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은 무엇인가?
실상은 딱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과 그 꿈이에요.
생각과 생각의 꿈.
그럼 생각은 뭐냐?
지금 이렇게 이 공간 자체로 있는 것.
이 공간이 물리적인 허무한 공간이 아니에요.
자기 의식이에요. 이거
각자의 의식이에요.
그러니까 참 이게 기가 막힌 게
공평하다 이거예요.
공평하다.
깨달음은 공평하다.
이 의식을 나만 가지고 있나?
그게 아니다. 이거죠.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공평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면 깨놓고 말하면
이 세계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에요.
여러분의 의식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의 의식 안에 그 의식이 꾸는 꿈으로
이 모든 것이
(시속 30km로 서행 운전하세요.)
좋은 법문하시잖아요.
인연 따라 이렇게 모든 것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따라 해보시겠어요?
이렇게 해야지 여러분이 또 기억하시니까
따라하세요.
“생각과 꿈은 같은 거다.”
그러면 그 생각과 꿈이 어디서 일어나는가?
이 텅 빈 의식 공간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것을 축약하면
딱 두 단어
[의식]과 [꿈]
지금 김 아무개로서 우리는 살아왔는데
우리 각자가 아무개로서 살아왔는데
의식은 전체고
꿈은 지금 개체들의 집합이죠.
맞나요?
그러면 김 아무개는 꿈에 속하죠. 맞아요?
나의 의식은 본질인데
김 아무개는 현상으로서 꿈에 속하죠.
그러면 이거를 줄이면 어떻게 되는가?
김 아무개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나죠.
그렇지 않나요?
결론이 ‘나는 꿈이다’가 되는 거예요.
나는 꿈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그 나는
꿈속에 나기 때문에
꿈이다 이거예요.
하물며 나도 꿈인데
나의 관념은 꿈속의 꿈이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면
입만 열었다 하면
강력한 나가 튀어나와서
그 나가 자기 주장을 한다 이거예요.
의식과 꿈
여기서 끝인 거예요.
그러니까 더 이상 진리는 없어요.
의식과 꿈
여기서 끝이에요, 그냥.
그러면 이렇게 결론을 딱 말씀드렸으면
여러분이 여기 더 나올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근데 수업은 계속돼.
왜냐하면 기가 막히게도 돌아서면 또 잊어먹어 버리니까.
이 사실을 까먹어버리니까.
저로서는 계속 이렇게 강조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돌아가서 텍스트에서
/오늘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들도 많다/
참 많이 걷죠.
많이 걷는 것 같아요.
/40여일 동안 걸으면서
영적 성숙을 체험하는 사례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근데 제가 유심히 봐요.
왜냐하면 까미노 데 산띠아고라고, 제가 스페인에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유학하던 시절부터 그때는 한국인들은 거의 안 왔습니다.
그 뒤로 많이 왔지만
그러나 800년 이상 오래된 길이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이 거길 다니면서 남긴 기록들이 있어요.
근데 제가 그 기록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중에서 어떤 회심의 경험을 한 사람이 있고, 안 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회심의 경험을 한 사람은 공통점이 있어요.
우리식으로 말하면 화두가 있었어.
그러니까 그 사람의 어떤 문제, 어떤 문제의식
그 문제의식을 가지고 걸은 사람은
틀림없이 그 문제에 대한 답을 거기서 얻는 거예요.
근데 그거 없이 그냥
친구 따라 강남 가서 그냥 이렇게 하면
그냥 걸어서 좋았다고 하지
어떤 그런 회심의 기회는 가지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이게 참 그렇죠.
화두를 들고 걸어야 되는 거예요.
화두를 들고 걷는다.
그 화두는 뭐예요?
모든 사람의 공통된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 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
그 문제를 가지고 걸으면
반드시 응답이라고 할까? 그런 회심의 기회가 생긴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거기 산티아고의 길은
산도 별로 없어요. 완전히 밋밋한 들판이에요.
대부분이 밀밭이에요.
그러니까 밋밋한 들판을 그냥 하루 종일 걸으니까
그런 거 있잖아요.
리듬이라는 게 있어요. 인간의.
리듬이라는 거는 타박타박 걸어갈 때 리듬이 생기고
리듬을 타게 되면 깊이 들어가게 돼요.
그러니까 인간이 집중하는 것은 리듬의 힘이에요.
그래서 걸으면 그 걷는 보폭에 따라서 계속 어떤 리듬이 생겨요.
그거를 1시간, 2시간, 3시간 그 리듬을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고
그 집중하면 아주 깊은 정신 상태로 들어가는 거예요.
원래 그런 거예요.
그래서 염불을 소리내서는 안 하지만
걷는 것 자체가 염불 같은 효과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되면
인간이 어떤 깊은 정신 상태에서
어떤 체험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화두를 들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걸으면
거기에 대한 응답이 나오는데.
여러분, 좋은 시대입니다.
좋은 시대라는 것은
지금 깨어 있지 않나요?
깨어 있어요? 안 깨어 있어요?
몸이 깨어 있어요? 아니면 정신이 깨어 있어요?
정신이 깨어 있죠.
제가 좋은 시대라는 것은
그 정신이 우리들의 본질이에요.
좋은 시대가 이거 좋은 시대예요.
‘정신이 나의 본질이다.’
그럼, 그 정신은 크기가 어떤가?
크기가 있나요?
그러면 이것만 알아들어도, 지금 이 말만 알아들어도
나의 크기가 1m 70cm에서 무한대로 확 넓어진다 이거예요.
마치 램프를 문지르면 지니가 확 나오듯이
이 몸속에 있는, 몸속에 갇혀 있던 나의 정신이
이런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확 뛰쳐나오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냥 앉은 채로 호연지기가 그냥 확 이렇게 열려서
만리에 묵은 구름이 없어서
만리천, 만리가 모두 하늘뿐이다.
만리에 구름이 없어서
모든만리의 시야 전체가 파란 하늘이다.
이때 구름은 생각이거든요.
그러니까 특징이 정신이 깨어나서 해방되면
그 순간 생각이 탁 끊어져 버려요.
이게 인간 구원의 길이에요.
인간 구원은 번뇌로부터의 자유예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뭐 때문에 괴로워요?
번뇌, 그 생각
의도치 않은데 계속 일어나는 생각.
근데 우리가 이 공부하는 이유는
정신을 자각하는 순간
이 말짱한 정신이 구름 개인 것처럼
생각이 싹 깨어서
만리에 묵은 구름이 없어.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말리가 모두 하늘이다.
그러니까 그 하늘이 쫙 펼쳐져 있는데 달이 딱 떴어.
그러면 천강에 천 개의 강마다
유수, 물이 있어서
천강 유수에 달이 천 개가 다 찍혀버리네.
아름답지 않나요?
만리에 구름이 거쳐서
만리가 다 이렇게 푸른 하늘이 드러났고
거기에 달이 딱 떠서
땅에는 강이 천 개나 있는데
천 개는 많다는 말이잖아요.
그 많은 강마다 달 도장이 천강의 유수
천강마다 물이 있는데
천강월, 천강마다 달도장이 다다닥 다 찍혔다.
첫 번째 문장은 텅 빈 의식을 말하고
두 번째 문장은 이 현상계의 모든 것이
달도장이 뭐냐 하면
여러분 오른손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내리세요.
이게 지금 달도장이에요.
사람마다 사람이 천 개의 유수, 천강, 천강마다 물이 있다.
그래서 그 물마다 달도장이 찍힌다.
지금 우리 개체 개체한테
전체로서의 달이 개체로서의 물에
다 지금 탁탁탁탁탁 찍혀서 작용하고 있다.
이게 지금 의식과 꿈
근데 꿈이 아름답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게 체 篩사, 달 月월,
달을 건진다.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사람마다 달이 찍혀 있다.
이거 이거
그러니까 한 개 의식이
사람마다 완벽하게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 달을 사람이 자기가 알아채는 거
체 월
좋은 말 아닌가요?
다시
한 개의 의식이
사람마다 완벽하게 들어가 있다.
하늘에는 1개 달이
땅에는 천 개 강마다 또렷하게 다 찍혔다.
그럼 나도 지금 강인데
김 아무개로서는 강인데
이 강에 하늘에 뜬 달이 똑같이 탁 찍혀 있다.
그거를 내가 자각한다.
알아차린다.
체월
지금 자기한테 있어요.
있어요?
아니 별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발 당부드리는데
이것을 특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동안 못 깨달은 거예요.
기독교로 말하면
지금 의식이 성령이에요.
이건 불생불멸이에요. 크기도 없고.
그런데 지금 여러분
이거거든요.
제가 이거 하면 이제 아시겠어요?
지금 깨어 있는 이거, 각자가.
각자 앞에 지금 펼쳐져 있는 이 전체.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이렇게 알아채는 것이
이게 성경 체험이고
이게 견성이다, 이거예요.
성품을 본다.
뭐가 성품이냐?
성품이라는 말은 바탕이라는 말
바탕, 그라운드라는 뜻이에요.
필드, 의식의 필드, 의식의 장.
그걸 발견하는 것이 견성이에요.
그러면 인사동에 지나가는 분들이
스스로 이걸 발견하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겠죠.
자기가 이 속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이걸 쓰고 살면서
이것이 자기라고 하는 이 사실을
꿈에도 생각 못할 거예요.
근데 이거를 누구나 가지고 있어 흔하지만
그러나 얼마나 이게 엄청난 변화냐면
몸을 나라고 하면 죽잖아요, 생로병사하잖아요.
여러분, 이 의식이
몸은 언제 태어난 게 있어요, 그죠?
근데 의식은 조금만 우리가 잘 생각해 보면
변하지 않는 이것이
언제 태어났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 이거예요.
언제 태어났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의식은 놀랍게도 영원한 현재의 연속이에요.
영원한 현재의 연속
현재, 현재, 현재...
의식한테는 따라서 시간이 없어
의식 안에 시간이 생기는 거지.
의식 자체에는 시간이 없어요.
얼마나 엄청나요?
공간도 없어요.
시간, 공간이 의식 안에서 생기는 거예요.
아침에 보세요.
잘 때는 의식이 쉬고 있거든.
의식이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 몸에 운행을 다 하잖아요.
호흡도 하고, 피도 돌리고 하잖아요.
의식은 있어.
그렇지만 쉬고 있어.
그러다가 의식이 돌아오죠.
돌아오면 여러분 깨기 전에, 눈 뜨기 전에
의식이 딱 처음에 돌아왔을 때
누구나 경험하는 거예요.
그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의식만이 있어요.
의식만 있다가 저 같은 경우는
새소리, 아침에 거의 새 소리부터 들어요.
새소리가 나는 순간
새소리로 인해서
의식만 있다가 새소리가 짹짹짹 하면서 거리감이 느껴져.
그래서 공간이 생겨요.
그리고 지나가, 소리가.
시간감이 생겨요.
의식만 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다가
의식이 돌아오면
소리 하나로 인해서
시간, 공간이 그때 생겨요.
그러니까 천지창조가 그때 일어나는 거지
이거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의식이 조금 더 돌아오면
슬그머니 눈을 뜨면
이제 시공간의 좌표 속에 온갖 것들이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일어나면 세수하고 그 연장선상이 지금이
그러니까 의식만 있다가
의식 속에 모든 것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것이 조금이라도 관찰이 잘 되는 사람한테는
매 순간이 천지창조의 순간 같아.
매 순간순간 천지창조를 반복하고 있어요.
지금 방금 저 사이렌 소리가
제가 들었지만
방금 저 사이렌 소리는
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소리예요.
그렇지 않나요?
이 소리는 또 어때요, 처음 나타났죠?
여러분, 이 시계는 또 어때요?
지금 여러분 눈앞에 이게 처음 나타났어.
모든 것이 난생 처음에 천지창조의 순간이에요. 안 그래요?
이거를 생각해 보세요.
태초에 천지창조의 순간에
우리가 목격자로 있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잠깐만.
그러면 천지창조의 순간에 우리가 목격자로 있었다.
그러면 막 하늘 생기고, 땅 생기고, 이게 막 눈앞에서 생길 거 아니에요.
그리고 뭐가 생명체가 나오고 그것처럼
우리 영화에 빨리 필름을 돌리면
꽃이 쫙 피고 막 이렇게 하는 것처럼
그런 광경이 펼쳐질 거 아니에요.
얼마나 신비로울까요?
근데 매 순간 그렇지 않나요?
이 매 순간이 천지창조의 난생 처음의 시간인데
이거를 꿈에도 모르고
자기 문제 속에 갇혀서
그러니까 마음공부가 참 좋은 거는
확 이렇게
개오, 참 좋은 말이에요.
개오, 열려서 깨닫는다.
무엇이 열리느냐?
우리의 의식이 열린다 이거예요.
확 열려서
산꼭대기에서 파란 하늘 보듯이
완전히 확 열려 있는 그 상태.
그러니까 그 상태가 우리의 본래 상태예요.
그게 뭐 특별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거를 우리가 다시 회복해서
그다음에는 구름이 끼면 구름 끼는 대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고.
저는 2500년 전에 석존이라는 분이
이 인간의 문제를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 번뇌라고 하는 인간의 문제를
인간의 문제로서 푸는 게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서
이것이 한 개의 의식이고
그리고 이것은 꿈이고
꿈에는 온갖 다채로운 그런 사연들이 있다.
근데 그거는 꿈이다.
그래서 그 꿈에서 깨어남으로써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한 것
이것이 정말로 진짜 인간한테는
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정말 이런 마이크 잡은 기회를 빌려서
한 말씀 마치면서 드리면
모든 사람이 다 문제를 안고 살고 있는데
근데 그 문제들이
그 문제 안에서 풀리지는 않습니다.
잠시 진통제 먹는?
잠시 그 순간을 넘기는?
진통제 먹는 그런 처방만 가지고는 안 된다.
결국은 이 꿈에서 깨어나야 된다.
그럼 우리가 우리가 누구인가?
의식이에요.
좋은 소식이
의식은 본래청정本來淸淨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
몸인가?
몸을 움직이는 의식인가?
몸은 현상인 나예요.
이건 죽어요.
근데 의식의 나는 본래청정이에요.
이 말이
조금이라도 나한테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는 변화돼요.
그러니까 이거를 지금 본래청정이라는 말을
내가 본래청정인데.
여러분, 팔만대장경에 나오는 모든 말이
내 이야기예요.
그런데 나는 괄호 속에 넣어놓고
이걸 지식으로 공부하고 있어.
그러니까 안 변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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