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제가 아이에게 집착하는 걸까요?

Buddhastudy 2024. 7. 17. 19:38

 

 

내년 초가 되면

둘째가 세 돌이 지나서 유치원에 갈 것이고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저는 일터로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옆에 있어 주고 싶습니다.

이 마음이 혹시 아이에 대한

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애 키우는 거를 나한테 물을 바에야

뭐 때문에 애를 낳아요?

나는 애도 안 낳고 애도 안 키우는데

나한테 물으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ㅎㅎ

 

3살 때까지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라 그래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

그러니까 만 3살까지,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

정신적으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생물학적인 인간종이, 인류로서의 인간이 된다 이 말이에요.

 

근데 만 3살까지 만약에 낳자마자

늑대우리에서 자랐다.

그러면 이 생물종은 인간종인데 육체적으로

그런데 인류로서 인간은 못 돼요.

그러니까 늑대처럼 행동한다, 이런 얘기예요.

 

그러면 이럴 때 이것을 사람같이 생긴 늑대라고 할 것이냐?

늑대같이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냐? 이 말이에요.

 

사람같이 생긴 늑대다할 때는

늑대라는 얘기죠.

생기기를 사람같이 생겼다는 얘기고

 

그다음에 늑대 흉내를 내는 사람이다하면

늑대짓을 하지만 사람은 사람이다, 이 얘기죠.

 

후자는 생물학적인 얘기고

전자는 인류적인, 인류로서 인간에 대한 얘기입니다.

즉 정신적 인간을 말하는 거다.

 

오늘날 우리가 인류라든지 인간이라든지 할 때는

육체만 갖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즉 인류의 정신 작용, 인류의 역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런 앱이

마치 컴퓨터로 치면 인류라고 하는 앱이 깔려야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서 같이 지내도

인간으로서의 앱이 깔리게 되겠죠.

그러나 이제 주로 내 자식이다할 때는

생물학적으로 나의 DNA를 물려받았다 하는 거지만은

또 정신적으로도 나를 닮아야

그게 내가 좋든 나쁘든 걸 따지지 말고

그래야 내 자식이다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러니까 만약에 할머니가 키웠다 그러면

생물학적으로는 내 자식이지만은

정신적으로는 할머니 자식이다.

즉 그 아이의 정신적인 부모는, 엄마는, 할머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고,

유모가 키운다면

정신적으로는 유모가 엄마 역할 한다

무의식세계에서 본인의 엄마 역할을 유모가 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이제 생물학적인 엄마와 정신적인 엄마가

통일이 되는 게 좋습니다.

그게 달라지면

이름은 엄마라고 부르지만은

정신적으로는 엄마 역할이 안 된다든지

이름은 할머니라고 부르지만

정신적으로 엄마와 같이 느낀다든지

이럴 때 오히려 정신적으로 약간 불안정성,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것 때문에 가능하면

3살 때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고요.

 

3살 때까지는 아이가 자기표현을 잘 못하니까

누가 키울 때

어떻게 어떤 상처를 입을지

우리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누가 키워도 다 위험이 있지만은

자기가 키우는 게 제일 낫지 않느냐?

 

그런데 엄마가 정신적 질환이 있다

이러면 다른 사람이 키우는 것보다 못합니다.

그럴 때는 아이를 사랑한다면

비록 내가 낳았다 하더라도

키우는 엄마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포기해야 된다, 이런 얘기에요.

 

요즘은 포기하는 게

주로 경제적으로 키우기 어려울 때 포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나 고양이가 다 새끼를 낳아 키울 때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책임을 다하는 어떤 것이니까.

 

그러나 정신적으로 엄마 역할을 못하거나

이럴 때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키우는 게 더 낫다.

그게 사랑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3살 때까지는

반드시, 꼭 키워라 이런 얘기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여러 이유로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조건일 때는

딴 사람한테 맡겨서 키운다가 아니라

부모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된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거는 그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내 자식은 내가 책임지지만은

다른 자식, 다른 사람의 아이라 하더라도

키울 부모가 없다면 내가 키워야 된다

이게 사람의 도리다.

그럴 때는 누가 낳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키우면 뭐다?

내 자식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러면 4살 때부터는 어떠냐?

부모가 필요 없다, 이게 아니에요.

필요한데

자아가 형성된 뒤에는 누가 가르치는 단계예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누군가가 대신 돌봐도 어느 정도 괜찮다.

부모가 돌보는 것보다 못할 수는 있어도

그래도 잘 돌보는 사람이 돌보면 괜찮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직장에 나가도

나가는 게 낫다가 아니라 나갈 수도 있다.

먹고 살아야 되는 게 급박하다 하면

나갈 수도 있다, 이런 얘기에요.

 

3년을 하셨다니까

유치원에 보내면 이제 오전 시간이 남지 않습니까? 그죠?

그 시간에 집에서

요즘은 재택근무가 많잖아요.

재택근무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그다음에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에

다닐 수 있는 파트타임을 구하는 방법도 하나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그렇게 하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함께 있어주는 게 좋지 않으냐?

또 도저히 그럴 형편이 못 된다면

방과 후 학교 같은 데 맡기고

조금 늦게 와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괜찮다.

차선은 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뭐 직장도 안 가지고

애만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돌보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좋지.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거는

그럴 형편이 안 되니까 질문을 하는 거 아니겠어요?

 

경제적인 문제를 너무 생각하지 말고

10, 20, 30년을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서, 나중에 지불할 걸 생각하면

아이들과 함께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는 게

훨씬 더 저는 알찬 시간이다.

보람있는 시간이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시간에, 그 몇 년 동안에 돈을 얼마나 벌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첫째는 형편이 된다면

그냥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애들을 돌보면 좋다.

조금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려야 된다 하면

아이가 유치원 가 있을 때는

재택근무를 하든, 직장에 몇 시간 파트타임을 나가든 하는 것도 괜찮다.

조금 더 차차선은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다닐 수도 있다

이런 정도의 관점을 가지고 선택해 가면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우리가 어떤 사람을 상대할 때

누구를 기준으로 할 거냐?

아내를 기준으로 해서 얘기할 거냐

남편을 기준으로 해서 얘기할 거냐

아이를 기준으로 해서 얘기할 거냐

이런 문제죠.

 

성인이라면

양쪽 다 고려해서 얘기해야 된다.

그러나 아이일 때는

아이를 중심으로 해서 얘기를 해야 된다.

그래야 되지 않을까.

 

아이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돈을 얼마나 버느냐

엄마가 어떤 높은 직책이 있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를 얼마나 따뜻하게 돌봐주느냐

이게 아이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거는

여러분들의 자녀를 키우는

직장 다니면서 자녀를 키우는 고충을 몰라서

이런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건 여러분의 고충이고

아이 입장에서는 이유 불문하고

자기 부모가 키워주는 것을, 사랑으로 키워주는 것을

가장 원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아이의 관점에서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