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면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숨기고자. 얼굴을 덮곤 하는 '웃음 가면'.
상사의 험상궂은 말을 받아낼 때.
거래처 사장의 어설픈 성희롱을 견뎌내야만 할 때.
도무지 앞날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 어려울 때…
어떻게든 참아내야 하는 사람들은 찌푸린 표정 대신 입꼬리를 가득 올린 가면을 얼굴 위에 얹어둔 채 세상과 마주합니다.
"늦은 밤 거울 앞에 앉은 사내여, 왜 웃느냐
너는 대체 왜 웃는 연습을 하느냐"
- 박성우 < 마흔 >
시인의 말처럼, 노동자에게 있어 마스크란 날 것의 감정을 숨기고 참고 견뎌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을 상징하는 것…
그리고 그 숨기고 참는 것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그 지점에서 진짜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한항공의 사람들, 그들이 쓴 가면은 바로 가이 포크스였습니다.
1605년 11월 5일 영국 웨스트민스터궁 지하에 화약을 설치했던 가이 포크스는 가톨릭을 탄압한 국왕을 암살하기 위해서 폭약 테러를 시도했죠.
그는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그의 얼굴을 본뜬 가면은 그래픽 노블에도, 영화에도.
또 실제의 현실에도 등장하여 시민의 저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외쳤습니다.
"사회적으로 지탄이 되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그게 벌이라고 본다"
- 전 인천하얏트호텔 관계자
그래서였을 것 같습니다.
참담한 마음…심려를 끼쳐드려 죄송, 뉘우치며 사죄드린다고 말한 총수 일가.
대한항공 시가총액 11%에 불과한 지분을 들고 기업과 직원을 좌지우지했던 사람들은 머리 숙여 사과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이 사과의 가면을 썼던 것이라면 그 가면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곧 진심을 드러냈으니까요.
'주장은 사실이 아님, 폭언한 바 없음. 무릎 꿇리거나 때린 사실 없음. 정강이 걷어찬 적은 없음. 알려준 것일 뿐… 제언은 한 바 있음'
세상에 드러난 음성과 화면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혐의 이외에는 모든 의혹이 잘못되었다고 조목조목 반박한 해명자료 안에 차라리 본심이 전부 담겨있었지요.
그렇다면 곧 뒤집어질 사과를 위해서 그들 역시 늦은 밤 거울 앞에 앉은 사내처럼 웃는 연습을 했던 것일까…
"늦은 밤 거울 앞에 앉은 사내여, 왜 웃느냐
너는 대체 왜 웃는 연습을 하느냐"
- 박성우 < 마흔 >
그러나…시인의 소중한 작품을 여기에 빗대어 말하기에는 그 시의 한 구절조차 너무나 아까운.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저작권: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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