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비이원시크릿] 봉쇄 수도원 이야기 1편 | 29살 카밀로가 스페인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이유

Buddhastudy 2024. 8. 5. 19:37

 

 

수도원 갈 때 후회하지 않았냐고요?

어땠을 것 같아요?

 

사실, 비행기 이륙하는 그 순간 바로 후회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막 걷잡을 수 없이 막 몰려오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테마가 있습니다.

이게 제 개인사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던 테마인데요.

바로 10년간의 수도원 생활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근데 사실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죠.

봉쇄수도원이라는 곳이 궁금한 거죠.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서 뭐 합니까?

다만 10년에 걸쳐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조금은 특이했기 때문에 궁금해하시는 거죠.

 

먼저 수도원이라는 곳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볼게요.

수도원이 뭐 하는 곳일까요?

말 그대로 수도하는 곳입니다.

 

한자로 풀어보면 닦을 수, 길 도, 집 원을 써요.

그러니까 전문적으로 도 닦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이에요.

전업 수행자들의 모임인 것이죠.

 

대표적으로 한국의 절이 있겠네요.

절에는 스님들이 모여서 도를 닦죠.

이러한 전업 수행자 집단이 카톨릭에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절이라고 부르고

카톨릭에서는 수도원이라고 부를 뿐이죠.

그 차이예요.

명칭도 수도자, 혹은 수사, 수녀 이렇게 부릅니다.

 

영어로는 몽크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결국 승려, 그러니까 수행자를 뜻합니다.

카톨릭의 수도자는 그리스도교식 스님이라고 보시면 돼요.

스님.

 

물론 수행의 목적에서 본질적인 관점의 차이는 있습니다.

스님들의 깨달음을 추구를 하면서 용맹정진하신다면

카톨릭의 지도자들은 신에게 헌신하고

그다음에 종국에는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수도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 되겠어요.

 

동양의 영성과 서양의 종교적 감성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별점이지만

어찌 되었든 결국 속세를 떠나서 수행에 매진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 저는 거기에 도대체 왜 갔을까요?

이제 와 돌아보면 명백합니다.

인연 인제에 흘러서 가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재미가 없죠.

 

제가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계기는

대부분의, 다라고 말씀 안 드려요.

대부분의 출가 수행자들과 마찬가지로 고통 때문이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출가의 계기가 다 그렇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냥 고통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 부분에서 불교를 중심으로 한 동양인 수행종교하고

초월적 존재인 신의 구원을 믿는 서양의 그리스도교 사이에

수도원에 들어가는 계기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가 발생을 하긴 해요.

 

물론 두 경우 모두 출가의 얘기는

고통이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같이 절대적인 신에게 헌신을 해야 구원받는 종교의 경우에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 겪게 되는 고통의 형태 중에

특이한 형태가 있어요.

 

신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강력한 열망의 형태로 고통을 받아요.

이러한 형태의 고통도 존재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수도원에 들어와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신에게 봉헌하고

세상을 위해서 이제 기도하며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죠.

 

이 경우에는 고통이란

속세의 삶 안에서

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으로부터 오는 분리감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신에게 헌신하고자 출가하는 그리스도교 수도자의 경우에는

수도원은 오롯이 하나님하고만 있을 수 있는 이상향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 동양의 수행종교에서는

고통의 끝을 깨달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출발의 가장 큰 이유는 깨닫기 위한 수행 그 자체겠죠.

 

그럼 제 경우에는 무엇이었을까요?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수도자들처럼

신에게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사실 제 경우는 후자에 가까워요.

그때 이제 재밌어요.

주변에 많은 분들이

제가 수도원에 들어가려는 이유가

신에게 이렇게 헌신하기 위한 봉헌이라고 여기셨지만

사실 저는 제 자신이 무엇인지명확히 알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거예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죠.

 

10대 때부터 다양한 영성 수행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어요.

일종의 목마름, 영적인 목마름.

 

아무리 수행을 해도 여전히 삶은 고통스러웠고요.

매 순간 고통에 허덕이는 어떤 나가 있었습니다. .

고통받는 나.

그 나를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 그 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로 삶의 방식을 180도 바꿔보는 것이었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앞에서 뒤로 완전히.

 

그때 생각을 했죠.

바로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야 하나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저희 집안이 카톨릭이에요.

그래서 수도원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사회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활동 수도회의 경우에

제 뜻하고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봉쇄수도회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서

수도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국에는 마땅한 남자 봉쇄 수도회가

그때 들어와 있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가게 된 곳이

스페인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회 소속의 한 수도원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그 간절한 열망과

이를 위해 삶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바꿔보기를 원했던 마음으로 결정했던 것인데

사실 당시에 같은 성당 다니시는 많은 분들한테 오해를 받았었죠.

어떤 오해냐면

카밀로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

속세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엄청난 결정을 했다는 오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분들에게는

사실을 말했어도 통하지 않았을 겁니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기 때문에

 

어쨌든 저는 이렇게 카톨릭에서 고행 생활의 챔피언이라고 불리는

봉쇄 수도회 트라피스트

정식 명칭은 엄격한 율법의 시토수도회에 입회하게 됩니다.

 

수도원 갈 때 후회하지 않았냐고요?

어땠을 것 같아요?

 

사실 비행기 이륙하는 그 순간

바로 후회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막 걷잡을 수 없이 막 몰려오더라고요.

 

그래서 게이트로 입장하는 제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힐끗 봤더니

눈물 흘리시는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의 그 모습을 뒤로 하고

걸어 들어갈 때까지는 잘 참았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면서

마음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점점점

그러면서 쓱 하고 이륙하기 시작하니까

바로 후회가 몰려오더라고요.

 

사실은 뭐냐 하면 후회라기보다 두려움이었어요.

그 후회와 두려움을 안고

저의 봉쇄수도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