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으면 제가 상처받고 그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져서
점점 그런 부류들을 정리를 하고 있는데요.
제 마음의 상처는 뒤로 하고 비도덕적이고
박쥐 같은 성향도 맞추며 사는 게 제게 이득일까요?//
질문자는 스님 얘기를 좀 잘못 들은 것 같아요.ㅎㅎ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와서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하니까
부처님이
“동쪽으로 가라” 그랬어요.
조금있다 또 어떤 사람이 와서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하니까
자기가 속으로
“동쪽이지, 나 다 알아” 이러는데
부처님이
“서쪽으로 가거라” 이랬어요.
“어? 아까는 동쪽이라 그래놓고 이번에는 서쪽이라 그러지?
아니 말도 안 돼.”
이러다가
“서울 가는 길이 한 길만 있는 게 아니라 2개가 있구나.”
또 어떤 사람이 와서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하니까
부처님이 대답하기 전에
“동쪽 서쪽? 요번엔 어느쪽일까? 이번엔 동쪽일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부처님이
“북쪽으로 가거라” 하니까 이번에도 안 맞았어.
“아니 도대체 부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나?”
이렇게 더 분별심이 생긴다 이 말이오.
그런데 첫 번째 물은 사람은 인천사람이 물었고
두 번째 물은 사람은 강릉사람이 물었다.
세 번째 물은 사람은 수원사람이 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질문자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서
그것이 인천 사람일 때는 동쪽이 되고
수원사람일 때는 북쪽이 된다.
그러면 아무렇게나 가도 되냐?
아니다.
인천사람에게
“아무렇게나 가도 된다” 이런 말이 안 되잖아요.
“동쪽으로 가라” 그래야지.
그렇다고 “서울 가는 길은 동쪽이다” 이렇게 정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자기는 인천사람이 물은 것을 가지고
“동쪽으로 가라 그래놓고, 왜 저에게는 이럽니까?” 이렇게 하면 안 돼.
그 분은 자기 싫은 사람을 잘라내고
아, 싫은 사람 잘라내고 편안하면 스님이 그런 얘기 안하죠.
싫은 사람하고 헤어지고 나니까 자기가 자꾸 인간관계가 고립되고 손해보는 것 같다고 하니까
스님이 거기에 따라서 대화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만나면 이 세상에서 10명 중에 1명 밖에 못 만나는데
좋고 싫고를 안 따지면 10명 중에 10명을 다 만날 수 있다.
어떤 게 나한테 이익이냐?
이런 관점이에요.
그래서 그 분에게
손해를 보려면, 성질대로 하고 손해를 보든지
성질을 내려놓고 이익을 보든지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이런 얘기거든요.
자기는 박쥐 같은 인간, 뭐 같은 인간, 이런 인간 안 만나는 게 좋다면
안 만나도 돼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만나야 한다, 이렇게 정한 법은 없어.
안 만나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근데 자기가 그거 안 만나는 게 또 자기한테 새로운 고민이다.
그러면 또 대화를 해봐야 하는 거예요.
그게 욕심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한테 이익이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소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내가 이익이 되기 때문에 만나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어때요?
별로 이익이 안 될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그 사람이 떠날 위험이 높다,
이런 얘기에요.
내가 약간 손해난다 그래서 안 만나려는 사람은
그 사람이 계속 접근을 해요.
그럼 좀 얄밉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관계가 풍부하려면 뭘 해야 한다?
이익을 줘야 해요, 이익을.
지금 여러분과의 관계도
여러분들이 법륜스님이 좋다 하는 건 뭐예요?
여러분들이 나한테 지금 해준 게 하나도 없잖아.
그런데 여러분들은 법문을 듣고 약간 덕을 보니까 좋아하는 거 아니오.
이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덕을 보면 주위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고
내가 덕을 보려면 갈수록 관계가 좁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먼 미래까지 보면
어떤 게 더 이익이겠느냐? 이걸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나 이 사람이 도저히 손해가 나도 이 인간은 싫다” 하면
내 감정에 따라서 하니까
그게 더 이익이다 손해다 그러지 말고
“손해가 나도 난 이거 싫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가 정리하고,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까 뭐, 결혼해서 살든 그건 관심이 없는 거요.
그런데 이 분이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
“헤어지려니까 애한테 아빠를 뺏는 것 같고, 남자가 불쌍하다” 이런 말 했잖아, 그죠?
이 사람은 자기 말 속에서 후회할 가능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후회를 안하려면
지금 조금 더 신중하게 기다려보는게 필요하다, 이런 얘기이지
“이 사람하고 헤어지면 저는 속이 시원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면 네가 알아서 해라, 네가 좋다는 데 누가 말리겠어”
제가 이렇게 얘기하죠.
벌써 이 분은 그 속에 후회를 딱 잉태하고 있는 거요, 잉태하고 있는 거요.
한국에 귀국해서 얼마 안 되어서 남편이 죽었다든지, 병이 났다 하면
크게 후회하고
평생 가슴에 못을 박고 살아야 할 일을 지금 짓는 거예요.
그거를 결혼할 때 섣불리 결혼해서 지금 어려움에 처하듯이
헤어질 때도 섣불리 결정해서 앞으로 더 큰 괴로움을 지금 행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제가 조금 신중해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결혼 윤리 도덕을 갖고 얘기 하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이걸 무유정법(無有定法)이다.
진리라는 것은 어떤 특정하게 정해져 있는 길이 아니다.
인연을 따라서 정해진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서.
그러니까 어떤 식물에게 거름에 주면 좋다, 오줌을 주면 거름이 된다.
그런데 큰 식물에는 오줌을 주면 거름이 되는데
갓 싹이 튼 것은 오줌을 주면 죽어버린다.
그러니까 그 상태에 따라 다르다.
그것이 거름이 안 되고, 독이 된다. 이런 얘기에요.
아주 어린아이에게 따뜻하게 돌보는 것은 사랑이 되고
아이에게 큰~~ 미래의 복이 되지만
사춘기 넘어가는 아이에게 너무 애정을 갖고 보살피면
아이의 자립심을 해쳐버리기 때문에 그건 큰 해독이 된다.
겨울에 방에 장작을 때 주는 것은 방을 따뜻하게 하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만
겨울에 땠다고 여름에도 때버리면
나는 수고해서 불을 때지만
방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큰 고통이 된다.
이렇게 해서 항상 일정한 게 아니다.
자기 경우에
“자기는 헤어지는 게 좋다.
그런 인간 안 만나는 게 좋다” 하면
안 만나도 아무 문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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