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합의하고
용돈을 안 주고 있습니다.
오늘 또 용돈이 좀 부족하니
한 20만 원만 지원해 주면 어떻겠냐 카톡이 왔어요.//
네, 그건 엿장수 마음대로라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죠.
뭐 그런 거야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되고
주면 자기가 우려한 대로 그런 버릇이 될 소지가 있고
안 주게 되면
마음이 서로 섭섭해서 관계가 멀어질 염려가 있죠.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이해득실을 잔머리를 굴리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거다.
주면 그런 습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줘야 된다.
그런 부작용이 나타날 때 늘 각오하고 줘야 되고
안 주게 될 때는
그거는 부작용은 없지만 대신에 관계가 섭섭해지는
그래서 아이가 만약에 무슨 잘못됐다면
자기가 후회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얘기예요.
만약에 자기 용돈을 좀 구하려고 애가 무리하게 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다든지, 다쳤다든지
좀 안 좋은 곳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든지
이런 일이 생기면
자기가 “그때 내가 줄 걸 그때 안 줘서 애가 이래 됐구나”
이러고 후회하게 될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안 주는 걸로 했으면
애가 죽었다 해도
뭐 죽은 건 죽은 거고
그 원칙대로 하는 건 하는 거고
관점이 이렇게 딱 잡혀야 번뇌가 없지.
그러니까 지금 잔꾀를 내기 때문에
번뇌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런 걸 누구한테 묻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줬는데 그걸 계기로 해 버릇이 생길지
안 줬는데 그걸 계기로 해서 원수가 될지
아니면 그걸 계기로 해서 아이에게 어떤 불행의 시초가 될지.
그 불행의 시초가 되는 것은
아주 잠깐의 어떤 계기로 해서
큰 사건이 생기는 게 허다하지 않습니까?
작은 불씨가 큰 집을 태우는 것처럼.
그런데 그 누구도 예측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결정을 하고
과보를 받으라 그러잖아요.
그걸 결정을 했으면
그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기꺼이 내가 받아들여야 된다.
자기처럼 그렇게 망설이면
신체검사를 하러 갔는데 건강검진 갔는데 스님처럼
검사했다가 눈에 흑점이 생기면 어떡하나?
뭐 이렇게 되고
또 백신 맞으니까
무슨 부작용이 나서 저렇게 난리거나 죽는 사람 있잖아요.
그건 아무도 백신 못 맞죠
그러니까 제가 제일 처음에 백신을 맞으러 여기 지방병원에 갔는데
이 경상도가 좀 의사들이 무뚝뚝하잖아요.
내 앞에 있는 분, 어떤 젊은 여성의 아마 부모님인가 봐요.
노인을 모셔와서 우리가 접수하고 열 재고 처음에 그때는 엄격했잖아요.
의사한테 가서 특별한 몸에 증상이 없는지를 말하고
그다음 백신을 맞잖아요.
그런데 그 의사가 이렇게 말합디다.
“아이고 아버님이 아침에 약간 감기기가 있는데 맞아야 됩니까?
이러면 안 맞아야 됩니까?” 이렇게 의사한테 그 보호자 딸이 물었어요.
그러니까 의사가 퉁명스럽게 하는 말이
“몰라요. 아무도
이거 우리 다 처음 겪는 일이에요. 의사도 몰라요.
맞든지 안 맞든지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하세요.” 이러더라고.
내가 뒤에 줄 서서 듣는데 너무 황당한 거예요.
근데 말은 맞는 얘기예요, 그게.
이 결과를 지금 우리가 처음 당한 일이기 때문에
그냥 “이럴 거다” 하고 짐작하는 거지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백신 음모론이 있잖아요.
첫째 효과가 전혀 없다.
이거는 국제적으로 음모다, 이런 음모도 있고
두 번째는 인도 같은 데서 백신 안 맞아도 멀쩡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크게 효과가 없는 거다 하는
이것 때문에 돈만 수천억 달러를 벌었죠.
이런 음모론이 있고
세 번째는 이 백신의 단백질 RNA를 통해서 했기 때문에
몸에 부작용이 굉장히 많다.
신경계에 특히 부작용이 굉장히 많다.
지금 안 알려져서 그러지, 이게 굉장히 많다.
지금도 계속 우리 몸에서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렇게 또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백신을 그래도 우리가 많이 맞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중환자가 없어지고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쪽으로 왔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것도 정확하게 어떤 게 맞다고
딱 지금 결론이 난 게 없습니다.
그런데 수행이란 건 뭐냐?
인생이라는 게 이렇다는 거예요.
그런 속에 두려움 없이 자기가 행하고 맞았으면
죽어도 받아들여야 되고
겁나면 안 맞고 버텨야 되고
그래서 또 걸려서 죽으면
또 죽음도 받아들여야 되고
그것이 인생이다.
수없는 이런 불확실성 속에
“사는 게 별거 아니다”는 관점을 딱 갖게 되면
그냥 편안한 거예요.
이래 돼도 저래 돼도.
근데 여러분들은
털 끌만 한 걸 갖고 이해관계를 계속 조율하니까
요럴까 저럴까? 요럴까 저럴까? 요럴까 저럴까?
하루에도 12번 더 이렇게 바뀌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그거는 자기가
이번에는 주는 쪽으로 정했다, 안 주는 쪽으로 정했다
주기도 하고 안 주기도 해보면서
반응을 조율하든지
안 주는 원칙으로
죽어도 좋다고 딱 정해서 가든지
죽든지 자립하든지
자립 못하고 남한테 기대가 살 바에야
그거는 자연의 원리가 죽는 게 낫다.
이렇게 딱 원칙을 정해 살든지
그건 자기가 딱 원칙을 정하고
또는 어떤 행위를 하고 책임을 지는, 이런 자세로 가야 된다.
안 그러면 늘 인생은 끌려다니게 된다는 거예요.
내가 출가를 했는데
엄마가 울고불고 막 난리를 피웠어.
그래도 도를 닦는다고 갔는데 얼마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러면 이제 엄청나게 후회할 거 아니겠어요?
이거는 바람직한 게 아니다.
내가 출가한 거 하고 어머니 돌아가신 거는
그건 내가 죽인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장례 치러드리고 잘 가시라고 하고
내 갈 길을 가는 자세가 수행이다.
이런 얘기에요.
세속적 관점에서 “너무 냉정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는 수행에서는
그런 잣대로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왕위도 버려버리는데
세속적 잣대를 가지고 자꾸
가족 관계도 떠나고, 왕위도 버리고,
큰 나라의 왕이 되라고 주는데도
“내 나라도 버렸는데 왜 내가 남의 나라를 취하겠느냐?
어떤 사람이 자기 입에 가래를 뱉고
남이 뱉은 가래가 더 크다고 먹는 사람이 있느냐?”
이런 정도로 단호한 길을 간 분의
좋다고, 그걸 좋다고, 그분이 훌륭하다고 뒤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그런 거를
“그 좋은 걸 왜 버리냐?”고 이렇게 얘기하면서
“그건 놔주지?” 이렇게 하면서 따라다닌다면
그건 뭐 불교를 안 믿는 게 낫다 이 얘기예요.
쉽게 얘기하면.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수행을
자꾸 세속적 잣대로 보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거는 맞지가 않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그건 아무 큰일이 아니에요.
자기가 “나는 18살, 성인이 될 때까지 내 책임이고
나머지는 네 알아서 해라” 했으면
죽든지 살든지 거기에 내가 마음이 여여해야 되는 거고
내가 여유가 있고
원칙적으로 자립하면 좋지만은
자립하는 과정에서 몇 년 더 도와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냥 도와주면 되죠.
그래서 나중에 부작용이 생기면
“꼭 이렇게 도와주는 게 좋은 거 아니구나” 하고 반성을 하면 되지.
그게 뭐 큰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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