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저의 까다로운 성격 탓에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 못했습니다.
저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보면 그 모습이 보기 불편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살아왔는데요.
친구 엄마와 맞지 않아도 제가 가깝게 지내고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를 해야 하는데요.
제가 원치 않는 그런 행동을 보게 되면 참 보기 불편하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그 친구의 엄마와도 편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요.//
자기의 질문에 약간의 모순이 있어요.
자기 성질대로 하고 싶은 거 하고
또 아이를 위해서 뭔가 내 성질을 좀 죽여야 하겠다, 이런 2가지 요구가 같이 들어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번뇌가 생기는 거예요.
어떤 일이든 내 성질대로 하면
나는 속이 시원한데 손실이 따릅니다.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남의 비난을 받거나 또 인간관계가 나빠지는 그런 손실이 생긴다, 이런 얘기에요.
아침에 출근하기 싫다고 안해버리면
직장에서 잘린다든지 손실이 생긴다.
그다음에 그걸 참고 차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거예요.
즉 괴로움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2가지 관계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이랬다 저랬다 자꾸 하거든요.
손해가 크면 성질을 죽이고 하고
성질을 죽이다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그냥 성질대로 하게 되고
그러다가 또 손해가 많이 생기면 또 성질을 죽이고
이렇게 늘 왔다갔다 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에요.
자기도 그 범주에서 지금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자기 성질대로 하면 아이에게 손실이 생길 것 같고
그렇다고 아이를 위해서 참고하려니까 자기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다 가지려니까 자기가 지금 어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면 뭐든지 다하겠다” 이런 관점을 확실하게 가지면
나와 성격이 다르거나 문제가 있는 엄마하고 지내는 게 전혀 문제가 안 되죠.
왜?
“아이에게 좋은 일이라면 난 기꺼이 하겠다.” 이렇게 되니까.
그다음에 자기 성질대로 하고 싶으면
그 성질대로 그냥 하면 돼요.
그러면 아이에게 조금 손해되는 걸 감수해야 해요.
그런데 내가 그 학부형을 아이의 친구 엄마를 비난하거나 욕하거나
이것은 아이들의 인간관계가 깨질 위험이 있어요.
그게 아니라 내가 그 엄마하고 친하지 않다고
아이에게 무슨 특별히 손실이 생길 일은 아니에요.
친하면 아이에게 이익이 되고
친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이익도 별로 안 되고 손해도 아니고
둘이 싸우게 되면 아이에게 손실이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그 엄마하고 친해서
우리 아이에게 좋은 친구를 주기 위해서는
내가 애 엄마하고 친해야 하겠다 이러면
자기 성질이나 기호나 취미나 이런 거를 너무 내세우면 안 되죠.
항상 어떤 일도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그 여자분이, 그 어머니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아이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그 여성을 탓할 것은 없다, 이거에요.
우리 아이를 위해서 .
자다가 애가 울면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이런 거 다 힘들잖아요.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하잖아요.
그것처럼 그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가 기꺼이 하겠다 하면
이건 더 이상 질문거리가 안 돼요.
자기는 지금 아이를 위하는 거 보다
자기 성질을 더 중요시 하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거예요.
성질대로 확 해버리면 되는데, 또 그걸 하려니까 애가 걸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질문은 욕심이에요.
성질대로 해도 애한테 손해가 안되는 법이 없겠느냐?
이런 궁리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선택하면 돼요.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지금 내가 성격이 어떠니 혼자 있기를 좋아하느니 뭐가 어떠니
이런 얘기 하면 안 돼요.
내가 처녀 때 밤에 일어나서 애 기저귀 갈고 했어요? 안 했잖아요.
아이가 생기니까 아이를 위해서 내가 그렇게 하잖아요.
그거보다 나하고 성격 좀 다른 사람 만나는 게 뭐 힘들어요?
밤 12시에 만나는 것도 아니고, 자다가 만나는 것도 아니고
낮에 잠깐 만나는 건데.
아이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저는 잘 모르니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하는 엄마가 되어야 하고
또 그게 뭐 아이한테 특별한 손실이 안 된다면
그렇게 스트레스받아가면서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아이에게 해만 안 되게 하면 된다.
아이에게 이익이 되게 하려면 자기 성질을 조금 바꾸어야 하고
성질대로 살려면 아이에게 손해가 안되는 범위 안에서는 성질대로 살겠다.
연락 오면 받고, 꼭 만나야 할 일이 있으면 만나고
가능하면 만나지 않는 것.
“내 일이 있어서 못 만납니다. 죄송합니다.”
이러는 게 갑자기 아이한테 손해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우리가 친구 사귀는데 꼭 가정의 부모가 친해야 친구 사귀는 거 아니잖아요.
그거하고 관계없이도 얼마든지 친구 사귀니까.
그러나 양쪽 집안에서 원수가 되면 친구 지간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최악의 경우는 아니죠.
내가 좀 엄마 사이에 더 친해지면 아이한테 조금 좋을 거고
그렇게 안 친해도 아이하고 나빠질 거는 없다.
이렇게 관점을 갖고 자기가 선택하면 되지 않겠나, 싶네요.
...
별일 아닌 거를 너무 별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엄마가 아닐 때는 자기가 손실을 감수하면 되잖아, 그죠?
그런데 이것은 내 성질대로 하게 되면 손실을 내가 받는 게 아니라 누가 받는다?
아이가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엄마로서는 내 손실이라면 내가 기꺼이 손실을 감수하겠는데
아이의 손실이라면 엄마가 막아 주는 게 좋다.
그런 관점을 확실히 가지면 자기가 그분이 좀 나하고 성격이 안 맞고, 취미가 안 맞는다.
이거 별로 중요 안 해요.
직장 다니는 거, 다니고 싶어 다녀요?
다 내 생활에 자녀 키우는데 도움이 되니까 힘들어도 참고 어려워도 다니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고민인 것은
엄마 사이에 그렇게 절친 안해도
애들이 친구 사귀는데 크게 지장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원수가 될 필요는 없지만 꼭 절친이 될 이유는 없어요.
애 친구인데 엄마가 꼭 절친이 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자기가 어떤 거를 선택하면 된다.
살펴서
“아이를 위해서는 저 엄마하고 같이 좀 절친이 되는 게 좋겠다”하면 자기 성격을 좀 바꾸고
그런데 그 성격적 차이가 너무 힘들면
“살펴보니까 애한테 큰 손해는 안 되겠다” 그러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생활하면 된다.
자기가 몇 번 해 보고 선택하면 될 일이에요.
큰 문제 아니다 싶네요.
...
그건 그렇지 않아요.
아이가 친구를 좋아하는 것은 내 맘에 안 들어도
그건 내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 맞지 않는다.
엄마들은 지식대로 하려고 그러거든요.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 아이가 그 아이를 좋아하면 저희끼리 친구가 되는 거지.
친구가 되는데 부모 허락을 받아야 해요?
지나친 간섭이다.
그런데 아이가 그 친구하고 친구가 된다고
내가 또 그 부모까지 억지로 친해질 이유도 없다, 이 말이에요.
아이의 일에 간섭도 하지 말고
“하지 마라, 놀지 마라”는 간섭도 하지말고
아이가 그 친구하고 친하다고 그 부모와 억지로 친해질 필요도 없다.
그 둘 다 아이에게 너무 매여있는 거예요, 자기가.
...
아니, 애 키우는 엄마는 자기가 좋아야 해요.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사람들이
“애 키우는 거 힘 안들어요?”
“뭐가 힘들어요. 먹는 밥에 숟가락 얻으면 되고
세탁기 돌릴 때 옷집어 넣으면 되고
그래도 애가 있으니 재롱도 떨고 재미있잖아요, 커가는 것도 보고”
늘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지
부모는 인상 쓰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 애를 위해서 하면
다 불효가 됩니다.
나중에 다 불효하게 됩니다.
나중에 후회하게 돼요.
자식한테 배신감 느끼고.
애가 나중에 어떻게 하든, 기대할 것도 없어요.
왜?
난 너 키운다고 재미 다 봤다. 네가 알아서 살아라.
엄마한테는 신경 안 써도 된다.
이래야 전화 한통하는 것도 고맙게 생각하고 이러거든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고생할 필요가 없다.
밥하기 힘들면 식은밥 먹자, 이렇게 해도 되고
빨래하기 싫으면 이틀 늦어도 되고
방 청소 안해 줘도 돼요.
대신에 짜증내고 신경질내고 야단치고 이렇게 안하는 게 훨씬 더 아이 건강에 좋다.
이런 관점을 갖고
애 키우는 것도 너무 힘들지만 재미있다.
스님 아까 농사 짓는거 삽질하려면 힘들어요? 안 힘들어요?
힘들어.
소똥 붙어서 안 떨어져요, 얼마나 힘드는데, 땀이 뻑뻑 나는데.
힘들지만 운동 삼아.
등산을 가도 그렇게 하잖아요.
“운동삼아 하자” 이런 마음을 내는 게 필요하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813. 경제력에 대한 열등감과 결혼 (0) | 2022.06.01 |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방법 (0) | 2022.05.31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811. 남편이 춤바람이 났습니다 (0) | 2022.05.26 |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한반도의 영세중립국화, 과연 필요한가? (0) | 2022.05.25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상처를 주는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제 손해인가요? (0) | 2022.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