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화합을 해야 한다. 자, 싸우는 사람보고 “둘이 화합해라. 왜 싸우냐? 화합해라.” 이런다고 화합이 됩니까? 안 되죠.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다툼이 있으면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부처님이 보시기에. 어떤 다툼이 있을 때는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는 어떤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제거하게 되면 화합은 저절로 된다. 다툼은 사라지고 화합은 저저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어떤 다툼이 있을 때 가만히 그 원인을 살펴보면 6가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다툼이 생긴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 6가지를 잘 지키면 어떤 공동체도 화합을 이룬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저는 여기에 승가에서 가르친 화합의 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여러분은 제 얘기를 여러분들의 가정, 가정이 가장 작은 공동체죠. 가정에 불화가 왜 생기는지 가정에다 적용을 해보고, 여러분들 직장에 지금 노사 간에 불화든 여러 가지 있을 거 아니오. 거기도 적용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보세요.
/첫째, 같은 계를 같이 지켜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계율을 같이 지켜라. 계율을 다 같이 지켜라 이 말이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높다고 그 규칙을 지키기 않고, 어떤 사람은 낮다고 그 규칙을 지키라 그러고, 그 규칙을 어떤 사람에게는 적용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적용을 안 하고, 어떤 사람은 규칙을 어겼을 때 봐주고, 어떤 사람은 규칙을 어겼는데 엄격하게 징벌을 하고 이러면 내부에 불만이 생긴다.
그래서 같은 계율을 같이 지켜라. 이런 말이오. 이게 요즘 우리 사회적으로 적용한다면 뭐가 될까요? /법치주의/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또 다른 말로 하면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그 법은 대통령에게나 장관에게나 국회의원에게나 공무원에게나 경찰에게나 일반서민에게나 노동자에게나 그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이 되어야 된다.
오늘 우리 사는 사회에서 법이 평등하게 적용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죠. 그러니 세상이 시끄러운 거요. 어떤 말까지 있습니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런 말이 있죠. 돈 있는 사람에게는 늘 제대로 적용이 안 된다. 또 권력이 있는 사람은 늘 제대로 적용이 안 된다. 그러니까 법을 적용할 때마다 늘 무슨 시비가 일어납니까? 정치적 탄압이다. 이런 시비가 일어나죠?
부패했다고 소위 그걸 지적을 해서 관직에서 떨어뜨리거나 뭘 해도 즉, 부정한 방법을 쓴 것을 내가 국회의원 당선되었다고 재판에 의해서 그만두게 해도, 또 여러 가지 불법적인 모금을 했다고 그만두게 해도 본인은 다 뭐라고 그럽니까? “나는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찍혔다. 밉보였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그만이에요. 그러니까 아무도 죄의식이 없는 거요.
저도 이렇게 앉아있지만 옛날에 감옥 생활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있었는데 감옥에 있는 사람은 다 무슨 사람이오? 죄지은 사람 아니오. 그런데 감옥에 나하고 같이 있던 사람들은 다 죄 없는 사람들만 갇혀있었어요. 아무도 죄 있다는 사람이 없었어요.
도둑질하다 잡혀온 사람은 왜왔냐? 재수 없이 걸렸다는 거요. 매일 도둑질해도 괜찮았는데 그날 재수가 없으려니 담장을 딱 뛰어넘어오는데 방범대원이 하필 고 시간에 그곳으로 지나갔다.
또 보통 사람은 뒷돈 좀 봐달라면 봐주는데 악질한테 걸려서 안 봐주더라는 거요. 또 경찰서 갔는데도 그 악질 형사한테 걸려서 결국은 지금 악질 검사한테 걸려서 요번에는 고생 좀 하겠다. 들으면 참 억울합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이렇게 착한 사람이 재수 없이 걸려서 온갖 악질한테 걸려서 이 고생을 하는구나.
또 교통사고 내서 들어온 운전기사는 역시 악질한테 걸려서 그렇다는 거요. 그놈이 그냥 뛰어 들어왔다는 거요. 그런데 책임이 그 사람한테 있는데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나한테 책임을 전가하나. 그리고 또 돈을 얼마 주면 타협이 되어서 구속이 안 되는데, 그 가족이 악질이라서 끝까지 돈을 많이 내라고 물고 늘어져서 그래서 들어왔다.
또 간통죄로 들어온 사람도 그래요. 남자가 나만 그러나? 다 보통인데. 마누라가 요새 머리가 헷가닥 해서 끝까지 악질ㄴㅕㄴ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한다. 그러니까 다 뭐라고 그럽니까? “나가기만 해봐라. 나가기만 해봐라. 그냥 내 가만 안 둔다. 손봐준다.” 그러니까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어요.
왜 이런 일어날까?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누구는 아무렇지도 않는 사람이 있고, 자기 아버지가 지위가 높다고, 자기 아버지가 돈이 있다고, 그 사람이 돈 있다고 백이 있다고 다 이렇게 되니까, 다 사람이 억울해지는 거요. 집에서도 한번 보세요.
여러분들 집에서도. 애기들 8시에 들어오너라. 12시에 들어오너라. 딸에 대해서 아버지가 규칙정해 놓고 늦게 들어오면 야단치고 그러죠. 제가 어떤 지역에 외국에 법회 갔는데 법회 보는 그 집에도 있었던 사건이에요. 그 나라 풍속은 밤에 생일 파티를 하는 거요. 밤에. 10시에 나가서 생일 파티를 하는데, 학교 다니니까 친구들하고 생일파티 10시에 나가는데 아버지 퇴근하고 들어오다 만나서 두드려 맞은 얘기.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러면 이런 것도 아버지가 10시에 들어오고, 애들보고도 10시에 들어와야 된다하면 별 문제가 없죠. 조금 불만이 있더라도 큰 불만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술 먹고 2시에도 오고, 3시에도 들어오고 하면서 딸은 10시에 들어와야 된다. 이렇게 한다든지. 엄마는 밍크코트도 사고 다이아몬드 반지도 사고 뭐도 사고 뭐도 사고 돈을 풍덩풍덩 쓰면서, 내 사달라는 컴퓨터 오락기기 안사주면 어떻게 되요? 불평이 생기겠죠.
그러니까 가정 내에서도 같이 계율이 안 지켜지면 불평불만이 생긴다. 그러니까 불평불만이 생길 때 가만히 보면, 규칙을 같이 안 지키고, 어떤 사람에게만 적용을 하는 거요. 우리 절에도 대중이 여럿 사는데, 그런데서 불평불만이 생길 거요. 자기는 처음 들어왔다고, 자기는 여자라고, 자기는 뭐라고, 이렇게 해서 자기만 이런 거 하라고 그런다.
또 위로 쳐다보니 자기는 스님이라고, 자기는 법사라고, 자기는 먼저 들어왔다고 그런 거 안 지키면서. 이렇게 될 때는 이 생활이 어때요? 찌그럭대겠죠. 꿍해서 불평불만을 가지고 항의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에이그 니나 잘하지." 이러면서 불평불만을 갖는데, 그게 터지는 게 불화죠.
자, 같은 계율을 같이 지킨다. 그러면 여러분들 가정생활에서도 여기 계시는 분들, 돌아봐야 되겠죠. 어머니는 아들딸을 돌아봐야 되고, 아버지도 아들딸들에 대해서, 아버지는 아내에 대해서 돌아봐야 됩니다. 계율을 과연 같이 지키고 있느냐? 어떤 규칙을 우리가 같이 지키고 있느냐? 안 그러면 다른 사람에만 요구하고 있느냐? 이렇게 될 때 불화가 생긴다.
그러니까 법치주의는 서양에서 먼저 생긴 거요? 불교에서 먼저 생긴 거요? 불교에서 먼저 생긴 거요. 계율이라고 하는 법규가 있지 않습니까? 절대 계율에 의거하지 않고는 비난하지 못합니다. 비판하지 못하게 되어있어요. 반드시 계율을 두고 포살을 할 때도 계율에 근거해서 포살을 해야지, 그냥 “너 좀 문제가 있다.” 이런 것은 절대 안 된다. 포살할 때도, 자자할 때도. “어떤 계율에 의거해서 볼 때 당신의 어떠어떠한 행동은 이게 어긋난 거 아닙니까?” 반드시 이렇게 자자를 할 때도 해야 된다. 법치주의가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것은 승가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의견을 서로 맞추어라./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이 서로 다툴 때 가만히 보면 의견을 서로 맞추지 않아서 그렇다. 의견을 서로 맞추어라. 이것을 요즘 말로 하면 뭐가 될까요? 민주주의죠. 민주주의. 민주주의 핵심은 뭡니까?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서로 맞추어 나가는 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그죠? 여기 반대되는 게 뭐요? 독재죠. 독재는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잘 서로 맞추어 나갑니까? 무시합니까? 무시하죠. 의견을 서로 맞추어라.
그러면 사람은 의견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까? 같습니까? 다르다. 의견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려면 의견을 맞추어야 되겠죠. 그러니까 서로 다르니까 맞추는 어떤 일이 필요하지, 같다면 맞추는 일이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그러니까 우리가 회합을 하고 대화를 한다는 것은 의견은 사람마다 서로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서로 맞추는 과정이 뭐다? 대화다. 이 말이오.
나의 의견은 이렇다. 이럴 때 자기의 의견을 내는 것은 좋은데, 자기의 의견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사람은 누구나 다 의견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요. 자기 의견은 대중에게 마음껏 발표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발표할 수 있다. 그러나 뭐는 하지 않아야 된다?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여러분들은 불만이 있더라도 속으로 꾹 참고 살아라. 이게 불법이라고 생각하면, 그래서는 해탈의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은 언제나 내놓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의견을 많이 내놓고, 의견이 서로 다른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본래 그게 진리이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어디서 생기느냐? 각자가 자기 의견만이 옳다고 고집을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그러니까 고집하지 마라.
화합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까 청정성은 무소유라고 그랬죠? 승가는 화합해야 된다 했는데 화합의 가장 핵심은, 근원적으로 말하면 무아집입니다. 무아집. 자기 생각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의견이 없어야 된다. 아무생각도 하지마라. 이게 불법의 가르침이 아니고 불법의 가르침은 의견을 생각을 고집하지 마라 이거야. 여러분들 생각 안하려 해도 생각이 나요? 안 나요? 나죠.
어떤 것을 보면 “저러면 안 되고 이러면 될 건데.” 이런 의견이 저절로 생깁니까? 안 생깁니까? 생깁니다. 그런 것도 하지마라 이게 아니오. 그것을 고집하지 마라. 왜? 사람마다 다 의견이 다르니까. 그러면 서로 다른 의견을 모아놓고 어떻게 태도를 가져야 될까? 이것은 내 의견이다. 이것은 내 의견이다. 이것은 내 의견이다. 이렇게 서로 의견을 자기 의견이라고 꼬리표를 달아놓고 “내게 관철해야 된다.” 이렇게 대화를 하지 말고, 각자 의견을 바구니에 넣어요.
그리고 저것은 내 의견인데 하는 꼬리표를 없애버려. 그러면 거기 의견이 5개가 서로 다른 의견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내 의견이다” 하는 게 없는 상태 하에서 고르면, 금방 어느 게 제일 낫겠다는 것을 쉽게 고를 수가 있다. 이 말이야. 제 말 이해하시겠습니까? 예. 이것이 의견을 맞추어 가는 방법이다. 자, 의견을 어떻게 맞춘다고요? 각자 다 자기 의견을 낸다. 그리고 “어떤 것은 내 의견인데” 하고 그 의견에 대한 집착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여러가지 의견을 놔놓고 어떤 것이 가장 바를까? 정말은 어떨까? 이렇게 생각해서 그 중에서 선택을 한다. 그러면 결과가 어떤 의견이 그중에 하나가 선택될 수도 있고, 거기에 있는 게 다 잘못되고 다른 의견이 새로 나올 수도 있겠죠. 그럴 때 “내 의견이 관철되었다. 안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고, 그 중에 가장 좋은 의견이 선택이 되니까, 내가 처음에 냈던 의견은 버리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의견으로 누구의견으로 삼는다? 나의 의견으로 삼아버려요.
그럼 회의가 끝나면 “내 것은 관찰 안 되었으니까.” 이렇게 불평이 생길까요? 자기 의견이 관철 된 거와 같습니까? 자기 의견이 관철된 거와 같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부부간에도 안 그래요. 남편이 뭘 하자, 부인이 안 됩니다 했어. 그러면 서로 의견이 다르죠.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런데 남편이 “안해야 돼.” 하고 우긴단 말이오. “그러면 아니 안 됩니다.”하고 우긴단 말이오. 그러다가 남편이 그냥 밀고 나가. 그러면 그게 더 이상 싸움이 될 거 같으니까 부인이 “알았습니다.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이렇게 타협을 봤죠.
그래도 부인은 이때 "아, 그것이 좋으니까 그렇게 하십시오."가 아니고, "네가 우기고 세우니까 하려면 한번 해봐라. 그러나 아마 안 될걸?"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의견의 고집을 남편만 세운 게 아니라 부인도 지금 세우고 있어요? 안 세우고 있어요? 세우고 있어. 버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남편이 어떻게 하다가 만약에 잘못되면 부인의 마음에 금방 일어나는 마음이 그 잘못된 것을 가지고 "아이고, 잘못되어서 저걸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 보다는 걱정과 동시에 생긴다? "고 봐라."하는 기쁨이 생겨요. 내말대로 했으면 잘되었을 텐데.
그러니 부처님한테 가서 기도를 할 때 "부처님, 부처님, 우리 남편 하는 사업이 잘되게 해주십시오."할 때, 그 십분이면 십분,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고 때만 잘되라는 생각이 있고, 그것은 껍데기고, 마음 저 깊이 24시간은 "너는 안 되어야 돼." 이 생각이 늘 있어요. 왜? 안되어야 내 말이 맞다는 게 뭐가 되니까? 증명이 되니까.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해도 효험이 없다. 사실은 효험이 있죠. “안 돼야 될 텐데.” 하고 24시간 기도를 했으니까, 안되도록 기도가 이루어진 거죠. 그러니까 기쁨이 있죠. 내 기도가 성취되어서 “봐라. 안 되지.” 하는 그 입에서 쑥 튀어나올 때는 자기 기도가 성취된 거 아니오. 그러니 여러분들이 기도를 어떻게 할 거냐? 수행을 어떻게 할 거냐? 앞으로 가면서 더 지켜봐야 되요.
어떤 거사님이 물어서 내가“ 2~3일 좀 더 기다려 보세요.” 했어. 왜? 뭣 때문에 기도하는지를 내가 물어봐야 되거든요. 안 되록 기도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대부분 다 안 되도록 기도하거든요. 그러니까 기도하는 것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의 밑에 있는 에너지란 말이오.
그런데 에너지는 안 되도록 쓰고 있고, 그냥 입으로 껍데기 생각만 그것도 잠시 "되게 해주세요." 이런단 말이오.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 서로 의견을 맞춘다하면 의견을 냈는데 남편 의견이 “그렇겠다” 싶으면 그 의견이 곧 누구 의견이 되어야 된다? 내 의견이 되어야 된다. “아, 그렇게 합시다.”하고 이렇게 결론이 나면 일이 안되었을 때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고 봐라.”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아이고 내가 그때 생각을 좀 잘못했구나.”
즉, 내가 마치 우기고 세워서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어떻겠어요? 일이 잘못되면 “아이고 내가 고집해서 안 되었다.”해서 좀 참회하는 마음이 들죠. 그렇게 마음이 들어야 되는 거요. 그런데 우리 다 그렇게 안 됩니다. 그렇게 안 되는 이유는 “내 의견이다” 하는 꼬리표를 늘 달고 다니는 거요. 그것을 뭐라고 한다? 아집이라고 한다. 아집이 버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아집이 버린다는 게 말은 쉽지 이렇게 따져보니까 아집이 버리기가 쉽지가 않죠. 그러니까 남편만 고집이 센 게 아니오. 부인도 다 고집이 셉니다. 누가 더 셀까? 부인이 더 셉니다. 왜 더 셀까?
“우리 남편 고집 억수로 세요.” 이래요.
그 말은 그 억수로 센 남편의 고집을
꺾으려고 마음을 쓰고 있으니까 그 고집은 더 센 거요.
그러니까 고집이 더 세니까 부인이 화가 더 많은 거요.
그러니까 겉으로 관찰하면 남편이 고집이 세지만,
실제로는 부인이 고집이 더 센 경우가 있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한테 앞으로 상담을 하거나 수행문을 받을 때, 여러분들이 생각했던 방식과 가르침이 달리 나올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고집이 더 세기 때문에 여러분이 버려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 하냐? “나는 고집이 없고 남편은 고집이 세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왜 내가 잘못했다고 그래야 되느냐?” 이게 이해가 안 된단 말이오. 그래서 이게 조금 공부를 더해야 나중에 개인 상담할 때 말이 길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속고집이다. 보통 그렇게 말하죠. 속고집이다.
남편이 나쁜 행동을 하면 할수록
아내가 착하면 착할수록
누가 고집이 더 세질까?
아내가 더 세질 수밖에 없다.
왜? “너는 인간도 아니야.”
너는 인간도 아니다. 이 말은
너의 의견 중에는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이 얘기란 말이오.
이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단 말이오.
그래서 우리들이 해탈의 길로 가기위해서 치료를 해나갈 때, 지금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의 길로 비슷하게 갈 때도 있지만, 어쩌면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하면 해결되지 않겠느냐하는 것과 실제로 제대로 가려면 아마 99%는 거꾸로 하면 될 거에요. 그만큼 지금 우리는 전도몽상의 상태에 놓여있다.
자, 의견을 맞추어라. 의견 맞추는 방법 알겠습니까? 의견은 본래 서로 다르니까,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나 사람들과 회의를 할 때 의견이 다르게 나오거든 화를 내지 말고, 다르게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게 당연한 거다. 그러니까 각각 의견을 내놓고, “그러면 어떤 의견이 더 좋을까?” 할 때, ‘자기 의견이다.’ 하는 꼬리표를 어떻게 하라? 떼라. 그게 무아집이오.
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골라서 누구 의견으로 삼아라? 자기 의견으로 삼아라. 틀린 의견 갖고 자꾸 그것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뭐 있어요? 제일 좋은 것을 딱 잡아서, 제일 맞는 것을 잡아서 지금부터 이거 내 의견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회의가 딱 끝난 뒤에 그 의견은 누구의 의견이 관철 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견이 된다. 이 말이오. 한마디 안 해도 그게 자기 의견이다. 이런 얘기요.
앞으로 이렇게 가족회의 해보시겠어요? 으흠. 처음에는 잘 안됩니다. 예. 이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렇게 합니까? 안합니까? 안하죠. 고속도로 통행세를 올리려면 차타고 다닌 사람하고 일정하게 공지도하고 여론을 청취해야 되는데, 어느 날 차 몰고 들어가면 올려놨죠. 그러니까 다 불평하잖아. 그죠?
자세히 얘기를 들어보면 올릴만한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견을 안 물으니까 다 불평한단 말이오. 지금 국민 연금문제 있죠. 이것도 정신을 차리고 다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거 다 잘되려고 하는 일이오? 못되려고 하는 일이오? 잘되려고 하는 일이오. 그런데 하나같이 다 불평불만이란 말이오. 왜 그럴까? 의견을 조율을 안 하고 하기 때문에 그래요. 의견을 조율을 안 하고.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자기식대로 밀고 나가면 여러분들이 속으로는 좋은 것 같아도 거부반응이 생깁니까? 안 생깁니까? 생기죠. 그래서 어떤 마음이 드느냐? 안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야 “봐라!” 이 소리를 할 수 있으니까.
자, 그래서 의견을 맞추어라. 민주주의에요. 법치주의. 민주주의 효신은 아테네가 아닙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이해관계를 서로 귀족끼리 조율하는 거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가 없다. 여기야 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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