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모님들을 보면 끼인 세대에요. 생활패턴이 너무 많이 변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 우리 어머니세대에 보면 농경사회의 주인공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상속을 받았어요. 상속이라고 하는 것은 농지를 상속받은 거죠. 그 농지를 상속받다보니까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자식을 왜 낳느냐?” 그러면 “효도를 받기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사나요? 나 살기 바빠요. 지금 할 게 너무 많아요. 농사?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살고요, 그리고 부모 눈치 보고 살고 싶지가 않아요. 그런데 어머니들이 이 부분을 빨리 놔줘야 되거든요.
“아, 세상이 변했구나.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구나. 농경사회를 지나서 이제는 정보화 사회가 되었구나.” 이제는 절대 끼고 사는 사회가 아니고 그냥 한 달에 한번이라도 얼굴이라고 보여주는 자식은 효자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살아야 내가 만족하게 살 수 있는 건데, “옛날에 내가 당한 게 얼만데 너희들은 나한테 돌려주는 게 없어?”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속상한 일이 너무 많이 생기잖아요.
억울한 마음이 생기니까 뭐라고 그래요? 내 눈에 흙 들어가 전에 잊어요? 못 잊어요? 내 눈에 흙 들어 가봐야 나만 손해지. 이해해줘라.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그는 그의 행복을 위해서 살 권리가 있다. 나는 부모로서 내가 너를 그렇게 길러줘야 되겠기 때문에 너는 나와 함께해야 된다는 그것은 될 수없는 일을 되게 해 달라고 하는 얘기나 똑같은 부분이다.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내 자식을 기르는 과정 속에서 충분한 행복을 맞봤다. 그리고 내가 멀리서나마 너희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하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죠? 그럼 넉넉해지기 시작을 해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겁니다. 그리고 자식이라고 하는 것은 나가살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것은 너무나 큰 용기구요, 그에게 오히려 찬사를 보낼 수 있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네가 스스로 살겠다는 의지를 갖고 가니, 내가 자식을 길러도 참 잘 길렀다.” 이렇게 위로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야 되잖아요.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것은 뭐냐 하면 자식이 효도를 할 수 있도록 지혜를 만들어 내시기 바랍니다. 내가 입 다물고 앉아서 효도하기를 바라지 마세요.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소통의 방법을 익히시기 바랍니다. “너는 참 훌륭한 아이야. 엄만 이런 게 필요해.” 이렇게 해서 서로 소통을 할 수 있는 부분이었을 때 그게 행복한 건데, 대게 보면 뭐라고 그래요? “네가 내 생일을 아나 모르나 보자.” 그래서 모르면 속상해요? 안 속상해요? 속이 상해서 친구 만나면 수다를 떨어요? 안 떨어요?
그것은 내 새끼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 밖에 더 되요? 그러지 말고, 달력에다가 내 생일날 선물을 받고 싶거든 동그라미를 크게 쳐 놓으세요. 그리고 거기다 화살표 해놓고 “엄마가 원하는 것.” 이렇게 적어 놓으세요. 그러면 눈치 없는 아이도 알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자식을 잘 아는 게 우선입니다.
자식의 성격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그랬어요? 근기설법을 하셨잖아요. 상대의 마음을 알아서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부처님이세요. 우리가 부처님 제자 아닙니까? 부처님 제자가 된 우리들이 부처님 같은 마음을 내야 될 거 아닙니까?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방을 먼저 마음으로 헤아려 줄 수 있는 멋진 마음이 된다면 저절로 효도 받는 부모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모쪼록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하나의 인과 관계로 만난 인연이라 생각하시고,
이 인연이 섭섭한 인연의 주인공이 아닌,
정말 행복한 인연의 주인공이 되어서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나룰 수 있는
그런 멋진 주인공이 되도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배려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포용하는 마음.
어쩌다 자식이 오더라도
“네가 나를 버리고 갔어?”그렇게 하지 마시고
리액션 하셔야 되요.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또 전화를 해주면, “아이고 이렇게 전화를 해주니 얼마나 고마우냐. 네가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기도 바쁜 시간에 나를 기억해서 전화해주니 너무너무 감사하다.” 그럼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자식은 시시때때로 부모생각이 날까요? 안 날까요? 나요.
그런데요, 꼭 전화가 오면 “끊어. 끊어.” 이래버리거든요. 그러다보면 우리 어머니는 내 전화를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고, 반갑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해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리액션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요, 어떻게요, 더러워도 참아야지. 그게 지혜로운 겁니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이 샘 파는 지혜를 발휘하는 자체도 대단히 지혜로운 것은 아닐까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연세가 드셨다고 해서 소외당하지 마시고, 연세가 드셨기 때문에 더 세련된 모습으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그런 멋진 부모님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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