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_시래기톡

[시래기톡] 손주들에게만 자상한 우리 아버지

Buddhastudy 2019. 4. 15. 19:03


Q. 자식에게는 무뚝뚝한데 손주에게는 다정한 아버지.

왜 그런거죠?

 

 

난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는데

나는 우리 아버지는 안 우시는 줄 알았어.

나는 우리 어버지는 눈물도 없는 분인 줄 알았어.

너무 엄하신 분이셨기 때문에.

 

내가 우리 아버지가 우신 모습을 두 번 봤어.

처음에는 우리 작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바로 밑에 동생이 아버지보다 일찍 돌아가셨어요.

옛날에는 상례를 모시면, 돌아가시면 축을 읽어요.

(祝文(축문), 제사 때 신명에게 고하는 글, 단순이 축이라고도 한다.)

유세차~’ 이렇게 축을 읽어야 되는 거야.

집안에 축을 읽을 분이 안 계시니까

아버지가 축을 읽으시는 거야.

동생의 죽음에, 영전에 축을 읽으시는 거야.

 

한 두 구절 읽다가 우시기 시작하는 거야.

그때는 우리 아버님이 집안에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었기 때문에

그걸 본 일이 없었어.

거기 모든 사람들이 통곡했어. 그 모습을 보고.

 

두 번째는 언젠가 직접 본 게 아니고, 우리 작은 아버지가 전해주신 내용이었는데

우리 누님, 우리 누님이 그야말로 구식 결혼을 했어요.

구식 결혼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은데

나는 행복예식장이라고 하는 서울에서 혼인을 하고

우리 누님이 우리 집에서 구식 결혼이라는 게 어떤 거냐면

 

신부집 마당에서 혼례청을 마련해 놓고

신라 재배, 신부 사배, 이렇게 해서 혼인을 해.

첫날밤을 처갓집에서 보내고 그 다음날 시댁으로 가는 거야.

 

우리 집은 북이면이고 우리 누나 집은 남면이라는 면인데

그때 갈 때 신부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신부 아버지, 삼촌, 상객이라고 그래. 따라가.

따라가서 어떻든 헤어져서 와야 될 거 아니냐고.

 

우리 작은아버지가 조금 일찍 오셔서 아버지가 하시던 모습을 얘기하는 거야.

그러면서 우시는 거야.

 

우리 누나하고 헤어지시는 거야.

간다.... 잘 살아라...”

그러고는 덤덤하셨다는 거야. 덤덤하시다가

그 동네를 쭉 걸어와서 산모퉁이를 돌면 그때부터 안 보여.

돌아서자마자 통곡하시더라는 거야.

 

그 얘기를 작은아버지가 하시는 거야.

작은 아버지에게는 우리 아버지가 이상형이야.

우리 아버지가 9남매의 이상형이었어.

그 모습을 보시고 우시는 거야.

형님이... 그러셨단다...” 와서 얘기를 해주시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서

우리 동생들은 누나가 시집을 갔다고 하는 것 때문에

지금하고 다르니까. 옛날 결혼은.

시집을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눈이 지금과 다르니까.

출가외인이잖아. ..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서운한 터에 그 얘기를 듣고 온 식구가 엉엉 울었어.

아버지가 우셨다는 말을 듣고.

, 이게 아버지의 사랑이구나...’

아버지는 재워놓고 사랑하는 거야.

 

또 이제 손주 얘기가 있는데

내가 시골에 집을 지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편인데

우리 집 사람이 과일나무를 몇 개 심어서

나중에 우리가 세상을 뜬 다음이라도 아이들이 좀 따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자 그래서 감나무도 심고, 포도나무도 심고, 블루베리도 심고해서

 

지난주에 보니까 포도가 청포도가 익었는데

아주 숭얼숭얼 맺힌 송이가 있는가 하면

대여섯 개 맺힌 송이가 있고 그래.

 

그걸 이제 벌이 달려들기 전에 아예 우리 있을 때 따가지고 갑시다.

그걸 이제 따는 거야.

숭얼숭얼한 놈 요놈, 요놈은 우리 손주 줍시다.

또 요놈은 우리가 먹읍시다.

그러느니 그냥 다 우리 손주 갖다 주자.”

 

그러면서 가지고 와가지고, 몰라, 우리 아들 내외는 그걸 안 먹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어제 우리 손주가 그걸 너무너무 맛있게 먹는 거야.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고마웠어.

 

그러면서 할아버지 사랑과 아버지 사랑을 생각해보는 거야.

나는 궁극적으로 그러지.

손주가 귀엽다. 손주가 더 이쁘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아들의 사랑보다는 덜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니야.

 

아버지 사랑과 할아버지 사랑이 어떤 게 깊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데

난 같다고 생각을 해.

다만 아버지는 표현을 안 하는 거야.

표현의 차이일 뿐이지.

 

아버지는 자식을 재워놓고 사랑하고,

할아버지는 손주를 깨워놓고 사랑해.

하하하. 그런 차이야.

 

할아버지는 앞에서 사랑을 하시고

아버지는 뒤에서 사랑해.

 

이런 비교가 될지 모르겠는데

노부모님이 계시는데, 아들이 셋이 있어.

아들 셋이 다 부모님을 모시는 게 아니니까

그 중에 한 자식이 부모님을 모신다고 쳐.

 

그런데 대개 이 방송 들으면 다 공감하겠지만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은 다 불효자로 알아. 다른 형제들이.

진정으로 칭찬받고 효도하는 자식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은 항상 불효자야.

 

왜냐? 어쩌다가 한번 오는 거야.

모시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야.

 

어쩌다 한 번씩 왔는데, 부모님한테 함부로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모시고 있는 자식은 항상 평상시대로 모시는 거야. 편하게.

그런데 어쩌다 한번 온 아들이나 며느리들은 또 친정을 찾아온 딸이나 사위는

우리 엄마가 어떤 분인데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인데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을 해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아버지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자식에 해당되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자식이 다 효도를 하는 거야.

효자 불효자를 얘기하는 게 아니야.

 

가끔 찾아오는 사람도 효자고, 모시는 사람도 효자야.

만약에 모시고 있는 사람이 아버지라면,

찾아오는 자식은 할아버지 같은 분이 아닌가.

 

그 꽃/고은 시인인데

올라갈 때 보이지 않는 꽃이 내려 갈 때는 보인다. 이런 글이 있어.

그러니까 꽃을 아버지는 올라갈 때 보는 거야.

일이 많고 책임이 많으니까.

 

그러나 나이가 들면 여유가 있기 때문에 세상을 골고루 볼 수가 있거든.

보이지 않던 꽃도 보여.

그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손주를 바라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러운 게 아닌가.

 

다들 그러지.

이상해요. 아들 보는 눈하고 손주 보는 눈하고 달라요.” 그러는데

나는 궁극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해.

어떤 면에선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지극하지

다만 표현을 안 할 뿐이야.

 

옛날 법도는 어르신들 앞에서 자식에게 정을 표하는 것을 결례로 생각했어요.

우리 집사람도 여기 있는데, 우리 아들을 ! 이쁘다!’ 이랬어.

혼났어. 우리 작은 아버지한테. ‘어디 어른 앞에서!’

그런 유습이고도 할 수가 있고.

(流習(유습), 예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습속)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막둥이 있잖아. 막둥이.

막둥이에 대한 사랑이 왜 깊을까?’ 라고 어떤 분이 질문하니까

막둥이는 부모님하고 같이 살 수 있는 시간이 적다는 거야.

큰형에 비해서.

 

그렇기 때문인지도 몰라. 어떤 면에서는.

손주하고 할아버지하고 함께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아.

우리 아이도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런 건지도 몰라. 기본적으로.

 

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하는 것 때문에 더 배로 사랑스러운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

그러나 나는 궁극적으로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따라가겠어.

아무리 할아버지의 사랑이 깊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父母愛子之念(부모애자지념)으로 爲念(위념)하라.

-태조실록 4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군자다.

난 이렇게 생각을 해.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할아버지가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같은 것인데

표현상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어떻든 나는 우리 손주보는 재미로 살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