들고양이가 되는 거지 뭐.

 

그러니까 인도 윤회사상이 있는 인도에서 부처님 일생을 기록을 했으니까, 그렇게 기록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 기록을 한 사람이 그런 식으로 기록을 했다, 이 말이오. 부처님이 나뭇가지를 잡고 강으로 거슬러 올라왔는데, 지금부터 2천 년 전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기록을 했나하면, 나사나나무신이 가지를 늘어뜨려서 부처님을 건져 올렸다. 이렇게 기록을 해 놨다. 이 말이야. 그러면 그 기록을 무시하고 내가 가지를 잡고 왔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데, 기록이 이렇게 되어있으니까 설명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래.

 

그래서 기록이 지금 그렇게 되어있는 거요. 경전이. 지금 우리가 기록한 게 아니라, 2천 년 전에 인도사람들이. 인도사람은 다 뭘 믿는 사람이다? 윤회를 믿는 사람들이 기록을 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기록은 그렇게 되어있는 거요. 부처님 같이 위대한 사람이 그 사람들 사고는 어떻게 이생에서 출가해서 6년 만에 성도할 수 있나? 이거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과거의 한량없는 생을 뭐해야? 공덕을 쌓아서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왜냐하면 부처님보다 안 훌륭한 사람도 과거에 엄청나게 많은데. 그래서 인도에 보면 많은 이솝우화 같은 게 많다 이 말이야. 그것을 이용해서 부처님이 옛날에 이랬다. 이랬다 해서 하니까, 일반 주민들이 생각할 때는 부처님을 이해하기 쉽나? 안 쉽나? 쉽지. ? 그거는 다 뭐든지 신이라고 생각하는데, 붓다는 신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것은 부처가 뭔지 개념이 안 잡힌다, 이 말이오. 그래서 뭐 보다도 높다? 신보다 높은 거다. 신이 없다, 신이 필요 없다. 이런 얘기 안하고, 신보다 더 높다 그러면 이해가 되지만, 부처를 따로 설명하면 그 사람들 못 알아 듣잖아.

 

그래서 상카시아에서 그 사람들이 최고로 생각했던 브라만과 인드라가 그 당시 최고신이야. 세력이 제일 큰 신이야. 요즘 말로하면 기독교하고 알라하고 하느님하고 같아. 그래서 인도에 문화로서 속에서 생긴 거야.

 

우리의 불교는

원래 부처님 가르침이 있고,

인도는 인도식 불교가 있고,

한국은 한국식 불교가 있고,

중국은 중국식 불교가 있는데,

우리는 인도식 불교를 우리나라에 가져왔으니까

인도식불교에다 한국식 불교가 가미된 거고.

그래서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이런 운동을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