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의 주인으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제 스스로 이것을 알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삶의 면역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스님, 제가 정신 차리고 살 수 있도록 저를 많이 혼내 주세요.//
어디 가서 그런 거 배웠어요?
책을 많이 읽어서 배웠어요? 어디 유튜브 보고 배웠어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느니 다르느니’
뭐 이런 거 어디가 배웠어요?
...
과거를 후회한다면서 왜 과거를 자꾸 생각해요?
과거에 내가 잘못했거나 후회가 되면
과거를 잊어버려야지.
과거를 자꾸 생각하는 거는
과거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
지나간 게 어떻게 없어져요? 지나간 게.
이번에 홍수 피해에서
“오성역에 사건이 안 났으면 좋겠다.
산사태가 안 났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하면 뭐 해요?
이미 지나가 버렸는데
이미 일어나 버렸는데
그건 하늘이 두 쪽 나도 되돌릴 수가 없어요.
이미 일어나버렸다 이 말이에요.
일어나 버렸으면
일어나 버린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그걸 안 받아들이면
자기는 꿈속에 사는 사람이에요.
그냥 혼자 앉아서 내내 생각 속에 산다.
/꿈이라는 게 생각이거든요.
그 생각 속에 사는 게 꿈속에 사는 거예요.
그건 현실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요./
“안 태어났으면...”
자기 태어났는데 어떻게 안 태어났으면
그런 얘기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역사적으로 그런 말이 있잖아요.
“크레오 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그건 그냥 재미로 한번 해보는 거지
이미 지나가 버린 거예요.
일어나 버린 일인데
그건 주워담을 수가 없어요. 엎질러진 물처럼.
근데 그걸 늘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그건 꿈속을 찾아 헤매는 거예요.
꿈꾸는 거와 같다.
자기는 꿈속에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아, 이게 망상이구나”
이렇게 정신 차려서 지금 해야 되는데
정신 차려서 안 된다, 자꾸 꿈속에 말려 들어간다.
그러면 마치 그 늪에 빠지는 사람처럼
그건 정신질환에 속한다, 이런 얘기예요.
그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다른 법이 있는 게 아니라.
자동차가 고장이 났으면
전문가를 불러와서 수리를 해야지.
자동차가 고장이 났는데
거기다가 주문을 외운다. 거기다가 굿을 한다.
거기다가 하나님한테 빈다.
거기다가 제사를 지낸다고 자동차 가는 건 아니잖아요.
자동차가 고장이 났으면 수리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자기는 지금 정신적으로 지금 고장이 생겼다, 이 얘기예요.
그러면 그걸 치료를 받아서 고쳐야지.
“자동차가 고장이 안 났으면” 이런 얘기하면 뭐 해요
“아침에 내가 차를 안 몰고 나왔으면” 이런 얘기하면 뭐 해요.
이미 고장이 나 있는데
사고가 났으면 사고가 났는데.
고장이 났으면 수리를 해야 되고
사고가 났으면 빨리 보험사 불러가 사고 처리하고
차를 공장에 보내가 수리를 해야 되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이거야.
거기 앉아서
“아침에 왜 차를 몰고 나왔을까?
안 몰고 나왔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얘기는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다, 이 얘기예요.
그건 밤에 꿈꾸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정신을 차려야 되고
그것이 어쨌든
내가 태어난 것도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고
어린 시절에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그것도 지나가 버린 일이고
어릴 때 누구한테 성추행을 당했다, 그것도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에요.
그걸 붙들고 있으면 누구 손해다?
내 손해고 그걸 놓아버리면
나한테 이익이에요.
내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자랐든
부모가 싸우는 집에서 자랐든
뭐 어릴 때 야단을 맞았든
그건 옛날 얘기고
지금 나는 육체적으로 이렇게 건강하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거예요.
...
자기 그런 과거에 상처 입은 것에 트라우마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건 용서를 빌 것도 없어요.
자기가 부족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지금 후회한다는 거는
“나는 잘못하면 안 되는데 내가 잘못을 했다.”
그래서 잘못한 나를
잘난 내가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나는 너무 잘났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용서가 안 돼.
그 말은 자기가 너무 잘난 자기를 지금 움켜쥐고 있다.
이 말이야.
우리는 때로는 화낼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는 부족한 존재다.
나는 특별히 못난 존재도 아니고
특별히 잘난 존재도 아니고
그냥 좀 부족한 존재.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좀 부족한 존재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말을 잘못할 수도 있고
그렇게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런 존재다.
내 존재를
현실에 있는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후회할 일도 없고, 잘난 척할 일도 없다.
이 말이야.
지금 자기가 후회한다는 거는
아직도 잘난 자기를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그래.
자기가 너무 잘났는데
못난 과거의 자기를
자기가 지금 용서를 못 하고 있는 거야.
마치 남을 용서 못하듯이
자기가 자기를 용서 못하는데
내가 나를 용서 못한다 할 때
지금의 나라는 건 뭐냐
용서 못하는 나는 잘난 나고
과거의 나는 못난 나고
그래서 잘난 나가 못난 나를 용서 못한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분리시켜서
잘난 나와 못난 나를 나눠놓고
잘난 나에 집착해서 못난 나를 미워하는, 그런 수준이다.
이건 정신 분열에 들어가는 거예요.
엄격하게 얘기하면.
자기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특별히 못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가 이거를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데
둘을 분리시켜서
하나는 잘난 나라를 만들고, 하나는 못난 나라를 만들어서
이 잘난 나가
못난 나를 도저히 부끄러워서
후회하고, 이런 지금 분열현상이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어디 가서 또 심리학 책을 봤는지,
어디 가서 누구한테 법문을 들었는지
어디 유튜브를 봤는지, 책을 봤는지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한다 해서
내가 뭘 들었나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부족한 존재에요.
저도 그렇고, 자기도 그렇고, 모든 사람이 다 부족해.
부족하지만은
개하고 비교해 보면 그래도 내가 나아.
원숭이하고 비교해 봐도 내가 나아.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것 같지만은
인도에 가난한 사람, 제3세계 아프리카에 가난한 사람에 비교하면
난 굉장히 부자요.
내가 못 배운 것 같지만 그들에 비해서 보면
많이 배웠어.
내가 못 생긴 건 같지만
그들에 비해서 많이 예뻐.
내가 늙은 같지만은
80 노인에 비해서는 아직 한창 젊어.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부족하지만은
그러나 내가 또 못난이도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있는
약간 부족하지마는
그래도 나를, 이 정도 되는 나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된다.
남이 비난하면
“내가 부족하니까 비난받을 만하지”
내가 또 뭐 남한테 화를 냈다.
“죄송합니다” 하면 되잖아.
“내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다.”
부족한 나를 인정하면 된다. 이 말이오.
부족한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빡빡 우기는 거는
잘난 나에 집착해서 그렇고
또 돌아와서는 부끄러워하고
이런 게 다 분열 현상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런 분열적 사고를 하지 말고
과거의 나가 지금의 나와
같았냐 다르냐 이런 거는 철학적인 얘기예요.
그 같은 뭐하고 다른 뭐하겠어?
다르다고 하기에는 같고
같다고 하기에는 달라.
그래서 진리는
같다고 할 수도 없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이걸 한문으로
불일불이라 그래요.
불일불이
그때 일은 하나라는 뜻이 아니고 같다는 뜻이에요.
불일불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뭐하고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얘기야.
이게 [존재의 참모습]이에요.
얼음과 물은
성분으로 보면 같다고 할 수 있고,
모양으로 보면 다르다고 할 수 있잖아.
그래서 이거는 같다고 할 수도 없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같다고 하면 모양이 다르고
다르다고 하면 성분이 같고
H₂O라는 성분은 같다, 이 말이야.
모양은
하나는 고체고 하나는 액체란 말이야.
그러니까 뭘 기준으로 해서 말하느냐에 따라서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르다고 말하는 거지
존재 자체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다고 할 수도 없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냥 이런 존재예요.
어제는 어제의 이런 존재고
오늘은 오늘의 이런 존재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나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다.
나는 부족하지만 아직 젊다.
나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건강하다”
이런 자긍심이 있으면 된다.
자긍심이 있고 싶다고 자긍심이 있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 [자긍심]이다.
...
화해할 거 없어요.
자기는 ‘싸웠다’ 생각하니까 화해를 해야 된다.
자기가 미워하기 때문에 화해할 일이 생긴 거지.
엄마는 원래 또 그 부모로부터
그런 성질을 물려받아서
자기 성질에서 볼 때는 남편도 못마땅하고 화가 나고
그러니까 애들한테 고래고래 괌을 지대고
그러니까 엄마는 물어보면
자기가 뭐 잘못했다 이런 생각도 별로 없어요.
그냥 자기 성질대로 그냥 악을 쓰면서 살은 것 뿐이에요.
근데 어린 내가 볼 때는 그게 상처가 된 거예요.
내가 커서 보니까 엄마나 내나 나도 그랬듯이 엄마도
그 나이에 30대 애들 몇이 데리고 살려면 힘들었겠다.
악을악을 썼겠다.
남편도 마음에 안 들고, 자기 입장에서는.
그런데 엄마가 악을악을 쓰니
어린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엄마에게 상처를 입은 거고
악을악을 쓰니 부부끼리 싸우는데 내가 볼 때는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 같아서
엄마를 미워했을 뿐이지
엄마 입장이 돼보면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자기도 나중에 남편하고 결혼해 살면서
남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성질부렸다 할 때
자기 자녀는
‘엄마가 아빠한테 폭언을 했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려서 내가 몰라서 그랬지, 커서 보니
엄마가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니다.
성질이 조금 별난 사람 수준에 들어간다.
이렇게 이해하면 화해할 게 뭐가 있어요?
화해할 게.
‘화해를 해야 된다’이 생각도 잘못됐다.
내가 어릴 때 입은 상처에 내가 집착하고 있다.
거기에 매달려 있다 보니
엄마에 대해서 내가 잘 다가가지 않는다 이런 거죠.
그런 성질 더러운 엄마하고 이제 성인이 됐으면
죽으면 죽고, 죽으면 장례식이나 한번 가보면 되지.
화해를 해야 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런 생각부터 다 버려야 된다. 이거야.
엄마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내 마음에 있는 거예요.
내가 그리는 엄마를 내가 미워하는 거예요.
엄마의 실상을 알면 미워할 것도 없고,
내가 그리고 있는 내가
잘난 내가 못난 나를 부끄러워하듯이
이렇게 다 생각으로 지은 거다.
그냥 지금 이대로 부족한 나를 인정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엄마도 그런 엄마를 그냥 인정해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다.
화해할 것도 없고, 용서 빌 것도 없고, 용서할 것도 없고
“엄마가 애 키우면서 힘들게 살았구나.
그러다 보니 악을악을 썼구나.
내가 어른이라면 그걸 이해했을 텐데
내가 어려서 몰라서
그냥 ‘왜 엄마가 저럴까’ 해서 미워하고 원망했구나.
내가 어리석었어 어렸어 어리석었어 그랬구나.
어른이 돼서 보니 별일 아니네.”
이렇게 딱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
곧 화해고, 곧 용서고 그런 거다. 이 말이야.
...
“내가 좀 초조하고 불안하구나”
그냥 초조하고 불안하구나
초조하고 불안할 때
“내가 초조하고 불안하네.”
이렇게 그냥 아는 거예요.
사실을 그냥 알 뿐이오.
“난 어릴 때 상처가 좀 있어서 이럴 때 초조하고 불안하구나”
이렇게 그냥 인정하는 거예요. 그것도
초조하고 불안한데
초조하고 불안 안 할 방법을 자꾸 찾으려니까
자기가 지금 조급해지지
초조하고 불안하면
‘초조하고 불안하구나’ 이렇게 그냥 알 뿐이에요.
왜 딴 사람하고 비교해
“다른 사람은 초조하고 불안한데 나는 왜 초조하고 불안할까?”
“딴 사람은 돈 많은데 왜 나는 돈은 없을까?”
“딴 사람은 결혼 잘했는데 왜 나는 결혼을 잘 못했을까?”
이런 얘기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냥 초조하고 불안하면
“내가 지금 초조하고 불안하구나” 이렇게 해야지
이걸 없애겠다든지
뭐 단박에 어떻게 하겠다
이런 게 다 욕심이에요.
자각, 현 상태를 자극하면 돼요.
내가 화가 좀 있구나
내가 짜증이 좀 있구나.
내가 봐도 내가 잔소리를 좀 하는 편이구나.
내가 초조하고 불안하구나
이렇게 그냥 자각하면 된다.
그러면 초조하고 불안이 조금은 개선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
...
그것도 다 생각이에요.
뭐 지금 벌써 기지도 못하는 게 날려고 하는 것처럼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행복하게 살겠다고 행복하게 살아지나?
그냥 부족한 나를 인정하면
후회가 없어지는 거고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어리석은 나를 인정하면
미움이 없어지고
그러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거지.
‘행복하겠다’
‘앞으로 행복하게 노력해야지’ 한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넘어졌으면 넘어졌구나
‘일어나야지’ 할 필요가 없어요.
‘넘어졌구나’ 하면 일어나는 거지
뭐 앉아 있으면 뭐 할 거예요?
일어나야지
그러니까 자꾸 노력한다, 뭘 한다
이렇게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조금 자기는 심리치료를 좀 받는 게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요.
그냥 자각하기
그냥 현실을 인정하기
이것만 해도
상태가 금방 호전이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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