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막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그리고 그 수사님을 볼 때마다
뚜껑이 열리는 것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저게 무슨 수도자야
어떻게 기도하는 형제를 질투하고 모함할 수가 있지?”
이런 생각의 물결에 몇 달간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
수도 생활 초기에 아주 혹독했어요.
이 혹독했던 수도 생활 초기에
어떻게든 이제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적응 기간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래요.
그 적응 기간을 지나자
제 마음속에서 예전의 열정이 살아나기 시작했어.
예전의 열정
수도원에 처음 들어올 때 들어오기 전에 그 마음
그게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사실 이제 저는요.
10대 때부터 이런저런 영적 탐구나 수련들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하고는
조금 정반대인 일종의 이중생활이었죠.
가장 큰 이유는요
멈추지 않던 어떤 목마름 때문이었습니다.
내적인 갈증이지요.
항상 무언가가 모자랐어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수도원에 입회하게 된 계기도 이 갈증을 끝내기 위해서
삶의 형태를 바꿔보기 위함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이런저런 인연이 닿아서 입회를 하게 된 수도원.
근데 그 생활이 어땠을까요?
사실 수도원에 실제로 입회하기 전에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수도 생활이 마음속에 그려져 있었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하늘 바라보면서 막 기도하고
침묵 속에서 명상하고
세상에 축복을 보내고
인간 존재와 신에 대해서 사유하는 그런 생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환상이었어요.
수도 생활 초기, 저에게 당면했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건강이었습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건강한 몸은 아니었어요, 아니었는데
그곳에 입대한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제 몸에게는 잘 맞지 않는
정말 가혹한 생활환경 때문에 그랬습니다.
체질에 안 맞았던 거죠.
일단 수도원 건물은 100% 돌집이에요.
그것도 거대한 자연석을 가공해서 지어진 집이죠.
여러분들, 돌집의 위력을 아십니까?
보다 정확히는 돌이 내뿜는 냉기의 위력입니다.
말이 집이지
사실은 굴 파고 들어가서 사는 것하고 다를 바가 없어요.
흙집을 짓고 살던 한국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온돌에서 등을 지지면서 지내야 하는 체질인 제가
그 돌집, 어느 정도 돌집이냐?
두꺼운 부분은 두께가 한 2m는 좋게 되는 그런 돌집이었어요.
그런 건물 안에 살기 시작했어요.
말이 건물이지 굴이에요, 굴.
봉쇄 지도자들은요. 독방을 씁니다.
이유는 뭐냐 하면 예전에는 한 공간에서 자고 그랬는데
지금은 독방을 보장해 줘요.
이유는 뭐냐면
자신만의 수행 공간을 가지기 위해서에요.
그런데 제가 배정받은 그 독방은
창문 쪽 벽이
천 년 가까이 된 자연석 그대로였어요.
이게 돌과 돌의 이음새에 구멍이 나 있습니다.
구멍이 나서 바람이 들어오고요.
밖에도 보여요. 이렇게 자세히 보면
빛 들어오고 막 그래요.
그다음에 가끔 작은 도마뱀들이 드나들어요. 그 구멍으로
다른 부분도 자연석 위에 대충 시멘트 발라요.
시멘트에 이렇게 얇게 발라가지고
벽 역할을 하게 하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돌에서 방출되는 냉기예요.
이 냉기가 갈리시아 지방의 가공할 습기와 만나면
말 그대로 무기가 됩니다.
가끔 이 도의 냉기를 어떤 고문 도구처럼 느끼기도 했어요.
고문 도구.
마치 이게 어떤 느낌이냐
차가운 실뱀, 얇은 뱀인데요. 차가워요.
차가운 실뱀 등이
온몸에 이제 뼈마디로 스멀스멀 들어와서 박히는 어떤 느낌이 들어요?
진짜로 느껴요.
골병든다는 얘기 있죠.
내가 골병드는 느낌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몸을 눕힌 침대는
삐걱대는 어떤 그 철제 그 위에
그냥 스펀지 매트리스 하나 얹어놓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잘 때 어떻게 되느냐?
군대에서 쓰는 담요 2장을 줍니다.
그걸 받으면 그걸 몇 번씩 접어서 최대한 두껍게 만들어야 돼요.
두껍게 만들고 두꺼운 옷을 끼어 입은 채로 새우잠을 자야 했어요.
이가 덜덜 떨리는 냉기에
스펀지 매트리스가 선물하는 또 허리 통증이 있습니다.
그건 이제 덤이지요.
물론 제대로 된 난방은 당연히 없습니다.
온돌에서 살던 한국인에게
돌집에서 겪어야 하는 냉기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그때 체험을 했죠.
체질이 다른 거예요.
돌집은요, 돌집에서 살던 사람들의 유전자가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음식, 기후, 문화적 차이, 언어적 문제, 그다음에 또 뭐예요?
인종적인 감수성 등이 모두 달랐어요.
그렇기에 제 몸은 항상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보태서 과도한 육체노동을 해야 했죠.
봉쇄 수도승의 삶은 기도와 침묵
그리고 나머지 한쪽이 노동이에요.
이 노동으로 지탱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저희는 기부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손으로 먹고 사는 자급자족이 원칙이에요.
그래서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노동을 해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막노동을 다 섭렵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뭐가 있을까요?
농사, 기본이죠.
양봉, 목축, 밭일, 들판 일, 돌 나르는 작업, 정원 가꾸기, 목공, 건물 유지보수
거기에 요리까지.
아무튼 상황이 이러다 보니까
수도 생활 초기에 제 목표는
수행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기에 있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뭐예요?
적응의 동물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보다는 살 만해졌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본래의 열정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요 추워서 일찍 성당에 가서 기도할 엄두도 못 냈어요.
특히 새벽 기도 시간에
그런데 잔뜩 껴입고 새벽 기도 시작 30분 전에 성당으로 갑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제 자리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수사님 한 분이 들어오시는 거예요. 바로 뒤에.
저를 힐끗 보세요.
힐끗 보시고는 경건하게 또 무릎 꿇고 고깔을 푹 눌러쓰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근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너무.
오, 하나 배웠어.
그래서 저도 고깔을 푹 눌러쓰고 명상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그 이후로 몇 달간 계속되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의 시작이었던 거예요.
며칠이 지나고
저는 여느 때처럼 새벽 기도 30분 전에 성당으로 갔어요.
그런데 웬일
항상 일찍 와서 기도하시는 수사님이 먼저 와 계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제 마음속에 이상한 경쟁심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했냐고요?
다음 날 저는 40분 전에 성당으로 갔어요.
그리고 그분보다 먼저 도착했어요.
다음 날 그분이 저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이상하게 불편하더라고요.
나보다 먼저 누군가 왔다는 게, 이상하게 불편했습니다.
어떤 느낌이냐면
나보다 누군가가 더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한다는 그 느낌
그게 묘하게 싫었습니다.
그다음 날 어떻게 했을까요?
전 1시간 전에 성당에 갔어요.
다음 날은 그분에게 새벽 기도 스타터의 자리를 또 내어주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거죠.
니가 나보다 조금 더 먼저 와?
내가 다음 날은 조금 더 먼저 와
그다음 날은 또 그 사람이 또 먼저 오고.
엎치락뒤치락.
급기야 저는 새벽 기도 시작
2시간 30분 전에 성당에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많으셨던 그 분은 그렇게까지는 못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명상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원장 신부님이 저를 부르셨어요.
그리고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너 요즘 누구누구누구 형제보다 먼저 성당 가서 기도한다며?”
그러고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금지당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저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새벽같이 그 성당에 가서 기도하는 즐거움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그리고 뭐냐?
거룩하고 성실한 날
그 수사님이 시기 질투해서 일러바쳤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마치 저의 정당한 권리, 기도할 권리를 막 빼앗긴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거죠.
속이 막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그리고 그 수사님을 볼 때마다
뚜껑이 열리는 것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저게 무슨 수도자야?
어떻게 기도하는 형제를 질투하고 모함할 수가 있지?”
이런 생각의 물결에
몇 달간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요. 저는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
여러분 누구보다 먼저 와서
그다음에 누구보다 많이
그 누구보다 열렬하게 기도하는 ‘나’라는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가 아니었어요.
이를 위해서 타인을
내 입맛에 맞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 수사님도 마찬가지였고요.
소중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침범받은 듯한 느낌에
그 수사님도 원장 신부님한테 일러바친 것이죠.
그분 또한 기도하는 수도승의 이미지에 집착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결국 이 둘의 기도 배틀이 시작되었던 겁니다.
기도 배틀
배틀이었어요. 배틀 대결.
그러나 진정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아상, 셀프 이미지예요.
이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욕심 배틀이었죠.
“내가 너보다 기도 많이 해”
“그러니 내가 너보다 더 잘났어”라고
서로 이제 떠들고 있었던 거예요.
이런 기도가 과연
하나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를 그때 생각을 하니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용서할 수 없었던 그분에 대한 분노가
눈 녹듯이 그때 사라졌어.
그래서 원장님을 찾아가서 내가 느낀 것을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원장님께서 알고 계셨대요.
알고 계셨다면서
그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 금지시킨 것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저를 위해서 그런 조치를 내리신 것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뒤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던 그 수사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님이 저를 조용히 찾으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카밀로 형제 정말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내가 어리석었어요.
그러면서 눈에 뭔가가 이렇게 씌웠던 것 같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또한 그분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둘도 없는 형제가 되겠죠.
우리는요. 가끔
눈이 멀어요. 무언가에 씌입니다.
그럼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되죠.
그래서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어떤 마음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지를 보지 못합니다.
단순히 행위만이 아니라
그 행위를 이끌어 낸 생각, 감정, 느낌, 반응, 의도,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간절한 소망에 이르기까지
그 마음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나오고 있고
동시에 또 어떤 진실을 가리고 있는지를 보지 못해요.
아무리 숭고해 보이는 행위나
거룩해 보이는 마음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거룩함과 숭고함이
나의 어떤 부분을 이렇게 싹 가리기 위한 어떤 연막이나
아니면 방어하기 위한 방어기제라면
나의 거룩함은
그저 요란한 빈 깡통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요
저의 수도 생활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어요.
그리고 수도생활과 나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제 수도 생활은 환상에서 깨어나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멋있어 보이지만 멍청했던 이 기도배틀
그러나 결국 철저한 깨어남의 과정으로써
그와 나에게 반드시 필요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 지혜와 깨달음을 품고 있었던
아름다운 순간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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