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멘토·코딩교육

[육조단경70] 깨달음이 왜 필요한가?

Buddhastudy 2025. 1. 8. 19:27

 

 

제가 그동안에 많이 생각해 봤는데

제가 그렇고, 또 일반적으로 여러분들도

마음공부의 목적은

생각이 일으키는 번뇌 망상으로부터의 해탈

이게 마음공부의 목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생각이 많으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번뇌 망상은 우리를 괴롭게 만들어요.

그리고 번뇌 망상이 많으면

당연히 건강이 불건강해지고

정신이 불건강해지면 육체도 불건강해지죠.

 

그러니까 지금 모든 문제의 가장 핵심은

번뇌 망상으로부터 우리가 해탈하는 것

이것이 공부의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 생각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되죠.

 

지금 목적은

번뇌 망상으로부터의 해탈.

근데 그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 것은 생각이고

그리고 그 생각을 컨트롤하려면 어떤 힘이 필요한가?

깨어 있는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가 깨어 있기 위해서

깨달음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목적이

깨달음이 목적이 아니고

깨달음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번뇌 망상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

깨달음이 필요한 거예요.

 

그렇게 가닥을 잡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생각이 일어난다 이거예요.

근데 그것을 우리가 깨어 있어야 그 생각에 딸려 가지 않는다.

 

깨어 있으려면 무엇이 깨어 있는가?

결국 우리의 본질인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깨달음은 깨어남이잖아요.

깨달음이 필요하다.

 

결국은

생각이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생각이라고 하는 꿈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깨어 있기.

이게 지금 공부의 가장 포인트라서.

 

따라서 여러분,

지금 이렇게 법문을 듣고, 이런 원리를 알면

그다음에 법문 듣는 것만 가지고는

생각을 이길 수가 없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법문 듣고 이치를 이해하는 것만 가지고

생각을 컨트롤 할 수가 있을까? 하면

제 경험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아무리 이 법문을 많이 들어서 이치를 알아도

그것만 가지고는 생각을 이겨낼 수가 없다.

 

생각의 힘은 굉장히 막강해요.

여러분, 안 그래요?

인정하세요?

생각이 정말 막강하게 우리를 끌고 다닌다.

그래서 괴로운 거예요.

 

그러면 일상에서 생각을 줄이려면

우리가 이런 이치를 배운 다음에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생각을 고요하게 하는 그런 연습을 일상에서 해야 돼요.

일상에서 생각을 고요하게 하는 연습을 한다.

그래서 그것이 익어 들어가면 생각이 고요해진다.

 

생각이 고요해지면

그 상태가 천국이에요.

생각이 고요한 상태가

사실은 극락정토다, 정토다.

 

정토라는 말은 깨끗한 땅이라는 뜻인데

무엇이 깨끗한가?

번뇌 망상으로부터 깨끗한 우리의 마음 상태

이게 지금 정토거든요.

 

지금 하여튼 포인트가

내가 생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러려면 하여튼 생각을 봐야 돼요.

생각을 보고, 생각과 나 사이에 자꾸 거리를 떼야 돼요.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고 나가 굉장히 가까워요.

그래서 생각나자마자 덮어 씌워버린다 이거죠.

생각이 덮어 씌...

생각이 귀신이에요.

귀신에 씐다고 할 수 있어요, 생각이.

 

그래서 거리를 두고 보는 거부터 시작을 해서

일상에서는 생각을 봐야 되고

그리고 시간만 나면

고요히 앉아서

그 앉은 상태에서, 생각 없이 앉아 있기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그 훈련이 꼭 필요해요.

 

그래서 일단 여기서는 이치를 한번 말씀 드려본 거예요.

일상에서는 생각을 자꾸 봐야 돼.

 

그러니까 여러분께서 이런 말을 들으시고

저는 궁금한 게

실제로 볼까?”

여러분, 이런 말을 듣고

수업 끝나고 돌아가서

여러분께서 일상에서 자기 생각을 실제로 보는지, 안 보는지

저는 굉장히 궁금해요.

근데 궁금하지만 답은 알아.

여러분이 웃으시네요.

 

왜냐하면 여러분, 이 말을 새겨 한번 들으세요.

정말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정말 깊어요.

자기 생각을 보세요라고 아무리 일러드려도

여기서는 그 말이 맞네, 그렇게 해야 되겠네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시면 거의 까먹어버리세요.

그것을 지금 반복을 계속 저는 경험하고 있어요.

 

어릴 때 학원 다녔잖아요.

학원 선생님이 숙제 내주고, 또 체크하고, 해서 계속 시켜서

실제로 하는 사람

그 숙제를 내주지 않고 알아서 하세요하면

그 학생이 공부하겠느냐 할 때

공부 잘 안 하지요.

그거랑 비슷해요.

 

여러분 우리가 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보면

이렇게 여러분하고 계속 만나잖아요.

오늘 처음 온 분도 계시는데

정말로 일상에서 틈날 때마다

자기한테 일어나는 생각을 보는

계속 이거를 습관화시키세요.

이게 마음공부니까 이걸 하세요라고 이렇게 말씀을 드려서

실제로 하는 분이 있고

건성으로 듣고 그냥 다니는 분이 있어서

세월이 조금 흐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나요.

그래서 가끔씩 깜짝 놀라는 게

정말로 순수하게 이런 말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갑자기 몇 달 만에 실력이 확 늘어서 오는

그런 사람을 가끔 만나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기 생각을 봐야 돼요.

그 시간을 늘려가야 돼요.

그 생각을 보는 그 시간을 실제로 늘려가야 돼요.

이제 그것이 이 수업 많이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실제로 하는 게 중요하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보입니까? 보는 것이 뭡니까?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알을 굴리면서 생각을 생각으로 답을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몸에 그렇게 배어 있어요.

 

그런데 일러드리기를

생각으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생각으로는 안 나옵니다.

생각을 멈추세요.

생각을 멈추고

목은 없다 치고

목 위로는 없다 치고

그냥 목 아래만 가지고

생각하지 말고 답을 찾아보세요.”

이런 식으로 말씀을 드리거든요.

 

그러면 그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또 한참 걸려요.

목은 없다 치고, 목 아래로 어떻게 답을 찾지?” 하는

이 문제 푸는 데도

시간이 또 상당히 걸린다 이거예요.

 

자 그래서 생각을 일단 멈추세요하는 이 말이

오늘도 육조 스님이 제일 먼저 사람을 깨닫게 할 때

생각을 멈추세요라는 말부터 먼저 해요.

그러니까 하나의 조건이에요.

생각이 멈추어야만이 깨달을 수가 있어요.

지금 생각을 멈춘다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그래야만이 아 이것이로구나하는 한마디를 내뱉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없을 때 없을 때 보는 것이 뭡니까?” 할 때

, 이것이 이로구나하는 한마디를 내뱉게 될 것이다.

 

깨달을 찬스.

보세요.

성품이라고 표현하는

성품, 우리들의 본질.

인간한테는 변하는 모습이 있고,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어요.

변하는 모습은 몸하고...

 

몸은 변하지요? 생각 감정은 변하지요?

변하는데

인간한테는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어요.

 

자 일단 몸하고 생각, 감정에서

여러분 보세요.

몸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이죠.

지금 다 따라오십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보이는 것은 현상이지 본질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러면 몸은 지금 보이죠.

몸은 본질이 아니에요. 현상이에요.

현상은 이렇게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들이에요.

 

생각 생각

이번에 뭐 홍수가 많이 와서

TV 화면에 홍수 모습 떠오릅니까?

생각 떠오르나요?

생각이 보여지죠?

그냥 쉽게 뭐 사과, 빨간 사과, 떠오르잖아요.

몸도 보여지고, 생각도 보여지고

그리고 자기가 기쁘다, 슬프다, 화가 난다 할 때

그것이 지각이 되나요? 안 되나요?

되지요.

몸도 보여지고, 생각도 보여지고, 감정도 보여지니까 이것들은 현상이에요.

 

그런데 보세요.

몸을 볼 때 몸을 보는 게 있죠, 맞아요?

생각을 볼 때 생각을 보는 것이 있죠.

감정이 일어났을 때 감정을 보는 것이 있다.

따라오십니까?

 

그래서 황벽이라는 분이

견성(見性)이란 무엇인가?”

본질을 본질 성()자예요.

본질을 견_ 본다, 발견한다.

본질을 발견한다.

견성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견성은 본질을 본다는 뜻이에요.

 

견성이란 무엇인가?” 하고 답을 하기를

견성이란 본질을 본다는...

이 깨달음을 견성이라 하거든요.

견성이란 무엇인가?”

보는 것이 곧 본질이다는 뜻이다.

 

본질을 본다 할 때

여러분 지금 방금 몸 보이는 거죠.

생각도 보이는 거죠.

감정도 보이는 거죠.

그러면 몸을 보고, 생각을 보고, 감정을 보는 것이 본질이에요.

오케이?

 

제가 지금부터 본질을 바로 딱 가리킬 거예요.

제가 본질을 딱 가리키면 여러분은

하고

여러분 안에 있는 본질을 딱 알아채셔야 하는 거예요.

하실 거예요?

이거 하러 오신 거 아닌가?

아는 분은 확인하시고

모르는 분은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자기 본질을 한번 발견해 보세요.

 

자 본질이

가장 본질을 쉽게 말 해서

몸은 현상인데

몸을 보기도 하고, 또 다른 말로는 몸을 움직이기도 해요.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우리처럼 21세기 한국인들한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쓰는 언어는

지금 내가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나의 의식이다할 때

지금 나의 의식이라는 말은 알아들으시나요?

 

몸이 물질이니까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죠.

그러니까 이 몸이

지금 나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나의 의식이에요.

그러면 의식이 이것이다라고 제가 가리키면

여러분이 아 이게 의식입니까?’ 하면

발견하면 그게 견성이다 이거예요.

여기까지는 따라오시나요?

 

그러면 여러분도 한번 손을 들었다가 내려보세요.

여러분의 의식이 손을 들었다가 내렸어요.

맞아요?

 

우리는 지금, 지금까지는

육체의 눈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육안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나타난 것만 보느라고

이 나타난 사물이 삼라만상이 나타나고 있는

투명한 공간 자체인 바로 자기 의식을

못 보고 살았던 거예요.

 

근데 이런 수업을 통해서

딱 이렇게 직지, 곧바로 가리킨다, 본질을.

본질은 여러분의 의식이에요.

여러분의 의식을 곧바로 가리키니까

여러분께서 탁 알아들으면, 초점이 딱 맞으면...

 

여러분 지금 보세요.

지금 이렇게 내가 살아 있다는,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그런 감각은 있죠.

그거 없어요? 있죠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은 있죠.

 

그러면 내가 살아있다는 그 감각이

내가 이렇게 있다고 하는 감각이

육체가 스스로 느끼는 거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육체는 어디까지나 물질이기 때문에.

육체는 물질이라서 스스로 자기가 있는 줄을 몰라.

 

근데 육체가 이렇게 있거든요.

육체가 이렇게 있다고 느끼는 것은 육체가 아니고

저의 깨어 있는 의식이에요.

 

그러면 이 세계의 실상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한 개의 본질 속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그래서 이 투명한 구슬 같은 것이 지금 보는 것이고

그리고 나타난 것은 좀 보여지는 것이고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이 지금 만나서

이 세계가 이렇게 지금 성립이 되고 있다.

 

이 순간에도

본질과 현상이 만나서

본질을 불교에서는 공이라고 하고

현상을 색이라고 해요.

공 안에 색이 나타났어.

그리고 이 색은 다시 공으로 돌아가요.

공에서 색이 나오고

색은 다시 공으로 돌아가고 있어.

 

그러면 색즉시공하면

현상이 본질로 돌아가고 있고

또 공즉시색하면

이 한 개 투명한 본질 안에서

인연 따라 이렇게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

여기서 왔다 이거예요.

여기서 왔다.

 

그러면 죽은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가?

여기로 간다.

이것은 안 변한다.

 

그러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질은 무엇인가?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거다, 이거예요.

그러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현상은 났다가 갔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질은 이거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질이지만

나의 본질이기도 하다.

천 년 뒤에 태어날 우리 자손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것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내 눈이 있을 자리에, 실제로는 이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있는 그 자리가

나의 마음의 눈이다.

심안(心眼)이 바로 의식이다, 이거예요.

이 세계가

나의 의식 속에 지금 이렇게 나타난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이 세계를 이렇게 나타난 걸 보는 것은

요 심안이 보고 있어요.

심안이 보고 있어.

견즉성(見卽性)

그러면 보는 놈이 심안이죠.

보는 것이 곧 나의 본질이다.

 

느껴보세요.

지금 이렇게 세계, 이렇게 앉아서 앞을 보면

실제로 있는 것은

내 눈의 자리에는 실제로 있는 것은 이 세계가 있어.

근데 이 세계가 어떻게 있는가?

내 눈 속에 있어.

 

지금 이 말, 방금 한 이 말은

여러분이 실감할 수 있겠어요.

이 세계가 내 지금 경험상으로, 느낌으로

이 세계가 내 눈 속에 있어, 그렇지 않나요?

 

다시

이 세계가 내 눈 속에 있어요.

근데 그 내 눈이 무슨 눈이냐?

육안이 아니고 심안이에요.

마음의 눈이에요.

그럼, 그 마음의 눈이 바로 의식이다, 이거예요.

 

내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실제로는 의식이 있다.

느껴보세요.

이 순간 내가 이렇게 앉아 있는데

내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실제로는 의식이 있다.

그리고 그 의식 속에 세계가 담겨져 있다.

 

의식은 엄청 크네요.

이 세계를 다 머금고 있네요.

그러니까 돌아가셔도 여러분

화두처럼 한번 계속 돌이켜 보세요.

 

지금 내 눈 자리에 의식이 있다는데

실제로 내 눈 자리에 무엇이 있는가?

지금 여러분이

언제 어디서든지

지금 내 나의 눈의 자리에 실제로는 뭐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가?

내 눈의 자리에 실제로는 뭐가 있는가?

이것이 있어요. 이것, 이것.

이걸 부처라고 하고

이걸 성령이라고 한다고요.

 

지금 내 눈의 자리에 부처가

혹은 성령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이렇게 있어요.

이것 속에 삼라만상이, 다 이 안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어요, 꿈같이.

이거는 영원한 거죠.

이게 지금 우리들의 실상이에요.

 

오늘은 여러분이 빨리 깨달으시라고

지금 우리의 목표는

번뇌 망상으로부터의 해탈이에요.

번뇌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려면

우리가 깨어 있어야만이 돼요.

깨어 있어야 생각에 안 딸려가야.

 

그러면 깨어 있으려면

이 의식이 자기가 의식임을 자각하는 각성이 되어야

생각을 이겨내요.

이것이 잠들어 있으면, 각성이 잠들어 있으면

여지없이 생각에 딸려다니고, 생각의 노예로 살고

각성이 깨어나면

생각을 부릴 수가 있어요.

생각을 컨트롤 할 수가 있다.

 

어떻게 하면 각성이 깨어나는가?

제가 지금 가리키는

여기에 한 번 불꽃이 탁 튀면...

 

지금 저를 보시잖아요.

휴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금 저를 여러분 보십니까?

제가 여러분 눈 속에 있다.

여러분 눈 속에 있지 않나요?

이 눈은 커요.

실제 여러분의 心眼은 커요.

 

육안이라고 하는 개념은 떨쳐버리고

실제로 여러분 눈에 있는 것은 여러분의 심안이에요.

마음의 눈

여러분의 마음의 눈은 한없이 커요.

크지 않나요?

이거라고요.

이 지금 모든 것이 들어와 있는 큰 눈

이거라고

이게 의식이라고

이게 본래면목이라고요.

 

언제나 이래 왔어요, 언제나 이랬어요.

근데 미처 여기에 초점이 안 맞았어.

왜 안 맞았는가?

이 큰 거를 두고, 작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큰 거하고 초점이 안 맞았던 거예요.

 

근데 이런 말을 듣고

지금 진짜로 내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눈 하나가 이렇게 있다, 이거예요.

이게 전체가 눈이다 이거예요.

지금 내 눈에 있는 자리에 뭐가 있는가?

심안이 있다, 마음의 눈, 의식이 있다. 의식이 있다.

이게 나의 본래면목이에요.

 

한 개의 외짝 눈, 한짝 눈

일척안(一隻眼)이에요.

요게 두 개 있으면 쌍이 돼요.

이거를 줄이면 요 모양이 되거든요.

두 개를 쓰면 쌍, 쌍용할 때 쌍인데

하나 있을 때는 척이라고 읽어요.

일척안, 한 개 눈.

 

지금 내 육안이 있는 이 자리에 뭐가 있는가?

한 개 눈이 있어.

이 의식이라는 거예요.

요 한 개의 눈 안에 이 삼라만상이 이렇게 비치고 있어.

이 영상이 이미지들이

실제로는 한 개 눈이 있다.

일척안(一隻眼).

 

납자의, 참선하는 납자의 일척안(一隻眼)

한 개 눈

이거다 이거예요.

요거 의식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마지막 결론은

여러분의 모든 사람한테 공통적으로

여러분 눈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실제로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 의식이 한 개의 심안, 마음의 눈입니다.

그 마음의 눈 안에 삼라만상이 전부 다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여러분

딱 한 번 확인하면 돼.

이게 사실이니까.

이 사실을 한번 확인하시면 돼요.

이러네

이러네, 진짜 이러네하고 확인하는 것.

그게 견성이에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