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이 제안하는 곱게 늙는법 [한겨레談 1-1]
저는 요즘 사람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꼭 단정할 수는 없다. 옛날 사람도 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생명이 갖는 굉장히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해요. 두려움, 그 마저도. 왜 그러냐 하면 생물학적으로 생명작용이 시작되었다. 즉 태어났다는 거는, 그것이 일정한 동안, 유지되는 법칙이 있지 않습니까? 그죠? 물체가 움직일 때도 지속적으로 움직이려는 성질이 있고, 우리가 담배를 피웠을 때도, 한번 습관 들면, 그건 일정하게 움직이려는 성질이 있고, 그것을 거스르면 저항이 따르지 않습니까?
물체에도 반대로 힘을 가해야 되고, 또 담배도 끊으려고 그러면 몸이 아프다든지 저항이 일어나는 것처럼, 생명도 그 자체에 하나의 법칙이 있는데, 그걸 중단시키려면 당연히 저항이 따른 거다. 그런 면에서,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죽이려고 그러면 도망가고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이거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행위양식이다. 그걸 뭐, 안 두려워하고 탁 앉아서 죽는다고, 저는 도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생명의 하나의 현상이다. 그러면 그런 모든 토끼나 이런 짐승들도 살아있을 때 그렇게 하면 두려움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나이가 들어서 죽을 때 그러면 살려고 발버둥을 치느냐? 그건 아니라는 거요.
그냥 하나의 오늘 하루를 살듯이 내일 하루를 살듯이 그들도 하나의 현상으로 그냥 받아들여지는 거거든요. 거기서 인간만은 어떤 살아온 이런 관성, 그리고 그 지나친 집착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안 받아들인다는 거요. 어쩌면 나뭇잎이 떨어져줘야 새순이 나는 거고, 죽어줘야 또 새로운 생명들이 살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이 세상이 지속가능하게 유지되는 데 있어서는 태어남만 중요한 게 아니라 죽음도 있어야 지속가능하거든요. 그런데 태어남은 있는데, 죽음은 없는 것은 법칙적으로도 맞지도 않고, 또 우리에게 유익한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너무 자아가 강하다 그럴까? 욕심이 많다 그럴까? 이런 것들이 단순히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 지위에 대한 지나친 욕심, 명예에 대한 지나친 욕심. 이게 옛날 사람들도 있었지만, 옛날 사람보다 확실히 요즘 사람들이 강한 편이거든요. 이런 것들이 자기 생존에 대해서도 지나친 욕심, 과욕을 부리는 거 아닌가? 그런데서 오히려 두려움이 더 커진다고 볼 수가 있을 거 같아요. 옛날에는 60대가 죽으면 대부분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요즘은 다 80까지 사니까, 60에서 죽는 걸 자연스럽게 안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90대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다른 사람이 다 120살까지 살면 또 90도 자연스럽게 안 받아들여질 거요. 저는 이것은 의식이 문제다.
상대적인 비교라든지 이런데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좀 살아있는 생명을 좀 해치거나, 또 스스로 이렇게 자기를 해치거나 이런 것도 하지 말아야 되지만, 생명을 지나치게 연장시키려고 하는 것도 조금 멈춰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이 세상이 다 아름다워진다는 거죠. 지금 이렇게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면 일시적 좋은 현상이 일어나지만, 이것은 개인에게도 굉장히 삶을 기쁨으로 사는 게 아니고, 굉장히 우울하게 사는, 또 남에게 의지해서 겨우 생명답게 못사는 그런 기간을 너무 많이 거쳐야 되는 것도 있고, 그 다음에 로비라든지 이런 경제적으로도 너무 많은 지출을 해야 되고, 그래서 이게 단지 오래 산다 뿐이지, 삶이 행복하거나 아름답지는 못하다는 거죠.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이게 지금 노인인구가 많아지는 것이 걱정거리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다 살고 싶은데, 사회적으로는 벌써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단 말이오. 늙음과 죽음을 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교육이나 이런 게 좀 필요한 거 같아요. 우선 늙는 것부터, 너무 이렇게 주름살도 들고, 눈도 좀 안보이고, 걸음걸이도 불편하고, 이런 걸 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되는데, 90이 되어도 눈도 초롱초롱하고, 피부도 탱글탱글하고, 자꾸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고통이 더 크죠.
...
제가 말씀드리는 거는 오래 사는 게 문제라는 게 아니고, 억지로 오래 살리는 게 문제라는 거죠. 그러니까 100살이든, 120살이든 자연수명으로 자기가 건강을 조절해서 오래 사는 건 좋은 현상이지 나쁜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외부적인 조치, 산소호흡기든, 심장박동기든, 어떤 다른 조치에 의해서 거의 침대에 뉘어가지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식은 아름다운 삶에 위배되는 거 아니냐. 환자에게도 고통이라는 거죠. 우리가 내 부모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삶을 연장시키는 거에 대해서는 내가 보호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도 우리가 조금 재고해봐야 될 때가 되었다는 거죠.
늙으면 빨리 죽어라. 이런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자연적인 삶으로서 우리가 오래 사는 거는 좋은 일이죠. 그런데 자연스러움을 벗어나서 억지로 명을 유지시키는 게 바람직한가? 이건 우리가 깊이 좀 생각해 보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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