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소리가 없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38년 만에 소개된 미공개 영상.
흑백의 화면만이 남아있을 뿐.
음향이 담겨있지 않은 그 영상 속에는 모진 그날을 견뎌낸 5월, 광주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친 이웃을 위해 헌혈을 하고 주먹밥을 나누고…
관을 나르거나 가족의 영정을 들고 있는 사람들.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과도 같았습니다.
낡고 지직거리는 흑백 화면 속에 잠겨 있는 것들…
고요함이 던져주는 커다란 외침이 오히려 그 비극의 심도를 깊게 내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 역시 색채가 없어서 차라리 더 깊이 와 닿는 것이었습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은 80년 5월을 보고 들은 이후부터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먹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그려냈습니다.
일렬로, 원형으로, 나선형으로 서서 어디론 가를 향해서 움직이거나 염원하는 움직임.
필경 그들의 모습은 핏빛으로 선명했기에 노 화백은 색을 지운 무채색으로 그날을 담아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긴 시간 동안 소리를 지우고.
색채를 지우고 숨죽여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폭동은 폭동일 뿐
(나는)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
그리고 그들이 소리를 내지 못하는 동안 되레 당당하게 소리를 높였던 가해자와…
"거의가 북한 특수군
광주와 북한이 손잡고 일으킨 내란 폭동"
이응노 화백이 차마 색을 칠하지 못했던 그 비극의 희생자들에게 되레 붉은색을 입히고자 했던 또 다른 가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해묵은 상처들이 감춰진 그 날을 증언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나흘 뒤면 또다시 5월의 그 날…
열흘 전, 5·18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그의 집에는 갑작스런 벼락이 쳤다고 하던데…
아마도 과학적이지 않은 우연의 그 현상으로 뭔가 자그마한 징조라도 읽어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그저 40년 가까이를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지내온 착한 소시민들의 또 다른 초상이려니 싶기도 한…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저작권: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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