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쯤 입사한 30대 초반 직장인입니다.
직장 생활 초반 2년은 인간관계와 일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이후 2년은 인간관계는 편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퇴사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퇴사를 해도 관심 있는 일이 딱히 없어서 고민 중입니다.
올해 말에는 무조건 퇴사를 할 생각인데
그 이후에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그냥 다니세요.
그 정도 수준이면 그냥 다니는 게 제일 나아요.
이직을 고려할 수 있는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지금 다니는 직장보다 옮기고자 하는 직장이
월급이나 대우가 나을 뿐만 아니라
이직할 수 있는 가능성도 분명하다면 옮겨도 됩니다.
둘째, 직장을 옮기면 월급도 적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 일이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옮겨도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뭘 해야 될지도 분명하지 않고
다른 회사에서 내일 당장이라도 오라고 제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막연히 직장이 싫어서 옮기겠다는 거잖아요.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직장을 옮길 조건이 안 됩니다.
108배 절을 해본 적 있어요?
절을 할 때는 절을 하고 싶을 때도 하고, 하기 싫을 때도 그냥 하잖아요.
그러나 절이 끝나고 나면
중간에 절이 하고 싶었는지 하기 싫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처럼 직장 역시 다니고 싶기도 하고 다니기 싫기도 하다가
어느새 퇴직할 때가 오는 거예요.
누군가 직장을 옮기라고 분명하게 요청하거나
본인이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해도
사실 이직하는 것은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직장을 옮기면 다시 정착하는 데에 또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무엇도 뚜렷한 게 없어요.
그래서 그냥 다니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현재의 직장을 계속 다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뭔가 뚜렷한 이직 조건이 있으면
그때 가서 확실하게 점검하고 직장을 옮기라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직장에 다니기 싫어서 그만두면 백수가 되기 쉽습니다.
퇴사하고 몇 년 지나면 가진 돈을 다 까먹게 돼요.
새로운 직장도 없고,
다니던 직장에 돌아갈 수도 없고,
결국 ‘그냥 다닐 걸’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
뚜렷한 것은 찾는 게 아니라 살다 보면 나타납니다.
안 나타나면 그냥 살면 됩니다.
예를 들면,
스님이 될까 말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출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또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같이 지내다 보면
아이가 생겨서 함께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선택이 불분명할 때는
이렇게 역으로 인생이 선택되어질 가능성도 많습니다.
이것도 선택입니다.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이 될 때도
기도를 하는 동안 저절로 결정이 될 때가 많습니다.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서 가버리든지
나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든지
이런 식으로 저절로 결정이 됩니다.
아니면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겨서 결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꼭 본인이 결정을 해야 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결정이 뚜렷하지 않을 때는
그냥 살아가다 보면 교통정리가 자연스럽게 됩니다.
질문자가 스스로 퇴사를 하지 않더라도
회사가 부도나면 저절로 퇴사를 하게 됩니다.
사표를 안내도 저절로 정리가 됩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이 일이 나에게 딱 맞다’ 하고 선택하는 사람은 열에 한둘도 안 됩니다.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대학 전공하고는 상관없는 직장에 다닙니다.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것도
둘이 좋아서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못해 사는 경우도 많아요.
뚜렷이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저히 못 살 정도는 아니고
약간 불만이기는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냥 사는 거예요.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내 마음대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거울을 보면 머리가 희끗해져 있습니다.
그러면 또 뚜렷한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냥 삽니다.
사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가슴 뛰는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렇게 두근거림이 오래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나이 80살이 되어서도
눈에 번쩍 띄는 일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선택하면 됩니다.
그런데 일부러 눈에 번쩍 띄는 일을 찾으려고 하면
평생 찾아다녀도 못 찾습니다.
그러나 살다가 눈에 번쩍 띄는 뚜렷한 일이 생기면 결단을 하면 되고
그런 게 없으면 그냥 살면 됩니다.
인생이 대단한 것 같지만 별것 아닙니다.
이 사람하고 사나 저 사람하고 사나,
스님이 되나 안 되나,
죽을 때가 되면 다 비슷합니다.
모두 한여름 밤의 꿈입니다.
유명했든 아니든, 돈을 벌었든 못 벌었든,
큰 차이가 없습니다.
숨 넘어가서 죽는 건 다 똑같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이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삶이 피곤한 거예요.
그냥 인생이란
길옆에 핀 작은 풀 한 포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사는 게 편합니다.
...
최선을 다하지 말라니까요!
최선을 다하지 말고 그냥 ‘회사에 가면 밥값만큼만 일하고 오자’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밥값보다 적게 일하면 빚을 지게 되니까
밥값만큼은 일해야 됩니다.
밥값보다 못하면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고요.
반대로 밥값보다 더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대우가 이것밖에 안 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회사에 불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은
딱 밥값만큼만 하는 겁니다.
최선은 무슨 최선이에요?
쫓겨나지 않을 만큼만 설렁설렁하면 됩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하고 싶은 일이 생깁니다.
사람에게 통 관심이 없다가도
살다 보면 누군가를 쫓아다니게 되고, 하고 싶은 일도 생깁니다.
수행이란 그럴 때 오히려 조심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수행입니다.
뜨겁지 않은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인생이 뜨뜻미지근한 것은 아주 좋은 거예요.
오히려 뜨거운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마음이 뜨거우면 사고 칠 위험이 높습니다.
마음이 뜨거운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눈에 뭐가 씌어서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쥐가 매일 쓰레기장을 뒤져서 음식을 찾을 때는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접시에 딱 얹어진 음식을 보았을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번듯한 접시 위에 담긴 음식에 독이 들어 있지
버려진 음식에는 독이 없습니다.
그것처럼 눈에 번쩍 뜨이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누가 이자를 많이 준다고 투자를 하라든가
갑자기 귀인이 나타난다든가
그럴 때 오히려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쥐약을 먹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
설렁설렁 다니라는 게
게으르고 나태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어진 일을 꾸준하게 해 나가면 되지
너무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잘하게 됩니다.
맡은 바 책임을 안 하는 게 문제이지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설렁설렁 꾸준히 하되
적어도 월급 받은 만큼은 일을 해야 됩니다.
부부 간에도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부담이 되어서 결국 지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놀기 삼아 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게으르면 안 됩니다.
최소한의 아내 역할, 남편 역할, 부모 역할은 해야 됩니다.
자식에게도 너무 잘하려고 하면 지칩니다.
밥만 굶지 않게 해 주고, 춥지 않게 옷만 입혀주면 됩니다.
이 정도로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아이에게 너무 잘하려고 하면
부모도 지치고, 아이도 어긋나기 쉽습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인생을 가볍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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