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렌즈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확하게 대답해 드릴게요.
진짜 정확하게
앞으로는 절대 헷갈리시지 않으실 거예요.
--지금 이 의문이 존재하게 하기 위해 일어났다.
지금 님의 그 질문이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왜’라는
그 어떤 형태가 되든지
왜 왜 왜 궁극 실제는
왜 하필 왜 왜 왜 여러 가지 왜 있잖아요.
왜 이런 짓을 그러니까?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겁니까?
지금 이 느낌이, 이 심정이, 이 질문이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보통이 아니죠.
왜라는 질문은
스스로가 느끼고 깨우치셔야 된다.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은
궁극 실제의 그 만행이 없었다면
지금 질문하고 있는 이 님 자체는 존재하지 않아요.
이 질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모든 가치가 있어요.
대답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한번 사유해 보세요.
저는 말씀드렸어요.
이제 더 이상 이 질문은 안 받아요.
천하무적이라.
--(선천적인 조건이 모두 다른데 누가 세팅하는가?)
정말 멋있는 질문입니다.
되게 좋은 질문인데 첫 번째 대답은 이거예요.
[내가 인식하는 게 아니에요.]
얘도 뭐예요?
얘 느낄 수 있죠, 여러분.
얘도 뭐예요?
얘도 인식된 대상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 [인식의 대상과 주체가 같아요.]
누가 인식을 해서 무엇을 출력해 냈느냐가 아니라
지금 인식된, 드러난 대상 그것 자체가 동시에 뭐라는 얘기예요?
기획자예요.
결과로 나타난 그것이 뭡니까?
그것을 기획한 자와 같은 것입니다.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 같은 것이에요.
아주 심오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밖에 대답을 할 수 없는 데 대해서
지금은 그래요.
지금은 시간이 몇 분밖에 안 남아서.
정말 중요한 질문이에요.
알려지게 될 겁니다.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근데 어느 정도 감은 오셨나요?
첫 번째, 내가 인식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인식하는 게 아닙니다.
--(채널링의 실체)
기적 수업이라는 것에 대해서요. 죄송합니다.
제가 그 내용 전체를 다 모르기 때문에
제가 알기로는 채널링 서적으로 알고 있거든요.
맞나요?
예수님 나오나요? 혹시 그리스도 나오고
채널링이라는 게 뭐냐면요.
의식의 영역 중에, 심층의식으로 내려가는 그 영역 중에
정묘 영역 의식이라는 게 있어요.
케니버가 그런 용어를 사용을 하면서부터 좀 유명해진 용어인데
그 의식 영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
평소에 안 보이던 것들이 막 보이고, 이상하게 보이고
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아니면 신과 하나가 되고
이러한 여러 가지 변성의식 체험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변성의식 체험이 일어나게 될 때
수많은 채널러들이
상위자 혹은 고차원적으로 조금 더 상위의 존재들
그들로부터 오는 메시지
막 이런 식으로
어떤 그런 영감들, 이런 것들을 받아서 대중들한테 전하기도 하죠.
근데 그 정체는 뭐냐면요.
전체성의 그냥 인드라망의 바다
심층 무의식 안에 존재하고 있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어떤 관념들이죠.
그것들이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를 통해서
그게 채널링이라는 현상으로
어떠한 렌즈를 통해서 드러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관념이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 개념 지어질 수 있는 것 관념이에요.
개념이에요. 전부 다.
아니 이름 붙여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거는
개념 안으로 들어왔다라는 얘기거든요.
그래서 명색을 지니는 거예요.
이름과 색.
그러니까 형태를 지녀요.
명색을 지닐 수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뭡니까?
하나의 개념이죠.
그러면 뭐예요?
인식의 대상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에요.
아무리 삐까뻔쩍한 것이 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또 뭐라고 그랬죠?
석가모니가?
언어도단, 분립 문자
대답이 됐는지 모르겠네여, 그런 겁니다.
--(구도자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은?)
구도자로서 갖춰야 할 가장 큰마음 자세는
저는 그거라고 생각을 해요.
[고통을 사랑하라]
고통, 고통을 사랑하라.
최근에 탐지인치와 진선미에 대한 영상 2개가 올라갔는데요.
똑같아요.
관념 분석 작업을 하고
아까 관념 분석에 대해서 물어보신 분도 계신데
관념 분석 작업을 통해서 무엇으로 나가게 되냐면
허용, 사랑의 작업하고
재규정 작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면은
내 세상을 현실을 창조하든
아니면 어떤 부분 깨달음이나 고차원의 경지를 추구해서 수행을 하던지 간에
삶에서 나타나는 부정성에 해당하는 것들을요
외면하고 배척해서는 아무것도 안 돼요.
심지어는 잠시만요.
깨닫고자 하는 이유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으로 시작을 하더라도
끝까지 그것으로 유지가 되면 안 돼요.
그럼 못 깨달아요.
고통이라는 것을 한쪽을 배척하고 있는 것 자체가 뭐예요?
이분법이에요.
--(고통을 사랑하려면?)
쉽지가 않아요. 쉽지가 않은 이유는 뭡니까?
‘내가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그렇거든요.
중요한 건 뭐냐면 ‘I am That I am’이라는 문장에서
‘That I am’ 그 부분에 해당하는
‘That I am’의 영역에 해당하는 게 지금 객체 존재라고 보면 돼요.
규정되어진 것이에요. 얘네들은.
규정되어졌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를 통해서 다 규정되었죠.
결정되어 버렸죠.
여기 퇴원하시기 전에
부모님하고 뇌고를 해서
내 외모나 그런 거 결정해서 나오신 분 계세요?
내 동의 없이 내가 태어날 때
이미 나한테 알아서 주어지는 것들 그런 것들 있잖아요.
심지어 부모가 누가 될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 될지
이런 모든 것들도 이미 주어지거든요. 이미 주어지죠.
그런데 이 얘기는 뭐냐 하면은
내가 무언가를 결정을 하는 주체로서
애당초 무언가를 결정하는 주체로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규정되어진 자로서 시작을 했다라는 거예요.
이 몸으로서의 나는.
그래서 뭐예요?
‘That I am’이에요 ‘That I am this body’가 되겠죠.
이 자리에서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고통을 사랑하는 게 힘들어요.
어디로 나가라는 얘기예요?
‘That I am’을 규정하는 자가 누구예요?
‘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이 나를 규정하는 자
그게 ‘I am’의 자리예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게 나중에 가면은 모든 영적인 변성의식 체험이
‘앎’ 안으로 흡수가 돼버려요.
흡수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의식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라고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머물지 않음= 깨달음은 특정한 의식상태가 아닌 ‘앎’ 자체)
그것을 거쳐 가시게 될 거예요.
체험하시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거는 180도 돌아가 있는 상황인 거고
360도를 돌아서 원점을 찍게 되면은
그냥 지금 이 순간
앎 자체가 그것(=진리)이 되어버려요.
고통을 상대성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은
고통이 아니에요, 더 이상.
단순히 고통만이 아니에요.
고통이 있기 때문에 뭐가 또 존재할 수 있습니까?
상대성 안에서
즐거움이 존재할 수 있어요.
탐진치가 있기 때문에 진선미가 존재할 수 있는 거예요.
근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거는
규정된 자의 자리에서는 힘들어요.
그래서 뭡니까?
‘I am’의 자리로 나아가자는 겁니다.
시크릿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규정된 자의 자리인
‘That I am’에서 다들 시크릿을 하고 있죠.
그러지 말고 회상하는 시선을 사용을 하려면
어디로 나아가야 된다라는 얘기예요?
‘I am’으로 나아가셔야 된다라는 얘기에요.
--(고통을 없애는 게 가능한가?)
고통이 없는 것을 원하신다면요
간단해요.
즐거움을 없애시면 돼요.
이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의 차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상대성 안에서 존재하는 무엇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의 반대 얼굴을 없애버리는 거예요.
그것의 반대 얼굴.
남성 혐오, 여성 혐오 막 그런 거 있잖아요.
근데 되게 재미있는 게
그렇게 혐오하고 있는
예를 들어서 남성 여성을 세상에서 없애버린다고 쳐요.
그러면 자기 자신도 사라져요. 사라집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고통을 사랑하라’라는 말은 뭐냐면요.
‘고통이라는 것을 허용하라’는 얘기인데
‘삶의 부정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용을 먼저 해야 됩니다’
이 마음 자세가 만들어져야 돼요.
이제 더 이상 배척받지 않게 된
내 삶의 부정성들이, 결핍 이들이, 고통 이들이
모습을 갈아입게 돼요.
자연스럽게.
대답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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