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33] 스스로 깨어나는 법 | 본질이 현상을 경험한다 (feat.인식의 전환)

Buddhastudy 2024. 8. 29. 19:19

 

 

꿈에서 깨면

꿈속에 나가 사라지는데

그러면 꿈속에 나가 사라지면

꿈의 기억도 사라져야 되지 않나?

이해되세요?

 

근데 꿈에서 깼는데, 꿈속에 나는 사라졌는데

꿈의 내용을 내가 지금 꿈을 깬 상태에서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네.

그러면 어떻게 돼요?

꿈을 경험하는 자가, 꿈속에 나가 경험하느냐?

꿈속에 나가 경험했다면

꿈을 깨자마자 꿈속에 나는 사라지니까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을 텐데

그게 아니라 꿈을 깨고

꿈속에 나는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꿈의 내용을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네.

이상한데? 뭔가 이상한데?

하는 느낌이 있는 거예요.

제가 실제로 느꼈던

이상한데

그리고 왜 그렇지?” 하고 돌아와 보니까

 

결론이 뭐냐 하면

/꿈을 경험하는 것은 꿈속의 사람이 아니고

꿈을 꾸는 사람이 꿈속의 내용을 경험한다./

이렇게 결론이

논리적인, 사실에 근거한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이거 중요한 부분이에요.

실제 꿈을 경험하는 것은

꿈속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고

꿈을 꾸는 사람이 꿈을 경험하는 거다.

이 말 이해되세요?

 

이거 약간 이 사실을 알아챈 그 순간

약간 소름이 살짝, 소름이,

형이상학적인 공포

뭔가가 이게 신비로운, 살짝 소름이 돋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이 말 맞아요?

보세요.

꿈을 꾸는 사람이 뭐냐 하면 의식이죠.

맞아요?

 

그러면 꿈이라고 하는 현상을 실제로 경험하는 주체는

본질인 의식이죠.

그래서 이런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거예요.

 

/본질이 현상을 경험한다./

 

그럼, 이 현상에 꿈도 있어요.

맞아요?

꿈만 있는 게 아니고 생시도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

꿈이든 생시든 본질이 경험하는 거다.

이 말도 따라옵니까?

 

그 본질이 뭐예요?

의식이죠.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 대입을 해봅시다.

이 하나의 법칙에 나를 대입해 봅시다.

지금 이 순간 김 아무개가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본질인 의식이 김 아무개를 통해서 보고 있다.

맞아요. 따라옵니까?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보는 것은 본질인 의식이고

본질인 의식이 김 아무개의 눈을 통해서

이 현상계를 지금 보고 있다

보고 있다를 다 뭉쳐서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본질인 의식이

김 아무개의 귀를 통해서

지금 소리를 듣고 있다.

맞나요?

 

그러면 여러분,

이 말 지금 지금 맞다 했죠?

맞다, 한 사람은 책임져야 돼.

책임진다는 건 무슨 말인가?

 

의식의 다른 이름이

지금 본질,

우리가 지금 알아듣기 위해서 의식이라는 말을 썼어요.

근데 불교에서는 이 의식을 심즉시불, 부처라고 불러요, 부처.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신이 너무 크니까 성령,

적당히 타협해서, 우리 간이 아직까지 거기까지는 안 커서

중간쯤 성령이라고, 실제로 부르니까.

의식, 부처, 성령,

 

지금 보세요.

지금 이 순간 부처가 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성령이 보고 있다.

그러면 이 부처는 석가모니라고 하는 석존에게 나타난 그 의식이 안 죽고

도구를, 기계를 바꿔서

김 아무개라고 하는 도구로 바꿔서

지금 그 의식이 똑같이 이렇게 보고 있다.

따라오시나요?

 

그러면 약간씩 소름이 돋는 것이

여러분, 내가 이 순간만 그렇게 하는가?

아니면 1시간 뒤에도 그럴 건가?

한 번만 딱 생각해 봅시다.

 

이 순간만 보는 것이 김 아무개가 보는 게 아니라

이 순간 본질인 의식

다른 말로 하면 부처, 혹은 성령

 

지금 이 순간 성령이 보고 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성령이다.

김 아무개라는 건 없다.

실제로는 성령이다.

 

그러면 여러분, 이 말을 받아들이기가

지금 갭이 있어요.

평상시의 사고방식하고

평상시 사고방식은 그냥 넋 놓고 내가 본다하고 이렇게 하는데

지금 제가 말한 거는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논리적이지 않나요?

 

그러면 논리로서 입증되는 것은 뭐냐 하면

실제로 보는 것은

나의 생각이 보는 게 아니라

생각조차도 보여지는 객관이고

실제로 생각을 보는 것은

나의 이 멀쩡한 의식이 보고 있는데

이게 부처다 이거예요.

김 아무개가 아니고

김 아무개는 보여지는 것이고

실제로 보는 것은 의식인 부처가 보고 있다.

 

그러면 이게 지금만 그럴까요?

아니면 늘상 그래왔을까요?

늘상 그래왔죠.

또 나만 그럴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이 그럴까요?

늘상 그래왔기 때문에 진리예요.

안 변한다 이거예요.

안 변해야만 진리예요.

늘상 그래왔기 때문에 진리고.

 

또 나만 있으면 진리 아니에요.

모든 사람한테 공통, 평등해야만 진리예요.

그러면 나만 의식을 쓰고 있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의식을 쓰고 있고

그리고 그 의식을 가지고 보고 있죠.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6개의 감각기관이 있어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촉감을 느끼고, 그리고 생각하고.

 

그러면 이거 전체가 다

실제로 보는 것은 부처가 본다.

근데 그 부처가 김 아무개의 눈만 통해서 보는 게 아니라

지금 선생님들의 눈을 통해서도 보고 있어서

그 본질인 의식은 눈이 천 안이다.

이 말 옵니까?

 

그리고 촉감을 느끼는 게

김 아무개의 손을 통해서만 촉감을 느끼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을 통해서 촉감을 느끼니까

손도 천 개란 말은 많다는 뜻이에요.

천수, 천 개의 손과

천안,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의식은.

그래서 정말로 입체적으로 다양하게 이 세계를 보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본질이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게 지금 맞는 이야기죠.

 

본질이 의식이죠.

그리고 본질 입장에서는 본질은 안 변하는데

현상은 다 변하니까

본질 입장에서는 현상이 꿈 같아.

이것도 이해됐나요?

 

찰라 간에 지금 변하잖아요.

실제로 찰라 간에 변하지 않나요? 이 현상이

안 변하는 의식 입장에서는

변하는 삼라만상이 꿈 같아요.

 

그러면 한번 따라와 보세요.

내가 태어나서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경험하는 게 뭔가?

실제로 나한테 일어나는 일은

지금까지 제가 하여튼 60년 넘게 살았으니까

60 곱하기 365 하면 20,000일을 넘었네.

제가 20,000일을 넘게 살았는데

그 매일매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뭐냐?

본질이 현상을 경험한 거다, 이거예요.

 

지금 이 김 아무개라고 하는 인생을 돌아보면

김 아무개가 인생이라고 하는 히스토리를,

스토리를 지금까지 써왔다고 생각하지만

그거는 착각이고

실제는 본질이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본질이

몇 초 몇 초 현상을 경험해 온 것뿐이다.

이 같은 일이 끊임없이 일어났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러면 본질이 현상을 경험한다이 말을 다른 말로 할게요.

의식이 꿈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 이게 의식 입장에서는

생시도 현상이라서 꿈과 같아요.

 

그러면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의식이, 의식이 꾸는 꿈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할 수 있어요.

아마 여러분께 제가 질문해 보세요.’

그러면 틀림없이 나오는 질문이 뭐냐 하면

업장을 어떻게 해소합니까?”

혹은 윤회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 하시겠죠.

반드시 나오겠죠.

 

보세요.

업장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업장을 어떻게 제거합니까?” 할 때

업장이 본질의 거예요?

아니면 현상에서 나오는 김 아무개의 거예요?

 

업장은 습관이잖아요.

습관의 장이잖아요.

그 습관이 현상에서 일어난 거예요?

아니면 본질에서 일어난 거예요?

 

모든 습관은

몸의 습관이죠.

생각의 습관이고,

감정의 습관이잖아요.

그것들은 지금 현상에 속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현상에 속하는

몸하고 생각, 감정을 합친 아무개를 나라고 착각하고

그 나가 가지는 습관, 내 마음에 안 들어

이걸 어떻게 내가 바꿀까? 없앨까? 하고 고민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이런 시간에 질문해 보세요그러면

그 고민을 질문한다.

 

근데 제 입장에서는

그게 사실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의 착각입니까?

업이니 윤회도

제가 조금 전에 지금 본질은 안 변한다 그랬잖아요.

근데 변하는 것은 현상이잖아요.

 

그럼, 윤회도 본질에 속하는 거예요? 현상에 속하는 거예요?

현상에 속하죠.

그럼 본질 입장에서는 현상이 꿈이죠.

 

그래서 제가 누누이

/꿈에서 깨면 꿈속의 내용은 환상이다.

그건 있는 게 사실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제가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깊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소름이 끼치는 것은

제가 오랫동안 문제를...

 

그러니까 제 문제는 간단하게 이거였어요.

꿈에서 깨니까 꿈속의 고통이 1초도 안 걸려서 즉각 사라지더라.

사실이 아니니까.

 

그러면 많은 깨달은 분들이

이 생시가 꿈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이 생시에 나의 고통이 지금 있는데, 그렇잖아요.

 

그러면 이게 만약에

이 생시가 꿈이라는 것을 내가 알아채고

이 꿈에서 깨면

즉각 생시의 고통도 사라질 거다.

 

그러면 이 생시라고 하는 이걸 깬다는 게 뭐지? 하고

초점이 그쪽으로 맞춰져서

계속 뭐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뭐냐 하면

생시라고 하는 이 꿈에서 깬다는 건 뭐냐 하면

몸을 나라고 한 게 꿈이었다.

생시라는 꿈이다. 이거예요.

몸을 나라고 하는 것이 생시하는 꿈이다.

 

근데 알고 봤더니

몸이 나가 아니고, 몸을 보는 것이 진짜 나더라.

그럼, 진짜 나는 몸을 보는 것이니까

의식이잖아요.

 

의식은 크기도 없고, 중력의 법칙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시간에서도 벗어나 있고, 공간에서도 벗어나 있고

그리고 의식이 아침에 딱 깨면

이 세계를 이렇게 창조하고

의식이 싹 닫아버리면

이 세계가 싹 사라지는 것이 꿈이다.

이거예요. 의식한테는

의식한테는 이 세계가 꿈이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의식이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

 

게임하는 거하고 비슷하네.

게임 속에 나의 캐릭터가 나와서 하는데

실제로는 게임 밖에서 게임하는 내가 하는 건데

근데 그 게임 속에 내가 있어서

무슨 모험을 벌이고 있잖아요.

그러다가 또 죽기도 해, 걔가. 게임 속에서는.

그럼 다시 또 부팅을 다시 하면 또 또 또 또 하잖아요.

 

근데 자꾸 하면 어떻게 돼요?

그 경험이 쌓이니까

그 어려운 고비들을 자꾸자꾸 넘어가잖아요.

 

그러니까 일종의 지금 게임하는 사람이

게임 속에서 자꾸 게임을 함으로써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성숙해지는 것처럼

지금 이 생시라고 하는 이 꿈도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하는 생각도 얼핏 들기는 해.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실제로는 의식이 이 꿈을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꿈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로서의 김 아무개는

날고, 기고, 뛰고 막 하지만

이 꿈을 꾸는 의식 입장에서는

이 꿈을 꾸고

꿈속에 나오는 환경을 통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자기가 이걸 재미라고 하든지

아니면 자기가 어떤 성장을 한다고 하든지

하여튼 간에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인생에 반드시 고통이 있는 이유는

실제로는 누가 경험하느냐 이거예요, 그거를.

 

근데 의식은 그 고통에 진짜 1도 물들지 않아요.

꿈이에요.

 

그러니까 의식은

즉각 깨고 싶으면 깨버리면 끝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꿈속에서는

정말 기왕 이게 꿈인 줄 안다면

온갖 경험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 이거를 우리한테 대입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한테, 지금 이 순간 대입을 하면

이 순간에도 나는 김 아무개가 아니고

지금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정신 차리면

의식이 이 생시라고 하는 꿈을 경험하는 것일 뿐이에요.

지금 보는 것이 의식이 경험하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보는 것이

의식이 지금 현상을 경험하는 거예요.

듣는 것이

의식이 이 듣는 소리를 경험하는 거예요.

냄새가 나면

의식이 그 냄새를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맛있는 거 먹을 때

실제로는 의식이 그 맛을 경험하고 있는데

경험하고 있는 현상은 꿈이고.

 

꿈이니까 어떤 의미로는 역설적으로

꿈이니까 더 신나게 살아야 되지 않나요?

 

그러니까 정말 다양한 이 세계를

지금 자기가 만들고, 스스로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사실을 우리가 알아채고

이런 사실을 먼저 알아챈 사람들이

예수님이나 석존이나 이런 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분들의 가르침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우리도 의식으로 깨어나니까

에고가 깨닫는 게 아니고

의식이 깨어나서 에고는 물러나고

의식으로 이 세계를 경험하니까

이 세계는 굉장히 아름다워요.

 

제가 지금 1시간을 좀 약간 설명을 쭉 드렸는데, 자초지종을

지금 우리 공부는

나는 누구인가?”에서

몸이 아니라 의식이다.”

 

근데 이 하나의 전환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크다.

꿈에서도 깨어날 뿐만 아니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이거예요.

 

의식은 생사를 하지 않아요.

불생불사.

 

나는 생사하는 몸이냐? 불생불사인 의식이냐?

하는 이 자각 하나가

나를 영원히 구원해요.

나를 영원히 구원한다.

 

이거를 남이 해요? 내가 스스로 해요?

스스로 깨어나는 것

스스로 이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