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부처님 당시에 앙굴리말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 따라해 봐요. 앙굴리말라. 인도 말이라 좀 어렵죠. 앙굴리말라. 네, 이 교단사회에 무지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경전 공부를 하다보면 아주 특정한 인물들이 더러더러 등장하는데, 그런 사람들의 얘기는 조금 알고 있는 게 좋아요. 나중에 포교할 때도 그렇고, 가족들과 불교 얘기할 때도 그러한 얘기를 조금 알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앙굴리말라에 대한 얘기도 아주 대단히 유명한 얘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얘깁니다. 금강경도 기원정사에서 설해졌다. 했잖아요. 앙굴리말라는 바사위왕의 한 재상의 아들이었는데 나면서 아주 촉망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임시카라는 그런 이름 이었습니다. 아임시카. 그래서 그 아임시카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서 바라문, 특별한 스승을 통해서 거기 가서 공부하도록 보내졌습니다. 그 스승의 이름이 마니발타라 라는 스승이었습니다.
예, 그래서 이 스승 마니발타라는 재상의 아들이자, 또 애가 아주 촉망했던 모양입니다. 건강하고. 그래서 금방 마니발타라의 스승의 논에 띄었고, 스승은 집중적으로 잘 지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니발타라가 무리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딴 도시로 출타할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자기 부인이 마니발타라는 부인이 있는 그런 바라문이었는데, 부인도 좀 지키고, 가정도 좀 돌볼 제자 하나를 남겨둬야겠는데, 누구를 남기나 고민하는 중에 이 마니발타라의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권유하기를 “나는 아임시카를 남겨두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 마니발타라도 훌륭한 제자니까 자기 부인을 잘 지켜주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믿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전에 마니발타라의 아내가 아임시카에게 연정을 품었다 그랬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 했지만 스승의 수제자가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거절을 합니다. 스승이 돌아올 날이 되었어요. 그런데도 끝까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고백을 합니다. “난 좋은데, 우리 어디 도망가서 살자.” 그런 제안을 해요.
그래도 아임시카는 “난 절대 그럴 수 없고,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지, 당신하고 놀기 우해서 온 사람이 아니다.” 아주 강하게 거절을 해요. 그러자 이 여자가 아주 분한 마음을 품고는 자작극을 꾸미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이 무리의 제자를 데리고 돌아온다는 그 날짜에 맞추어서 그날 아침에 자기가 옷을 다 찢어버리고, 그리고 손톱으로 얼굴에다 상처를 내고 온몸에 상처를 냈어요. 그리고는 침상에 떡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니발타라 바라문인 자기 남편이 와서 보니 아내가 그 몰골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물었을 거 아닙니까? “왜 이러고 있느냐?” “내가 당신이 믿었던 아임시카에게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래서 내가 저항하다가 이 몸이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러면서 아내가 또 다시 얘기해요. “제발 저 사람을 죽여 달라.” 이래요. “너무 분하다. 죽여 달라.” 자기가 그 토록 사랑했으면 놔둬야지 죽이기는 왜 죽여. 그러니까 너무 끔찍한 얘기를 하지. “저 사람은 제상의 아들이다. 내가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 난다. 저 사람은 무술이 사실 나보다 뛰어나다. 잘못하면 내가 다칠 수 있으니 내말 믿고 놔둬라.”
그래서 부인은 자기 남편을 믿고 놔뒀는데, 스승이 무슨 나쁜 것을 가르쳤냐? 그게 문제거든요. 그래서 아임시카를 불러서, “그래. 그 동안 우리 집을 지켜주느라고 애썼다. 내가 보니 너는 이제 배울 것은 다 배웠고, 이제 하나만 더 가르쳐주면 너는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다. 부처의 지위에 오를 거니까, 그것을 잘 실천하도록 해라.” 하니까, 아임시카는 도를 이룬다는 그 말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스승이 가르쳐준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래. 꼭 해야 된다.” “꼭 하겠습니다.” “그래, 네가 100사람의 목을 자르고 죽여서 그 증거로 손가락을 끊어서 그걸 목걸이처럼 해서 걸고 다닌다면 그 100명의 목숨을 앗은 그 손가락, 엄지손가락 끊어서 목에 걸고 다닌다면 반드시 너는 성취하고 큰 도의 지위에 오를 것이다.” 이렇게 못된 것을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아임시카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긴 끈에다 엄지손가락을 끊어 목걸이를 만들어서 하는데, 그래서 그 이후로 사람들은 아임시카를 보면 도망가기 바빠요. 그 뒤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앙굴리말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앙굴리말라라는 뜻은 손가락을 엮어서 만들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손가락을 끊어서 엮어서 돌아다니는 사람. 그래서 앙굴리말라는 공포의 대상이 된 거죠. 그러다가 나중에 99명까지 죽였으니까, 99명을 죽이고 한명만 더 죽이면 끝이 나는 거라.
그래서 1명을 찾는데 사람들이 앙굴리말라 얘기만 들리면 다 도망을 가고 숨고, 그런 지경이 된 거요. 앙굴리말라는 한사람을 더 찾아야겠는데, 도저히 못 찾으니까, 자기 어머니를 찾아가요. 어머니를 죽일 거라고. 그래서 어머니가 저만치 보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멀리서 보시고 “저놈이 저희 어머니를 죽이는 저런 극악무도한 저런 놈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부처님이 그 사이에 나타났어요. 그러자 이놈은 자기 어머니보다는 수행자가 더 앞에 있으니까 수행자 부처님을. 그 사람은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한 줄 몰랐겠죠. 앙굴리말라는 칼을 들고 부처님을 해하려고 덤벼드는데, 아무리 덤벼들어도 다가가지지를 않고, 칼로 베어도 부처님 몸에 베어지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악몽을 꾸거나 할 때 보면 쫒아가도 안 쫒아가질 때도 있잖아요. 그러한 스스로 그런 나약한 힘이 된 거죠. 그래서 그때 부처님한테 얘기합니다. “당신 누구 길래 내가 쫓아가도 다가가지 않고, 칼로 베어도 당신은 내 칼끝에서 멀어지느냐고” 그제서야 부처님의 힘을 느끼고는 “부처님” 하면서 “당신의 제자로 좀 받아 달라.”고 그제사 하소연을 합니다. 그 전에 부처님의 간단한 법문이 있었겠죠. 그때 하신 법문이 무아의 법문이 아니냐. 내가 없는 법문을 쭉 듣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제자로 받아주기를 간청하죠.
그때 부처님은 모든 사람,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살인마라고 불렀을 거 아닙니까?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절대 물리치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데리고 기원정사로 돌아왔다고 그랬어요. 대단한 일이죠. 그러자 딴 제자들이 “부처님 이러다가는 우리 불교가 망합니다. 살인마를 숨기고, 살인마를 공부시키는 이런 종교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큰일 납니다. 부처님 안 됩니다. 내 보내야 됩니다.” 앙굴리말라 때문에 죽은 사람의 그 가족들이 얼마나 떼를 지어서 몰려왔겠습니까? “저 놈 잡아 죽이라”고. 난리가 났겠죠.
그런데도 부처님은 “앙굴리말라는 이제 없다.” 이랬어요. 앙굴리말라. “그전의 포악했던 앙굴리말라는 여기 없노라.” 이랬거든요. 그러면서 앙굴리말라를 위해서 오히려 토굴을 지어줬어요. 그래서 기원정사에 가보면 앙굴리말라 토굴 터라 해서 큰 토굴 터가 하나 있습니다. 아무튼 ‘앙굴리말라는 거기서 더 공부를 해서 끝내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랬습니다. 무아의 법을 통달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그런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불교는 중생, 아주 철저한 중생도 나중에는 대단한 부처님이 되는 그런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게 불교입니다. 그 앙굴리말라 살인마도 결국은 성자가 될 수 있는 그런 힘이 불교에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예를 들면 얼음이 얼면 절대 안 되는 거죠. 물이 얼음이 되면 동화될 수가 없잖아요. 누구와 섞일 수도 없고, 그런데 물이 풀리면 함께 화합하죠. 얼었다는 아상인상수자상등 자기라고 하는 상이 가득 차있어요. 그게 얼음이라. 그게 중생이라. 그런데 아상인상중생상이 딱 풀어지면 즉, 얼음이 풀어져서 아주 부드러운 물이 되면 전체가 다 한데 어울리죠. 그러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의 자리가 된다. 비유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얼음과 물은 성분은 똑같아. 똑같잖아요. H₂O 얼면은 얼음이요 풀리면 물이라.
우리 존재라 하는 것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으로 아주 딱딱하게 얼어있으면 중생이요, 풀리면 넉넉한 부처가 된다, 부처님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불교 공부라 하는 것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고 하는 이 상을 잘 풀고 상을 버리고, 바로 아까 말했던 상락아정, 그리고 힘, 상락아정력을 증득하는 그런 부처가 되는 공부가 바로 불교수행이다. 예, 오늘 공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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