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강수욕장인 용산백사장은 사라지고 노들섬만 덩그러니...
한강 남북을 잇는 최초의 다리는 1900년 완공된 한강철교다.
그 위로 경인선 철로가 깔렸다.
두 번째 한강다리이자 최초의 인도교는 1917년 완공된 한강대교다.
노량진과 용산백사장을 이었다. 한강의 남북을 잇는 최초의 근대적 다리들은 모두 일본이 만들었다.
518년 조선 왕국의 무능함이란…
한강대교는 두 개의 다리로 건설됐다.
현재도 그렇다.
노량진부터 용산백사장의 남단까지 440m 한강대교와
용산백사장 남단부터 용산백사장 북단까지의 188m의 한강소교였다.
현재 노들섬으로 불리는 곳이
1917년 당시에는 용산백사장 남단의 야트막한 둔덕이었고
당시엔 신초리(新草里) 하동(下洞)마을로 불리고 있었다.
신초리 하동이 용산백사장 남단이었고
드넓은 용산백사장 북단에는 신초리 상동(上洞)마을이 있었다.
신초리 주민들은 배를 만들거나 농사를 지으면서
수 백년 이상 대대로 살고 있었다.
당시 용산백사장은 1년 중 대부분 백사장이었지만
여름 큰비가 오면 둔덕 위의 신초리 하동마을만을 제외한 채 한강에 잠겼다.
일제는 노량진부터 하동까지는 제법 튼튼한 다리인 한강대교를 지었지만
하동부터 상동까지는 튼튼하지 못한 소교를 지어 한강 남북을 이었다. 다리를 두 개로 나눠 지은 것은 부족한 기술력과 함께 비용 절약의 의도가 있었다.
1920년대 초 '경성유람 안내도'를 살펴보면
6개의 트러스가 그려진 한강‘대교’만 그려져 있고
한강‘소교’는 생략하고 표기하지 않았다.
1925년 을축 대홍수로 한강이 크게 범람하며
한강대교와 한강소교가 크게 손상됐다.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은
“한강다리가 떠내려갔다”며 일제의 엉터리 다리를 비웃었다.
일제는 철골 구조물을 설치해 인도교 기능만을 겨우 임시 복원해놨다가
1935년에 이르러서야 전차의 운행까지 가능하도록
한강대교를 튼튼하게 다시 이었다.
경성 전차의 한강교-노량진 구간을 부설했고
매년 반복되는 홍수 때마다 섬이 되는
신초리 하동마을을 일본식 이름인 중지도(中之島 나카노시마)로 명명하고
중지도 공원이란 유원지를 만들고 전차를 정차시켰다.
일제는 드넓은 용산백사장 남단 언덕 부분을 떼어내
억지춘향격으로 섬을 만들고
일본식 이름인 중지도라고 명명한 후
마치 새로운 한강의 유원지인양 호도했다.
일제의 이런 자연파괴에도 불구하고
한강백사장을 대표하는 용산백사장은
자연 하천 한강의 여건으로 인해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큰비에 잠시 잠기지만
큰비가 지나가면 의연하게 금모래 은모래로 빛나며
여름에는 피서하는 백사장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해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계속 받았다.
수수만년 그러했듯이 의연하게 백사장이었다.
일제가 ‘중지도’라는 허상의 섬을 만들어낸 데 이어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한강종합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용산백사장을 없애버리고 한강대교 중간 신초리 하동을 섬으로 완전히 고착화시켰다.
산업화와 서울의 주택 건설
1·2차 한강종합개발에 필요한 모래를 용산백사장에서 퍼가며
용산백사장을 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용산백사장 중 일부분만 덜렁 남은 것이
바로 당시에도 일제가 붙인 이름인 중지도로 불리던
지금의 노들섬이다.
일본 이름 중지도에서 우리 이름 노들섬으로 바뀐 것이
1995년에 이르러서였다.
노들섬을 남긴 이유는 단 하나
한강대교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모든 한강개발이 그러하듯
용산과 노량진, 노들섬의 강변을 모두 콘크리트로 다림질하듯 발라버렸고
노들섬은 마치 한강에 뜬 군함처럼 낯선 모습으로 둥둥 떠있다.
박정희-전두환정권의 ‘한강종합개발’은
한강의 가장 아름다운 자연유산인 용산백사장과 곳곳의 백사장을 없애버린
최악의 ‘환경파괴 개발’이었다.
폐수 등으로 인해 한강의 수질이 극히 나빠졌던 70~90년대까지는
한강백사장 복원을 바라는 서울시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한강 수질이 좋아지고 홍수 대응 치수 능력이 크게 향상된 지금 상황에선
자연하천 한강의 복원과 한강백사장의 복원을 시민들이 바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민의에 따라 백사장 복원을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예산을 들여 한강백사장을 복원하면
큰비에 모두 쓸려갈 터이니 예산낭비라고 ‘지적질’하는 분들의 의견을 잘 듣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치수 능력과 토목 기술 등을 감안하면
이 지적질은 복원의 고려사항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한강 백사장의 복원에는 결코 큰 장애 요소가 되지 못한다.
자연하천 한강과 백사장 복원, 우리 세대가 반드시 해내자.
용산백사장은 여름엔 세계 최대 강수욕장이었으며
겨울엔 꽁꽁 얼어붙은 한강까지 이어지는 세계 최대 스케이트장이었다.
1966년 1월 발간된 잡지의 표지를 보라.
# 한강걷기 코스: 노들역 – 노들섬 – 용산백사장터
노들역(9호선)에서 내려
한강‘대교’로 걸어가며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다.
노들섬을 한 바퀴 돌아보면
한강의 동서남북 풍광을 모두 즐길 수 있다.
노들섬에서 다시 한강‘소교’를 이용해 북쪽 한강둔치로 진입한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드넓은 용산백사장터를 산책하며
한강백사장 복원을 상상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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