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말 많은 사람에 대한 분별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말을 좀 길게 한다거나 대화하다가
아까 말한 건데 또 말하네 뭐 이런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듣기 싫은 마음이 커집니다.//
똑같은 얘기잖아.
이미 불편이 일어나버린 걸 갖고 어떻게 하겠다.
그거는 불평을 바깥으로 내놓을 거냐?
참고 안 내놓을 거냐?
손익을 계산해서
내놓으면 손해가 나겠다. 그래서 참는다.
참으니 스트레스를 너무 받다
에라 모르겠다 내놓자
이런 거는 수행이 아니에요.
이 세상 사람이 늘 하는 거야.
참았다가 터지고, 참았다가 터지고 이렇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말이 많은데
왜 내 마음이 불편하지?”
이렇게 자기를 살펴야 한다, 이거야.
그럼, 뉴스 들어오면 자기 마음이 불편하겠네.
아나운서 자기 혼자 얘기하잖아.
근데 왜 그거는 불편 안 해?
그러니까 말이 많은 거는
내 마음이 불편한 요인이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너 말 적게 해라” 하면 적게 하고
“입 다물어라” 하면 다물고
“해라” 하면 하고
내 시키는 대로 하면 괜찮은데
“이게 내 시키는 대로 안 하니까 문제다.”
지금 이런 독제근성이다 이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한테 사랑하는 말, 좋아하는 말을 해주기를 원할 때는
아무리 많이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이 말이야.
싫어하는 마음
말이 많은 게 핵심이 아니라
싫어하는 마음에 내가 집착되어 있다.
이게 요인이란 말이에요.
상대를 보지 말고 나를 봐야 돼.
“아, 내가 저런 걸 싫어하구나”
싫어하면 길은 여러 가지예요.
회사에 사표 내버리면 돼, 안 보면 돼.
내가 된장찌개를 싫어하면 안 먹으면 되잖아요.
내가 그 사람 싫어하면 안 만나면 돼.
내가 그것을 싫어하면 안 가면 돼.
그건 자유예요.
근데 그 사람을 안 만날 수가 없고
그곳에 안 갈 수가 없다.
그러면 자기가 싫어함이 더 중심이면 안 가는 쪽을 선택하고
손실이나 이익을 막는 게 더 중심이면
싫어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돼.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내 문제예요.
“아, 내가 싫어하고 있구나”
싫어할 수는 있는데 그걸 움켜쥔다, 이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다 싫어할 수가 있어요.
좋아할 수도 있고.
근데 내가 좋아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해.
근데 내가 그걸 움켜 쥐고
“내가 좋아하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안 좋아할 수 있어?” 이거나
“내가 싫어하는데 니가 왜 그만 안 멈춰” 이거나
똑같은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데 상대가 안 좋아한다고
내가 따라다니면
성추행이잖아요.
그거나 이거나 다 똑같은 심리라는 거예요.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 이거하고 관계없이
그냥 자기 할 말 하는 거예요.
듣기 싫으면 나가면 되고
그 자리에 있으면
그냥 “저분은 말이 좀 많구나” 하고 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내가 싫어하면 “나한테 싫음이 일어나구나.” 이렇게.
싫은 거를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내 마음이 여기에 반응이
“싫어하는 반응을 일으키구나” 하고 다만 알아만 차리면
싫어할 뿐이지 스트레스는 안 받아요.
“날씨가 춥구나” 한다고 스트레스 받는 건 아니잖아.
안 추웠으면 좋지만 오늘 추운 거예요.
“날씨가 춥네.”
그럼 옷을 하나 더 껴 입든지, 외출을 하지 말든지
자기가 결정하면 되잖아.
안 그러면 추위에 떨면서 가든지
내 선택이다, 이거야.
자리를 뜨든지
그 자리에서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듣든지
그건 자기 선택이지
그 사람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예요.
자기가 그런 사람을 갖고 지금 시비하는 거 보면
자기는 자기 좋고 싫고를 너무 움켜쥐고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자기 감정을 너무 움켜쥐고 살면 누가 힘들까?
자기가 힘들지.
이 사람도 싫고, 저것도 싫고
이러면 자유가 그만큼 없어지죠.
꽃도 그냥 다 노라면 노랗고, 파란 파랗고, 크면 크고 작으면 작고
그렇게 생겼구나 하면
아무 꽃이라도 있어도 괜찮은데
난 노란 건 싫어, 흰 건 싫어, 작은 건 싫어, 뭐 싫어.
이러면 자기가 좋아하는 거 갖다 놓으면 되는데
그러면 구입하는 데 돈이 들고, 구하기가 어렵고 이러겠죠.
그만큼 일이 많아지는 거예요.
사람들 골려 만나려면 그만큼 만나기가 어렵잖아요.
직장 다니는데 상사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이 말이 많든, 말이 적든
내버려 둬야지.
오늘 아침에 외출 나갔는데
내가 소풍 가려고 그랬든, 내가 뭐 놀러 가려고 그랬든
내가 뭐 하려고 그랬던 거, 날씨가 어떻게 알아요?
자기 비 올 때 오고, 안 올 때 안 오지.
우산 쓰고 가든지, 비옷 입고 가든지, 안 가든지
내가 결정할 일이다, 이거야.
비 오는 날씨를 욕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 문제의 핵심은
내 문제인데 자꾸 상대편 문제라고 보고 있다.
내가 뭐 잘못했다는 거 아니에요.
“나는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는 걸 자기가 자각하면
그래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할 거냐?
자기가 결정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부처님이 ‘남 탓하지 마라’는 거예요.
‘남 탓하지 마라’는 건 내가 다 잘못했다,
이 얘기가 아니에요.
그 조건에서 내가 어떻게 할 건지 내가 선택하고
내가 내 길을 가면 된다, 이 얘기야.
그래서 시비하지 마라, 따지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따지고 싶으면 따져도 돼요.
부처님이 ‘따지지 마라’ 이렇게 얘기한 거 아니에요.
시비하면서 괴로워하지 마라는 거예요.
그게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가서 말하면 되는 거예요.
불이익을 당하면 불이익을 받으면 되는 거예요.
근데 불이익은 받기 싫어서 말은 안 하고
속으로만
“저러면 안 되는데, 저 나쁜데”
이러니까 자기만 괴롭지.
아무 세상에 도움도 안 되잖아요.
그러니 자기 문제임을 알아라.
내가 좋고 싫고에 너무 사로잡히는구나.
내 감정에 내가 너무 사로잡히는구나.
이걸 자각해야
자기가 앞으로
다른 직장을 가든, 어떤 일을 하든, 결혼을 하든, 뭘 하든
다 내 마음에 드는 일은 없어요.
근데 이렇게 자기 감정에 너무 치중하면
사람 관계가 오래 못 가죠.
선호가 심하고
좋다고 했다가 또 어떤 조그마한 문제만 생기면
또 배신이다 뭐다 하고 또 그만두고
이런 현상이 생긴다.
...
끊어내기는 어떻게 끊어내?
자기가 뭐 어떻게 끊어내
그러니까 “내가 싫어하구나” 이렇게만 알면 돼.
“아, 내가 저런 사람 싫어하구나”
그러니까 저 사람 문제라고 보지 말고 자기 문제라고만 봐.
그렇다고 “내가 잘못했다”가 아니고
그냥 “싫어하구나” “내가 싫어하구나”
이렇게만 해도 많이 좋아질 거야.
끊어내기는 뭐 자기 수준에 벌써 끊어내기는
끊어내려고 하면 안 끊어내지니까
또 자기를 또 미워하게 돼.
그 사람 미워했다가
이번엔 또 내가 안 된다고
“내가 문제야” 이렇게.
남을 미워하거나 나를 미워하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나를 괴롭히는 건
다 어리석은 중생이에요.
남도 미워 안 해야 되지만은
나도 미워하지 않아야 된다.
남도 존중해야 되지만은
나도 존중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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