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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지금의 기후위기 40년 전에 막을 수 있었다

Buddhastudy 2024. 8. 29. 19:24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지구 온난화 문제는

사실 1979년 버전의 반복입니다.

오히려 그때가 더 나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때에는 지구온난화 관련한 주요 쟁점들이

논쟁의 단계를 넘어 합의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1989년에 이르러서는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까지 잡았기 때문입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

10년을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거의 모든 흐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년의 기록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1979년 봄, 미국의 엘리트 과학자들로 구성된 비밀스러운 단체,

제이슨 팀이

미 에너지부에 기후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제이슨 팀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

과학적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소집된 단체입니다.

 

-미사일 발사를 감지하거나,

-핵폭발의 낙진 범위를 예측하고,

-고성능 레이저 빔과 같은 신종 무기 개발 등이

제이슨 팀의 소집 목적입니다.

 

미국 정보 부서에서 소집한 단체라는 점

베트남 전쟁 때까지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제이슨 팀은 과학계 버전의 어벤저스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어벤저스 팀이 이번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이런 경고가 담겨 있었습니다.

기상학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급증으로 지구의 평균 온도가 상승할 수 있고

이는 심각한 기상이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이야 이런 이야기가 상식이 되었지만

온실효과라는 단어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너무나 놀라운 얘기였습니다.

 

제이슨 팀의 보고서를 읽은 사람들은

인간이 이 행성을 뜨겁게 만드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후변화는 미국의 국익에 위협이 되는 사안입니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5m가량 상승할 경우

미국 국토의 약 6%가 타격을 입게 됩니다.

기후변화로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면

남북 주들 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증폭되고

이는 폭동과 국경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19795

대통령의 수석 과학자 프랭크 프레스는

제이슨 팀의 경고가 타당한지, 실제로 세계가 재앙을 향해 가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국립과학 아카데미에게 정확한 검토를 요청했습니다.

 

국립과학 아카데미는

곧바로 기상학 분야 최고의 석학들을 소집해

연구팀을 구성했습니다.

 

만약 이 최고의 연구팀이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과학적으로 입증한다면

대통령도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몇 달 동안의 연구 끝에

국립과학 아카데미가 내린 결론은, 다음 한 줄로 요약됩니다.

“2035년쯤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지금의 2배가 되고

지구의 평균 기온은 섭씨 3도 상승할 것이다.”

 

섭씨 3

지구가 마지막으로 섭씨 3도 더 뜨거웠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만 년 전인 플라이오세 시대였습니다.

그때는 남극 대륙에 너도밤나무가 자라고

해수면은 지금보다 약 24m 더 높았습니다.

 

국립과학 아카데미가 내린 결론들은

다른 과학기관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도 사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과학계와 정부단체, 그리고 석유업계 사이에서

지구온난화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미 의회는 처음으로 이산화탄소를 심판대에 올려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석유 재벌들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떠맡아야 하는지 분석하기 바빴습니다.

이제 대중들도 이 사실을 알 때가 되었습니다.

 

 

--19807,

지미 카터 대통령은 특별환경위원회를 꾸려

지구온난화가 사회 경제 및 세계 질서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그 해결책을 찾도록 지시했습니다.

 

환경위원회는 3년에 걸쳐

70여 명의 분야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기후변화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변화하는 기후>로 이름 붙인 이 보고서에는

강력하고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에 온실 효과를 최우선 순위로 놓고

정부가 나서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규제해야 한다

전 세계가 힘을 합쳐 즉각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너무 늦을 것이다.”

 

강도 높은 경고에 언론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이 온난화 경향을 막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화석연료 연소를 멈추기 위해

전 세계 국가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정확히 얼마일까요?

에너지 사용은 경제 성장과 직결됩니다.

쉽게 말해 화석연료를 더 많이 태울수록 삶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이 때문에 에너지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이 무엇이 되었든

갈등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변화하는 기후의 경고는 강력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몇 주가 지나는 동안 언론의 관심이 시들해졌습니다.

미국 석유협회도 이산화탄소 문제 전담반을 해산해 버렸습니다.

 

카터 뒤를 이어 백악관에 입성한 로널드 레이건은

환경위원회의 조언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환경위원회의 해산을 고려하였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이산화탄소 문제는 주요 의제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불꽃이 사그라드는가 싶더니 뜻밖의 반전이 남극에서 나왔습니다.

 

 

--1985, 오존 구멍

벼랑간 오존층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피부암을 일으키고 눈을 멀게 하는 강렬한 빛이

사방에 퍼진다는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모호한 지구 온난화 문제와 달리

오존 구멍은 실제하는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덕분에 오존 구멍을 발견한 지 단 2년 만에

프레온 가스 사용을 제한하는 국제 조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환경 관련 국제조약이 번개처럼 성사된 것입니다.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다시 한 번 기대를 품었습니다.

 

프레온 가스가 해냈다면 온실가스라고 못할 게 있겠습니까?

과연 오존 문제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기후 문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변화하는 기후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처음으로 지구온난화가 언론에 머릿기사를 장식했습니다.

 

여론은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환경 문제에 맹공을 퍼붓던 레이건 행정부조차 입장을 바꿔

기후온난화 정책을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기후 문제는 갑자기 미국의 힘과 리더십을 드러낼 수 있는 사안으로 부상했습니다.

19885월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함께

지구온난화에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했습니다.

줄곧 침묵하던 석유업계도 재생에너지를 재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여름,

지난 어느 해보다 더운 날씨가 찾아오자

온실 효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인 조지 부시는

지구온난화 해결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독일의 의회는 자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까지 30% 줄일 것을 권고했습니다.

-스웨덴 의회는 국가 전략을 발표하고 곧바로 탄소세를 부과했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왕립학회 연설에서 지구온난화의 위협을 경고했습니다.

 

1988년 말에는

마침내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 IPCC가 창설되었습니다.

IPCC는 전 세계 연구자들이 수행한 관측 결과를 검토해서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이를 보고서로 발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습니다.

남은 건 정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국제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면

인류는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잡는 셈입니다.

 

 

--198911,

네덜란드의 노르트베이크에서

지구 온난화와 관련한 첫 정부 간 회담이 열렸습니다.

60개국의 환경 관련 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제조약의 기본 틀을 결정하는 역사적인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1차 목표는 200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동결하는 것입니다.

회담의 열기는 고조되었습니다.

각국의 장관들은 구속력 있는 조약을 승인할 의지를 보였습니다.

 

10년 동안 아무 소득이 없는 국제 모임만 열렸는데

드디어 의미심장한 합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노르트베이크 조약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회담 실패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습니다.

 

당시 미국은 서방 세계에서 기후조약 협상에 반대하는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조지부시는 대통령이 된 뒤에

자신의 선거 공약이었던 지구온난화 해결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누르트베이크 회담에 참석한 부시의 참모 존 수누누는

온실효과가 사악한 음모론이라 믿는 인물이었습니다.

수누누는 회담에서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반대 공작을 펼쳤습니다.

가장 주도적이어야 할 국가가

국제조약체결 반대의 선봉에 서자

회담 분위기는 파장으로 흘렀습니다.

 

노르트베이크 회담이 결렬되자

미국 석유협회는 GCC라는 로비 조직을 설립해

기후변화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로비 활동의 가장 큰 후원자는 미국의 석유재벌 엑슨모빌이었습니다.

GCC는 정치인을 매수하고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기후변화 관련 허위 정보를 유포하였습니다.

 

2000년에서 2016년 사이

기후변화 관련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화석연료 산업에서 쏟아부은 돈은 자그마치 2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GCC 유사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이들의 주장이 끊임없이 기사화되었습니다.

로비 활동에서 나온 주장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와 상관없이 거대한 음모론으로 진화하였습니다.

 

기후변화 음모론자들은

처음에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더니

나중엔 온난화는 인정하되

그 원인이 인간이 아닌 자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에 있다는데

과학적으로 결론이 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왜곡된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이때 생겨난 음모론 때문입니다.

 

정책 결정권자의 책임 회피와 광범위하게 퍼진 음모론

이것이 1989년 이후의 기후 과학을 설명하는 한 단면입니다.

 

 

--1997

노르트베이크 회담이 결렬된 뒤로

기후변화 문제에 다시 시동이 걸린 것은

1997년 교토 의정서가 채택되면서부터입니다.

 

--2015년에는 마침내 195개국이 참여한 파리 협정이 채택되었습니다.

파리 협정은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2018IPCC 인천 송도 총회에서는

그 목표를 1.5도로 수정해서 채택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기후변화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 위기로 불리는 현상들이 지구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상황을 타개할 기막힌 기회가

40년 전에 있었습니다.

세계 주요 강대국들이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한

구속력 있는 협의안을 지지하고 이에 서명하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화석연료 산업도

실현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정치권은 초당적 관심사로 기후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기후과학의 대부로 평가받는 제임스 한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노르트베이크에서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이 성사되었더라면

그래서 당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미국이

2005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까지 감소하는 데 동의했더라면

지구의 온도는 섭씨 1.5도 미만에서 상승을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2022년에 창립한 집현네트워크는

국내 과학자 37명이 참여해

우리 사회에 정확한 과학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기후과학 분야뿐 아니라

감염병, 미생물, 천문, 뇌과학, 인공지능, 식량과 농업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제공합니다.

 

집현네트워크는 2년에 걸친 활동을 정리해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이라는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

기후변화와 감염병 관련 최신 데이터를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했을 뿐 아니라

그 원인과 해결 방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기후변화와 감염병 사례를 빼놓지 않고 설명하기 때문에

우리 상황을 고려한 기후 관련 최신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40여 년 전에 미국의 제이슨 팀이 그러했듯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 문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은 아주 가치 있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보다는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더 고통받을 문제입니다.

이는 개인이 대처하기엔 너무나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지구를 살리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여러 환경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기후위기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무엇인지

그 원인과 현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여론의 힘은 커집니다.

 

건강한 여론이 형성되면

왜곡된 정보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지구를 살리려는 정책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론이 다시 한 번 정치의 동력이 되는 것

바로 이것이 40년 전의 실패에서 되돌아봐야 할 교훈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북툰이었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