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68] 무의식적 패턴 | 타성일편(打成一片)

Buddhastudy 2025. 1. 1. 19:54

 

 

지금 우리가 자기를 돌아본다면

이런 경계에서

자기도 모르게 분별이 나오는 거

이해되세요?

 

경계를 만났을 때

자기도 모르게 분별이 나온다.

이 분별을 뭐라고...

이것도 중요하네요.

 

무의식적 패턴

이 말이 뭐냐 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진

우리의 업에 따라서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는 관점

이거를 무의식적 패턴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사람마다 이것이 있어요.

그래서 무의식적 패턴은

주로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져 있어요.

맞아요?

 

그러면 이 무의식적 패턴을 못 본다면

아무리 미래가 와도, 이대로 살겠죠.

지금 중요한 대목이에요.

마음공부에 지금 아주 중요한 대목.

 

지금 마음공부는 두 가지잖아요.

첫 번째는 견성, 본질을 보는 것

두 번째는 현상에서 분별하는 분별, 생각을 항복 받는 것, 바꾸는 것

두 가지잖아요.

돈오와 점수

돈오_ 본질을 깨닫는 것

점수_ 자기의 생각 패턴을 바꾸는 것

무의식적인 사고 패턴을 바꾸는 게 점수예요.

이게 생각을 항복 받는다.

항복기심

 

그렇다면 이걸 바꾸려면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이런 식으로 패턴화되어서

매사를 대하는구나하는

자기 눈을 봐야 될 거 아니에요.

이게 지금 돼지 눈이라는 거죠.

 

무의식적인 사고 패턴

이걸 사람마다 가지고 있어요.

이걸 안 바꾸면 어떻게 돼요?

미래도 똑같이 반복할 거다 이거예요.

 

그러면 공부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무의식적인 사고 패턴을 봐야 되는 것.

이해돼요?

그러기 위해서 깨달음이 필요해요.

 

그 무명을

이게 무명인데, 무명.

무명의 내용이

무의식적인 패턴이 굳어져 있다.

사고 패턴이 굳어져 있다.

 

그러면 이 무명을 밝히려면

본질의 빛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오케이?

 

깨달은 사람이라면

이 세계가 당연히

바다가 파도 치는 것으로 보여요.

그 파도에는 좋은 파도도 있고,

또 이렇게 번뇌 망상도 파도예요.

근데 여기에 대해서 평등하다 이거예요.

겉모양은 다르지만

그게 본질로서는 평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한테는

번뇌가 더 이상 번뇌가 아니다.

 

보세요.

돼지 눈에는

번뇌는 고통을 일으키는 대상이에요.

맞아요?

돼지 눈에는

번뇌는 고통을 일으키는 대상이에요.

근데 부처 눈에는

번뇌는 다시 한 번 이 세계가

바다가 파도 치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어.

지혜의 대상이에요.

 

번뇌는 깨달음의 대상이에요.

번뇌에 쫓아가면 고통이지만

번뇌를 꿰뚫어 봐서

번뇌가 모양은 번뇌지만

이것 또한 본질이 인연따라 나타난 것이라는 걸

다시 말하면

역행보살로, 나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나의 안목을 트게 해주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꿰뚫어 본다면

그러면 번뇌는 깨달음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번뇌즉보리로

번뇌가 곧 깨달음으로 바뀐다 이거죠.

내 눈에 따라서.

 

모든 부정적인 것이 알고 보면

뭐 겉모양만 그렇지

그것조차도 다 인연 따라서 나온 것이 되어서

모든 것이 수용된다.

모든 것이 수용되어서

그래서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이분법적인 분별에 끌려다니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의 핵심은 뭐냐 하면

지금 방금 드린 논의의 핵심은 뭐냐?

결국에는 뭐냐?

여러분, 결국에는

나의 눈이

나를 비롯해서, 이 모든 것이, 이 세계가

다만 바다가 파도 치는 것으로 보일 때

더 이상 에고라는 것, 나라고 하는 것, 아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없다는 거예요.

 

나를 통해서 그러면

내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은 무엇인가?

본질이 인연 따라서

지금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질을

불교에서는 아미타불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성령이라고 하니까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알고 보면

성령의 역사고

아미타불의 나툼이에요.

 

그래서 역시 대승불교 교학의 마지막 결론이 화엄인데

화엄사상은 딱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세계가 성기(性起)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좀 초기 불교적인 그런 연기가

조금 더 국이 커지면

화엄에서는 연기를 성기라고 부르거든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이 세계가 무엇인가?

성품이 본질이 일어난 것이다.

바다가 파도친 것이다.

그러니까 성기라고 하는 말은

바다가 파도친다, 이 말을

성기라고 표현을 했다.

소화됩니까?

 

그래서 결론은

여러분이 경계를 닥쳐서

자기한테서 일어나는 반응이

무의식적인 패턴이에요.

맞죠?

 

다행히 우리들의 일상은

나를 공부시켜주기 위해서

수많은 역행 보살들이 출연해.

 

그러면 그때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게 나의 무의식적인 사고 패턴이에요.

그걸 봐야 돼.

그걸 보고

그것이 이 기본 원리에 어긋나 있으면

바로잡아야 돼요.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의식이 본질인가는 알겠는데

왜 이렇게 이 분별심

또 나라고 하는 분리감

이게 왜 이렇게 안 떨어집니까?” 하는 분이 상당히 있죠.

그런 질문 많이 하죠.

여러분 공통된 지금 고민이지 않나요?

 

의식이 뭔지는 알겠어요. 이제.

근데 이 지금 기존에 나한테 붙어 있는 무의식적인 이 분별의 패턴이

이것이 나다, 남이다 하는 이 분리감, 이 분별심이

참 안 떨어집니다, 할 때

안 떨어지는 원인이 밖에 있겠어요?

아니면 자기가 그러고 있을까요?

실상이 문제예요? 자기가 문제예요?

자기가 문제죠.

 

근데 꼭 질문하는 사람은

저보고 책임지라는 식으로

저보고 책임지라고 질문을 하세요.

 

그런 왜냐하면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잘못이 없고

바깥에 뭔가가 잘못이 있고

내가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해서

이런 것이 다 해결되는 줄 알아.

 

전혀 공부는 그런 게 아니다 이거예요.

아무 탈이 없다.

이 세상은

다만 바다가 파도치고 있을 뿐

아무런 탈이 없다.

 

근데 혼자

지지고 볶고, 난리 부루스를 추고 있는 것뿐이다, 이거예요.

그걸 누가 말려?

세월이 가면서 녹아내려야지.

그러니까 그걸 빨리 녹는 것이 공부다.

그래서 여러분 저한테 와서 따지지 마세요.

 

근데 제가 이렇게 웃으면서 지나는 가지만

여러분, 제가 웃으면서 지나는 가지만

조금 전에 제가 손 들어 보세요할 때

우수수 손 들었잖아요.

그러면 잘 새겨들으시라 이거죠.

나도 모르게 나는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다시

나도 모르게 나는 나를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게 가장 지금 무의식적인 사고 패턴의 가장 핵심.

 

이거를 이걸 바꾸는데

누가 바꾸느냐?

스스로 바꿔야 된다, 이거예요.

스스로 성숙해져야 되고

스스로 철이 들어야 돼.

 

여러분 철이라는 말에는

언제 철 들래?” 그러잖아요.

 

우리가 사시사철 그러잖아요.

철 든다는 말은 시간성을 말해요.

시간적인 성숙.

과일 하나가 익을 때도 시간적인 성숙이 필요하잖아요.

 

이 지금 기본 원리에 대해서

오늘 기본 원리

여러분, 간단 명료하게

이 세계의 기본 원리는

바다가 파도 친다예요.

 

여기에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나의 기존의 사고 패턴을 이쪽으로 바꿔 가는가?

이 하나의 기준이

나한테 얼마나 바로 서 있는가?

이것이 정말 공부의 중요한 대목이다,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에

/본심을 알려면 진발심을 해서

본심을 아는 선지식을 찾아서 부닥쳐야 한다.

이것이 본심을 터득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 대목은 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조금 전에 선지식의 역할은 거울이거든요, 거울.

거울이거든요.

선지식의 역할은

바다가 파도 친다이거 하나를 가지고

되비쳐주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이 선지식을 만나면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이 이 거울에 비치겠죠.

거울에는 바다가 파도 치는 이 간단한 원리뿐인데

여러분은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올 거 아니에요.

그럼,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바로잡아 가야 되는 거죠.

 

그래서 거울이 필요한데

선지식은 그런 거울의 역할을 해준다 이거예요.

그래서 조금 전에 1, 2번 손 들어보세요?

하는 것이 거울이었어요.

거울이고

약간 부끄러울 줄 알아야지.

그리고 맞췄다고 해서 또 우쭐하면

그 놈도 또 그놈이고

 

그러니까 항상 이렇게

재밌다.

앞으로 문제를 많이 내야 되겠네, 수업 중에.

딱 그냥 바로 판명이 나죠.

본능적으로.

 

/우리 공부는 본심을 알고 나서

본심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대목도 좋네요.

다시 볼게요.

 

본심을 알고 나서 본심과 하나가 되는 게 마음공부예요.

그러면 본심을 안다 할 때

본심을 아는 것을 돈오

본심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점수

본심을 안다, 알아질 때 그 눈을 혜안

본심하고 하나가 된 눈은 법안

따라옵니까?

 

, 지금 계속

본심을 안다 하는 것은

당나귀가 우물을 보는 거고

당나귀는 수행자, 우물은 본질.

 

수행자가 본질을 보는 것을 본심을 안다 하고

다음에 그 당나귀가 우물이 되어서

우물의 입장에서 당나귀를 보는 것

이게 바뀌는 것.

 

중생이 본질을 알다가

본질하고 하나가 되면

이제 부처가 중생을 보는

그런 입장이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혜안을 뜨고 법안을 뜬다.

이것이 지혜와 자비를 두루 갖추는 정도다.

바른길이다.

본심과 하나가 되면/

 

자 하나가 되면

보세요.

본심과 하나가 되면

이거 지금 저 같으면 지금 밑줄 긋겠네.

 

본심과 하나가 되면

이게 지금 기독교로 말하면

복음 같은 거예요, 정말 귀한 말이다.

본심과 하나가 되면.

 

여러분 깨달음은

지금 의식을 자각을 하죠.

이제 거의 알아듣지 않나요?

의식, 지금 깨어 있는 그거.

 

그러면 그 의식과 하나가 되는 것이

점수라고 하는 거예요, 점수.

 

근데 많은 사람이

자기는 중생이고, 그리고 의식은 의식이에요.

이 단계를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의식을 알아도

여전히 무의식적인 사고 패턴은 자기를 중생이라고 해.

그리고 이 전체로서의 의식은

또 의식대로 있어.

그래서 자꾸 의식을 챙기게 돼요.

그래서 자꾸 의식을

있나?’ 하고 자꾸 확인해.

 

그러다가 어느 계기에

챙기는 이것이...

 

보세요.

챙기는 이것이 의식이에요.

이것이 확고할 때가 한 번 와.

 

자기도 모르게

이 본질인 의식을 소유하려고 해요.

에고의 특징은 소유.

에고의 특징은 욕심이에요.

자꾸 본질을 소유하려고 해.

소유하려고 하다가

소유하려고 하는 이것이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한 번 확실해질 때.

 

이 말은 조금 전에 한 말처럼

본질을 소유하려고 하는 이것이

본질이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말하면

욕을 하는 이것이 본질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욕을 하건, 번뇌망상을 피우건, 싸우건, 무엇을 하건

하는 이것이

이것이 의식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한 번 딱 이렇게 정말로 한 번

진짜 이걸

이제 철견이라는 말을 쓰네요.

철저하게 본다, 철저하게 본다, 철견한다.

그래서 더 이상 의식을 따로 찾지 않는 것.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는

우리한테 복음이 뭐냐 하면

이런 의미에서 우리한테 복음은

바다도 물이고 파도도 물이라고 하는 이 사실이

다시 말하면

온통 물 하나뿐이라는 것.

 

여기에 한 번 사무친다...

사무친다는 표현을

제가 그런 식으로 표현하게 되네요.

그러니까 이 사실에

여러분,

알고 보면

의식 하나뿐이에요.

온 세상이.

 

많은 사람이 질문해요.

이 세상이 의식 하나뿐이면

죽비라고 하는 이 물질은 뭡니까?

이렇게 물질도 의식입니까?”라고 질문을 해요.

 

제가 공부할 때 제일 이게 뚫기 어려웠어.

제가 공부할 때 제일 난제가

의식이라는 건 알겠어요.

이게 다 의식이야.

의식은 끝도 없어.

무한하기 때문에 무변신보살이고

이게 변두리가 없는, 테두리가 없이 커서 무변신

변두리가 없는 몸의 보살

허공장보살

허공도 품고, 허공조차도 의식이 다 품고 있어서 허공장보살

알겠어.

근데 물질이 뭐냐?

물질도 의식이냐?

이게 큰 난관이었어요. 공부할 때.

여러분도 아마 거기에 걸려 있을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의식이라는 건 알겠어.

근데 죽비도 의식이라고?

여기에 걸려 있었어요.

 

근데 할 수 없이 논리적으로 말을 한다면

죽비는

딱 그냥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여러분이 죽비를 보시잖아요.

죽비는 정보예요.

물질이, 여러분이 보시는 물질이

정보예요.

 

물질의 내용이 무엇인가?

물질의 내용이 정보예요.

 

여러분 이걸 보시면

시각 정보고

만지면 촉각 정보고

정보다 이거예요.

모든 물질이 정보다 이거예요.

 

정보가 뭐냐?

모든 데이터.

 

모든 데이터는 의식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모든 데이터는, 모든 정보는

의식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여기에 예외가 없다 이거예요.

 

뭐든지

소리는 청각 정보

보는 것은 시각 정보

냄새 맡는 것은 후각 정보

그리고 맛은 미각 정보

그리고 물질이 이렇게 만져지는 것은 촉각 정보

정보다 이거예요.

생각은 생각 정보네, 당연히.

감정은 희로애락, 애오욕이 다 감정 정보네요.

 

이거 뛰어넘기가 어려웠는데

어쨌든 뛰어넘고 나서

이걸 설명하자니

정보란 말이 가장 현대인이 알아듣기는 쉬워요.

정보일 뿐이에요.

모든 현상은 정보일 뿐이다.

 

정보란 말은

꿈속에 나오는 것도 다 정보죠,

꿈속에서 경험한 것도

꿈속에서 본 것은 시각 정보고, 청각 정보고, 후각 정보고, 미각 정보고, 촉각 정보고

생각이고, 감정이고,

꿈속에서 한 것도 정보죠.

지금 생시에 하는 것도 전부 다 같은 정보예요.

 

아무튼 이런 말이

이 한 번 뛰어넘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로 제시할 수 있지만

여러분이 이거를 스스로 뛰어넘지 않고서는

시원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설명하자니

할 수 없이 이런 말을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어.

 

/본심과 하나가 되면/

하나가 된다에서 제가 강조를 했었는데

돌아와서

본심과 하나가 되면

이제 둘이 없어지거든요.

 

/내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된다./

여러분,

하나가 되면

하나가 된다이 말을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고 해요.

_ 강조하는 말이에요, 친다는 말은 강조한다.

_ 동사를 강조하는 거야, 이룬다.

타성을 이룬다.

일편_ 한 조각을 이룬다.

한 조각을 이룬다.

이것이 점수의 내용이에요.

 

타성일편은 어디 나오는 말이냐면

모든 화두를 설명할 때

화두삼매의 목적이 무엇인가?

화두삼매는 타성일편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렇게 모든 교과서에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한 조각을 이룬다이 말은

화두는 의식이잖아요.

의식의 각성이잖아요.

그러니까 의식의 각성이

삼매라는 것은 지속된다는 말이거든요.

 

의식의 각성이 지속이 되면

의식이 지속되면 생각은 사라집니다.

따라오시나요?

 

의식의 각성이 지속되면

생각이 사라져요.

생각이 사라지면

모든 분별이 사라져요.

 

재미있는 거는

모든 분별과 생각이 사라지면

의식만 있으면

희한하게도 우리의 감각 기관이 닫혀요.

그러면 다 사라져요.

현상이 다 사라져요.

 

그러면 뚜렷하게 깨어 있는 요 본질 하나는

요 각성만이 스스로 또렷하게 남아요.

그 상태에서는 완전히 분리감, 분별심이 사라져서

그 상태에서 무아가 확인되고

 

나라는 것이 정말 없구나.

지금 깨어 있는 이거 하나구나.

이 한 개 의식, 일심

한 개 의식밖에 없구나, 이 세계는

그리고 그 세계로서

이 한 개 의식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구나.

이것이 통일되는구나.

모든 것이 뭉쳐서 딱 하나가 되는 것

그게 타성일편이 거기서 확인이 돼요.

이 세계가 정말 하나구나.

 

그래서 그 경험이

조금 전에 우리가 첫 시간에 이야기했던

욕을 해도 더 이상 욕이 욕이 아니고

이 한 조각이 움직여지는 것.

바다가 파도 치는 것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이거야.

타성일편이 되어야.

 

이 각성 하나로

딱 완전히 하나가 딱 될 때

그러니까 그 체험이 법안이 떠지는.

 

지금 혜안을 뜨고

, 이게 의식이구나하면 혜안이고

다음에 의식이 되는 것

의식 하나 이 세계가 의식 하나뿐이라는 사실

이것이 내가 통달하려면

지금 타성일편이 되어야 한다.

 

타성일편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분별심이 사라진다, 이 말이에요.

둘로 나뉘는 이분법적인 이 사고방식이

끝장이 난다.

이 세 개가 한 덩어리로 보인다.

그 한 덩어리의 내용은 물이다, 이거예요.

의식이다, 이거예요.

바다가 파도 치고 있다.

이 한 개 물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게 딱 오기 때문에

그리 되면

아까 보세요. 회통을 합시다.

자 아까 제가

내가 지금 욕을 했다.

그러면 욕을 한 게

에고도 아니고 그렇죠

에고도 아니고, 불성도 아니고.

왜냐하면 에고나 불성이라는 것은 서로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지금 여기에 딱 들어맞지는 않아.

타성일편에 들어맞지는 않아.

맞아요?

 

타성일편이 되려면 중도, 불이법

연기가 되려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니까

부처도 중생의 반대말이라서 부처도 적당한 용어가 아니에요.

중생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말로 할 수는 없어.

말로 할 수 없으니까 불식, 모른다, 단지불회.

모른다는 말로 주로 표현을 해요.

오직 모를 뿐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

 

근데 이것이 말로 할 수는 없지만

자기는 분명해요.

이 한 덩어리가

의식 하나가 자기한테는 분명해.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말로 한다면

부처님께서는 이거를 할 수 없이 말로 할 때는

나라고 했구나, .

그냥 천상천하에 유아독존

나 하나다.

 

또 하나님 같은 경우는

나는 나다

나는 무엇이다가 아니고

I AM THAT I AM이지

I AM이지 I am Sumthing 아니다. 이거예요.

한 덩어리를 지금 말한다, 한 덩어리.

 

요것이 우리가 공부가 되면 될수록

한 덩어리로 되어 간다.

공부가 되면 될수록

한 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뭐라고 하면

벌써 나뉘었다는 감각이 와요.

 

이렇게 나누어지지 않는 것.

나 따로 길 따로

나 따로 진리 따로

나 따로 생명 따로

나 따로 아미타불 따로

나 따로 성령 따로가 아니고

완전히 딱 하나뿐인, 하나밖에 없는 것

이것이 진짜 사랑이구나.

 

그러니까 모든 파도가 다 바다이기 때문에

여기서 진짜 사랑이 일어난다.

그래서 진짜 사랑은

여러분도 본질이고, 나도 본질일 때

우리 사회가 진짜 사랑이에요.

여러분도 본질이고 나도 본질일 때

정말로 환하다 이거예요.

 

이 하나가 타성일편이 진짜 사랑이다.

이게 진짜 자비다.

 

그래서 개체로서의 사랑은 유한하지만

이 한 개 전체로서

전체와 전체가 사랑한다

말이 이상하죠.

이게 진짜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 우리의 감각이

따로따로 분리하지 말고

지금 내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된다.

 

불교에서는 사무량심이라고 해서

네 가지 덕목

보살의 네 가지 덕목

네 가지 무량한 마음

끝이 없는 네 가지 마음

, , , _ 사무량심

 

그러면 사무량심이 내가 일으킨다가 아니고

내가

_ 사랑이고, _ 연민이고, _ 기쁨이고,

_ 평정심, 아무 일이 없는 무사 평정

사 내려놓았다. 이거야. 방아착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

 

자비희사

자비희사가 내가 일으킨다가 아니고

내가 자고, 내가 비고, 내가 희고, 내가 사다.

 

그중에서 여러분

희를 우리말로 하면 기쁨이잖아요.

다석 유영모 선생님은

아침에 일어나서

한글 써놓고

이 말이 왜 이 말이 되었나?” 하고

그거 연구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오늘은

_ 감탄사고

_ 실제로 늘 밖에 없으니까 이걸 발견하게 되면

, 오늘이네해서

오늘은 언제나 오늘이죠.

 

그런 것처럼 기쁨이란 말을 써놓고

이분이 한참 하다가 무릎을 탁 친 거예요.

, 기쁨이라는 것은 기가 뿜어져 나오는 거구나

 

그러니까 기쁨이 뭐가 기쁨이냐?

내가 기쁨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나한테는 항상 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나 기쁨 자체.

 

여러분 기쁨 자체인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사람은 항상 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자 이거예요.

 

지금 타성일편이 되면 나와 무엇이 따로 있지 않다.

/이 보살의 덕목도

전부 다 내가 사랑이고, 내가 연민이고, 내가 기쁨이고, 내가 평정이 된다.

본심이 모든 것 자체이다./

이 말도 들어옵니까?

본심이 의식이잖아요.

모든 것이 의식이다, 이 말이에요.

본심이 모든 것 자체이다.

 

방금 제가 모든 것이 의식이다그럴 때

여러분 안에서 에고는 불만스러워할 거예요.

이게 소화가 안 돼서.

 

어떻게 모든 것이 의식인가?

죽비는 죽비고, 보드마크는 보드마크고

저 풀은 풀이고, 구름은 구름인데

어째 이게 모든 것이 다 의식 하나일까?” 하고

에고는 저항할 거예요.

이런 말을 들으면 에고는 저항한다.

 

근데 우리들은

, 내가 지금 한 덩어리가 안 되어서

이런 말에 저항하고 있구나.”

 

그걸 돌아봐서

자기의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이걸 바꾸어 가는 게 공부예요.

실제로 바꿔야 되는 게 공부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의식 자체가 되어 버리면

여기에 있는 모든 갈등이 끝이 나는 거예요.

 

정말로 나의 모든 문제가

내가 이분법적인 이 분리감으로 이 세계를 보는

이 분별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동안에는

나의 모든 문제와 고통은 해결되지 않겠구나 하는 것이

너무나 분명한 거예요.

 

그렇다면 세상을 바꿀 수가 없고

내 눈을 바꾸는 게

여러분,

세상을 바꾸는 건 불가능합니다.

근데 내 눈을 바꾸는 것은 가능해요.

어떻게 가능한가?

 

나의 모든 관심이

내 눈을 바꾸겠다고 가면

그것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래서 항상 옛분들은

간절하고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마음공부에는

간절하고 진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지 내 눈이 바뀌기 때문에.

내 눈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나의 문제는

문제에 대한 답이 있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내가 성숙해져서

문제가 문제가 안 되는 것이

나의 문제 해결책이다.

 

그러니까 이 말이 참 지혜로운 말이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