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31] 주객이 사라질 때 에고의 존재방식

Buddhastudy 2024. 8. 22. 19:34

 

 

불리감이 존재하는 방법이

여기다 하나 더 보태면

주객이에요, 주객.

 

분리감이 존재하는 방식은

주객이에요.

나와 대상이에요.

 

근데 교묘하게 에고는

마음공부하는 사람한테는

객의 자리에 깨달음, 진리 이런 걸 놓아요.

그럼으로써 주가 성립하고 있어

 

그래서 그 객을 놓아야지

주가 사라지는 거예요.

이건 하나의 비밀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걸 십우도에서 많이 이야기를 해

십우도에서 7번이 소를 놓는 거예요.

소가 사라지는 것

7번이 소가 사라지는 것

8번은 사람도 사라지는 것

동그라미 하나만 낳는 것

 

그러니까 7번에서 처음에는

소를 찾고, 구하고, 잡고, 얻고, 치고

같이 소 타고 다니고, 피리 불고 다니고 하잖아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에는 소를 놔야, 소가 사라져야 돼.

그 법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 법이 사라지면 남는 게 아가 남아요.

 

그러면 법이 사라지면

자동적으로 연기법에 의해서

법이 사라지면 아도 사라져.

그러면 원만 하나 딱 남아.

 

그거를 주객탈락이라고 해요.

주객탈락.

 

일본의 도겐 선사가

자기 깨달음을 주객탈락이라고 불렀어요.

주객이 탈락한다.

 

달마에게 양 무제가

당신 누구요?” 했을 때

달마 처지에서는 자기가 의식이죠.

근데 나는 의식입니다하면

벌써 의식이 그 의식이 아니죠.

지금 이해되세요?

 

나는 의식인데

근데 내가 말로 나는 의식입니다하면

그 의식은 그 의식이 아니야.

이름이 의식일 뿐이지.

 

그러니까 나는 무엇입니다라는 말할 수가 없고

할 수 없이 말은 해야 되니까

불식

이때 식은 알다라는 뜻이에요.

불식, 모르겠습니다.

근데 이게 답이라니까

 

불식이라는 게 불회, 부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것이

여기 하나의 비밀이에요.

무슨 비밀인가?

모른다는 거 앞에서는 주객이 사라져요.

주객이 사라져요.

 

지금 우리 공부가

여러분, 노자도덕경 첫마디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이렇게 시작되거든요.

 

그럼 보세요. 도라는 말이 옥편에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이 있어요.

도는 진리죠.

중국에서 말하는 도

가도, 두 번째 나오는 도는 말하라고 하는 뜻이에요.

도라는 말이 길 도, 진리라는 뜻도 있고

또 옥편에 보면 두 번째 뜻은 말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도라는 말이.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가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비상도, 영원한 도가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부처는, 진짜 부처가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다.

 

진짜 하나님이 아니면 뭐예요?

우상이에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하나님을 말로 표현하면

그거는 그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우상이에요.

 

그러니까 노자도 지금 딱 첫마디에

도가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라고 하는 것은

비상도, 영원한 진실된 도가 아니다.

요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지금 전부 다 동양의 지혜예요.

 

말을 놓는다. 관념을 놓는다.

왜냐?

에고가 철석같이 관념을 쥐기 때문에 그래요.

 

에고는 쥐지 않으면 자기는 죽어.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우리를 속여서

이게 진리야라고 우리한테 보여줘서

우리로 하여금 쥐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에고가 존속한다.

그걸 부수기 위해서는

내가 자기를 돌아봐서

내가 나도 모르게

이게 진리라고 붙잡고 있는 게 없는가?

 

우리는 나쁜 것도 없애야 되지만

좋은 것도 잡으면 안 돼.

 

하느님을 믿는 순간

하느님하고 나하고 둘로 벌어지잖아요.

 

그러면 진정한 하느님을 믿는 거는 뭐예요?

하느님도 없고 나도 없을 때

통으로 하느님과 나가 둘이 아닌.

 

/깨달음은 자기의 허물을 보는 거지

별 뾰족한 깨달음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허물은 뭐예요?

자기 분리감이에요.

 

이 분리감의 작동 기재는 생각이고

끊임없이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그게 자기 허물이에요.

그걸 보는 거예요.

 

그걸 놓아버리면, 생각을 놓아버리면

, 생각을 멈추면

, 실상을 본다.

이게 법칙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를 못해.

는 무엇의 지인가?

멈춘다, 멈출 지. 생각을 멈추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못 깨닫는 이유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이 말은 또 다른 말로 하면 뭐예요?

끝내 생각으로 풀려고 해.

 

그러니까 나 미치겠어.

다 필기하고 있잖아, 지금.

지금 생각을 멈추라고 하는 이 말을 또 필기하고 있잖아.

전부 다 지금 쓰기 바빠요.

 

자기가 보여요?

그 자기를 봐야 되는 거예요.

상황 이해되세요?

 

주객을 탈락하려면

진리를 객관 대상으로 소유하려고 하는 에고

이 습관, 이 끈질긴 습관을 봐야 돼요.

 

저의 입장에서는

지금 보는 이것이 의식이에요.

말로 하자면

지금 보는 이것이 의식이에요.

 

그러면 의식은

김 아무개라는 주관하고

여러분이라고 하는 객관을

의식은 같이 보고 있어요.

 

다시, 따라오시나요?

의식 입장에서는

주관 객관을 같이 보고 있어요.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김 아무개는

이 주관은 객관과 더불어 현상에 속하는 거예요.

현상은 꿈이에요.

그럼 나는 꿈에 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줄이면 나는 꿈인 거예요.

 

우리들은 개체로서는 꿈이에요.

근데 그 개체를 통해서

실제로 보고 듣고 하는 이 현상을 경험하는 것은

본질이에요.

 

꿈을 경험하는 자는

꿈속에 나오는 그 아무개가 아니고

꿈을 꾸는 의식이

꿈을 경험하는 거예요.

 

내가 의식이라는 것으로 완전히 들어가려면

마지막 남아 있는 꼭지가

주관이라고 하는, 아상이라고 하는 에고.

 

근데 그 에고가 없어지는 방법이 뭐냐?

진리가 없어져야 에고가 없어진다.

 

그러니까 진리가 진리를 가로막고 있어요.

부처가 부처를 가로막고 있어

신이 신을 가로막고 있어.

 

왜냐하면 그 신은 내가 만든 우상이기 때문에

이거를 딱 알아차려서 놓는 것이

그러니까 공부는 용기를 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