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5)

[법륜스님의 하루]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속 분노를 느낍니다. (2025.03.01.)

Buddhastudy 2025. 3. 5. 20:29

 

 

저는 어떤 일을 할 때의 원동력이

두려움이나 분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이 임박하면 나쁜 점수를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부하고

인사 평가나 계약을 앞두고

두려움을 동력 삼아 전력을 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대통령의 탄핵 찬반 상황에서도

정치 성향이 다른 쪽에 대한 분노가 집회에 나가게 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두려움과 분노를 동력 삼아 행동하면

일이 끝난 후 소진되어 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상황이 여유롭고 편안하면

오히려 방일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노 없이 실천하고 행동하라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강력한 원동력이 되는 부정적인 감정이 없다면

과연 어떤 힘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분노나 두려움이 아닌 것을 원동력 삼아

지속적으로 행동할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어떤 힘을 원동력으로 삼아 활동하면 좋을까요?//

 

 

수행자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이는 연민과 사랑을 바탕으로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연기(緣起)를 보면

무인도에 고립되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아무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원망과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쉬운 상황이지요.

그런데 관세음보살님은 이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처럼 도움을 청하며 부르짖고 있지만,

아무 응답도 없고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픔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누군가가 오늘 나처럼 고통 속에서 구원을 요청할 때

나는 반드시 응답하리라.

누가, 어디서, 어떤 때에 나를 불러도

나는 그것을 다 보고, 다 듣고, 다 구제하리라.’

 

이처럼 관세음보살님에게 원동력이 된 감정은

()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상황을 보면서

많은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를 동력으로 삼아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행동을 합니다.

반면, 탄핵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된 원인을 야당에서 찾으면서

야당이 의회에서 계속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합니다.

여당은 야당에 대해 분노하며

재판받고 있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각자의 분노가 서로 충돌하고 있고,

상대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물론 분노는 우리가 행동하는 데 강한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순간적으로 큰 힘을 모아주지만

지속하기가 어렵고, 때에 따라 폭력적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분노에 기대어 복수에 성공하고 한()을 풀게 되더라도

그 에너지는 수명이 짧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분노가 사그라지면서

동력도 자연스럽게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복수에 실패하면 행동을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스스로 지쳐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쉽게 포기하게 되고

그로 인한 깊은 패배감을 느끼게 됩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해서

무작정 나쁘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참 불쌍하다.

어떻게 저렇게 어리석어서 스스로를 해치고

주변까지 해치는 행동을 할까?

저 사람을 깨우쳐서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해야

죄를 덜 짓지 않을까?

그래야 그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덜 망가지도록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분노하기보다는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탄핵 인용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있지만

대통령 본인은 여전히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잖아요.

 

이 상태에서 탄핵이 인용되는 결정이 나면

대통령과 여당이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며

탄핵 인용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일 겁니다.

그러면 또다시 많은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그러니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국론 분열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 그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임 후에는 누구든지

법 앞에 평등하므로 형사재판을 받으면 됩니다.

 

나중에 특별사면 대상이 될 때도

대통령 스스로 사임했다는 점이 참작되어

국민의 저항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입니다.

어차피 물러나게 된다면

국가와 본인에게 피해를 덜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혹시 탄핵이 기각될 수도 있다는 요행을 바랐다가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스스로 물러나

국가와 국민의 혼란을 줄이고

본인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겁니다.

모두가 덜 혼란스러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반드시 분노가 일어나야

행동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접근하면,

분노 없이도 지속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훨씬 쉬워집니다.

 

자비심은

부처님이 강조하셨던 보살의 첫 번째 원력입니다.

대비(大悲)

보살의 10가지 원() 중에서도 첫 번째에 나오는 겁니다.

단순한 사랑의 감정을 뛰어넘은 비심(悲心)을 말하는 겁니다.

상대를 불쌍히 여기고 그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

이것이 보살이 가져야 할 원()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삼일절을 맞아 3·1 독립선언서를 다시 살펴보면

독립운동의 이유가

단순히 일본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이 자주국이며

조선인이 자주 국민임을 선언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행동하는 이유 역시

반드시 분노일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