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이름으로
늑대의 이름으로
고래의 이름으로
뱀의 이름으로
코끼리의 이름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동물.
우리는 안내하는 동물.
우리를 먹이는 동물.
우리를 치유하는 동물.
부디 이 동물들을 치유하소서.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평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해서 무관심한 편이죠? 무관심을 넘어서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약탈하기까지 합니다. 우리에게 살 곳을 빼앗긴 동물들, 우리에게 약탈당하는 동물들, 우리가 오염시킨 땅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인간으로 인해서 고통 받은 동물과 생명들을 위해 오늘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무아래 앉아서 시작하겠습니다.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설악산 봉정암에서 기도를 마치고 새벽에 저 멀리 여명이 밝아오는 거죠. 동이 터오는, 그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때를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설악에서 저녁을 맞이하고 저녁에서 새벽으로 가는 그 풍경을 담은 음악이라고 그럽니다. 슬기둥의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설악산 봉정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안 올라가본 사람 몇이나 있을까?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뜻밖에 안 가본 사람이 훨씬 많더라고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70세 80세 된 분은 어지간한 분은 “갔다 왔어요, 무릎이 아파도 가고요, 허리가 아파도 가고요, 수술했어도 갔다 왔어요.” 이러는데 오히려 젊은 층들은 “거기 봉정함 올라가봤어요.”하는 경우가 특히 드물더라고요.
인생을 살다가 한번쯤 그렇게 깔딱 고개를 넘어보고 싶을 때 그때 찾아가는 곳이 설악산의 봉정암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봉정암의 부처님은 언제 그렇게 그 곳에 계시지요. 살다가 힘든 일이 있을 때 한번 그렇게 훌쩍 봉정암의 깔딱 고개를 넘어갔다 와 보십시오. 2013년 한해가 가기 전에 다녀오셔도 좋고 말이에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경허 큰 스님의 일화, 경허 큰 스님과 만공스님, 제자인 만공스님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뭐, 불자라면 모르는 분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희한하게 이런 이야기는요, 듣고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고, 그게 왜냐하면 단순히 일화를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게 정말 나이에 따라 또 마음에 그 깨달음에 따라서 다르게 들려온다는 사실이에요.
한번은 하루 종일 제자인 만공스님이 스승님, 그 경봉스님을 따라서 탁발을 나갔습니다. 탁발을 나가서 이제 걸망을 짊어지고 오는데, 얼마나 짐이 무거웠는지 아주 그냥 온 몸이 다 녹초가 된 거에요. 그래서 스님에게 만공스님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걸망이 너무 무거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 좀 쉬었다가 가시지요?” 그러다 경허 스님께서 만공선사에게 그러죠?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버리도록 해라.” “네?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버리라니요?” “걸망을 버릴 것이냐? 아니면 무겁다는 생각을 버릴 것이냐?” “아니 스님, 오늘 하루 종일 힘들여서 이 탁발해서 무겁게 짊어지고 왔지만 이 곡식을 어떻게 버릴 것이며, 더구나 무겁다는 생각은 생각일 뿐인데 생각을 뭘 또 버립니까? 무겁다는 생각은 생각인 거죠.”
그렇게 이야기하자, 경허 스님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앞으로 막 걸어가시죠. 그런데 저 앞에서 웬 젊은 아낙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가요. 그래서 달려가서 그 물동이를 인 아낙에게 갑자기 입을 맞추고는 달아나죠. 그러니 물동이를 이던 여성이, 그 아낙이 그 물동이 떨어지고 다 깨지고, 동네에서 그걸 쳐다보던 마을 사람들 몽둥이를 들고 저 사람 잡으라고 막 달려가죠. 그러니 경허 스님이 도망을 가니까 만공스님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걸망을 매고 뒤 따라 갑니다. 얼마만큼 까지 달아난 뒤에 이제 마을 사람들을 좀 따돌릴 수 있었죠. 숨을 막 헉헉헉헉헉 몰아쉬면서 만공스님이 그러시지요.
“아니, 도대체 스님 뭡니까? 도대체.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화도 나고 달려와서 힘도 들고. 따지는 거죠. 그러자 경허 스님께서 너 아직도 걸망이 무겁냐? 달려오는 동안 그 걸망 무거웠었니? 이러고 물으시지요. 사실 그 아낙과 또 물동이 이야기, 걸망 무거운 이야기, 일화 자체가 재미있고 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만 그 메시지가 굉장히 강렬하지만 제가 더 관심 가는 건 그거에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버려라. 저를 만나러 오시는 분들,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아, 스님 정말 사는 게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요.” 라고 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다 내려놓지 못해서 두 가지를 다 집착해서 쥐고 있고 놓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려고 하니 생계가 당장 영향을 받게 되죠. 또 좋은 대학을 가고는 싶은데, 공부하는 건 너무 힘이 들어요. 우린 이렇게 이것과 저것 두 가지를 다 쥐고 놓치를 못합니다. 둘 중에 한 가지를 버리라 하는 경허 스님의 가르침, 우린 둘 다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어요. 정말 걸망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무겁다는 생각을 버릴 것인지. 그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좋은 대학을 가고 싶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겠지요.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데 도저히 공부하는 건 자신 없다. 그리고 그건 너무 힘들어. 회사도,“ 아이 내가 이런 회사 이제 때려치워야지.” 그런데 때려치우려고 하니까 살길이 막막해요. 그럴 때 우리는 사실은 개인에게도 유익하지 못하고 회사에게도 유익하지 못하죠.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혼란 속에서 양쪽에 다 도움을 주지 못하고 두 개의 걸망을 다 짊어진 채 힘들어 힘들어 하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봐집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저토록 많은 잎사귀들 모두 다 떨구게 될 것입니다. 나목으로 변해가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정말 둘 중에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삶, 어쩌면 그것 우리가 진정으로 선택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떠세요? 둘 중에 하나를 내려놓을 실 수 있겠어요? 아, 이번에 음악 들으시면서 생각해보시죠.
..
바랑 속에서 책 한권을 꺼내요. 또 여러분에게 제가 옛날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 같이, 책 읽어드리는 스님 코너에요. 이 시간은. 책 읽어 주는 여자, 책 읽어 주는 남자 많더라고요. 저는 책 읽어주는 스님으로 오래전부터 좋은 양서를 골라서 많이 읽어드리곤 했습니다. 나무아래 앉아서 시간에도 제가 책 읽는 시간만큼은 꼭 한 꼭지 넣어야지 해서 넣었는데, 뜻밖에 시청자여러분께서 더 좋아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오늘은 바랑 속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걷기라고 하는 책을 한권 꺼내보겠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세계에서 가장 큰 어른이면서 정신적 지도자인 라코다족 출신인 조셉마셜 3세가 쓴 글인데요, 그가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와 산책길에서 배웠던 부족의 지혜가 담겨있는 책이에요. 우리도 그 지혜의 글을 읽으면서 산책길 같이 나서볼까요?
할아버지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습관이 있었다.
때로는 내 옆으로 와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 길을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한번은 내가 너를 혼자 돌아가게 할 것이야.
만약 네가 온 길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넌 길을 잃게 될 것이야.”
이것은 내가 배운 자아발견의 첫 가르침이었다.
내 모습과 내 존재는 언제나 진행 중인 작업이다.
삶은 우리를 날마다 끊임없이 새롭게 만든다.
삶은 분명 우리가 걸어 온 길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러므로 그 길을 지나며 일어난 일에
누구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텅 빈 길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 중 누구도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
할아버지는 내게 늘 그것을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때와 장소는 우연이다.
하지만 우리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존재한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에게 육체적인 모습과
여러 가지의 고유한 민족성과
문학적 특성을 물려준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가정,
혹은 우리를 길러 준 가정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이라는
토대를 만든다.
..
참 신기하죠? 우리 눈에 대나무면 그냥 다 대나무로 보이는데, 그 대나무가 어느 나라에서 자랐느냐에 따라서 그 대나무 속에 담겨있는 소리도 다 달라요. 우리나라에 대금과 같은 그런 악기입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자란 대나무에서는 인도의 그 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렇죠? 우리나라에서 자란 대나무에선 우리가락이, 구슬픈 가락이 담기고, 안데스 산맥이라는 또 그쪽 지역의 소리가 담기는데, 대나무 속에 그 나라의 문화와 바람과 모든 숨결, 산맥 이런 게 그 속에 다 담겨 있다는 게 정말 놀랍지 않나요? 반수리이라고 하는 악기가 인도의 대나무 피리입니다. 반스라는 말은 뱀부 대나무라는 뜻이래요. 그리고 수루가 멜로디.
그러니까 대나무로 피리를 불어서 소리를 내는, 그래서 이 반수루라고 하는 악기를 독자적인 솔로 악기로 무대에 세울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 지금 연주한 하리쁘라스아디입니다. 제가 이 음반을 오래전에 네팔에 갔을 때 카투만두 시내의 중심부에 가면은 두루바루스케어 광장이 있습니다. 광장을 걸어가는데 어디에선가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이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막~ 따라간 거예요. “이게 어디서 들리지? 어디서 들리지?” 하면서. 그런데 저기 골목 어딘가에 이런 음반을 파는 CD 샵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들어가서 만나 사람이 이 하리쁘라스아디인데. 정말 세계적인 뮤지션인지 그때만 해도 몰랐었죠. 그런데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냥 저절로 그냥 무쟁삼매 속에 드는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우. 이 곡 들으면서 여러분도 그렇게 삼매속에 빠져보지 않으셨는지요.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또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런 청년들, 참 많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꿈을 가지되, 그게 꼭 직업이 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이렇게 방송국 일을 하면서 화가로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고, 회사에 또는 공무원으로 일을 하면서 작가처럼 글을 쓸 수도 있는 거구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 꼭 직업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괜찮을 듯합니다.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 직업으로 연결되는 것도 좋겠으나, 꼭 직업으로 연결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닌 거 같아요.
인도의 고대경전 중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지금 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라. 그런 말이 있어요. 지금 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라. 지금을 떠나서 달리 있지 않다는 거죠. 지금 이 순간 108배 절을 하다 보니 마음도 맑아지고 또 슬픔도 가라앉는다. 그랬잖아요. 이미 그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거예요. 인생에 정답이 따로 있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내 자신이 서 있는 발 디디고 서 있는 자리에서 108배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 왜 일어났을까요? 좀 더 자기 자신을 더 나은 길로 발전시키고 싶어서잖아요. 이미 그것이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거예요.
..
서러움 모두 버리고 우리 광야를 향해서 한 걸음 또 성큼 가보죠. 내 마음의 성소, 발원문 올리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신구의 3업을 청정히 하고 마음 챙김을 하는 그런 발원문 올리겠습니다.
<내 마음의 성소 - 발원문>
몸에 질병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듯이
마음에 무명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깨진 항아리에 부은 물이 남지 않듯
마음 챙김이 없는 마음엔
듣고 생각하고 명상하는 지혜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마음 챙김이 부족하면
많이 배우고 신심도 있으며 부지런히 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행동에 많은 허물이 생기는 법
부지런히 공덕을 쌓아왔더라도 마음 챙김이 없으면
산란함이라는 도둑에게 공덕을 빼앗겨
우리는 악도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번뇌라는 도둑들은 기회를 노리다가
기회가 오면 어느새 쳐들어와
우리들의 공덕을 순식간에 훔쳐가서
우리가 선도에 태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대문으로부터
마음 챙김이 떠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악도에서 받을 고통을 생각해서
그것이 떠나면 당장 불러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운 좋게 스승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따르고
붓다들을 공경하며
악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챙김이 쉽게 개발됩니다.
부처님들과 보살님들께서는
시방에서 걸림 없는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존경심과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생기고
자주 자주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오늘 올린 발원문은, 마음 챙김은 죽으로부터 벗어하는 길이고, 산란함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 했습니다. 이번 한 주 마음챙김 하시면서 여러분의 한 주가 청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당신과 내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공양 올립니다. 저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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