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인간이 어떨 때 행복함을 느끼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사람은 만족하게 됩니다.
만족할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야, 맛있다’ 하며 만족해하고,
술 한잔 먹으면서 ‘야, 기분이다’ 하며 즐거워하잖아요.
돈을 벌면 돈을 벌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합격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 당장 좋은 것을 행복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실제로는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안 이루어지는 게 더 많아요.
그때는 기분이 나빠집니다.
즉,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기분이 좋고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지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렇게 행복과 불행이 늘 되풀이되는데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윤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苦)와 락(樂)이 되풀이 된다는 뜻입니다.
원하는 게 거의 안 이루어져서 불행이 극에 달하면 지옥이라 부르고,
원하는 것이 많이 이루어져서 행복이 극에 달하면 천당이라 부릅니다.
사람들은 지옥에 가기 싫어하고 천당에 가기를 원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이렇게 지옥과 천당을 돌고 돕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해요.
붓다가 말하는 열반(니르바나)이란
바로 이러한 사이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욕구가 일어날 때 욕구를 충족해서 기쁨을 삼으면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괴로움이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부처님께서는 다만 욕구를 욕구로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욕구가 꼭 충족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아, 욕구가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림으로 해서
그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괴로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한테 도움을 받아서 원하는 게 이루어지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속되면 즐거움이 자꾸 반감이 됩니다.
그래서 그 즐거움을 유지하려면
도움받는 양이 계속 커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번에 100만 원을 얻었으면
다음엔 200만 원을 얻어야 같은 수준의 즐거움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꾸 도움을 받아 버릇하면
욕망이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돈이 없을 땐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돈이 많아지면
좋은 기분을 더 누릴 수가 없어서
결국 더 큰 즐거움을 찾다가
성적 쾌락과 마약 중독이라는 종착점에 다다르게 됩니다.
또 내가 누구한테 도움을 자꾸 받으면
그 사람한테 약간 위축됩니다.
여러분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보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 가면 마음이 약간 위축됩니다.
그런데 내가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땐 어떨까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을 땐 약간 뿌듯함이 생깁니다.
이것을 ‘보람’이라 말합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어깨가 펴집니다.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는 기분은 좋지만 약간 위축이 되고,
내가 남을 도와줬을 때는 자존감이 높아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런 정신 작용을
어떻게 더 확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보디사트바’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남을 도움으로 해서 얻어지는 기쁨
즉 보람을 가지고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뭐든지 남에게 ‘도와주세요’ 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보디사트바는 ‘누군가가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뭐든지 도와주겠다’ 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나한테 1만 눌트럼이 생겼을 때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면 당장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그런데 또 다른 길이 있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못 먹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같이 나눠 먹으면 보람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이 둘 중에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짧게 보면 내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돌아보면
배고픈 많은 사람들과 나눠 먹은 것이
훨씬 더 자신한테 오래도록 보람으로 남습니다.
남을 위해서 살면 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내 인생에 더 이롭다는 의미입니다.
복을 누군가가 줘서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을 도울 때 내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욕구 충족에서 얻는 기쁨은 순간적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만족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남에게 베풀어서 얻는 보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도록 만족이 커집니다.
누가 복을 줘서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남을 도와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남을 돕는 삶이 나에게 더 좋은 삶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보디사트바는 중생을 위해서 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런 삶이 보디사트바를 더욱더 행복하게 만드는 길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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