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비이원시크릿] 봉쇄 수도원 이야기 2편 | 수도자들의 삶은 이렇습니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Buddhastudy 2024. 8. 6. 19:23

 

 

실제로 있었어요. 체험하겠다고 와서 3일인가 만에 도망쳤어요.

도망쳤는데

그 담장에 밧줄이 하나 걸려 있더라고요.

그 밧줄을 타고 밤에 도망친 거예요.

 

어쨌든 말이 수도생활이지

봉쇄수도자들의 삶은요

일종의 격리 생활이에요. 감금 생활이에요.

그러니까 뭐예요?

감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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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리스도교

그중에서도 제가 몸담았던 카톨릭에는

다양한 형태의 수도 생활이 존재합니다.

 

크게 구분하면 활동수도회, 그다음에 관상수도회로 나눌 수 있어요.

두 가지로.

 

그럼 여러분 활동수도회는 뭘까요?

말 그대로 세상 안에서 활동하면서

각 수도의 고유의 영성을 실천하는 수도회를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여러분들 성당 가시면 항상 계시는 수녀님들 있죠.

그분들이 바로 성당에서

신부님들의 교구 사목활동을 돕는 영성을 가진

활동수도회 소속인 거예요.

 

그 외에도 특수 사목이라는 형태가 있습니다.

이건 뭐냐면요.

통상적인 어떤 교구성당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에요.

분야가 다양합니다.

교도소, 군대, 학교, 병원, 무료 봉사시설 등등이 있고

또 청소년이나 소외된 노인들 그다음에 여성들을 대상으로

봉사하며 활동하는 수도회들도 많이 있어요.

 

선교를 중점적으로 활동하는 수도회는

선교회라고도 부릅니다.

즉 활동수도회라는 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이제 봉사하며

그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이분들 사는 그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소위 말하는 성소’,

성소라는 게 있어요,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뜻인데

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위해 사는 게 힘들어요.

 

반면에 관상수도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관상수도예는요.

관상생활이라는 것에 중점을 둔 수도회를 말해요.

관상을 목적으로 해서

고독과 침묵 속에서 계속적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바쳐 수도생활을 하는 자들의 공동체를 말하는 거예요.

가르멜회, 글라라회, 그다음에 제가 속해 있었던 시토회 등이 이에 속하는 거죠.

 

시토수도회의 경우에 두 가지 계열이 있어요.

그런데 초기 시토회에서 조금 더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하기 위해

개혁해서 갈라져 나온 수도회가 있습니다.

시토회는 같은 시토회인데 개혁 시토회죠.

여기에 제가 이제 입회했었던 거고

그 이름을 엄률 시토회’, 엄격한 율법의 시토회

통상적으로 트라피스트라고 부르는 수도회입니다.

 

여기서 재밌는 용어가 나왔죠.

바로 관상이란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거 여러분 혼동하지 마세요.

얼굴의 꼴을 보고 성격과 기질

나아가 길흉화복을 점치는 그 관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관상이란

보통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를 말해요.

카톨릭에서 관상이라는 건.

 

수행이 깊어지면

하느님과의 친교가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일치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어요.

 

이런 형태의 기도를 관상기도라고 부르고

여기에는 언어, 개념, 이미지, 매개 수단 등이 불필요해요.

말 그대로 직관의 기도

하나님을 향한 앎의 발현이 되기 때문이죠.

 

관상수도의 경우에

바로 이러한 관상기도를 삶의 중심에 놓고

수도생활을 하는 형태가 되죠.

 

보통 관상수도의 경우에 봉쇄수도 생활의 형태를 취합니다.

그러니까 수도원에 봉쇄 구역이 있어요.

그 봉쇄구역 안에서 평생을 사는 거죠.

수도원 담장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가끔씩 나가죠.

거류증 갱신할 때나, 저 같은 경우에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아니면 병원에 실려갈 때

아니면 공부하러 교육받으러 다닐 때 가끔씩 나가고

수도원에서 못 살겠다 하고 도망쳐서 담장 넘어가는 사람들 빼놓고는

담장 밖으로 나가질 않아요.

 

실제로 있었어요.

체험하겠다고 와서 3일 만에 도망쳤어요. 도망쳤는데

그 담장에 밧줄이 하나 걸려 있더라고요.

그 밧줄을 타고 밤에 도망친 거예요.

 

어쨌든 말이 수도 생활이지

봉쇄수도자들의 삶은 일종의 격리 생활이에요, 감금 생활이에요.

그러니까 뭐예요?

감옥이에요.

 

실제로 봉쇄 수도승들의 독방을 Celda라고 부르는데

어원은 까르셀, 감옥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뭡니까?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은 타의에 의해 갇히는 그런 감옥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가두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섞여 들어가지잖아요.

거리를 유지를 하면서

세상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기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보다 희귀한 관상수도 형태로 은수자가 있어요.

은수, 숨어 산다는 얘기예요.

이분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독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게 영성이에요.

음식도 날라다 줘요. 안 나옵니다.

과거 사막의 은수자들의 수도 형태를 그대로 사는 것이죠.

 

은수자들이 모인 수도회를 은수공동체라고 부르고

대표적으로 카르투시오회, 까말돌리 등의 수도회가 있습니다.

 

봉쇄 안의 관상수도자는 어떻게 살까요?

침묵, 기도, 노동이라는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평생을 짜여진 수도원의 일과표대로 살아가요.

시간표가 있어요.

 

그래서 침묵의 경우

모든 관상수도회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제가 입회했던 엄률 시토회는 침묵을 엄격하게 지키는 곳입니다.

쉽게 말할게요.

평생 묵언수행하는 곳이라고 보시면 돼요.

말 안 해요.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바디랭귀지가 따로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카톨릭의 수도 생활 형태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각각의 수도생활은

모두 저마다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집니다.

 

관상수도가 활동수도 생활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

결코 그렇지 않아요.

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잖아요.

삶의 현장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살아야 하는

활동수도생활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말씀드릴게

봉쇄 수도원에서 관상 생활에만 전념하는 많은 수도승들 중에

사회성이나 공감 능력이

오히려 사회인들보다 떨어지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그저 자신에게 맞는 수도 생활의 형태가 다른 것일 뿐이에요.

관상 수도의 형태냐? 아니면 활동 수도의 형태냐?

 

삶의 형태에 우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수도 생활의 형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열이 없어요.

어떠한 삶이 되더라도

삶은 그 자체로 모든 의미와 가치를 가집니다.

 

사실 알고 보면 진짜 치열한 수도의 장은

오히려 세속 안에서의 삶 안에 있죠.

 

수많은 인간관계 안에서

이리치고 저리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

바로 여러분의 삶이 수도생활입니다.

 

수도자들의 삶과 세속에서의 삶

이 두 가지 삶의 모습이

모두 참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