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5)

[법륜스님의 하루] 부처님이 자등명이라고 하셨는데, 나의 무엇을 믿으라는 건가요? (2025.01.25.)

Buddhastudy 2025. 1. 31. 19:00

 

 

저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공부하고, 전공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요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 보니까

세상에 별로 믿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저는 부모님을 많이 믿고 의지하며 살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까

부모님의 조언이 틀리기도 하고

오히려 조언대로 하지 않았을 때 더 잘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믿을 게 없다는 사실을 실감해서

그럼 무얼 믿고 살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등명 법등명이 떠오르면서

지금의 제 의문에 맞는 대답 같았습니다.

법등명은 제 나름대로 이해를 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믿어라하는 자등명은

나의 어떤 것을 믿으라는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법등명(法燈明)에서 법이라는 것은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을 말합니다.

사물의 이치나 사람의 마음 작용의 이치

또는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백 퍼센트 객관적인 것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알기 어렵습니다.

마치 미세 입자에서 불확정성의 원리가 성립하는 것처럼

객관 속에 주관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은

비교적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너무 객관성에 기반을 두면 좋은 점도 있지만

경직되어 유연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 중심성이 없어져서

모든 진리가 바깥에 있고

나는 그저 거기에 따라가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 어떠한 선택도 자신이 하는 겁니다.

자등명(自燈明)에서 나에게 의지하라는 말은

내가 내 인생에 대해 주인 된 자세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조언이 틀렸다고 해서

이제부터 아버지를 못 믿겠다면

질문자가 바로 자등명이 안 되는 겁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할지 안 할지를 선택한 것은

질문자 자신입니다.

 

자신이 선택했는데 그 선택이 잘못됐다면

그것은 내 책임이지 아버지의 책임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 자신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책임 전가를 잘하니까 일이 잘못됐을 때

일시적으로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려 들지만,

사실은 모두 나의 책임입니다.

 

그 말을 믿은 것은 내가 믿기로 선택한 겁니다.

그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내가 결정을 한 것이지,

아버지라서 믿었다기보다

아버지의 말이 비교적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질문자가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질문자의 문제라는 겁니다.

 

비록 스승의 말이라고 해도

내 마음에 들면 따르고

안 들면 안 따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스승의 말에 대해 분별심을 내서

옳으니 그르니 따진다면

그건 이미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 사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죠.

 

스승의 말을 따랐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선택을 내가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이 분명한 것이 바로 자등명입니다.

 

가능하면 객관성에 기반을 두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이 두 가지 관점만 분명히 하면

세상사에 비교적 흔들림 없이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