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함께 활동한 동료가 세상을 떠나니 가슴이 아픕니다. (2024.07.10.)

Buddhastudy 2024. 7. 18. 20:00

 

 

함께 활동하던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힘들어하던 저를 따뜻함으로 감싸주었고,

고비 때마다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며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동료입니다.

안녕, 잘 가!’하고 하늘나라로 보내긴 했지만,

가슴이 너무 아프고, 같이 활동했던 모습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힘들 때 함께 해 준 고마움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큽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제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함께 생활하던 가족이나 직장 동료나 친지나 친척이나 친구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

우리들의 마음은 허전해지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게 됩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끼는 애완용 동물이 죽어도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지고 있던 집이 불타버리거나 돈을 잃어버려도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려도

며칠째 그 생각이 나는 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질문자가 한 얘기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꽃이 아무리 예쁘고

내가 그 꽃을 아무리 좋아해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그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거예요.

꽃이 피어 있을 때는 예쁘지만,

꽃잎이 떨어지면 그냥 쓰레기밖에 안 되잖아요.

물론 꽃이 예쁘다고 꺾어서 보관하는 사람도 있고,

잎이 떨어져서 낙엽이 돼도 낙엽을 모아 놓고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쓸어서 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꽃을 쓸어서 버리는 이유는

꽃을 좋아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꽃이 제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꽃이 늘 피어만 있으면

꽃이 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꽃 자체는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어야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좋다고 꽃의 생명성을 부정하면 안 되잖아요.

 

아무리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예뻐해 준 부모라 하더라도

돌아가시게 되면 시신입니다.

늙어서 돌아가셨든, 병으로 돌아가셨든, 사고로 돌아가셨든,

안타깝다고 해서

시신을 계속 방안에 모셔두면

시신이 부패해서 썩는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생기게 됩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한 것만 생각하면

내 부모를, 내 자식을, 내 형제를,

어떻게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울 수 있겠어요?

그러나 어떤 이유로 죽었든 생을 마감하게 되면

우리는 그를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현실이에요.

 

아무리 아끼는 물건이라도 깨지면 버려야 합니다.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버리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서 버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안 아껴서 불에 태우고 안 아껴서 땅에 묻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나쁘게 되기 때문에

돌아가시면 우리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봄이 되면 봄을 받아들이고

여름이 되면 여름을 받아들이고

가을이 되면 가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봄을 좋아한다고 해서

여름이 돼도 가을이 돼도 겨울이 돼도 봄을 그리워한다면,

그는 현실에 깨어있지 못한 거예요.

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는 꿈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부서지면 버려야 하듯이

돌아가시게 되면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해야 합니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면

현실이 바뀌어도 녹화를 해놓은 것처럼

과거의 기억에 계속 사로잡히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우리들의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울고불고 애달파한다고 해서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한테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방 안에 모셔놓는다고 해서

부모님께 좋은 것도 아니고 나에게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땅에 묻는 겁니다.

 

망자의 물건이 보이면

자꾸 집착하게 되기 때문에

옷도 태우고 방안도 정리하는 게 보통입니다.

 

집착이 좀 강하면

돌아가신 분의 물건을 그대로 보존해 놓고

5년이고 10년이고 잊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옛날에는 사랑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집착이라고 표현합니다.

정신과에서는 사로잡힌 상태,

편집증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당장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현실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편안할 수가 있는가하고 반문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내가 슬퍼하는 것이 그분에게 좋은가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슬퍼한다고 그분에게 좋은 것도 아니고

나에게 좋은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분이 만약 영혼이 있어서 나를 바라본다 하더라도

내가 슬퍼하고만 있는 것보다

내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을

그가 더 좋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죽음도 삶과 같이 한 과정으로 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여여하다하고 표현합니다.

지금은 그분이 돌아가신 지 며칠 안 됐으니까

슬픈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집착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집착을 하니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영혼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이것은 다 번뇌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늘 깨어있으면

사람을 잃거나 물건을 잃는다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왕 사는 하루인데,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