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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학스님의 금강경 9_4. 무일의 4진리론

Buddhastudy 2017. 4. 19. 16:46



그러면 오늘 금강경 특강자료. 9-10 가번, 무일의 4진리론.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4진리론, 무일 우학스님이 세운 4가지 진리에 대한 이론이다, 이 말입니다. 금강경은 진리를 깨쳐가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오늘 공부에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이것을 여기다 내놨습니다.

 

1. 명상불여심상

-선천적 운명의 모습은 현재 마음속의 모습만 못하다.

 

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운명이 있어요. 그래서 사주팔자도 있고, 관상이나 수상 같은 것도 그냥 보통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다 맞습니다. 그런데

 

현재 마음속의 모습이 뚜렷하고,

현재 마음속의 모습이 분명하면,

이 선천적 운명도 지나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현재의 기도, 현재의 수행, 현재의 아주 독특한 그런 의지, 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선천적 운명을 이겨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선천적 병이 났다든가,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그 어려운 시기를 다 거치고 지나왔다. 도저히 저 사람은 어디 가서 물어보니 물어보지 말라 해도 자꾸 물어보거든, 사람들이. 물어봤더니 "도저히 안 된다." 이랬는데,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정진한 그 덕에 그러한 어려운 시기를 다 지나간 그런 사람들, 얼마든지 그런 얘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과거 전생의 업이 있고,

과거 전생에 지은 업때문에 아주 살림살이가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그 마음 가운데 아주 또렷한 부처님에 대한 신심,

또 정진하고자하는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이 분명하면

선천적 운명정도는 충분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 에너지의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명상 힐링 센터를 하고, 또 참선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은 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가고자 하는 그런 하나의 노력이자 의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 학식불여덕행이라.

학문적 지식은 인격적 덕행만 못하다.

 

그랬습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학식불여덕행. 학식불여덕행. 우리는 금강경에서 이 앞쪽에서 무주상보시라. 이런 말을 배웠어요. 무주상보시. 또 좀 나가다보면 응무소주이생기심. 이런 말도 나와요. 그리고 또 상을 없앤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처럼 이런 말이 다 덕행과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학문적 지식은 출중한 사람들 많아요. 우리 사회에 보면.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인격은 형편없는 사람도 또한 많습니다. 그런데 2가지를 비교하지면,

 

학문적 지식보다는

인격적 덕행이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보면 공부는 좀 많이 한 사람들이 부모님도 모르고, 아래위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많아요. 그런 사람은 학문적 지식, 그것만 믿고 아주 까부는 거죠. 그렇지만 높은 차원에서 봤을 때는 아무 쓰잘 데 없는 것에 의지해서 자기 인격을 스스로 흠을 내는 그런 수가 많죠. 아무튼 그래서 우리 현재 한국불교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많은 교육기관, 유치원이든지, 어린이집이든지, 중고등하교에서든지, 이런 데서는 제가 특별히 얘기를 해서 다도교육, 인성교육, 이런 것을 많이 시킵니다. 머리만 굵어져서 될 일이 아닌 거죠.

 

덕행, 덕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 금강경에서도 시종일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너무 잘난 척하지 말고, 어쨌든지 덕을 베풀고, 보살행을 해라. 이런 얘기를 계속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신교불여각교

맹목적 신의 종교는 진리적 자각의 종교만 못하다.

 

이랬습니다. , 이 종교가 이렇게 변천을 해옵니다. 변천과정을 보면 옛날에는 다 다신교를 믿었어요. 다신교. 범신교라 해도 관계가 없고, 모든 존재가 다 신기원이 있다. 나무에도 신이 있고, 바위에도 신이 있고, 그렇게 말하는 거죠. 그런데 이 다신교가 나중에 차츰차츰 일신교로 변해와요. 일신교. 그러니 일신교에서 더욱더 발전한 종교가 진리교입니다. 진리교.

 

그러니 이 진리교도 그냥 누구의 말이니까 진리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각을 강조하는 그런 종교가 나타나요. 이 불교처럼 아주 고차원적인 종교는 바로 진리적 자각의 종교입니다. 그럼 다신교, 일신교, 진리교, 자각교, 이렇게 변해 가는 데, 불교는 진리를 바탕으로 하는 그런 자각교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종교발달사를 보더라도 불교야 말로 가장 수승한 종교다. 이렇게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맹목적 신의 종교는 어떤 폐단을 가지고 오느냐? 아주 배타적이고, 아주 자기만을 위해서 온갖 나쁜 짓은 다 해요. 그리고 우리 뉴욕도량이 있는 미국에 가 봐도 그렇고, 또 시드니도량 호주에 가 봐도 그렇고, 그 사람들이 지금은 전부 백인들 중심으로 살지만, 수천만 명의 원주민을 아주 얼굴 까만 원주민을 죽이고 거기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수천만영.

 

그냥 유교 때 죽은 사람이 160 명 이 정도거든요. 그런데 수천만 , 3천만 , 4천만 명의 원주민을 다 죽이고 선교사들이 거기 들어가서 국가를 세운 것이 호주요, 미국이고 이런 나라들이거든요. 다 맹목적 신의 종교가 저지른 만행입니다. 그 만행이 형언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진리적 자각의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

나는 무엇인가?

나는 현재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잘하고 있는가?

 

늘 자기 자신을 반조하고 자기 자신을 살피는 그런 아주 높은 차원의 정신세계를 노니는 거죠. 그래서 신교, 불여, 각교라 이 말입니다. 맹목적 신의 종교는 진리적 자각의 종교만 못하다. 진리적 자각의 종교라야 된다 이 말이죠.

 

 

4. 계행불효자비라.

건조한 계의 행위는 촉촉한 자비행만 못하다, 했습니다.

 

. 저 티벳에 가면 야크라고 하는 소가 있어요. 그런데 이 야크라는 소는 산소가 모자라는 그런 지역에서는 산소공금의 원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쪽에 있는 사람들은 절이든 세속이든 그 야크 고기를 먹지 않으면 다 죽어요. 그런데 거기 가서 한국 스님들이나 뭐 딴 스님들이 가서, 입을 데거든요.

 

왜 절에서 왜 고기 먹느냐?” 그러거든요. 그렇다면 고기를 안 먹으면 다 죽는 일인데. 그것을 외국인이 가서 가타부타 말할 자격은 없는 거죠. 오히려 거기 자비심을 내어야 되는 거예요. “누가 병이 들어서 고기를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이러면, 고기를 오히려 공양을 올려도 시원찮은 일인데, 거기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없는 일이죠.

 

원칙이 중요한 일이지만, 원칙 때문에 모든 사람들, 온 사람들을 적으로 보고, 방목하고, 또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대면서 분위기를 허망하게 하고, 그것은 원칙을 지킨다하지만, 계행이라는 것은 원칙이거든. 그런데 그 원칙을 지킨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비심보다 훨씬 더 못된 짓이다. 이 말입니다. 건조한 계의 행위는 촉촉한 자비행만 못하다. 그런 얘기입니다. 이게.

 

그래서 제가 간단하게 비유를 드렸지만 생각해보면 명상거리가 될 겁니다. 왜 이런 얘기를 했을꼬? 그래서 아까도 여기도 보면, 성문의 지위를 얻는 이는 홀로 몸을 좋게 하는 것. 좋기는 하지만, 마음의 배를 돌이켜서, 자비의 배, 자비의 배를 타고 건너는 사람을 맞이하는 보살, 보살은 반드시 자비심이 전제되어야 되요. 자비심. 이 자심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것도 다 이해하고 수용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계행불 여자 시라. 건조한 계의 행위는 촉촉한 자비행만 못하다. 그래서 이 무일 4진리론을 틈틈이 사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큰소리로 한글 부분만 읽어보겠습니다.

 

1. 선천적 운명의 모습은 현재 마음속의 모습만 못하다.

2. 학문적 지식은 인격적 덕행만 못하다.

3. 맹목적 신의 종교는 진리적 자각의 종교만 못하다.

4. 건조한 계의 행위는 촉촉한 자비행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