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26회) 자기분신 예배법

Buddhastudy 2010. 11. 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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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方三世시방삼세 帝網刹海제망찰해. 常駐一切상주일체 佛陀耶衆불타야중.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십방이라고 하는 것은 동서남북 사유상하. 열 가지 방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온 우주, 온 누리 이런 뜻이고. 삼세라는 것은 과거 세, 현재 세, 미래 세. 그러니까 저 무한겁전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르고 저 무한 겁 미래에 이르도록 시간적으로 통털어서 부처님이 계시는데 항상 계시는데 어떻게 계시느냐?

 

제망이라는것은 제석천의 그물이다. 이런 뜻이에요. 제석천이라는것은 이 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습니다. 그 수미산 아래에 4개의 섬이 있고, 소위 4주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는 남염부제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턱에 사천왕이 사는 사왕천이 있고. 그리고 그 꼭대기에 제석천이 사는 인드라천, 33천이 있습니다. 그 제석천에는 33개의 성이 있고. 가운데 성경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서남북 8개에 가운데 한 개. 해서 33개의 성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33천이라 그래요.

 

그 인드라천, 제석천이 사는 궁전을 이렇게 구슬로 촘촘히 낀 아주 보배로운 구슬로 끼어서 그물처럼 만들어서 그 궁전을 덮고 있다 그래요. 그 구슬의 갯수가 84천 개다. 84천이란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 84천이 아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런 뜻입니다. 무수한, 무량한 수다 이런 얘기요. 그런 구슬이 서로 꿰어져서 그 그물을 덮고 있다. 그런데 무수한 구슬이 서로 꿰어져 있을 뿐만 아니고. 그 구슬 하나를 들여다 보면, 나머지 84천 개의 구슬이 그 하나의 구슬에 다 비친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하나 속에 전체가 다 들어있다. 그러면서 구슬 하나하나마다 다 그렇다 이거요. 이것이 우리가 법성게에서 말하는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그럼 이건 뭘 말하느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다 있는 그대로 우리가 볼 수 있으면 그것이 그대로 진여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우리가 저 사람 나쁜 사람이다. 저 사람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 하는데. 저 사람 나쁘다 할 때,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 우리는 그렇다. 왜 나쁜 사람인가? 그 사람이 사람을 때렸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했다. 나쁜 사람이라 그러잖아요.

 

그런데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사람은 그렇게 생겼고, 그런 행위만 있는데,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쁘다고 내가 상을 짓는 건가? 아니면 그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라서 내가 나쁘다고 알게 된 건가? 우리는 그가 나쁘기 때문에 내가 나쁘다고 알지. 그가 나쁘지 않는데 왜 내가 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겠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런 얘기요. 비유해서 말한다면 제가 끼고 있는 이 안경에 붉은 색깔이 들어있어요. 이 안경을 끼고 흰벽을 보면 벽이 붉게 보인다.

 

그럴 때 나는 벽 색깔이 본래 붉기 때문에 내 눈에 붉게 보인다 이렇게 나는 안다 이 말이오. 그런데 실제는 벽 색깔이 붉은 게 아니라 내 안경으로 인해서 내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실제는 붉은 게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붉게 보였다 이거요. 그런데 나에게 붉게 보인 것을 실제가 붉다 이렇게 말하면 이것이 상을 짓는 거요.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이렇게 본다. 자기 눈에 비친 것을 객관적이다. 진실이다. 이렇게 우리는 잘못 알고 있다. 이것을 색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상이라 그러기도 하고.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이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시비를 하는 거는 상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비하는 거 아니오. 그죠? 상대의 잘못이 없다면 왜 시비를 하겠어요? 넌 잘못됐다라는 상을 짓기 때문에 우리가 시비를 하는 거란 말이오. 상을 짓는다는 것은 그것이 나의 주관이 아니라 객관이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실제는 어떠냐? 그 붉은 색깔은 내 안경 색깔에서 온 거지 벽이 붉은 것은 아니다. 벽 자체는 색깔이 없다 이걸 공이라 그래요. 그러나 나에게는 붉은 색깔로 보이는 거요.

 

그러니까 첫째 해결책은 안경을 벗으면 돼. 이 안경을 벗는다. 이게 깨닫는다. 한 생각 돌이킨다. 이게 상을 타파한다. 업장을 소멸한다. 이런 여러 말로 표현을 할 수 있다 이거요. 그래서 내가 진실을 알면 저 사람은 그렇게 생겼고.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야. 그거 자체는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데. 내 입장에서 볼 때, 내 업식에서 볼 때는 그것은 좋은 거다. 그것은 나쁜 거다. 그것은 옳은 거다. 그것은 그른 거다. 하는 것은 내가 지은 상에 불과하다.

 

이걸 내가 자각하게 되면 비록 그런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 사람보고 너 행동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고, 당신의 행동을 보고 나는 나쁜 감정이 생겼다. 내 눈에는 그르게 보였다 이렇게 주관을 주관이라고 분명히 알게 된다. 상을 상이라고 알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렇지 않다. 넌 나쁘다. 이렇게 말한다 이거야. 이렇게 분별심을 갖고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이 중생계인데 이 분별심을 떠나서 상을 여의고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다 진여의 세계다.

 

그러니까 지옥이고 천당이고 이것이 다 우리들의 마음이 짓는 상이지. 실제의 세계는 지옥도 아니고 천당도 아닌 그냥 하나의 세계다. 그 세계를 우리가 진여의 세계, 부처의 세계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다 그대로 부처님의 세계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처처에 부처님이 계시고. 그러니까 모든 곳마다 다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을 공양 하듯이 어떤 일을 하게 되면 하는 일마다 다 불공이 된다 이런얘기요.

 

꼭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만 불공이 아니고. 남편을 부처님으로 보고, 남편에 공양을 올린다면 그것도 불공이 되고. 길가는 거지를 보고 불쌍히 여겨서 그를 잘 보살피면 그것도 불공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마다 다 공덕을 짓는 행위가 된다. 그러니까 똑같이 하지만은 이렇게 깨닫고 행하게 되면 하는 일이 다 공덕이 되고, 분별심을 일으켜서 행하게 되면 하는 일마다 다 업이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럴 때, 이러한 도리를 알게 된다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일이니까 자기가 최선을 다하게 된다.

 

,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도 뛰어넘어서 행하게 된다. 이런 마음, 죽음도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마음으로 행할 때, 우리가 이 몸을 부처님께 바친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이 몸을 불살라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는 것은 육신을 불사르는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이런 이치를 깨닫고 몸에 집착함이 없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정진을 할 때, 불공을 할 때, 이것이야 말로 몸을 버려 불공을 올린다 라고 할만하다. 이렇게 오히려 이해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