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75]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 의단독로(疑團獨路)

Buddhastudy 2025. 1. 23. 18:55

 

 

/자승자도 자승으로 스스로를 던진다./

 

여기 지금 제가 육조 스님이 깨닫기 전에는

스승의 도움으로 건너지만

깨달은 다음에는 제 힘으로 건넙니다.

 

이 말을 화두에 대입을 해보면

깨닫기 전에는 반드시 조건이

깨달음은 조건이 있어요.

딱 하나의 조건이 있어요.

깨달음의 조건은

깨달으려고 해야 돼요.

 

깨달으려고 한다, 이 말은

깨달음의 대상인 우리들의 자성

다시 말하면

스스로 갖춰져 있는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한 거예요.

 

깨달음의 조건은

딱 하나예요.

본질이 궁금한 거예요.

그러니까 본질이 궁금하다를 전문 용어로 하면

의심(疑心)이라고 불러요.

의심

 

본질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게 의심이라고 불러요.

 

그러면 의심이 깨달음의 조건이에요.

내가 누구인지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진짜

본질이 뭐지?” 하는 그 궁금증이

이 깨달음의 조건인데.

 

자 그러면 일반인들은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심이

대부분은 강렬하지 않아요.

이해되나요?

 

뉴스 보고, 드라마 보고, 예능 프로 보느라고

이쪽으로 집중 하기가 어렵다 이거예요.

그래서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화두라고 하는 것이 나온 거예요.

 

근데 화두를 드는 초심자가

화두를 드는 가장 기본적인 중요한 점은 뭐냐 하면

스스로 이 의심이 일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심의 강도가 약하다, 이 말이에요.

일반인은.

 

그래서 스승이 의심을 걸어줘요.

화두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의심해야 될 걸 못하니까

스승이 걸어주는 거예요.

 

걸어준다는 말은

본인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약하다 이거예요.

본인이 내가 누구지?” 혹은 본질이 뭐지?” 하는 거는 약하다.

의심이 약하다.

 

그래서 스승이

너 뭐냐?” 하고 탁 가슴에 탁 꽂는다 이거야

독침 놓듯이

화두는 독침이에요.

그래서 너 뭐냐?” 하고 가슴에 탁 독침을 놓는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 독침 맞은 사람은

뉴스나 드라마나 예능 보는 게 아니고

진짜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독침 맞은 사람은.

 

그러니까 독침 맞은 사람은 답을 하려고

스승이 물었으니까 답을 하려고 애쓰는 거예요.

그러면 집중하게 돼요.

집중하게 되면

그 화두 현상이 일어나서

화두 현상은 기본적으로 금강권 율극봉이에요.

이게 임제 가풍이에요.

임제종 양기파의 가풍이에요.

 

금강권은 에너지 과목이

정말 궁금한 사람한테는 에너지 과목이 이렇게 쪼여와요.

그리고 율극봉은

목에 밤송이가 딱 걸려서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고 답답해요.

 

그래서 금강권 율곡봉이라고 하는 경계현상이 생겨.

화두가 걸리면 경계 현상이 생겨요.

그래서 한 번 그게 터져요.

 

왜냐하면 그 상태에서는 오래 살 수가 없어요.

사람이 숨을 못 쉬니까.

그래서 한 번 탁 터져요.

그러니까 경계 현상이 생겨.

경제 현상이 생길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반 일상의 업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생긴 업이

탁 터질 때, 왈칵 쏟아져요.

그래서 굉장히 가벼워져요.

 

그러니까 화두가 지금

제가 미혹할 때는 스승의 힘으로 걷는다.

이 말은 스승이 화두를 걸어주고

다시 말하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려고 애쓰면 막힌다.

그리고 막힌 것이 터지면서

경계 현상이 일어나고

그 경계 현상을 자세히 반추를 해 보면

모든 것이 터져서 사라질 때 사라지지 않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걸 아는

그것은 끝까지 남아 있거든요.

이제 의식이 뭔지 자각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의식을 자각해도

생각의 습관이 계속 나로 하여금 끌고 어디론가 가.

생각 속에 과거, 미래로 자꾸 데리고 가.

그러니까 이게 힘이 약하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스스로 걷는다는 말은

이제는 이 화두를 내가 스스로 들 수 있게 된다.

그전에는 화두가 스승의 질문이었고

내가 답을 찾고 난 뒤에는

내가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가 있게 된다.

 

근데 이 의심이 두 가지 단계가 있어요.

1) 의심이 있고

2) 의심이 있어요.

 

이런 말은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들려드리니까

제가 이런 말 가의심, 진의심을 내가 이거를 알기 위해서

제가 적어도 십몇 년을 헤맸어요.

그러니까 진짜 오랫동안 헤맸어.

가의심과 진의심이 다르더라고요.

 

가의심은 질문을 당한 거예요.

너가 누구냐?”

지금 멀쩡하게 살아 있는 너가 누구냐?” 하고 질문 당하면

답하려고 하는 게 모르니까, 답을 모르니까

답하려고 하는 게 가의심이에요.

가짜는 임시, 임시

근데 내가 이제 알았어.

지금 깨어 있는 이거예요.

이걸 알았어요. 답이 나왔어요.

알았는데

보세요.

지금 바로 내 눈이 있는 자리에 있는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무한대의 이 의식이라는 걸 알았어.

 

알았는데, 이것이 자각되는 순간에는

이것이 자각되는 때에는

생각이 안 붙어요.

이해되죠?

생각이 안 붙으니까

이것을 대상화해서 뭐라고 알 수가 없어요.

 

다시

이게 의식이 스스로 자각되고 있는 그 상황에는

이게 확 열려서

이 전체가 하나의 의식이기 때문에

전체가 하나의 의식이라서

그 속에 나도, 몸도 들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생각이 없어서

분리가 되지 않아요.

생각이 없으니까

내가 무엇을 본다가 성립하지 않아.

통으로 하나가 돼 버리니까.

통으로 하나인 상황에서는

나는 무엇을 본다, 무엇을 안다고 하는

주관 객관이 나누어지지 않아요.

그러면 그냥 통으로 하나야.

 

통으로 하나를

놀라운 것은

통으로 하나인 이것을 진의심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이것이 대상으로 뭐라고 할 수가 없어.

내가 이것을 뭐라고 하고 싶은데

나도 없고, 대상도 없고, 통으로 그냥 이거 하나뿐이라서

이해됐나요?

 

마니주가, 수정구슬이 눈앞에서 딱 분명해지면

그냥 통으로 이거 하나이기 때문에

나누어지지 않아서

주관도 없고, 객관도 없어서

이거를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이걸 뭐라고 하려면

반드시 주관이 객관을 삼아서 뭐라고 하잖아요.

이걸 안다고 하려면

아는 주관이 있고

대상인 뭐가 있어서 안다고 할 거 아니에요.

 

근데 이거는 통으로 하나라서

이거를 대상으로 삼아서 뭐라고 할 수가 없네.

이거는 이건데

여러분, 재미있는 게 꿀먹은 벙어리라는 거예요.

 

이거는 이건데

이거를 내가 뭐라고 할 수가 없어.

하나라서.

나도 없고, 대상도 없고, 그냥 통으로 그냥 이거 하나뿐이라서

이걸 뭐라고 할 수가 없어요.

 

이거는 뭐냐 하면

견성한 이후에 이제 이거 알았어요.

견성이라는 말은 본질이 뭔지를 알았어.

그러면 스스로 이 본질이 자각되고 있어요.

이거예요. 그냥

통으로 하나예요.

 

근데 통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주객이 없기 때문에

이거를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이거를 뭐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꿈속의 사람이

, 이게 꿈이구나하는 걸 알았어요.

, 이게 지금 꿈이구나하는 걸 알았어.

그러니까 이 꿈속에 죽비만 꿈이 아니라 전체가 꿈인 거예요.

꿈속에서 , 이게 꿈인 줄 알았어.”

그러니까 전체가 꿈이야.

 

그러니까 따로 꿈이 뭐라고 할 수가...

꿈 속에서 꿈이 뭡니까?” 그러면

꿈을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전체가 다 꿈이기 때문에.

이해돼요?

이것저것 할 것 없이 전부 그냥 모든 게 꿈이기 때문에

꿈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야.

왜냐하면 그 안에서는

꿈속에서는 꿈이 잡히지가 않아.

이해돼요?

 

지금 우리가 의식 속에서

이것이 의식이다라고 딱 잡아서 말을 할 수가 없어.

지금 꿈속에서 깨니까

, 이게 꿈이구나하는 걸 알았지만

꿈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것처럼.

따라옵니까?

 

지금 깨어서

이게 통으로 전체가 한 개의 의식이라는 걸 알았는데

의식이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

대상화 되지가 않아요.

전체가 다 이거라서.

 

그러니까 꿈속에서 자기가 아예 꿈이라고 하고

자기는 깼어.

분명해요.

 

그것처럼 깨달음도

지금 이 생시인데

이 생시가 바로 전체가 한 개의 의식이라는 걸 자기는 분명해.

지금 눈앞에 전체가 다

눈앞이라는 것 속에는 365

내 몸까지 포함해서, 지금 눈의 자리

전체가 그냥 한 개의 의식

이게 분명해요.

 

그래서 이거를 뭐라고 표현하느냐?

의심이 익어서

처음에는 뭐지?” 했는데

본질이 뭐지?” 했는데

본질이 드러났고

전체가 다 본질 하나뿐이라서

그것이 의심이 단은 덩어리 단,

의심이 하나가 되어서

의단_ 의심이 전체가 다 의심이 되어 버려서

본질이 전체가 한 개의 본질이라서

이걸 의단이라 그래요.

전체가 한 개 덩어리라서

그 한 개 덩어리가 독_ 홀로 드러났다.

독로,

_ 홀로

_ 도출됐다. 드러났다.

의단이 스스로 드러났다.

의단이란 말은 한 개 의식이 스스로 드러났어.

의단독로

 

그거를 전체가 다

한 덩어리 의식이라고 하는 걸 알았어요.

이게 의단독로예요.

근데 이거를 의단독로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달마 스님은

달마가 처음에 중국에 왔을 때

양 무제라고 하는 왕이 불교를 굉장히 후원했어요.

양 무제가 달마 스님에게

당신 누구시오?” 하고 질문했거든요.

달마가 나는 달마 아무개입니다.” 혹은 이 몸이 납니다.” 이런 말을 안 하고

달마 스님 입장에서는 자기가 누구냐 하면

양 무제를 포함해서

이 전체 한 개 의식이거든요.

 

그러면 이 전체 한 개의 의식을

양 무제한테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 모르는 사람한테.

 

깨달은 사람이

이 세계가 한 개 의식이라는 거를

못 깨달은 사람한테 어떻게 설명할까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아예 차원이 달라

차원도 다르고 언어도 달라

이게 소통이 안 돼, 그냥.

이해돼요?

꿀먹은 벙어리 같아.

달긴 단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 상태

 

그래서 뭐라고 답은 해야 되니까, 왕이라서.

왕이 당신 누구요?” 했을 때

부처님 같으면

나를 고타마라고 부르지 마라. 나는 붓다다이랬잖아요.

근데 요 한 개의 자기를 뭐라고 할 수가 없어서

달마는 불식(不識)

당신 누구요?” 하니까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변을 했어요.

불식_ 알 수 없다.

따라오고 계십니까?

 

의단독로(疑團獨露) 뜻을 제대로 말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워낙 중요하니까 스님들이

참선자는 의단독로하고

참선하는 사람의 최고의 경지는 의단독로다.

그러니까 참선한 사람들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의단독로 상태를 하는 것이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의단독로가 뭐냐 하면

이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받았고

아 이거 지금 깨어 있는 이거구나” “이 개 한 개의 의식이구나

의식이 자각이 되면

생각이 사라지고

생각이 사라지면

분별되지 않아요, 이 세계가.

주객이 탈락해 버려.

생각이 없으면 주관 객관이 사라져요.

그냥 한 덩어리야.

한 덩어리를 의단이라고.

_ 덩어리 단자

한 개의 의식 덩어리

의식 덩어리를 의단이라 그래요.

 

근데 이거 하나인데

이거 하나를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요.

표현하려면

나는 바깥에 있어야지 이걸 표현이 되는데

내가 안에 있기 때문에 표현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의단독로를 같은 상황에서

달마 스님이 양나라 무제가

당신 누구요?” 했을 때

자기가 달마요가 아니라는 거지.

이해되죠?

 

그러니까 자기는 전체 하나의 한 개 의식이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를 양 무제의 언어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어서

불식,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답변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양 무제는 못 알아들었어.

알 수 없다는 이 말을

이게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들었어.

그래서 달마가 떠나요.

그래서 양나라는 양자강 밑이었거든요.

양나라 땅에는 인연이 없구나해서

달마가 강을 건너서, 소림사에 가서, 석굴에 9년 면벽을 하잖아요.

 

달마도강도라는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달마 스님이 갈대를 꺾어서,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넌다하는 그런 그림

달마도 보면

달마 도강도가 많이 그려져 있어요.

 

그 달마 도강도를 그리고

그 옆에다가 대부분

불식, 이를 써요.

 

화가분들이 다 알고 있을까?

근데 하나의 이거는 도형화가 돼 있어.

그래서 달마 도강도 그림 옆에는

불식을 쓰는 게 하나의 관행이에요.

 

불식을 쓸 때

아니 ()’자를 이렇게 안 쓰고

... 이렇게 써요.

아니 불()자를 이렇게 써.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게 무슨 말인가 못 읽어.

그래서 못 읽어서

이게 무슨 말입니까?” 묻는데

답변을 아무도 못 하고 있더라고.

이게 불식이라는 그 아니 자를 저렇게 쓴 거예요.

 

그러니까 불식, 모릅니다.

이건데 뭐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오해하니까

다시 말해서

뭐라고 말하면

진짜 기독교로 표현하면

진짜 신이 아니고 우상이 돼 버리니까.

표현하지 않으면 신인데

나누어지지 않는 한 덩어리 신인데

표현하면 표현하는 순간 부분이 되어 버리고

부분은 우상이 돼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표현 못하고 불식이라고 했다.

 

또 보조국사는 수심결에서

단지불회

다만 안다면

불회 이때 지하고 회는 조금 뜻이 달라요.

_ 보통 안다고

_는 만날 회잖아요.

그래서 만나봐서 안다

 

이 의식을

대상으로 삼아서 우리가 만날 수가 없네.

이게 텅 비어 있어서.

다른 말로 하면 차원이 달라서

현상하고 본질은 차원이 달라서

현상의 그 어떤 상태, 상황 속에서

본질을 만날 수가 없어요.

 

이걸 비유할 때는 꿈속의 사람이

꿈속에 나타난 사람이

꿈꾸는 사람을 알 수가 없다.

만날 수가 없다.

차원이 다르다.

꿈속의 사람이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이해되셨나요?

 

그래서 불회_ 만날 수가 없다.

단지불회_ 만날 수 없다는 걸 다만 안다면

그렇게 만날 수 없다라고 표현할 줄 아는 그것이

만났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이걸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단지불회_ 다만 만나서 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

시즉견성_ 이것이 바로 견성이다.

보조국사의 수심결에 나오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게 왜 중요하냐?

다음에 바로 나오는데

이거를 정구(正句)라고 하는

 

, 혹은 화

화두할 때 화()

, 화가 다 말씀이에요, 말씀.

기독교회 마태복음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이렇게 나오잖아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지금 말씀 구, 말씀 화,

화두할 때 화,

이게 뭐냐 하면 의단독로 상태를 말해

의단독로

 

다시 한 번, 여러분

지금 본질인 의식이 이렇게 깨어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확인된 사람한테는

이것이 분명해

이 세상에 이거 하나밖에 없어.

 

요거를 바로 이러한 때라고 불러요.

바로 이러한 때

 

한 인간이

의식이 완전히 자각이 되어서

이 세계가 한 개 의식밖에 없을 때

삼라만상이 비치긴 빛이지만

이것은 환영들이고

딱 이 한 개 의식만이 뚜렷해서

이것이 딱 자각, 완전히 드러났을 때

이게 한 인간한테는 바로 이러할 때예요.

정임마시(正恁麼時)

그러니까 요게 의단독로

딱 의식 하나가

이 세상에 온통 의식 덩어리 하나

한 개 의식 덩어리

한 개 의식 덩어리인 것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불식

달마가 당신 누구요?” 할 때 이건데

당신이 알아듣는 말로는 설명해 줄 수가 없어.

여기서는 모든 분별이 녹아버려

분별과 언어가 녹아버린 상태

그러니까 정임마시

그리고 의단독로

그리고 불식

그리고 단지불회

그리고 정구_ 바른 말씀

이것이야말로 바른 말씀

또 다른 말로는 활구_ 살아있는 말씀

뭐가 살아 있는 말씀인가?

이때 말씀은 의식 자체를 말씀이라고 부른 거예요.

살아있는 의식

 

의식이 살아있을 때는

모든 분별 생각은 녹아버리고

의식 하나만 딱 드러나 있는 것.

이게 극락정토

이게 하늘나라

이게 에덴동산

이게 바로 우리 집

 

그러니까 한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상태는

이 의식 자각이 완전히 깨어나서

이 세계가 한 덩어리 의식만 있고

그 안에 있는 전부, 생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그냥 이렇게 진짜 꿈처럼, 그냥 물거품 같은 것

 

이런 때가

내가 얼마나 스스로 분명하게

수시로 분명하게 내가 이걸 자각할 수 있는가?

이게 지금 참선의 백미예요.

 

생각이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격류가 되어서 우리를 덮쳐요.

격류란 말 아시겠어요?

한강에 홍수 나서

생각이 홍수가 나서 막 덮친다 이거예요.

 

그거를 바로 이러한 때로 딱 깨어 있어서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그 홍수가 말라버리는

그 실력

그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부단히 노력하는 거예요.

 

그래서 육조단경을 읽고

또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앉고, 앉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상태를

내가 몸에 완전히 체화시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오늘 정리하면

시간이 됐어요.

오늘 특히 후반부는

왜 화두가 중요한지를

제가 정말 좀 진지하게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네요.

그리고 굉장히 비밀 이야기예요.

 

왜 중요한가?

첫 번째는

저는 하여튼 수보리가 물은 게 참 너무 좋다고 생각해요.

의식이 어디 있는가?”

정법은 안장이다.

의식은 지금 눈에 있다.

 

근데 이걸 안다고 해서 끝인가?

아니다 이거예요.

항복기심

이 의식의 공간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오는 잡념의 생각들, 번뇌 망상들

그걸 항복받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면 항복 받는가?

의단독로

깨어 있는 이것이 딱 하나가 뚜렷해져서

이것이 나한테 일어나야 된다.

몸에 익어야 된다.

의단독로가 몸에 익어야 된다.

 

이거를 여러분

해야 됩니까? 아는 것으로 됩니까?

아니면 실제로 해야 됩니까?

실제로 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촌음을 아껴서

부처님이 그러잖아요.

방일하지 말라.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흐른다.”

그러니까 촌음을 아껴서

시간 날 때마다

잠깐 잠깐이라도

정확하게 깨어 있기.

 

잠깐 잠깐이라도, 일상이라도

정확하게 깨어 있기.

이거를 정말로 한다, 이거예요.

 

그리고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리고 그것이 좀 익은 상태가 되면

이제는 지옥에 가도 괜찮아.

지옥에 가면

지옥에 끓는 물이 식어버리고, 뭐 그런 말 있잖아요.

내가 지옥 가면 지옥이 다 녹아 없어진다

왜냐?

내가 가는 곳마다 극락이 되니까.

수처작주가 되니까

가는 곳마다 내가 딱 주인이 되니까.

 

그러면 입처개진(立處皆眞)

지옥을 가도 입처_ 내가 선 자리가 모두가 진실의 자리로 변한다.

어디를 가도.

 

그래서 우리는 소수지만

정말 화두 하나를 제대로 들 줄 아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하다.

 

그걸 오늘 강조하면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