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신박한깨달음] 우주 의식은 당신이 깨어나길 바라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 존재의 목적이자 우주의 목적이다|보통의 깨달음

Buddhastudy 2024. 4. 29. 20:11

 

 

깨어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더 이상 자신의 생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않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박적인 생각들

그 목소리가 내가 아님을 알 때 나는 깨닫기 시작한다.

그때 의식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면서

순간을 살고, 알아차리고, 깨어난다.

생각에 빠지지 않고 생각을 넘어선 것이다.

 

내면에 살아있는 존재

의식 그 자체에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다시 말해

인간, 그 배후에 있는 존재를 깨닫는다.

 

조건화된 인격을 초월하고

조건화 없는 의식 그 자체로서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깨닫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 있는 생존 영성가

31번째 인물로 선정된 스티브 테일러는

영적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수행과 영성의 본질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병행해 왔다.

스티브 테일러는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고 한다.

 

깨어난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망상에 빠진 사람 혹은 사기꾼, 지도자를 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깨어남 상태의 특성들을 명확히 규명해

가짜 깨달음과 진짜 깨달음을 구분하는

지표를 제시하는 책 <보통의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우리 삶의 주요 목적

 

우리는 인간 존재다.

이 두 단어는 우리가 특정 생물종에 속함을 보여주면서

우리 정체성을 이루는 두 가지 성격을 하나씩 드러낸다.

먼저 인간은 형태 수준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즉 우리 몸과 마음을 말해준다.

 

우리 형태의 이 두 측면은 조건화된 자아와 관계가 있다.

이 자아는 유전, 환경, 그리고 과학적으로

아직 규명되지 못한 요소들에 의해 조건화된다.

 

반면 존재는 형태 없고 조건화되지 않은

영원한 의식으로서의 우리 본질을 말해준다.

 

인간 그리고 존재

이 형태와 본질은 대양과 그 표면의 파도가 그렇듯

궁극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파도는 대양과 또 다른 파도들로부터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존재, 다른 말로 순수 의식은

모든 생명의 보편적인 원천으로부터 나왔다.

마치 빛이 태양으로부터 터져 나오듯 그렇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태양과 달리 이 원천은

우리가 사는 시공간에는 없는 듯하다.

보이지 않음으로 상상할 수 없고, 묘사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이 원천에서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으며

따라서 이 원천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

 

사실 이 원천은

우리가 사는 시공간 차원에 우주 전체에 스며 있고 퍼져 있다.

이 원천이 배우의 지성으로 작용해 물리 우주의 진화를 이끈다.

 

이 세상의 주류 문화가 믿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진화의 과정에는 방향과 목적이 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진화의 과정, 그 배후의 원동력이 바로 우리의 의식이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의식의 성장이라는 것뿐이다.

 

우리가 사는 물리적 우주는

좀 더 의식적이 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리 삶의 주요 목적이

그런 우주적 목적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물론 더 높은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다 그 목적과 함께하고 있다.

지금 그 목적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아직까지는 무의식적으로만 그 목적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그 목적과 의식적으로도 함께하는 때가 되면

그때 비로소 진화적인 큰 도약 하나가 완수될 것이다.

 

 

--보통의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깨달음

 

저자는 영적 깨달음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깨달음은 동양의 현자들만이 아니라

동서양 할 것 없이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연구나 수행을 해오면서

꾸준히 깨달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소수이긴 하지만 아무런 수행이나 노력 없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깨달은 사람들도 만났다.

 

역사는 깨달음이 영적, 종교적 전통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고 말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깨달음을 그 전통들의 언어에 의해 해석할 수밖에 없다.

각각의 전통마다 깨달음에 이르는 전환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강조점이 다르다.

같은 풍경을 각자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듯이

깨달음에 대한 여러 특징들을 선택 혹은 확장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깨달은 상태를 특이한 뇌 활동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뇌가 모든 의식적 경험의 원천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뇌라고 하는 물질 덩어리가

어떻게 이 풍성하고 주관적이며 놀랍기 그지없는 경험들을 일으키는지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이를 [의식의 난제]라고 부른다.

 

사실 원인과 결과를 정반대로 놓고 보아도

똑같이 타당해질 수 있다.

그러니까 깨달음 경험과 관계하는 특정한 뇌 상태가

그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골길을 걷는데 갑자기 곰 한 마리가 튀어나오면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고

두려움과 스트레스에 관여하는 뇌 부분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 곰을 보는 경험은

분명 우리 뇌 신경의 특별한 상태와 연관이 있다.

하지만 그 특별한 뇌 신경 상태가 곰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깨달음 상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경험으로 존재할 뿐

단순한 신경 활동으로 설명될 수 없고, 그렇게 폄하될 수도 없다.

 

 

--초창기 인간들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 존재는 원래 자연적으로 깨어 있었다.

초창기 인간들은 주변 세상과 그 신성함을 생생하게 경험했고

자연 및 전 우주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때의 인간들은 세상과의 분리를 몰랐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에 강력한 영적 힘이 퍼져 있음을 감지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 전락(타락)이 일어났다.

이것은 존재의 전환, 새로운 자아의 도래를 의미했으며

인간은 강해진 개성과 분리를 감지하게 되었다.

인간은 그때 처음으로 자신을

자연, 공동체, 심지어 자신의 몸 자체로부터도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만의 정신적 공간 속에서 개인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 전환이 바깥세상에 부른 파급 효과는 여러모로 파괴적이었다.

무엇보다 야만성, 억압, 갈등이 급증했다.

계급 사회가 등장했고, 집단들 사이 끝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여성과 성에 대한 억압이 생겼으며, 사회는 죄책감으로 물들었다.

 

이것은 자연적인 영성의 상실을 의미했다.

우리 조상들은 더 이상, 자연의 신성함과 그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우주와의 연결도, 만물에 스며 있는 영적인 힘도 감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고, 조화로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불안과 부조화의 상태로 떨어졌다.

 

영적 깨달음은 어떤 의미에서 이 과정을 되돌리는 것이다.

분리와 이원화에 병적 과정을 되돌리고

초창기 인류가 갖고 있던 조화와 연결에 대한 감지 능력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 깨달음은 그와 동시에

새로운 존재 상태로의 도약도 수반한다.

비록 재난을 불러왔지만

우리 조상들이 전락 과정에서 개발했던 개성의 느낌이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덕분에 인간은 명민한 지성을 개발했고

그것이 기술의 진보와 세상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지금 우리가 다시 영적 깨달음으로의 도약을 감행한다면

우리는 이런 이점들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다.

 

개인적 수준에서 도약이란

보통의 존재 상태에서

좀 더 확정적이고 고도로 기능하는 깨어난 상태로의 전환을 뜻한다.

 

그리고 집단적인 수준에서 도약이란

수천 년 전 인간들이 심리적 전환을 집단적으로 경험했던 것처럼

현대에도 깨어남으로 향하는 집단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저자는 그런 움직임이

현재 세계적으로 인류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약은

영적 깨달음의 집단적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영적 전통들이 말하는 깨어남

 

영적 전통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깨어남 상태의 주요 특징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합일이다.

 

깨어났다는 말은

곧 분리를 넘어 연결되고

합일되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것이 도든, 신이든 중요한 것은

우주의 영적인 본질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의 가장 깊은 곳과도 연결된다.

 

우주의 본질은

곧 우리 자신의 본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연결의 가장 큰 장애는 우리의 에고다.

 

에고는 그 모든 욕망, 야망, 집착으로 우리를 강하게 압도한다.

우리는 에고라는 우리만의 정신적 공간, 그 경계 안에 갇혀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에고를 약화시키고, 그 강한 경계선을 무너뜨려

분리를 극복하고, 영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기는 그 편협한 자아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넓고 더 깊은 존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깨어남 상태, 그 두 번째 특징은

내면의 고요함 혹은 텅 빈 상태다.

깨어난 사람은 머릿속 정신없는 수달을 듣지 않아도 되고

격동하는 감정과 욕망의 공격을 받지 않아도 된다.

 

내면이 평온하고 순수해진 의식은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게 흘러간다.

사실 내면의 고요함을 개발하는 것이

깨어남 과정의 필수라는 데

모든 전통들이 동의한다.

 

깨어나고 싶다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의식을 흐리게 하는 생각과 감정의 충돌을

벗겨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명상을 통해 우리의 생각이 우리가 아님을 깨닫고

생각 너머 우리 존재의 더 깊고 넓은 층들과 접촉할 수 있다.

 

 

깨어남 상태의 세 번째 특징은 자족감이다.

깨어난 사람은 세속적 성공, 소유, 야망에 관심이 없고

비난, 모욕,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미 그 자체로 온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성공, 지위, 부 등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

 

깨달은 사람은 개인적 성취에 무관심하고 자기 정당화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욕을 느끼거나 화를 낼 일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의치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라고 느끼기 때문에

수준 높은 이타심과 자비심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모든 전통이 말하는

깨어남 상태의 네 번째 특징이기도 하다.

 

우주의 본질과 그 자신의 본질에 동시에 연결되어 있기에

깨어난 사람은 다른 인간 존재와도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의 고통, 좌절, 괴로움을 쉽게 감지함으로

그들의 고통을 줄이고

정신 개발을 돕고자 하는 이타주의적 충동이 일어난다.

 

자신만의 야망이나 욕망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에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자비와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이런 연민의 태도가 나오는 것은

모든 존재의 영성이 스며 있고

따라서 모든 존재가 곧 자신임을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 전통들이 말하는, 깨어남 상태의 다섯 번째 특징은

첫 번째 특징인 합일에서 파생된 것으로

개인적 방편을 포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어나면

자신만의 삶과 야망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신에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된다.

그 더 큰 힘이 우리 삶을 통해 흐르게 된다.

 

이것을 도가에서는 무위의 삶이라고 한다.

도가 우리의 천성임을 알고

우리가 아는 모든 일이

그 도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는 삶이다.

 

개인적인 의지가 신의 의지와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에이전트가 된다.

이때 변형을 부르는 강력한 에너지가 우리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그것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깨어남 상태에 대한 분명한 특징들이 두 개 더 있다.

첫째, 깨어날 때

세상에 대한 더 강렬하고 온전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일반 의식 상태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실제의 제한적인 그림자일 뿐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듯 우리는 동굴 속에 앉아

진짜 세상은 등진 채,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림자 세상은 의미없고 지루하지만

진짜 세상은 의미와 조화로 빛난다.

분리가 아닌 합일된 세상이 진짜 세상이다.

 

둘째, 깨어남 상태에 대한 마지막 특성으로

영적 전통들은 깊은 행복감을 말한다.

깨어난다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뜻이고

더 할 수 없는 평온함과 축복을 느끼는 것임에

모든 전통들이 동의하고 있다.

 

자아를 깨닫는다는 것은 지역하면

깨어서 축복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의식은 우주의 근본 힘이다

 

기원전 4천년경 시작된 방대한 사막화가

중앙아시아와 중남부 유럽의 생태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살아남기 힘들어진 인류는 생존을 위해

실용적이고 지적인 능력들을 개발해야 했고, 자신부터 먼저 생각해야 했다.

이것이 인간 정신세계의 재편성을 수반했다.

그 결과 개인적인 에고가 만들어졌고

추상과 논리에 힘이 세졌다.

 

하지만 이렇게 생겨난 에고는 너무 강력해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그 결과 초기 인류가 지각에 이용했던 에너지가 에고에게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은 에고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하며

그 강력한 구조와 인식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보존하는 방식의 하나로

세상을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조상들은 특별한 것 없이

그저 그런 회색의 그늘진 세상 속으로 전락했고

의미 없고 정적인 세상 안에 고립되었다.

 

생명체는 물리적으로 더 복잡해질수록 그 의식도 더 발달하고

따라서 더 생생한 삶을 살게 된다.

다시 말해 생명 에너지가 강화된다.

 

일부 현대 철학자들이 말하듯이

우리 뇌는 의식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의식을 나르고 받아들이는 역할은 분명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의식은 우주의 근본 힘이며 모든 곡과 모든 것 안에 존재하게 된다.

뇌는 그런 의식을 받아들이는 라디오 수신기 같은 것이다.

뇌가 우주의 의식을 잡아내고 전달해야

비로소 우리도 개인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뇌는 보편적으로 의식을 특정 시공간에 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그래야 우리가 개인적인 존재로서

우리 삶의 순간들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다.

 

뇌 신경세포가 많을수록, 그 기능이 복잡할수록

우리 각 개인은 더 강력한 보편 의식을 잡아낼 수 있다.

 

 

--위기의 시대,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까지 주장한 이 모든 긍정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전례 없이 서로 연결되어 전례 없이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전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부정적인 흐름의 극단과 대치하는, 양극화의 세상에 살고 있다.

 

물질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물질주의적 이상향에 빠져 있다.

많은 사람이 자연 세상과의 연결을 감지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환경 문제에 대한 염려가 크기는 하지만

각국의 정부들과 세계적 기업들이

여전히 지구를 자원 착취 대상으로만 보고 있어

지구의 생명 유지 장치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집단 정체성과 기존 종교에서 벗어나

모두를 포함하는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기존 종교와 국적에 이전보다 더 강하게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반대 징후들이 강해지는 것에 놀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새 국면이 도래하면

붕괴의 위협에 처한 이전 세상의 특징들이

대개 더 강해지고 집요해진다.

 

한편,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가

곧 깨어남을 부를 수도 있다.

지금의 사회적 격변은

우리 개인들이 급작스러운 깨어남 직전에 겪는 심리적 격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집단적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위협이 집단적 변형을 촉구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위기가 재난으로 바뀌기 전에

깨어남의 긍정적인 특징들이

수면 상태에 부정적인 특징들을 이길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 개인의 정신이 인류의 그것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인류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깨어나는 과정을 밟아나갈 때

인류의 깨어남에 공언한다.

우리 자신의 도약이 인류의 도약에 일조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깨어남으로 향해 갈 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 쉽다.

깨어난 자아 체계의 청사진이

우리 집단정신 안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마침내 그것이 수면 상태의 자아 체계를 대체하여

인류가 자연스럽게 성숙할 때까지

영적 수련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의식이 강해서 영적 수행에 너무 완고한 자세를 취하지만 않으면

조금씩 깨어나는 과정에서 인류의 깨어남에도 공언한다.

깨어나고자 하는 충동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때

우리는 이미 시작된 전환을 가속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계적으로 깨어나려면

물론 명상과 알아차림 수행을 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단순하고 조용한 삶을 살며

내면과 함께 편안하게 존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에고의 철두철미한 경계선을 뚫고

동료, 인간들, 자연, 그리고 온 우주와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정신적 집착들을 버려

그 집착 때문에 보지 못했던 본질들을 보고

우리의 잠자고 있던 더 고귀한 자아를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수면 상태의 자아 체계를 깨어난 상태의 자아 체계로 바꿔야 한다.

즉 정신적 틀을 개조해야 한다.

인류의 도약에 왜 개인적인 노력이 요구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은 사실 노력이나 분투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흐름과 함께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다.

 

우주는 우리가 깨어나길 바라기 때문에

우리가 적절한 상황만 만들어 준다면

기꺼이 우리를 깨어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