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28] 모든 것이 나타나는 이 공간 | 현상을 통해서 이 공간을 알아채라

Buddhastudy 2024. 8. 14. 19:15

 

 

부처님이나 육조 혜능 스님이나 깨달았다고 할 때

깨달은 사람은 무엇을 깨닫는가?

경에서 하는 용어를 쓴다면

자기 마음을 깨닫는 거죠.

자기 마음이 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근데 이 마음을

지금 우리들은 현대 용어로 바꿔서

막연하게 그냥 마음이라는 말은

워낙 마음이라는 말은

그 뜻이, 스펙트럼이 넓어요, 마음이라는 말이.

 

조금 더 명료하게

지금 나는 누구인가?’ 해서

현상에 가 있고

현상의 나는 몸하고 생각이죠.

딱 가장 대표적으로 말하면.

 

몸하고 나는 현상의 나고

그리고 본질의 나는

이때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의식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하여튼 제일 공부의 요점은

안목이라고 하는데

현상과 본질을 일단 구분할 줄 알아야 돼요.

 

그러면 나한테서 가장 현상과 본질은 핵심이

현상의 본질은 생각

그리고 본질은 의식

생각과 의식이 다르다.

이거를 알아채는 게

가장 중요한 공부의 포인트예요.

 

어떻게 다른가?

생각은 인연 따라서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

생각은 생멸한다.

내용이 바뀌잖아요.

 

근데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지금 깨어 있는 이 의식 자체

변하지 않는 것

불생불멸의 의식, 생멸의 생각

이것을 일단 가려보는 눈이 필요해요.

 

그러면 마음이 열려서 깨달은 사람은

자기가 길을 걷거나 지금 앉아 있거나 할 것 없이

마음이 열려서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열렸다, 이 말은

자기 의식이 자각이 되고

그리고 그 자각된 의식이

몸 안에만 있지 않다.

 

그러면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 의식이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에 있다, 말하기가 참 곤란하지요.

근데 분명한 것은

의식은 몸 안에 있지 않아요.

 

아주 깨놓고 이야기하면

몸 안에는 살과 뼈와 피 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지금 누구나 인간이라면

이렇게 의식이 있는데

의식이 이렇게 있지 않나요?

이렇게 있는데

이것이 일반인들은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이거죠.

근데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의식이 있는데

이 의식이 몸 안에 있지 않다.

 

어디 있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광대무변하지 않나요?

자기의 의식이

각자의 자기의 의식이 광대 무변화다.

 

그리고 그 광대무변한 의식 안에

인연 따라 지금 삼라만상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어서

그래서 마음이 열려 깨달은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마음이 열려 있다 이거예요.

마음이 턱 열려 있고

의식이 깨어 있어서

이 의식이 열려 있고 깨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눈앞을 바라보면

소위 말하는 시야

각자가 각자의 시야가 있지 않나요?

이 시야가 의식이다, 이거예요.

 

마음이 열려서 깨달은 사람의 특징은

자기 의식이 분명하다.

의식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이 시야가 자기 의식으로 느껴진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 시야라고 하는 공간적인 장소하고

그리고 의식이라고 하는 깨어 있는 이 생명의 특징 하고

굳이 말을 만들어 본다면

의식 공간이

항상 앞을 보고 있으면

이 전체가 의식 공간이 자각이 된다.

딱 이거 하나예요.

 

의식 공간이 자각이 되는 사람은

개오한 사람이고

이걸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

이걸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죠.

그런 분들은 지금 꿈에도 이런 걸 지금 모르고

그냥 몸을 나라고 하고 산다.

 

자아로서 살다가 의식을 한번 발견하지만

혜능에 의하면 그다음 공부는

자아가 의식을 한번 발견했지만

그다음 공부는 의식이 자기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자아가 의식을 봤다면

그다음 공부는

자아가 의식을 보는 게 아니고

의식이 자아를 보는

너무나 타이밍에 맞게 엠블런스 소리가 저렇게 들리네.

 

그러니까 공부는

내 의식 공간 속에 인연 따라

지금 저 구급차 소리가 띠뚱띠뚱띠뚱띠뚱 하면서 이렇게 들리는데

문제는 이렇게 개오한 사람의 심정은 어떤 거냐 하면

저런 소리가

이 공간 자체가 바로 나의 본래면목, 의식이다 하고

일러주는 느낌이다. 이거예요.

저 소리 자체가.

 

그리고 눈에 보이는

요즘 같으면 꽃망울이 막 이렇게

지금 창문으로 은행나무에 꽃망울이 맺혀서 몽실몽실

지금 큰일 났네.

지금 터지려고 지금

저거 지금 근질근질해서 난리가 났네요.

 

그러니까 저걸 보면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또 일어나는 소리가

여기가 지금 의식 공간이라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 준다.

 

그 말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따로 공부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일이 지금 눈앞에 있는 지금 이 시야 자체가

자기 의식이라고 하는

이거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삼라만상이

그것이 공부다.

 

이게 자기 본질이고. 자기의 본래의 면목인데

나는 누구인가?’

몸은 현상이고 의식이 본질이다.

몸을 움직이는 의식이 나의 본질이다.

 

근데 그 의식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 공간이

지금 나의 의식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고

일어나는 모든 소리가

지금 이 소리가 여러분 의식 안에서 일어난다, 이 말이에요.

이 소리가

여러분 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제가 여러분 의식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 여러분의 의식 하나고

놀랍게도 이 세계는

여러분의 의식 하나고

그 의식 하나 안에

이 현상이 마치 꿈처럼, 혹은 영화처럼

지금 이렇게 나타났다가 찰라생, 찰라멸

계속 바뀌잖아요.

이게 다다 이거예요.

 

이 세상의 실상은

여러분의 깨어있는 의식

그 의식 속에

의식 하나예요. 그냥

하나 속에 인연 따라 삼라만상이

그러니까 그 의식이

삼라만상의 모습으로 이렇게 출연했다가 다시 돌아가고.

돌아간다 그러잖아요.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

지금 이 텅 빈 의식에서

인연 따라와서

이렇게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고 있다.

예외가 없다.

 

따라서 나타난 모든 것은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이때 법은 Thing이에요.

나타난 현상 안에는 Everything이 무아

나라고 할 것이 없어.

왜냐하면 참나는 의식 하나니까.

 

그러니까 나는 누구냐?’ 할 때

김 아무개라 할 때는 현상이죠.

근데 나의 본질은 나의 의식이죠.

 

여러분, 의식 없나요?

그래서 조금 신기하긴 해요.

인간이라면

육체가 있고, 육체의 연장선상에서 물질이 있잖아요.

육체가 있고, 육체의 연장선상에서 이렇게 삼라만상이 있잖아요.

 

근데 인간이라면

물질만 있느냐 이거예요.

지금 여기에 물질만 있는가?

물질만 있지는 않죠.

 

근데 이거 못 느끼시겠습니까?

못 느끼겠다는 사람?

즉 물질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렇게 깨어 있는, 깨어 있는 이거를

옛 분들은 약간 소소영영 하다.

깨어 있는 이 소소영영은

이때 영이 신령스러울 영자거든.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 이렇게 눈앞에 살아있는 이것이

스스로 뭔가가 좀 신령한 게 있지 않나요?

물질만 있나요?

물질만 있으면 얼마나 메마른 세상입니까?

 

그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서 이렇게 있는

근데 이걸 어디에 있다고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의 발견을 먼저 해야 돼.

 

그리고 이렇게 길을 걸으면

매 걸음걸음마다 이것이 분명해지는 거예요.

 

보이는 것도 여기서 나타나죠.

지금 따라오십니까?

보이는 모든 것이 여러분의 의식 속에서 나타났죠.

들리는 것도, 소리도 여러분의 의식 속에서 소리가 나타나고

 

그러면 촉각이 있을 거 아니에요?

지금 여러분 같으면 앉아 있는 엉덩이 감각 있어요?

어디서 나타나요, 그 감각이?

여기서

이 의식 공간 안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한 생각 일으키면

바나나, 장미, 여기 노란 꽃이 있네, 튤립입니까?

이게 이 예쁜 튤립이 보고 계시겠네.

저는 안 봐도 떠올라요.

어디서 떠오르죠?

다 이 속에서 떠오른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다른 공부 없다.

다른 공부는 없다.

오직 하나

자기 의식 공간을 확인하는 것이

이게 공부다.

 

근데 습관적으로 이거를 놓쳐요.

자꾸 놓쳐.

놓치는 이유는 간단해요.

놓치는 이유는

의식은 전체인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생각을 가지고 이걸 분별해요.

그래서 뭐다, 뭐다하고 분별하는

순간 전체를 놓치는 거예요.

 

항상 의식은 전체고

분별하는 대상은 개체예요.

그러니까 개체에 한눈파느라고

전체를 놓친다 이거예요.

 

근데 지금 육조혜능 같은 경우에는

깨달아서 깨달음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조 홍인을 찾아갈 때

걸음걸음마다 자기 의식 공간을 자각하면서 걷는다.

보이는 것도 여기서 나타나고

들리는 것도 여기서 나타나고

걸어가는 감각도 여기서 그 감각이 나타나고

그리고 한 생각이

고향 가면서 두고 온 어머니 생각날 거 아니에요.

노모

그러면 그 노모가 어디서 떠오를까요?

여기서 떠오른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여기서 떠오른다.

 

근데 법칙이

모든 것이 떠오르는 의식 공간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모양도 없다.

변하지도 않는다.

 

근데 전체다.

근데 이 전체 안에

어머니가 떠오르면

개체들은 인연 따라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제행무상이고

제법이 이때 법은 영어의 Thing이에요.

제법, Everything이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

어머니의 모습이

그게 고정된 나라고 하는 실체가 아니라

의식이 인연 따라 그 모양으로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라서

모든 것에 진정한 아

모든 것의 실체는

의식 하나다 이거예요.

 

의식 하나가

인연 따라 정말 모든 것으로 나왔다가 사라지고 있어서

이 나온 세상, 현상계를 말로 하자면

꿈 같고

왜냐하면 기억으로만 남으니까.

 

여러분 어젯밤 꿈이 기억으로만 남는 거 이해되세요?

그것처럼 우리가 살아온 60년 인생도

어젯밤 꿈처럼 기억으로만 남아 있어요.

꿈 같고, 영화 같고.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것이 영화 같고

하여튼 영화 때문에 저는 많이 실감을 느꼈었어요. 한 번.

뭐냐하면 영화는

시각하고 청각 두 가지로 구성돼 있죠.

 

그러니까 보세요.

시각하고 청각만 동원되어도 홈빡 빠지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현상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생각, 감정, 감각까지

하여튼 총천연색으로 이게 동원이 되니까

여기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거예요.

 

정리하면

혜능이 타박타박 걸어갔을 때

그 혜능이 어떤 심정이었을까?

근데 마음이 열린 사람이었다.

 

부처님께서 새벽별 보고 깨달았다.

뭘 깨달았을까요?

새벽별을 보고

새벽별이 반짝이는 걸 보고

새벽별이 반짝이는

자기 몸도, 그리고 새벽별도

이 속에서 함께 이렇게 나타나서 반짝이는데

그걸 통해서 이 의식 공간을 깨닫는 거죠.

 

그러니까 현상이 없으면 못 깨닫는 거예요.

이것도 이해되나요?

현상이 있어야, 현상에 힘입어서 그걸 깨닫는 거지

 

그러니까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

이런 말 보조국사가 하셨잖아요.

 

현상에 미혹된 자는

현상을 통해서 다시 깨닫는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마음이 열린 사람은

현상의 모습, 소리, 냄새, , 촉각, 생각, 감각을 통해서

이것이 일어나는 이 공간을 알아챈다 이거예요.

 

부처님이 새벽별 보고 알아챘다 이거예요.

뭘 알아챘는가?

새벽별이 반짝 나타나는 그 공간 전체가

자기 의식이라는 것

자기라는 것

천상천하에 이거 하나가 있구나.

나머지는 이것 속에서

이것이 인연 따라 이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건 찰나생 찰나멸이라서

이걸 실체라고 할 수가 없구나.

 

저도 참 지겨운 것 같아.

이 말을, 똑같은 말을

매시간 반복해서 이렇게 하는데

또 이걸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세상에 여러분께서도

매번 같은 말을 하는데도 근데 새롭게 들리죠?

 

그만큼 우리가 지금 현상에 중독되어 있다, 이거예요.

끊임없이 저의 역할은

본질을 일깨워 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수업 시간이 좋은 이유는

수업하는 동안에

이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우리 함께 본질로서 깨어 있는 시간.

 

이거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돌아봤을 때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지금 우리처럼 제가 젊었을 때

그 선생님께서

계속 이 본질에서 함께 깨어 있습시다라고 말씀을 하실 때

그 넓은 홀에 앉아서

참 그 말 듣고 깨어 있는 것

뭔가 배운 게 아니에요.

돌아보면

어떤 뭔가를 배운 게 아니라

같이 깨어 있던 그 시간

돌아보면 인생에서 그 시간이 제일 좋았어요.

 

그러니까 그 2시간 동안

딴 생각 안 하고

이 본질 속에서 함께 깨어 있고

선생님은 계속 말씀을 하시지만

말씀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렇게 깨어 있는 그 시간 자체

그게 가장 인생에서 기뻤던 것 같아요.

그때가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

아마도 여러분께서도 이렇게 이 귀한 시간에

이렇게 오신 이유도

아마 같지 않을까.

 

뭔가 지식을 배우러 오신 게 아니라

이 순간, 지금 같이 깨어 있는 이거

여기서 이렇게 깨워서 있는 이 시간

이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시간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를 지금 같이 맛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근데 육조 혜능은

혼자 걸어갔지만 그랬을 거다, 이거예요.

깨어서 그 깬 정신 안에

모든 것이 다, 다 새롭게 보이고

난생처음으로 보이고

거기를 타박타박 걸어갔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