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감성이 많고 여린 부분이 있어서
잘 웃고 때론 기분이 좋았다가 기분이 나빴다가
감정 기복이 잣습니다.
항상 마음을 여여하게 평온하게 유지하고 싶은데
불교에서 할 수 있는 수행의 방법과 일반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어.
여러분들은 자꾸 도깨비 방망이를 원해요. 그냥.
“돈 버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출세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마음이 편안한 방법 좀 알려주세요.” 이런 식이에요. 무슨 방법으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자, 여기 달군 쇳덩어리요. 벌겋게 달군 거요. 이걸 쥐고
“앗 뜨고, 앗 뜨거” 이래.
“놔라.” 뜨겁다니까 놓으라는 거 아니오. 놓으면 좋다는 게 아니라 ‘놔라.’ 이런 말은 본인이 뭐라고 하니까 놓으라고 그런다? ‘뜨겁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놔라. 이러니까
“어떻게 놓는데요.” 이래.
어떻게 놓으면 될까? 방법을 몰라서 못 놓을까? 놓기 싫어서 안 놓을까? 방법을 몰라서 못 놓을까? 놓기 싫어서 안 놓을까?
놓기 싫어서 안 놓는 것을 자꾸 방법을 찾는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놓는데요?” 하면 스님이 할 말이 없다. 이 말이오. 그러면 하는 말이
“그냥 놔라.” 이러지.
“아니, 그냥 어떻게요? 너무 막연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생각으로 모든 걸 다 하려고 그런다. 실제로는 어떨까? 실제, 실제는. 딱 쥐자마자 어떻게 해요?
“앗 뜨거!” 이래요. 어떻게 놨어요? 그냥 놨지. 이게 무슨 방법이 필요해? 방법을 논하는 거 자체는 놓기가 싫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놓기가 싫으니까 본질을 딱 꿰뚫었다. ‘놓기가 싫다.’ “그럼 쥐고 있어라.” 이거요. 그럼 손을 데는 과보가 생긴다. 그럼 이걸 놓기가 싫으면 손을 데는 과보를 감수해야 돼. 손가락이 손대는 게 싫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 놓기 싫어도 어떻게 해야 된다? 놔라. 이 얘기에요.
“아침에 어떻게 일어나는데요?” 방법 문제가 아니오. 잃어나기 싫은 거요. 일어나기 싫으면 자라 이거요. “지각하잖아요.” 그럼 당연하지. 과보를 받아야지. 지각하지. “야단맞잖아요.” 야단맞지. “짤리잖아요.” 짤리지.
내가 ‘짤리기 싫다’ 그러면 일어나기 싫어도 어떻게 해야 된다? 일어나야 돼.
“어떻게 일어나요?”
“어떻게 일어나기는 그냥 벌떡 일어나면 되지.”
그래서 그 방법이라는 게 상당히 합리적인 것 같지만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왜 불안한가 살펴본다.
왜 불안하지? 자기가 살펴야지.
어떻게 하면 불안을 없애는데요, 이러지 말고,
불안할 때 무슨 원인이 있어 불안할 거 아니오. 왜 불안하냐?
이렇게 살펴보는 거요.
왜 불안하냐? 이렇게. 그걸 연구해야 된단 말이오.
왜 불안한가? 뭣 때문에 불안하지? 자기가 불안하니까, 자기 불안한 것을 내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말해줘요. 자기가 불안한 게 여기서 일어나니까 “왜 불안하지?” “너 왜 불안해? 뭣 때문에 불안해?”
“차가 안 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럼 자기 물어봐야지.
“차가 안 오는데 왜 불안하지?” 이렇게.
남자 친구가 약속 시간에 안 와서.
남자 친구가 안 왔는데 왜 불안하지?
불안하다고 빨리오나? 아니. 그럼 불안해서 뭐하니? 그래도 불안한데 왜 불안하지? 이렇게 살피면 왜 불안하지? 하고 살피다보면 불안이 온데간데없어.
굳이 방법이라면 그거다.
그냥 놔라 하듯이.
불안하다. 왜 불안하지?
화가 난다. 왜 화가 나지?
쟤가 저런 소리 하니까.
걔가 저런 소리하는데 너가 왜 불안하지? 이렇지.
이 자식이라고 말했다. 이 자식이라고 말했는데 왜 내가 화가 나지? 니가 자식이 아니가?
자식 맞다. 그럼 맞는 소리 하는데 왜 화가 나지?
나 자식 아니다. 아니면 아니지 왜 화가 나지?
이렇게 자기한테 물어보는 거요.
그러면 화가 나는 게
‘아무 이유 없이 지가 미쳐서 내구나. 내가 미쳤구나.’ 그럼 안 미쳐야 될 거 아니야. 이렇게 탐구를 해야 된다. 이 말이오.
앞에 사람은 기복이고, 추상적으로 막연히, 젊은이들이 이게 가장 문제요. 삶의 구체성, 그래서 내가 “어떤 상태냐? 구체적으로 말해봐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불안하다 하니까 그건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요.
“왜 불안하지?” 그때 탁 살피는 거요.
“왜 불안하지?” 이렇게.
“불안할 이유가 없네.” 그럼 “오케이.” 이러면 되는 거요.
알아들었어요? 너하고 말 안 된다 이거요? 하하하. 뭔가 약간 힌트를 얻었어요? 네.
여러분들은 수행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은 수행을 하는 게 아니라 수행병에 걸렸어요.
“염불을 해야 됩니까? 무슨 참선을 해야 됩니까? 어느 게 더 좋습니까?”
이것도 일종의 관념 아니면 기복이오.
그러니까 운동이 부족이야. 의사가 보니까 아파서 왔는데 운동부족이야. 그러면
“운동 좀 하세요.” 그러면 가서 운동을 하면 돼.
농구선수한테 물어봤어.
“어떤 운동 하면 좋아요?” 그럼 농구선수가 뭐라고 그럴까? “농구해라.”
축구선수한테 물어보니 “축구해라.”
이웃집 아저씨 맨날 등산가는 아저씨한테 물어보면 뭐라고 한다?
“등산하면 좋다.” 이러니까 이 사람이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한 사람은 농구하라 그러고, 한 사람은 축구하라 그러고, 한 사람은 등산하라고 그러고.”
이런 식이란 말이오.
당연히 선방 스님 있는데 가서 물으면 뭐하라 그럴까? “참선하라” 그럴 거고.
염불하는 사람한테 물으면 뭐라고 그럴까? “염불하라” 그럴 거고,
태국스님한테 물으면 “비파사나 해라.” 이럴 거고. 그게 헷갈리는 게 아니오.
중요한 것은 “운동해라.” 그러면 자기가 그 주어진 환경에 맞는, 내 신체에 맞거나 또 주위에 “축구해라” 그래도 축구장이 없으면 못하잖아. 그죠. 그럼 체조라도 해야 될 거 아니오.
그러니까 축구냐 농구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중에 어느 걸 선택할 거냐? 그건 자기 형편 되는 대로 주어진 조건이 되는 상황에 따라서 선택하면 된다. 어느 게 더 좋고, 어느 게 더 나쁘고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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