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 아주 궁금할 겁니다. 왜 ‘부처님오신날’ 등을 밝힐까? 바로 무명이라고 하는 어둠을 반대쪽으로 바라다보는 부분이 바로 광명입니다. 빛이라고 하는 부분이 희망이 이야기하는 것이 되겠죠.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 이유는
암울해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고통 받는 중생에게
진리를 가르쳐 행복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신분이 부처님이시죠.
빛이 상징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인도라는 나라는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시기 전에 우리 등불을 밝히는 그런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진리를 추구하는 부분의 등불로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등불을 밝히는 부분의 유래도 있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이런 등불의 행사, 연등의 행사는 바로 아쇼카대왕 때부터라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아쇼카대왕은 인도의 전역을 통일했던 정말 대단했던 대왕이죠.
아쇼카라는 왕을 그냥 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왕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영토를 넓게 확장했고,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는 존경받는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교를 아주 옹호했던, 정말 불보살 같은 왕 중의 한분이 바로 아쇼카대왕이었습니다. 지금도 인도를 가보면 아쇼카석비가 있지 않습니까? 그 유적을 가는데 마다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멋진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등불로 감동을 주기보다는 부처님을 대하는 예경의 등불은 정성이어야 된다. 그래서 빈녀일등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주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구걸을 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정말 천박하고 가난한 여인이었죠.
이 가난한 여인이 어느 날 구걸을 하기 위해서 시내를 배회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등불을 준비하는 모습을 봤어요. 정말 색색이 좋은 연꽃등을 만들어서 막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라고 했더니 “너는 모르느냐? 지금 부처님께서 이곳을 오신다고 해서 그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기 위해서 등불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 오색등이 찬연하게 등을 만들고, 왕이 등을 만들고,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가난한 여인은 생각했습니다. “나는 전생에 지은 공덕이 없어 이렇게 가난한 빈자로 살고 있으되, 저들은 전생에 지은 복이 많아 저런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복을 짓기 위해서 부처님에게 예경하고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려고 하는 저 모습에 나도 동참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구걸을 하죠. 그래서 하루 종일 은자 3냥 정도를 얻습니다. 이 은자를 가지고 그는 기름집에 갑니다. 그리고 기름을 구합니다. 그 기름집의 주인이 그 기름을 구하는 여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가난한 거지 아닙니까? 당신은 지금 기름을 구할 것이 아니고 먹을 것이 필요할 것인데, 어찌 기름을 구합니까?”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때 가난한 여인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배가 고픕니다. 하지만 내 배고픈 순간보다도 미래에 내가 더 중요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전생에 지은 공덕으로 저렇게 복을 누리는데도 또 다른 복을 구하기 위해서 부처님에게 예경하고 부처님에게 등공양을 올리기 위해서 애쓰는데 나는 복을 지은 일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 굶는 한이 있어도 나는 부처님에게 등불로서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감동을 받은 기름집 주인은 풍부한 양의 기름을 줍니다. 많은 등들은 아름답게 장엄이 되어졌지만, 이 가난한 여인의 등은 그야말로 종지에 심지하나 박은 아주 알량한 등불이었습니다. 인은 정성스럽게 그 등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장엄되어져있는 한 귀퉁이에 그 등불을 밝힙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기도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도에 취해있을 때 늦은 밤, 갑자기 폭풍이 불어서 모든 등들이 다 꺼져버렸습니다.
왕이 밝힌 등, 귀족이 밝힌 등, 엄청난 거부가 밝힌 등, 모든 등불이 다 껴졌지만, 오직 한 등불만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보호막도 없이 알량하게 기름에 심지하나 박은 그 등불만큼은 오히려 폭풍우에도 꺼지지 않고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한하다 희한하다. 어찌 모든 등이 다 꺼졌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알량한 등 하나는 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꺼보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이상하다고 이야기 했을 때 목련존자가 나타나서 신통력으로 그 불을 끄려고 했지만 그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멀리서 부처님이 지켜보시고 이야기를 합니다. “목련아, 그것은 신통력으로 끄려 해도 꺼지지 않는 이 세상에 가장 귀한 등이다. 그 등은 바로 빈녀, 만타라고 하는 여인이 생명을 맞바꿔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정성을 통해서 밝힌 등이기에 그 등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가난한 여인 난타를 부처님께서 증명을 합니다. “멋 훗날 이 여인의 목숨을 담보해서, 정성을 다 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부분을 다 정성으로 바친 이 등의 정성에 의해서, 훗날 수미등광여래라고 하는 부처가 될 거다.” 라는 증명을 하셨다는 기도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처님오신날’ 등불을 밝힌다라는 의미는
바로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줘서
그가 가지고 있는 불성을 일깨우는 목적도 있겠으나
우리들의 정성을 다해서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불성의 씨앗에 불을 당기는 날이
‘부처님오신날’의 헌등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불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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